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호

어지러움과 김연아

  • 입력2009-07-28 17: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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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지러움과 김연아

    어지럼증은 귓속의 전정기관이 자극을 받기 때문에 발생한다.

    어릴 때 한번쯤은 코끼리놀이를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한 손으로 코를 잡고 다른 한쪽 손을 땅에 축 드리운 채 뱅글뱅글 돌다보면 어지러워서 푹 쓰러지거나 균형을 잡기 힘들어 비틀거리고 속이 메슥거려 구토감이 났던 괴로운 기억이다. 이런 현상은 인체의 평형을 유지하는 구실을 하는 귓속의 전정기관, 특히 전정과 세반고리관이 자극을 받기 때문에 발생한다.

    전정기관은 림프액이라 하는 액체로 가득 차 있다. 이 액체의 양과 성분을 조절하면서 보일러처럼 물의 흐름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전정의 주요 기능이다. 제자리 돌기를 하면 전정과 세반고리관 안의 림프액이 따라서 돌고 순간적으로 멈춰도 림프액이 계속 돌면서 주위의 환경이 돌던 방향으로 계속 돌아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어지러움은 곧 물의 흐름이 통제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평형기능은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오감에 필적할 만큼 중요한 여섯 번째 감각이다. 평형기능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직립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어릴 때는 네 발, 커서는 두 발, 늙어서는 세 발로 다니는 짐승이 사람이라고 한 것은 평형에 대한 깊은 성찰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어지러움과 김연아

    김연아 선수가 어지럼증을 느끼지 않고 회전연기를 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훈련하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훈련

    어지러움을 뜻하는 현기증은 중추성과 말초성으로 나누어 구분한다. 말초성은 전정기능 이상으로 생기며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 있고 이명, 난청이 있으며 머리의 방향을 바꿀 때 증상의 변화가 많다. 반면, 중추성은 뇌와 관련이 있으며 붕 뜨는 느낌이 강하고 머리방향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이명 난청이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말초성은 귀와 관련한 어지러움으로 외부 바이러스에 의한 전정신경염과 원인이 불명한 양성돌발성체위성 어지러움이나 메니엘씨병, 귀의 염증으로 인한 것이 있다. 중추성은 귀와 관련되지 않은 것으로 머리를 다친 후나 뇌졸중의 초기 증상, 편두통, 약물복용 신경성이나 노화로 인한 어지러움으로 나뉜다.



    피겨 스케이팅의 여왕 김연아 선수의 동작 중에는 회전 동작이 많다. 그것도 스케이트의 뾰족한 한쪽 날로 착지하는 동작은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땅 위에서 두 발로 몇 번 돌고도 어지러워 쓰러지는 일반인과 달리 김연아는 고속 회전 후에 바로 다음 동작을 자연스럽게 이어간다.

    김연아가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훈련’하기 때문이다. 림프액은 돌지만 뇌가 그 상황을 보통의 자극으로 인식하게끔 습관화한 결과다. 김연아의 얼굴은 웃지만 백조의 발처럼 물밑에선 엄청 고된 훈련을 한다. 그런 노력이 완벽한 연기로 이어지는 것이다.

    귀와 관련,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귀가 거리를 측정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어릴 때 눈을 감고 상대의 등에 기댄 채 ‘어디까지 왔나’라는 물음에 어디라 짐작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귀의 거리측정 능력을 보여준다. 메니에르씨병의 발견자인 프랑스 의사 메니에르가 같이 마차를 타고 달리던 소녀가 갑자기 쓰러진 것을 보고 이 병을 인식하게 됐다는 것도 사고의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배우 유지태씨가 촬영을 위해 두 달 동안 계속 차를 타고 다닌 끝에 얻은 병도 바로 메니에르씨병이다. 이 질병의 조직학적인 병명은 특발성 내림프수종이다. 내림프액이 고여서 움직이지 않아 풍선에 물 담은 것처럼 관이 축 늘어지고 평형기능에 장애가 생겨 어지럽고 메슥거리면서 이명증세까지 동반한다.

    평형기능에 장애가 생기면 대부분 어지러워지면서 구토감이 생기고 메슥거린다. 비위가 자극받는 느낌이 수반된다. 한의학적 결론과 치료법은 귀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소화기이자 오행 중 토(土)인 비위를 치료하는 것이다. 범람하고 통제되지 않는 림프액은 홍수와 같다. 흙으로 둑을 쌓아 홍수를 통제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홍수가 나면 물은 많지만 쓸 수 있는 물은 없다. 통제되지 않는 물은 재앙인 것이다. 이 점은 동양의 신화와도 연결되어 있다. 중국의 최고 성왕인 요순황제 중 순황제 시대에 홍수가 나자 농사짓는 들판이 모두 물에 잠겼다. 곤이라는 사람이 나서 물길을 잡겠다고 하늘의 흙인 식토를 훔쳐 제방을 쌓았다. 흙은 물을 제어하지만 낮은 곳으로 물꼬를 인도하는 원리를 간과해 실패했다.

    어지러움과 김연아
    이상곤

    1965년 경북 경주 출생

    現 갑산한의원 원장. 대한한의사협회 외관과 이사, 한의학 박사

    前 대구한의대 안이비인후피부과 교수

    저서 : ‘콧속에 건강이 보인다’ ‘코 박사의 코 이야기’


    어지러움을 치료하는 한의학의 대표처방은 반하백출천마탕이다. 이 처방은 이런 모든 지혜를 포함하고 있다. 택사란 약물로 인체에서 가장 낮은 부위인 신장으로 물꼬를 인도하고 백출과 반하라는 위장을 다스리는 약물을 사용하여 인체의 흙인 토기(土氣) 즉 제방을 튼튼히 한다.

    전통적인 민간요법은 소의 지라를 삶아 먹는다. 생소하겠지만 지라는 이자라는 기관의 꼬리에 붙어 있는데 한의학에서는 지라와 이자를 합해 비장이라 하고 위장과 합해서 비위를 소화기관의 부부라고 한다. 전통의 민간요법은 바로 충실한 한의학 이론에서 출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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