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호

‘9·11’ 3주년, ‘미국 요새’는 안전한가

11월 대선 앞두고 ‘악몽’재연 공포…테러정보는 부재

  • 글: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입력2004-08-26 1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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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이 대형테러 위협에 떨고 있다. 부시행정부가 9·11테러 이후 3년 동안 벌인 ‘테러와의 전쟁’ 공세에도 알 카에다와 그 동조세력은 여전히 위협적이다. 부시의 테러전쟁은 실패로 끝나는가.
    ‘9·11’ 3주년, ‘미국 요새’는 안전한가
    9·11테러가 발생한 지 어느새 3년이 됐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미 방송 CBS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주리 함상에서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했던 것처럼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테러와의 전쟁이 승리를 거둬 테러리스트들로부터 항복문서를 받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부시행정부가 벌이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은 ‘전쟁-종전협정-평화’로 이어지는 고전적 등식과는 다르다. 끝이 분명치 않을 뿐더러 언제 그 끝이 보일지도 알 수 없다.

    미국인들, 특히 부시행정부 관리들이 싫어하는 표현이 ‘미국 요새(Fortress America)에 갇혔다’는 말이다. 그들은 알 카에다를 비롯한 바깥의 테러 위협에 몸을 사리고 요새 속에 갇혀 지내는 미국이 아닌 그냥 ‘자유로운 미국’이길 바란다. 그러나 미국의 평화(Pax Americana)는 없다. 걸핏하면 테러비상이 걸리는 것이 오늘의 미국 요새가 부닥치는 현실이다.

    장관급인 톰 리지 국장이 이끄는 미 국토안전국은 8월1일 뉴욕과 워싱턴 일대 금융기관에 대한 테러경보 수준을 한 단계 올렸다. 이에 미 일부 언론에선 정보기관 관계자들의 말을 ‘테러경보 격상의 근거가 된 테러정보가 3년 전에 일어났던 9·11테러 때보다 더 오래된 것’이라며 부시행정부가 테러를 정치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미 국토안전국은 전에도 여러 차례 ‘알 카에다가 공격해올 가능성이 크다’며 비상을 걸었다가 슬그머니 푼 바 있다.

    미 국토안전국은 이미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부터 올 초까지 ‘테러리스트들이 방사능 물질이 든 이른바 ‘더러운 폭탄(dirty bomb)’을 사용해 9·11테러와 같은, 또는 그 이상 규모로 테러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며 비상령을 발표한 바 있다. 물론 테러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톰 리지 국장은 비상령의 근거를 묻는 기자들에게 ‘특정 정보자료들에 바탕한 분석결과’라는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해왔다. 비상령 자체가 일종의 테러 억지력(deterrent)을 갖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구체적 정보 없이 비상조치를 남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민주당 지지자들은 ‘테러 비상을 대선 정국에 이용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조직원 80%가 체포·사살됐지만…



    미 금융기관들은 오래 전부터 알 카에다의 공격목표로 꼽혀왔다. 신자유주의 깃발 아래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적 건물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뉴욕시는 3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며 긴장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을 차기 대선 후보로 확정하는 공화당 전국대회가 8월말 뉴욕에서 열리는 것도 한 이유. 반미 테러분자들로서도 이를 노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톰 리지 미 국토안전국장은 ‘알 카에다가 오는 11월2일 치러질 대통령선거를 방해할 목적으로 가까운 시일 안에(in the near term)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 주장해왔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알 카에다가 테러공격을 해올 것인지 정보당국자들이 알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3년 전 미국 뉴욕과 워싱턴을 강타했던 알 카에다 조직은 이미 중앙통제적인 조직이 아닌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동안 부시행정부가 아프간 침공과 이라크 침공과는 별도로 알 카에다 조직을 파괴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왔기 때문이다. 고위간부 및 중간간부 상당수가 9·11테러 뒤 테러와의 전쟁 공세에 휘말려 죽거나 붙잡혔다.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오른팔 아이만 알-자와히리는 알 카에다에 대한 조직적 통제력을 잃은 상태다. 그럼에도 알 카에다는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임에 틀림없다.

