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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과 선덕여왕 역사와 허구의 경계에서

  • 김현미│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미실과 선덕여왕 역사와 허구의 경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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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과 선덕여왕 역사와 허구의 경계에서

‘춘추: 신라의 피 한국 한국인을 만들다’이종욱 지음/ 효형출판/ 448쪽/ 2만2000원

진흥왕은 사도왕후와 결혼해 동륜과 금륜(진지왕) 두 아들을 두는데, 사도왕후가 바로 미실의 이모다. 그리고 미실은 결혼한 몸으로 진흥왕의 후궁이 된다. 미실은 버젓이 남편이 있음에도 이모부인 왕과 사통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진흥왕의 아들인 동륜태자에게도 색공을 한다. 이는 사도왕후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사도왕후는 조카 미실에게 동륜태자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면 태자비로 삼겠다고 약속한다. 당시 동륜태자의 할머니 지소태후(세종의 어머니로 미실에게는 시어머니)는 태자비로 만호공주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사도왕후는 조카 미실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동륜태자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자 둘째 왕자 금륜이 태자가 된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진흥왕이 죽자 사도왕후는 전왕의 왕비이며 신왕의 어머니인 태후로서 왕위를 장악하기 위해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은밀히 미실과 금륜이 관계를 갖게 하여 이후 미실을 비로 맞이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이 음모에는 미실의 남편 세종도 가담했고, 심지어 미실의 요구로 세종은 사도왕후와 사통한다.

하지만 진지왕(금륜)이 아내인 지도왕후를 사랑해 미실을 왕후로 봉하지 않자 사도태후와 미실은 3년 만에 진지왕을 폐위하고 죽은 동륜태자의 아들 백정을 즉위시켰다. 그가 26대 진평왕이다. 사도태후는 13세의 어린 진평왕에게 다시 미실을 보낸다. 이미 서른이 넘은 미실이었지만 진평왕에게 색공을 하여 후궁이 되고 천하를 호령하면서 자신의 이모인 사도태후를 지원한다. 그 사이 미실은 남편 세종과의 사이에서 하종과 옥종을, 동륜태자와는 애송을, 진흥왕과는 반야 난야 수종을, 설원랑과는 보종을, 진평왕과는 보화를 낳았다. 색공을 통한 이모와 조카의 합작은 30년간 지속되었다.

미실과 선덕여왕 역사와 허구의 경계에서

‘색공지신 미실’ 이종욱 지음/ 푸른역사/ 211쪽/ 1만원

선덕여왕의 남자들



오늘의 상식으로는 미실이 행한 ‘색공’을 이해하기 어렵다. 아니 간통죄로 감옥을 제집 드나들 듯해야 할 상황이다. 물론 당시에도 미실의 방탕한 삶은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로 인해 미실은 그토록 원하던 정비가 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후궁에 머물러야 했다. 하지만 미실을 단지 부정한 여인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색공지신 미실’에서 이종욱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신라인들에게 색공은 널리 행해졌다. 색공은 골품과 지위가 낮은 사람이 그 아내의 색, 즉 성(性)을 골품과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색공은 단순히 에로티시즘의 문제가 아니라 고도의 정치적 행위였다. 색공의 대가로 자신과 그 일족들이 부귀를 얻었기 때문이다.”

미실은 근친혼을 통해 혈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던 신라 사회를 이해하는 열쇠다. 즉, 미실의 색공은 신라 왕위 계승의 실상, 성골과 진골의 골품제, 풍월주를 중심으로 한 화랑도, 상속과 혼인, 처첩 관계, 사통관계 등 얽히고설킨 여러 가지 사회적 관계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의 창구인 것이다.

그렇다면 진평왕의 뒤를 이어 신라 제27대 임금이 된 선덕여왕에 대해 ‘화랑세기’는 어떻게 전하고 있을까? 진평왕을 끝으로 신라는 성골 남자가 없어져 여자지만 성골 신분인 27대 선덕, 28대 진덕여왕이 즉위했다. 처음에 진평왕은 폐위된 진지왕의 아들 용수를 사위로 삼아(선덕여왕과 자매인 천명공주의 남편) 왕위를 물려주려 했으나, 마음을 바꿔 용수의 동생 용춘과 선덕을 맺어주고자 한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서 자식이 없자, 다시 용수에게 선덕을 모시게 했으나 이들 사이에서도 자식을 얻지 못하자 결국 선덕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용수는 천명공주와의 사이에서 아들 춘추(태종무열왕)를 두어 결국 자식 대에서 왕위에 오르는 데 성공한다. 용수와 용춘 형제는 선덕여왕에게 평생 충성을 바쳤고, 대신 선덕여왕은 조카인 춘추를 후계자로 키웠다. 그러나 드라마에서처럼 선덕여왕과 미실이 권력을 놓고 치열하게 다퉜다는 기록은 ‘화랑세기’에도 없다. 두 사람을 동시대 인물로 그린 것은 철저하게 드라마의 상상력인 셈이다.

‘화랑세기’와 태종무열왕

이종욱 교수는 ‘춘추’에서 태종무열왕을 바로 보기 위한 세 가지 전제를 말한다.

첫째, 고구려·백제·신라를 동족의 나라로 보는 ‘민족사’의 개념을 버려야 한다. 삼국은 서로 다른 정치적 성장과정을 겪은 이질적인 사회였기 때문에 신라가 외세(당나라)를 끌어들여 동족의 나라를 멸망시켰다는 비판이야말로 역사왜곡이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삼한통일의 기반을 닦은 춘추의 업적도 폄하될 수밖에 없다.

둘째, 신라의 삼한통합(삼국통일)은 불완전한 것이라고 평가하는 것 역시 역사를 정치의 시녀로 만든 왜곡에 불과하다.

셋째, 따라서 삼국시대에 신라는 외국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나오는 춘추, ‘민족사’의 시각에서 평가된 춘추가 아니라 진짜 역사 속의 춘추를 재구성해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종욱 교수가 말하는 진짜 역사 속의 춘추란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세상을 다스린 주인이자 영걸한 군주인 춘추를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태종무열왕의 모습인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화랑세기’ 진위 논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동아 2009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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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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