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페이지 ‘OK송’ 코너에는 그가 부른 노래 14곡이 수록돼 있다. 가곡 6편, 가요 5편, 외국 노래 3편이다. 거의 성악가 수준이다. 작은 몸집(정말 작다. 키가 160㎝가 안 되니)에서 어떻게 그토록 우렁차고 중후한 목소리가 나오는지 신기하고 부러울 따름이다. 그 중 특히 기자의 가슴을 뒤흔든 노래는 ‘그리운 마음’. 그의 목소리는 달밤 사막의 샘처럼 그윽하고 고요하면서도 바위처럼 단단했다.
장관 인터뷰는 대체로 부처 업무에 초점을 맞추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는 지방행정가 출신으로 부산시장 선거에도 나섰던 준(準)정치인이라는 오 장관의 이력을 감안해 그런 ‘격식’을 따르지 않기로 했다. 오 장관도 동의했다. 해수부 장관 인터뷰 기사에서 해수부 얘기가 가장 뒤에 나온다고 불평하거나 못마땅해할 사람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자면 그렇다. 어쨌든 기자는 그가 할 말이 많다는 지역문제나 해수부 정책보다 그의 노래에 대한 얘기부터 듣고 싶었다. 그게 ‘노래가 있어 행복하다’는 사람에 대한 예우일지도 모르고.
“목청과 음악성은 부모님한테 물려받았습니다. 공부 잘하는 것과 체력도. 제가 노래를 배울 때는 피아노도 없고 녹음기도 없었어요. 조그만 트랜지스터가 있었는데, ‘정오의…’라는 음악프로에 맞춰 노트를 준비해뒀다가 괜찮은 노래가 나오면 가사를 받아 적었습니다. 멜로디를 들으면서 1절 가사를 쓴 다음 2절부터는 따라 불렀어요. 이른바 청음 (聽音) 훈련인데 그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 무렵 나온 노래는 거의 모르는 게 없을 정도였지요.”
“한 곡 쫙 뽑으면 분위기 팍 살았죠”
오 장관의 음악에 대한 ‘끼’는 성인이 된 후에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1993년 부산시 동구청장을 지낼 때 그는 ‘멜로 매니아’라는 성악모임을 만들었다. 말 그대로 ‘멜로디에 미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초기 회원은 8명으로, 공직자인 오 장관을 비롯해 의사 교수 기업인 등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성악가에게 레슨을 받았다. 6개월 후부터는 부산문화회관을 빌려 연습장소로 삼았다. 그때부터 시작된 ‘멜로 매니아’ 공연은 지금까지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매년 한두 차례씩 공연을 하는 ‘멜로 매니아’는 현재 부산에서 제법 알려진 성악모임으로 회원이 3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오 장관은 어릴 때 말더듬이였다. 초등학교 시절엔 책을 읽지 못할 만큼 증세가 심했다. 말더듬이를 흉내내다가 그렇게 됐다는데, 그 시절엔 말 더듬는 아이가 한 반에 몇 명씩 있었다고 한다. 특이한 이름 때문에도 놀림을 받던 그는 5학년이 되자 말 더듬는 버릇을 고치겠다고 독하게 맘먹었다. 수업시간엔 꼭 손을 들어 질문과 대답을 자청했고, 노래가 발음교정에 좋다는 말에 합창반에도 들었다. 지금은 말더듬 증세를 거의 극복한 편인데, 아직 흔적이 남아 있다.
-홈페이지에 수록된 노래 중 어느 곡을 가장 좋아합니까.
“‘Non ti scordar di me.’ 이탈리아 칸초네인데 우리말로 ‘물망초’죠. 우리 가곡 중엔 ‘그리운 마음’이 좋고요.”
-저도 ‘그리운 마음’이 좋던데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노래 부를 때 경상도 억양 나타나는 것. ‘거센’을 ‘그센’으로, ‘떠나가는’을 ‘뜨나가는’으로, ‘지금은’을 ‘지검은’으로….
오 장관은 겸연쩍게 웃으면서 기자가 지적한 가사를 하나하나 읊조렸다.
“경상도 사람은 어쩔 수 없어요. 다들 그런데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