    싱가포르에 본부를 둔 국방전략연구소(IDSS) 산하 ‘정치폭력과 테러 국제센터’ 소장 로한 구나라트나가 미 계간지 ‘워싱턴 쿼털리’ 2004년 여름호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9·11테러 당시 약 4000명에 이르렀던 알 카에다 요원 가운데 80% 가량은 이미 체포되거나 죽임을 당했다. 이들을 국적별로 보면 102개국에 이른다. 나머지는 지하로 잠복해 들어갔다. 미 정보당국은 알 카에다 잔존세력이 1000명을 넘지 않을 것으로 추산한다.

    알 카에다는 2001년 10월 미군이 아프간에서 벌인 지속적 자유작전(Ope- ration Enduring Freedom)의 압박 속에서 조직을 지키기 위해 분산전술을 폈다. 그동안 훈련, 무장, 투쟁원칙, 재정 면에서 도움을 주어왔던 중동과 아프리카, 코카서스 지방의 반미저항단체들의 도움을 얻어 지하로 잠복한 것. 9·11테러 뒤 아프가니스탄의 훈련캠프를 잃은 알 카에다는 아프간 주변국들, 이를테면 파키스탄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등지에서 반미 이념을 같이하는 다른 저항조직들의 도움을 받아 생존해왔다. 아울러 알 카에다는 그들과 손을 잡고 이슬람권 내부의 적(세속적이고 부패한 지배체제와 지배자)과 외부의 적(미국을 비롯한 이교도 세력)을 향해 테러행위를 벌여왔다.

    알 카에다와 그 연계(또는 동조)세력들이 꼽는 이슬람권 내부의 적은 ▲유대인 국가인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맺은 이집트와 요르단 ▲군사독재정권이 다스리는 알제리와 파키스탄 ▲부패한 왕조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친미국가인 인도네시아 등이다. 알 카에다를 비롯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볼 때 이들 국가들은 대체로 친미 노선을 걸으면서 이슬람권 민중들을 세속화시키는 ‘가짜 이슬람’이다(빈 라덴은 특히 1991년 1차 걸프전쟁 이후 미군기지를 제공해온 친미부패 사우디아라비아 왕조를 뒤엎고, 그곳에 이슬람 신성국가를 세운다는 장기적인 목표를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들이 전처럼 아프간 같은 곳에 밀집돼 있지 않고 전세계로 퍼져 동조세력들과 함께 제2의 대형테러를 준비중이란 점이다. 9·11테러 뒤 반미 이슬람조직의 특징으로 분산(decentralization)을 들 수 있다. 원래 알 카에다는 재정이 튼튼하고 잘 조직된 대형조직이었다. 그러나 9·11테러 뒤 반미 테러의 지도력은 널리 분산된 상태다. 부시행정부의 테러전쟁에서 사실상 큰 타격을 입은 알 카에다는 위기국면을 맞아 연계 또는 동조 조직들에게 반미투쟁의 선봉대 역할을 넘긴 셈이다.

    이에 따라 미 정보기관들은 알 카에다뿐 아니라 전세계 반미조직들의 움직임에 감시의 눈길을 돌려야 한다. 이를테면 가나무역 직원 김선일씨를 납치·참수했다고 알려진 요르단인 알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이끄는 무장단체 ‘유일신과 성전’, 이라크와 스페인에서 잠행중인 모로코인들의 테러조직이나 독일의 알 타위드 같은 조직들의 동향에도 알 카에다 못지않게 수사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알 카에다보다 동조세력이 더 위험

