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새 등심 뭐 쓰고 있어?”
안 그래도 고기 때문에 골치를 썩던 판이라 무슨 좋은 소식이 있나 싶었다. 필자는 한달음에 친구 업소로 달려갔다. 그는 냉동된 고깃덩어리를 보여주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뭔지 알아? 미국산이란다.”
비닐 포장지에 미국의 유명한 식육수출업체인 ‘엑셀’사 상표가 떡하니 붙어 있는 고기였다. 고기 유통업자가 좋은 고기가 있다며 샘플로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소름이 끼쳤다. 유통업자에 따르면 미국산 쇠고기가 시중에 많이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농축산물 유통시장은 영세하고 행정 통제가 제대로 안 돼 이미 수입돼 시장에 풀린 고기의 유통을 막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당연히 반품돼 폐기 처리돼야 할 고기가 버젓이 유통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후 필자는 여러 유통업자에게서 비슷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미국산 고기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며 오히려 값이 비싸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폐기해야 할 고기라면 값이 엄청 떨어져 암시장에서 유통되는 게 정상일 텐데, 거꾸로 값이 뛰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미국산에 대한 시장의 선호도가 높다는 얘기다.
‘청정우’는 과연 청정할까
미국산 쇠고기는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쇠고기의 맛은 대체로 사료와 비육방식에 좌우된다. 풀을 많이 먹고 자라는 소는 운동량이 많아(방목하는 경우) 육질이 질기고 고기의 맛을 결정하는 지방질의 품질이 나쁘다. 지방도 적어 부드럽지 않다. 그래서 콩과 옥수수 같은 사료를 집중적으로 먹여 길러야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곡식 생산국답게 옥수수와 콩이 소의 주 사료다. 당연히 고기의 질이 뛰어나다. 광우병 파동 이전만 해도 시내 초특급 호텔과 유명 식당에서는 미국산으로 쇠고기 수요를 충당했다.
그런데 이렇게 질 좋다는 미국산 쇠고기 중엔 먹어서 하등 득이 될 게 없는 것이 적지 않다. 좋은 등급의 쇠고기는 꽃등심처럼 기름이 촘촘히 박혀 먹기에는 부드럽고 좋지만 여러 면에서 문제가 많다. 포화지방 함유량이 높아 각종 성인병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비인간적인 사육 방법을 동원하기로 악명이 높다. 질 좋은 마블링을 만들기 위해 소를 꼼짝없이 묶어놓고 기르는 방법은 고전에 속한다. 운동량이 부족한 소가 각종 질병에 노출될 것을 우려해 고단위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아예 사료에 섞어 먹이기도 한다. 유럽(EU)에서는 성장촉진제 사용이 금지돼 있고 항생제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수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사육 과정에 항생제 사용 금지를 권장하고 있는 판국이다. 더구나 미국 소의 주사료가 대체로 유전자조작(GMO) 처리한 옥수수와 콩이라는 것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 최근 미국에서 다시 광우병이 발생해 수입 재개 압력이 당분간 없을 것이란 게 그나마 다행이다.
고기 얘기가 나온 김에 미국산이 수입 금지되면서 국내 수입 쇠고기 시장을 평정한 호주산을 거론해보자. 호주산은 우리나라에서 ‘청정우’라는 이름으로 팔린다. 마치 드넓은 호주의 들판에서 ‘청정’하게 기른 소처럼 인식된다.
그러나 호주의 축산업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항생제 처방을 하고 풀보다는 유전자조작 처리가 의심되는 옥수수와 콩을 먹고 자란 소가 더 많다. 이 또한 사육의 효율과 좋은 육질을 얻기 위한 것이다. 사료용 풀조차 제초제에 노출돼 있다는 것은 논외로 치고서라도 말이다.
다시 말해 호주산 쇠고기라고 해서 모두 다 ‘청정’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통상 마찰을 우려해서인지 호주산 쇠고기에 죄다 ‘청정우’라는 브랜드가 붙어 있어도 아무 말 않고 있다. 비교적 문제 될 소지가 적은 생수에도 ‘청정’과 같은 표현을 못 쓰게 하는 정부가 항생제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은 쇠고기에 뭔가 자연적이고 건강한 것을 떠올리게 하는 ‘청정우’라는 브랜드를 달게 내버려둔다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