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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스토리

손 끝엔 名, 칼 끝엔 魂을 싣는 맛의 달인들

대한민국 ‘食神’ 열전

  • 글: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손 끝엔 名, 칼 끝엔 魂을 싣는 맛의 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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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딱 한 번 가게 문을 닫은 적이 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였다.

그러자 홍어를 먹으려다 헛걸음한 손님들이 ‘그 맛난 음식을 어디 가서 먹으란 말이냐’며 가게 문에다 쪽지를 몇 장씩 붙여놓았다. 오랜 단골이던 한 손님은 병석에 눕자 아들을 시켜 홍어회를 사오게도 했다.

결국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문을 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잊지 않고 찾아주는 단골손님들이 있으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음식을 만듭니다. 음식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은 벌받아야 해. 나는 식당 해서 빌딩 샀다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됩디다. 음식 만들어 팔아서 어떻게 그리 큰돈을 벌 수 있는지….”

‘순라길’은 식탁 10개가 전부다. “가게 치장하고 사람 쓰는 데 들일 돈 있으면 좋은 재료 쓰는 데 써야 한다”는 게 그의 신조다. 어머니에게서 홍어요리법을 전수중인 막내아들 이서구(31)씨는 장보는 방법을 배우는 데만 7년이 걸렸다.



“자식들 키우면서 ‘나쁜 짓 빼놓고는 뭐든지 하되, 그 직업에서 일인자가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작은아들이 홍어요리를 배우려 할 때도 ‘용두사미 되려면 시작도 말라’고 했어요. 음식을 다루는 일은 최고의 직업입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손님들이 즐거워하고 건강해진다면 세상에 그것만큼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소?”

김씨는 손님이 식당을 나설 때 음식값을 세는 대신 그의 얼굴을 본다. 표정을 살펴보면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돈벌이에 앞서 장인정신이 몸에 밴 김씨.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그녀의 홍어회를 맛보기가 쉽지 않다.

[초·밥] 남춘화 “싱싱한 생선은 ‘기본’, 최고의 초밥은 ‘초’와 ‘밥’이 결정”

손 끝엔 名, 칼 끝엔 魂을 싣는 맛의 달인들
“요리는 아름답고 그걸 알아주는 손님이 있으니 행복하다”는 ‘초밥왕’ 남춘화(54)씨. 서울 대치동의 초밥전문점 ‘남가(南家)’ 사장이자 주방장인 그는 초밥의 원조격인 일본으로 날아가 기술을 전수하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 때는 요리사로는 처음으로 ‘자랑스런 신한국인상’을 받았고, 자신의 이름으로 펴낸 요리책이 다섯 권에 이른다. 세 편의 CF에도 출연했다. 틈틈이 미국의 일식집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현지 초청강의에 나서기도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머슴살이를 하다 열여덟 나이에 고향인 경북 문경에서 무작정 상경해 식당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후 37년 동안 “뒤도 안 돌아보고 살았다”는 그는 이룰 만큼 이룬 지금도 1년 365일 하루도 빠짐 없이 두어 평 남짓한 스시 바에서 초밥을 빚어낸다.

‘달인’의 경지에 오르기까지는 혹독한 시절을 보내야 했다. 한끼 밥과 하룻밤 잠자리를 찾아 식당을 전전하던 시절,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연탄을 갈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겨울엔 찬물에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하느라 손이 얼어터지고 피가 났다. 그래도 쫓겨날까봐 힘들다는 말은 입 밖에 꺼내지도 못했다. 칼날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손놀림으로 음식을 척척 만들어 내놓는 요리사를 훔쳐보며 ‘언젠가는 나도 저 자리에 설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악물었을 따름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10년 뒤 그는 하얏트호텔 초밥부 책임자가 됐다. 하지만 얼마 못 가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남 보기엔 부러운 자리였지만, 나이는 자꾸 들어가고 식구는 불어나는데 허구한 날 초밥만 만들고 있다가 어머니와 네 식구를 제대로 건사할 수 있을지 불안했다”는 것.

그 무렵 마침 일본 하얏트호텔로 연수를 떠날 기회가 주어졌고, 그는 난생 처음 ‘외국물’을 먹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호텔에서 ‘종주국’ 초밥 기술을 익히는 한편 쉬는 날이면 아카사카와 긴자의 소문난 일식당들을 무작정 찾아다니며 주방장들을 졸라 요리법을 배우고 자료를 모았다. 그런 기회가 두 번 다시 오기 어렵다는 생각에 잠도 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때만 해도 요리사라는 직업을 내려다보고, 요리사 자신도 스스로를 비하하던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 요리사들은 반백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위생복 차림으로 거리며 골프장을 활보하고 있었다. 요리사를 천직으로 알고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들을 보고 남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생각을 180도 바꿨다. 투철한 직업관을 가지고 한 우물만 열심히 파겠다고.

특허받은 초밥식초

일본 연수를 끝낼 무렵 남씨는 초밥식초를 개발하고 4년 뒤 ‘인스턴트 초밥식초 제조법’으로 발명특허를 받았다. 맛있는 초밥을 만드는 비결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초밥초다. 초밥초는 대개 식초, 소금, 설탕을 섞은 배합초를 일컫는데, 그가 특허를 받은 초밥초는 식초, 소금, 백설탕에 술, 다시마, 레몬향을 첨가한 것이다. 초밥초의 재료와 분량은 요리사의 입맛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일본에서도 가령 오사카식은 도쿄식보다 단맛이 많이 도는 초밥초를 쓴다.

“초밥초를 만들 때 주의할 점은 소금과 설탕, 식초를 약한 불에서 완전히 녹여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쁘다고 차가운 식초에 소금, 설탕을 넣고 대충 몇 번 휘휘 저어 쓰면 간이 제대로 배지 않아 밥에서 신맛만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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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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