    9·11테러 뒤 알 카에다와 그 동조세력들은 거의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제3세계 안의 서방목표물을 겨냥해왔다. 이를테면 인도네시아 휴양지 발리섬, 모로코 카사블랑카, 튀니지,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등이다. 위협이 계속되긴 했지만 2년 반 동안 미국과 유럽은 상대적으로 테러의 무풍지대였다. 서유럽 국가의 정보기관들은 2003년 11월 터키에서 유대인과 영국인들이 드나드는 건물들에 폭탄 테러가 저질러졌을 때도 ‘서유럽은 알 카에다의 공격목표에서 벗어나 있다’며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3월에 터진 마드리드 열차폭파사건은 서유럽이 테러의 무풍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빈 라덴은 9·11테러 이전에도 ‘이교도인 미국인을 죽이는 것은 이슬람 교도의 의무’라는 파트와(fatwa, 우리말로는 ‘율법’)를 발표했었고, 9·11테러 뒤에도 알 자지라를 비롯한 아랍권 언론매체들을 빌어 이슬람 교도들의 대미 지하드(jihad, 우리말로는 ‘성스런 전쟁’) 참여를 거듭 강조해왔다. 이후 알 카에다 동조 또는 연계세력들의 테러행위들은 빈 라덴의 그러한 투쟁 메시지에 대한 호응이라 여겨진다.

    9·11테러 뒤 일어난 테러사건들은 대부분 알 카에다 연계 동조세력들이 벌인 것들이다. 그렇지만 미국과 서유럽국가 정보기관들은 여전히 알 카에다의 움직임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사실상의 위협이 알 카에다에서 그 연계 (또는 동조) 세력들에게 넘어갔지만, 워낙 컸던 9·11테러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9·11테러 이후 알 카에다는 1년에 한번 꼴로 테러를 벌여왔다. 그러나 알 카에다 동조조직들은 석 달에 한번 꼴로 테러를 감행해왔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 잊을 만하면 터지는 폭탄 테러들이 그랬다. 테러사건도 전보다 더욱 늘어났다. 테러전문가들은 그같은 수적 증가는 알 카에다가 조직에서 운동으로 변환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9·11 뒤 일어난 테러의 큰 특징은 이른바 경성 목표물(hard target)에서 연성(soft) 목표물로 과녁이 옮아갔다는 점이다. 부시행정부는 테러전쟁 공세를 벌이는 한편 ‘미국을 요새화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테러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따라서 해외주재 대사관, 군사기지, 정부 관공서 건물들에 대한 테러공격은 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반면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철도역이나 상업 중심지 등 이른바 연성 목표물들이 테러리스트들의 새로운 과녁으로 떠올랐다.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전쟁이 길어질수록 이들 연성 목표물에 대한 테러공격은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제3세계 연성(soft) 목표물

    부시행정부의 압박에서도 알 카에다는 연계조직들과 손을 잡고 탄력적으로 대응하면서 반미운동(테러공격)의 한 축으로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9·11테러 이후 올 상반기까지 미국과 유럽의 정보기관들은 100건에 달하는 테러공격을 사전 준비단계에서 차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40건은 미 정보당국의 몫이다. 이처럼 강화된 경계조치와 보안검색으로 일부 테러공격 계획이 실행되지 못하고 말았지만, 또 다른 여러 계획들은 그 때문에 미뤄졌을 뿐 포기상태에 이른 것은 아니다.

    미 CIA가 밝힌 바에 따르면, 9·11 테러를 입안했던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별명은 ‘두뇌’)는 9·11테러 뒤 강화된 경계조치에도 불구하고 영국 히드로 공항을 테러공격한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또 터키와 마드리드에서의 동시 테러공격이 말해주듯, 알 카에다와 그 연계세력들은 테러비상이 걸린 서유럽에서도 작전을 펼칠 능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슬람권 테러리스트들은 유럽을 자금과 인력 조달, 피난처로 활용해왔다. 이를테면 현재 이라크에서 활동중인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 그룹과 알 안사르 알 이슬라미 그룹은 유럽에 따로 근거지를 마련, 유럽에 머무는 이슬람 교도들로부터 자금과 인력충원 면에서 새로운 피를 수혈받아왔다.

