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노라마로 촬영한 개성공단 전경.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냄비세트가 출고된 지 하루 만에 서울의 백화점에 진열돼 단 몇 시간 만에 매진되는 등 남측에서 남북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가 한창 부풀어오르던 때였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개성공단에서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며 공단 내 추가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대책 및 응급치료 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일제히 제기했다.
하지만 왕씨는 개성공단의 첫 번째 사망자가 아니라 두 번째 사망자였다. 통일부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소속 홍준표 의원(한나라당)에게 제출한 ‘개성공단 남북 인력 산업재해 현황 및 처리결과’ 자료에 따르면 왕씨 사건보다 2개월 앞선 지난해 10월17일 북측 근로자 한 명이 공사현장에서 추락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2004년 5월부터 올해 8월까지 남측 근로자 10건(사망 1건), 북측 근로자 10건(사망 1건) 등 모두 20건의 산재사고가 개성공단에서 발생한 사실도 확인됐다.
시기별로 보면 남측 근로자 사고는 2004년 4건, 2005년 6건으로 집계됐고, 북측 근로자 사고는 2004년 10월 사망사고 1건을 제외한 9건 모두 2005년에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개성공단에 입주한 남한 기업체가 지난해 12월부터 정상 가동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남측 근로자는 ‘사다리에서 추락’ ‘20kg 물체를 들다 허리부상’ ‘운전 중 지장물과 충돌’ ‘바닥 도장작업 중 넘어져 머리부상’ 등 공단 조성작업 과정에 비교적 경미한 부상을 당한 경우가 많다. 손가락 절단 등 근로자가 중상을 입은 건수는 2건. 올해 4월 이후 8월19일 현재까지 신고된 산재 건수는 없다.
반면 북측 근로자는 부상사고 9건 가운데 ‘프레스에 손가락 절단’ 등 손가락 절단사고 5건, ‘버스 쇼바 스프링 교체 중 부상’ ‘사출작업 중 손등 화상’ 등 공장 내에서 작업하다 중상을 입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북측 근로자의 손가락 절단사고는 올해 1월11일과 14일, 24일 등 1월 한 달에만 3건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통일부는 2004년 2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안전대책을 마련하지 않다가 손가락 절단사고가 빈발하자 뒤늦게 대책마련에 나섰다.
南 기업, 北 근로자 사망해도 책임 없어
통일부는 개성공단 산재사고와 관련해 “올해 2월 관리위원회로 하여금 한국산업안전공단의 기술지원을 받아 개성공단의 산업안전에 대한 현장 점검을 실시하고 개선, 시정토록 기업에 권고했다”고 밝혔다. 또한 “4월부터 개성 현지 관리위원회에 산업안전보건 전문가를 파견, 상시적인 점검과 개선체계를 구축했다”고 덧붙였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늑장대처의 전형을 보여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