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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方外之士 ⑨

평생 전국을 걸어다닌 ‘江湖의 낭인’ 신정일

“길 위에 모든 것이 있다”

  • 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평생 전국을 걸어다닌 ‘江湖의 낭인’ 신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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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 대한 소감을 말해달라.

“강은 인간생활과 밀접하다. 한 방울, 두 방울이 합해지면서 점차 낮은 곳으로 흐른다. 중간에 오염된 물이 유입되어도 이를 받아들이고 정화해가면서 바다로 들어간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포용한다. 우리나라의 강은 강마다 느낌이 다르다. 금강은 변혁의 역사를 안고 있는 강이다. 호남에서 시작하여 북진하다 계룡산을 멀리 싸고돌면서 다시 내려온다. 그 역류하는 강변마다 구체제에 대항했던 민초의 삶이 얽혀 있다. 섬진강은 퍼주고 또 퍼주고도 준 티를 내지 않은 누이 같은 강이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흐른다. 한강은 민족의 동맥 같은 강이다. 힘과 활기가 느껴진다. 낙동강 물줄기를 보면 한민족의 정신사를 보는 것 같다. 상처와 영광이 아울러 깃들어 있다. 영산강은 강 중간 중간에 물막이댐이 많아서 허리가 잘린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가장 오염된 강은 낙동강이다. 1970∼80년대 경상도 지역이 산업화하면서 낙동강이 그 직접적인 상처를 입은 것 같다. 그래서 ‘안동의 똥물을 대구사람이 먹고, 대구 똥물은 부산사람이 먹는다’는 말이 나왔다. 이에 비해 한강은 깨끗한 편이다. 수도권의 식수라 그런지 비교적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한강은 경치도 제일 아름답다. 강물을 따라 걸으면서 강이 크고 길어야만 여러 가지 경치를 빚어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유장하게 흘러야 볼거리가 있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한강 경치 중 특히 아름다웠던 곳은, 남한강이 흘러오다가 단양에 이르기까지의 물길이다. 한강 상류에 해당하는 동강과 서강이 만나서 남한강이 되는데, 그 중간 중간에 고씨동굴, 온달산성이 있고, 영춘 일대, 단양팔경, 도담삼봉 일대 경치가 낭만적이다.

낙동강 하류는 오염되었지만 상류는 아주 아름답다. 봉화 청량산과 도산서원의 중간쯤에 위치한 가송리 일대가 낙동강 경치 중에서 가장 볼만하다. 하지만 이곳에선 사람을 볼 수 없었다. 특히 청량산 기슭인 석포에서 명호에 이르는 구간은 한나절을 걸어도 지나가는 사람을 발견할 수 없었다. 길을 물어보려 해도 사람이 없었다.”

필자는 신정일씨의 인생행로를 보면서 ‘필드(field)가 그의 선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말이 있다. 책상과 도서관에서 자료를 뒤적거리기보다는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뛸 때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필드 정신의 계보를 추적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선배가 한 명 있다. 18세기 중반을 살았던 이중환이다. 그가 쓴 ‘택리지’는 무려 20년에 걸친 현장답사의 결과물이다. 좋게 말해서 현장답사이지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20년간의 정처 없는 강호유랑(江湖流浪)이었다. 강호유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등 따습고 배부르면 못하는 일이다. ‘끈 떨어진 연’이 되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인생은 끈이 떨어져봐야 비로소 산천이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이중환은 나이 38세(1727년)에 끈 떨어진 연이 되었다. 노론정권이 들어서면서 남인은 완전히 찬밥 신세가 되었는데, 이중환이 그 남인계보에 속해 있었다. 고금을 막론하고 끈 떨어진 사람이 시도할 만한 일이 주유천하(周遊天下) 아니던가.

이중환은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마음 편하게 살 만한 곳을 물색했다. 환갑 무렵 그 물색의 결과물을 책으로 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택리지’다. ‘택리지’는 ‘정감록’과 함께 조선후기에 가장 많이 필사된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현장에서 건져 올린 생생한 정보가 많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장사하는 사람은 택리지를 보고 각 지역의 특산물이 무엇이고 물류의 흐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고, 풍수를 연구하는 사람은 전국의 지세와 명당을 자세히 알 수 있었으며, 산수유람가에게는 여행가이드북이 되었다.

신정일씨는 이중환의 계보를 계승하였다. ‘택리지’의 필드정신을 계승한 책이 그가 2003년에 내놓은 ‘다시 쓰는 택리지’(3권)다. 전국의 산과 강을 걸어본 강호파만이 쓸 수 있는 책이다. 그는 길 위에 모든 것이 있다고 설파한다. 두 갈래 길을 만날 때마다 그가 선택한 길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었다. 왜냐면 스스로를 강호(江湖)의 낭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강호파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들어가 보는 사람이다.

어둠, 고요 그리고 죽음의 공포

-답사를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인가.

“죽을 뻔한 적이 있다. 낙동강변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승부역’이 나온다. 이 승부역에는 승부터널이 있는데, 그 길이가 600m나 된다. 혼자 타박타박 이 터널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역무원이 팔을 붙잡았다. ‘무엇 때문에 굳이 걸어서 터널로 들어가려 하느냐. 조금 있으면 기차가 오니까 그 기차를 타고 가라’고 말하더라. 나는 ‘낙동강을 걸어서 내려오는 중이고 반드시 걸어야만 할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역무원이 랜턴을 가지고 있냐고 물었다. 굴속이 깜깜해서 랜턴이 없으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평소 해질 무렵이면 숙소에 도착했기 때문에 랜턴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그러면서 역무원이 오후 5시45분에 기차가 터널을 지나간다고 알려줬다. 손목시계를 보니 5시20분. 기차가 통과하려면 25분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25분이면 600m 터널을 걸어서 빠져나가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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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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