    미 정보기관들은 알 카에다를 비롯한 테러조직들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내부 정보원이 그들 조직 안으로 파고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한다. 이스라엘 첩보기관 신 베트는 하마스 내부에 정보원을 두고 지도자들의 동향을 손금 들여다보듯 해왔다. 그러나 이 같은 내부 침투는 아직까지는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9·11테러가 일어난 지 3년이 흘렀지만, 알 카에다는 여전히 미국과 유럽 정보기관에겐 ‘보이지 않는 조직’이다.

    미국의 대테러 전문가들이 9·11테러 뒤 관심을 기울이는 테러조직 요원 대부분은 수니파 이슬람 교도들이다. 이들에게 빈 라덴은 그들의 주의주장을 가장 극적인 형태(9·11 동시다발 테러공격)로 나타낸 인물이다. 이들 반미세력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의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 그리고 미국의 아프간-이라크 침공이 미국의 패권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알 카에다는 9·11테러 뒤 큰 타격을 입고 세력이 약화됐지만, 급진적 이슬람주의자들의 세력은 그리 큰 타격을 받지 않은 상태다. 이들은 알 카에다처럼 중앙의 통제를 받지 않은 채 조직-세포-개인의 절충적인 형태로 빈 라덴의 반미 대의(大義)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이들 조직들은 알 카에다와 직접적 연계가 없거나, 있다 해도 느슨한 형태의 연대조직들이다. 현재 이라크 팔루자 지역을 중심으로 반미 테러활동을 펴온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좋은 예다. 미 정보기관에서는 자르카위가 알 카에다 요원이라고 추정하고 있지만, 사실상 그는 빈 라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생적 이슬람 극단주의자로서 반미테러활동을 펴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올 초 미 정보기관이 찾아낸 자르카위의 편지를 근거로 그를 알 카에다와 연결시키려는 것은 미국의 테러전쟁 편의상 만들어진 분석이라 여겨진다.

    이라크 북부 쿠르드-이란 접경지역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안사르 알 이슬람(Ansar al-Islam, 우리말로는 ‘이슬람의 지지자들’)도 미 정보당국은 알 카에다 방계조직으로 분석한다. 이 쿠르드인 조직의 뿌리는 준드 알 이슬람이란 단체. 9·11테러 직후인 2001년 12월 안사르 알 이슬람으로 조직 이름을 바꾸고 재출발했다. 빈 라덴이 이 조직에 재정적 도움을 주었고, 아프간에서 도망친 알 카에다 요원들이 그곳으로 피신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안사르 알 이슬람 지도부는 알 카에다와의 연계설을 부인하면서 ‘빈 라덴의 반미 대의에 동조할 뿐, 우리는 알 카에다가 아니다’라고 주장해왔다. 현재 노르웨이에 머물며 가택연금상태에 있는 지도자 물라 크레카르도 2003년 8월 ‘빈 라덴은 이슬람의 보석같은 인물이지만, 나는 그를 만나거나 접촉을 가진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흔히 ‘동남아시아의 알 카에다 조직’으로 일컬어지는 제마 이슬라미야(Jemaah Islamiya)는 알 카에다와 느슨한 형태의 관련을 맺어왔을 뿐이다. 이들 이슬람 급진조직들은 각자가 속한 지역적 문제에 개입하는 한편 반미라는 큰 깃발 아래서 투쟁의 공통분모를 지녀왔다. 아울러 이렇다할 조직에 가입하지도 않고, 또는 조직 이름도 정하지 않고 반미 지하드를 수행하는 이슬람 행동주의자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들은 언젠가 제2의 알 카에다 조직요원이 될 것이다.

