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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취재

‘경제중심’ 간판 내린 동북아위원회

집권 초 구상으로 유턴 과적운행이냐 쾌속질주냐

  • 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경제중심’ 간판 내린 동북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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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위원회측도 노 대통령의 동북아 협력 구상이 2차 세계대전 직후 서유럽의 ‘슈망 플랜(Schuman Plan)’을 원용한 것이라고 밝혀 이런 점을 뒷받침하고 있다(‘동북아경제중심 추진의 비전과 과제’, 국정홍보처 펴냄). ‘슈망 플랜’은 1950년 프랑스 외무장관 슈망이 구상했던 독일과 프랑스의 석탄·철강 공동관리계획이다. 당시 중요한 전쟁물자였던 철강과 석탄을 과거 적대국이었던 독일과 프랑스가 공동관리한다는 것만으로도 이 구상은 주변국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결국 슈망의 구상은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조약으로 이어졌고 이는 오늘날 유럽연합(EU)을 탄생시킨 모태가 되었다.

이쯤 되면 노 대통령이 동북아위를 통해 이루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내친김에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노 대통령은 후보 시절 훌륭한 지도자상으로 아데나워 전 독일 수상을 꼽은 적이 있다. 패전국 독일 수상으로서 수백 년 동안 적대관계에 있던 프랑스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유럽통합의 토대를 마련한 아데나워 수상이야말로 노 대통령이 동북아 구상을 통해 구현해보고자 하는 정치인상이라는 말이다. 동방정책을 통해 동독의 문을 연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수상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역할 모델이었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아데나워 전 수상을 역할 모델로 삼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동북아경제위 출범 당시 노 대통령의 이러한 구상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위원도 적지 않았던 듯하다. 일부 위원은 “위원회 내에서 뚜렷한 역할을 찾기 힘들었다”고 실토하했다. 한 인사는 “정부가 어떻게 돌아갈 수 있는지 학습하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지난 1년여 동안 1기 위원회 활동을 놓고 내부에서도 불만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동북아경제중심’이라는 정확한 개념에 대해 위원들 사이에서도 공감대가 이뤄져 있지 않다보니 공허한 토론이 거듭될 수밖에 없었던 데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등과의 업무 중복 문제로 적지 않은 진통을 겪어야 했다.

특히 동북아경제위가 동북아경제중심론의 핵심으로 설정했던 산업 클러스터(cluster) 구축 과제가 업무 중복 논란 끝에 균형발전위로 넘기는 것으로 결정됨으로써 ‘1년 동안 헛고생한 것 아니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민간위원 중에도 위원회의 목표와 관련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1기 동북아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노 대통령의 후보 시절 구상을 기조실에서 그대로 밀고가는 데 민간위원들이 손님처럼 참여하는 격”이었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조찬회의에서 1시간여 토론하는 게 전부인 위원회에서 민간 전문가의 의견이 반영될 여지는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지방대 교수 출신의 한 민간위원은 “서울에서 조찬모임 형식으로 열리는 위원회에 지방대 교수가 어떻게 참여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위원 구성 단계에서부터 심도 있는 논의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배순훈 “유감이다”

위원회의 성격과 관련해 논란이 이어지면서 정작 모양이 우습게 된 사람은 배순훈 전 위원장이다. 배 전 위원장은 대우전자 사장과 정보통신부 장관을 거친 기업인 출신으로 동북아경제위 위원장에 내정돼 ‘의외의 인사’였다는 평가를 들은 바 있다. 노 대통령은 ‘동북아위원장만큼은 교수 출신보다는 기업인 출신이 맡는 것이 좋겠다’는 구상을 밝혔고 위원회는 이에 따라 20여명의 기업인을 검토한 끝에 결국 배 위원장을 낙점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배 위원장은 번지수를 잘못 찾아들어온 모양이 돼버렸다. 이에 대한 배 전 위원장의 생각을 듣기 위해 ‘신동아’는 현재 프랑스 파리에 머물고 있는 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다음은 배 전 위원장이 보내온 답변 내용 중 일부이다.

- 동북아경제위의 활동 성과는.

“동북아경제위는 한국이 동북아의 경제중심이 되기 위해 규제완화(Deregulation), 민영화(Privatization), 자유화(Liberalization)라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의 3가지 원칙에 충실한 경제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데 주력해 왔다. 중국 및 일본과 협력하기 위해서는 세계 질서에 충실한 경제 체제를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 동북아경제위에서 물류, 금융, 산업 클러스터, 남북경협 등 너무 많은 현안을 다루다 보니 위원들 사이에서도 ‘동북아경제중심론’에 대해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지적이 있는데.

“동북아경제위의 5개 전문위원회는 위원회 출범 이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던 노 대통령의 구상이다.”

- 위원회의 위상에 대해서도 자문기구냐 의결기구냐, 또는 집행까지 떠맡는 집행기구냐 등으로 서로 견해를 달리했다. 위원회의 위상과 관련한 혼란은 없었나?

“위원장을 비롯한 민간위원들은 비상근이기 때문에 대통령 자문역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동북아경제위는 방향 설정을 추진하는 것이지 경제중심을 건설하는 집행기구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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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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