    ‘이라크가 알 카에다의 전쟁터’

    부시행정부의 테러전쟁이라는 큰 틀에서 치러진 아프간전쟁과 이라크전쟁은 알 카에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지난 7월말 영국 하원 외교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평가하는 한 보고서를 펴냈다. 이 보고서는 장기적 전망에 대해선 확정적인 평가를 삼가면서도 단기적으로는 ‘이라크가 알 카에다의 전쟁터(battlefield)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간의 경우도 외국 주둔군이 보다 많이 파병되지 않는다면 ‘참혹한 결과’가 생겨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부시행정부가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은 이라크 침공으로 더욱 어려운 국면을 맞이했다. 9·11 테러공격에서 비롯된 엄청난 희생이 미국의 테러전쟁에 국제적인 공동전선을 넓힐 명분과 기회를 제공했다면, 국제법상 필요요건인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거치지 않고 이뤄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9·11테러 뒤 알 카에다를 겨냥했던 국제사회의 공동전선을 오히려 축소시키는 역작용을 낳고 있다. 국제사회, 특히 이슬람권은 미국의 아프간 침공 때만 해도 ‘정의의 전쟁(just war)’이라는 부시행정부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9·11 테러에 대한 응징이었기 때문이었다.

    부시가 말하는 정의의 전쟁은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불의의 전쟁(unjust war)’이라는 비판에 부딪쳤다. 전쟁 초기 부시행정부는 이라크 침공이 테러와의 전쟁의 연장선이라고 주장했다. 딕 체니 부통령,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을 비롯한 부시행정부의 매파들은 이라크 침공 명분의 하나로 사담 후세인이 알 카에다와 손을 잡았다고 주장하면서, 마치 후세인이 9·11테러의 배후인양 선전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주장이었음이 드러났다. 미 의회가 지난 7월 하순 발표한 ‘9·11 보고서’에 따르면, 후세인은 알 카에다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국제사회, 특히 이슬람권에선 부시행정부의 이른바 테러전쟁이 테러 방지를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사실상 미국의 세계지배 패권을 확장하는 계기로 삼고 있으며 동시에 미국의 국가이익을 챙기는데 활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후세인 독재정권이 무너지자 미 부시행정부는 한때나마 반후세인 효과(anti-Hussein effect) 덕을 봤던 게 사실이다. 이라크 민중은 미국이 전란으로 피폐해진 이라크를 재건하고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거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기대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올 들어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의 수감자 학대사건이 터지고, 팔루자에서 1000명에 가까운 민간인들이 미군 공습과 군사작전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슬람 교도들의 반미감정은 더욱 악화됐다.

    지난 6월 이라크 현지취재 당시 만난 지식인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복합적인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독재자인 후세인이 권좌에서 물러난 것을 반기면서도 미국의 침공이 과연 이라크 국민을 위한 인도주의적 무력개입(humanitarian military intervention)이었나에 대해선 냉소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이라크의 온건한 지식인들조차 ‘미국이 후세인정권을 뒤엎고 이라크에 민주주의 정부를 세울 의지가 처음부터 있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이라크 바그다드대 역사학과 하산 알리 사브티 교수는 ‘부시의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은 우리 이슬람 민중을 상대로 한 전쟁(war against Muslims)에 다름 아니다’고 못박았다. 이라크에서 미군이 벌이는 전쟁은 결코 테러와의 전쟁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반미 테러조직들은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동조자와 자금원, 새로운 회원을 확보해왔다. 김선일씨를 무참히 죽인 것으로 알려진 알 자르카위를 비롯한 일부 테러리스트들은 이라크 민중의 반외세 감정에 편승, ‘테러’라는 극한적 투쟁방식을 거리낌없이 되풀이하고 있고, 일부 이라크인들마저 그런 극한방식에 대해 ‘외세를 몰아내기 위해선 전술적으로 필요하다’고 용납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테러와의 전쟁의 바람직하지 못한 부산물이라 보기엔 너무나 불행한 결과다.

    이라크의 반미 테러리스트들은 그들의 투쟁구도를 ‘미 침공자들-유대인들의 연합 대(對) 이슬람 민중’으로 몰아가는 투쟁전략을 쓰고 있다. 후세인 독재를 무너뜨렸다는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명분이 허구임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반미 테러리스트들의 그런 전략이 어느 정도 먹혀들고 있는 모습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라크 무자헤딘으로 싸워라’

    1980~90년대에 이슬람 교도들은 이슬람의 대의(大義)를 따라 아프간, 보스니아, 체첸에서의 무장투쟁에 지원자로 뛰어들었다. 이라크 안에서 무장테러활동을 벌이는 저항세력 중 외국 출신들이 섞여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장기적 전망으로도 이라크와 아프간에서는 이슬람 저항운동가들의 지하드가 이어질 것이고 테러활동도 그치지 않을 것이다. 알 카에다는 아프간 기지를 잃은 뒤 요원들을 훈련하고 투쟁일선에 나서도록 만드는 또 다른 지하드 무대가 필요했다. 그런 터에 미국의 일방적인 이라크 침공과 뒤이은 패착(이를테면 아부 그라이브 감옥 학대사건, 팔루자 학살사건)으로 반미 감정이 들끓게 된 이라크가 알 카에다에게는 아프간에 이어 자연스레 제2의 투쟁무대가 되고 있다.

    이맘(imam)이라 일컬어지는 아랍권 성직자들도 공공연히 반미 지하드를 외치고 있다. 반미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낮은 이집트의 이맘들조차 그러하다. 9·11테러 당시 그들은 ‘9·11테러는 비(非)이슬람적인 공격’이라며 빈 라덴을 비판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집트 젊은이들에게 ‘이라크로 가서 무자헤딘(아랍전사)으로서 침략자인 이교도들에 맞서 싸워라’는 설교를 하고 있다.

    아프간전쟁을 통해 알 카에다 세력을 약화시키는 데 성공하는 듯했던 부시행정부로서는 이라크 침공으로 테러전쟁에 실패한 것 같아 보인다. 이라크 침공과 뒤이은 악수(惡手)들이 이슬람권의 반미감정을 악화시키는 바람에 테러와의 전쟁이 끝없는 전쟁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정치사회적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에 따라 그동안 미국이 펼쳐온 테러전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알 카에다의 이론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2003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 보안당국에 의해 사살당한 유세프 알 아이예리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맞선 무장저항에 대해 이렇게 정의내린 바 있다. 아이예리는 빈 라덴의 경호를 맡았던 측근인물로, 아프간 알 파루크 훈련캠프의 교관을 지냈고 알 카에다 웹사이트를 운영했던 인물. 그는 “(미국의 침공으로 이뤄지는 형식적인) 이라크 민주화는 이슬람 교도들에게 죽음의 조종(弔鐘)과 같다”고 주장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민주주의란 인간이 만든 제도이며 무슬림들은 다만 이슬람 율법만을 따라야 한다.

    아이예리의 논리에 동조하는 이슬람권 저항운동가들에게 이라크는 이슬람적 가치를 지키는가 못 지키는가를 가늠할 중요한 시험무대다. 그들에게 이라크는 1980년대의 아프가니스탄이자, 1990년대의 보스니아처럼 이교도들에 맞서 이슬람을 지키는 전쟁터다. 따라서 이라크는 알 카에다를 비롯한 반미 테러조직에게 무자헤딘을 훈련시키고 현장에 투입하는 현실적인 투쟁장소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이 테러를 근본적으로 막는다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어려운 일이다. 모하마드 아타 등 9·11테러의 주역인 비행기 납치범들도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미 정보당국의 요주의 인물 명단에 들어 있지 않았다. 빈 라덴의 알 카에다 조직이 9·11테러를 기획하면서 비행기 납치 주역들을 선발할 때의 주요한 기준이 ‘어느 조직에도 가담한 전력이 없는 새로운 얼굴들이어야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1993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지하차고 폭탄테러사건이 벌어지기 전에도 CIA나 FBI를 비롯한 미국의 대테러 관련기관들은 이름이 잘 알려진 반미테러조직들의 동향에만 신경을 썼다. 이를테면 1983년 레바논 주둔 미 해병대 막사를 폭탄차량으로 돌진, 200명이 넘는 해병대원들을 순식간에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레바논 헤즈볼라 조직이 그러했다. 이는 9·11 테러가 일어나기 전 미국인의 인명을 앗아간 가장 큰 규모의 테러사건이었다.

    그러나 9·11테러의 예비적 성격을 띠었던 1993년의 세계무역센터 지하차고 폭탄차량 테러사건은 오로지 이 사건만을 위해 임시로 조직된 이름 없는 특수요원들에 의해 벌어졌다. 당시 아프리카 수단에 머물던 빈 라덴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고, 그로부터 아무런 재정적 도움도 받지 않았다. 람지 유세프라는 한 조직책이 아직껏 드러나지 않은 한 물주로부터 돈을 받아 기획한 사건이었을 뿐이다.

    전 CIA 대테러센터 소장이자 ‘테러리즘과 미 외교정책’의 저자인 폴 필라는 계간지 ‘워싱턴 쿼털리’ 2004년 여름호에 기고한 ‘알 카에다 이후의 대(對)테러’라는 글에서 “빈 라덴의 알 카에다가 1990년대에 발흥했다가 쇠퇴한 뒤인 지금 상황에서 미국에 위협적인 것은 (알 카에다가 아니라) 지리적으로 더욱 널리 퍼져 있는 (반미 지하드라는) 이데올로기적 동기를 지닌,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슬람 과격 무장집단들”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부시행정부의 테러전쟁은 바로 이들 새로운 이슬람 테러조직을 겨냥해야 한다는 것이 이 주장의 핵심이다.

    9·11테러 뒤 리더십이 더욱 분산된 반미 테러조직들의 경우 미 정보당국이 사전정보를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비록 그들 테러요원들이 지난날 아프간 내전에 무자헤딘으로 참전했던 인물들과 간접적으로나마 인간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반미 테러에 어떤 형태로든 가담했던 전력이 드러나지 않는 한 미 정보당국이 그들의 인적 사항을 파악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美, 반미 저항단체 계보도 짚지 못해

    반미 테러단체들은 9·11테러 뒤 한때 조직됐다가 없어지고 또다시 합치기와 가지치기를 되풀이해왔다. 그런 까닭에 미 정보기관들도 그 계보를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라크내 반미 저항단체 계보도를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파키스탄이나 인도네시아, 서유럽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걸핏하면 벌어지는 미군 오폭도 정보수집의 어려움과 무관하지 않다.

    부시행정부의 테러전쟁이 쉽사리 승리를 거두지 못하리라는 것은 레바논을 근거지로 한 헤즈볼라의 경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헤즈볼라는 미 국무부가 해마다 발표하는 테러 보고서에서 해마다 빠짐없이 주요 테러단체로 꼽혀왔다. 미 국무부 부장관 리처드 아미티지는 헤즈볼라를 ‘국제테러의 A팀’이라 규정할 정도다. 9·11테러 뒤 미 강경파들 사이에선 알 카에다에 이어 미국이 두 번째로 손봐야 할 대상으로 거론될 만큼 헤즈볼라는 미국인들의 미움을 받아왔다. 1983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일어났던 미 해병대 막사 폭탄테러의 강한 충격 탓이다.

    이마드 무그니야흐가 오랫동안 이끌어온 레바논 헤즈볼라의 영향력과 세력은 막강하다. 높은 대중적 지지를 바탕으로 의회에 진출하는 등 이미 레바논 정치에 합법적인 활동공간을 마련했다. 헤즈볼라 이름으로 펼쳐지는 각종 사회활동도 활발하다. 레바논인을 비롯한 이슬람권 사람들은 헤즈볼라를 지지하면서 부시행정부의 친이스라엘-이라크 침공정책에 비판적이다.

    헤즈볼라는 미국을 향해 신랄한 위협과 비난 성명을 발표하면서도 1996년 코바르 타워즈 사건 이후 지난 8년 동안 미국인에 대한 테러공격을 삼가왔다. 물론 그것은 전략적 선택일 뿐 미국에 타협적인 자세로 돌아선 것은 아니다. 마치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미는 미국을 비난하면서도 미국인에 대한 테러를 삼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난 6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만난 하마스 대변인 사미 아부 주흐리는 “미국은 샤론의 후원자인데, 하마스는 왜 미국을 공격하지 않는가”라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팔레스타인 점령자인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데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것이 우리 하마스의 기본전략이다. 현 국제정세로 미뤄 우리의 투쟁범위를 더 바깥으로 넓히는 것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라는 판단에서다.”

    9·11테러 뒤 한때 확대됐던 국제사회의 반테러 공조는 갈수록 노골화되는 부시행정부의 일방주의(친이스라엘 정책, 유엔 안보리 결의를 비껴간 이라크 침공)로 말미암아 미국 스스로 테러전쟁 전선을 강화할 기회를 놓친 모습이 됐다.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낡은 유럽’이라 비판했던 서유럽 국가들은 부시행정부의 테러전쟁에 어정쩡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서유럽 국가들은 9·11테러 뒤 부시의 테러전쟁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프간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뒤 나토군을 평화유지군으로 파병하는 데도 동의했다. 그러나 이라크에 나토의 깃발이 휘날리는 것에는 반대한다. 다른 한편 유럽 국가들은 이라크 사태의 혼란과 폭탄테러가 끊이지 않고 미군의 군사개입 강도가 수그러들지 않을 경우 그 불똥이 자칫 서유럽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염려한다. 이라크 상황이 악화돼 이슬람권의 반외세감정이 격화된다면 올해 3월 마드리드 열차폭파사건 같은 대형 테러가 서유럽에서 일어날 가능성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유럽 정보당국자들은 알 아사르 알 이슬람 같은 알 카에다 연계세력들이 이라크 테러 전역(戰域)을 서유럽으로 넓히려 들 것이라 긴장하고 있다.

    1989년 11월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1991년 12월 옛 소련이 해체되는 것으로 냉전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테러전쟁은 미국의 대중동정책이 친이스라엘 일방주의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그리고 이슬람권의 테러가 지닌 정치적 동기와 불만을 이해하고 그것들을 풀어가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9·11테러의 주역인 빈 라덴이 잡히거나 사살된다 해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테러전쟁은 무한전쟁이다.

    빈 라덴의 죽음이나 체포는 히틀러의 죽음이나 후세인의 체포와는 성격이 다르다. 자연인 빈 라덴 한 사람을 제거한다고 해서 미국이 테러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혹 알 카에다 세력이 다 잡히거나 사살된다 해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지도력이 분산된 또 다른 테러조직들이 미국인의 목숨을 노릴 것이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자국 중심에서 벗어나 지구촌 평화를 위한 것으로 수정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빈 라덴이 지구촌 어디선가 테러를 기획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군사적 점령정책이 바뀌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이 물러나지 않는 한, 하마스의 자살폭탄테러가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도 같다.

    요점은 부시행정부의 테러전쟁이 지닌 한계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강점을 비롯한 이슬람권의 좌절과 분노를 푸는 쪽으로 바뀌지 않는 한 알 카에다 세력을 완전히 소멸시키더라도 그들의 반미 투쟁대의를 따르는 제2, 제3의 알 카에다 조직들이 반미 지하드를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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