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호

미실과 클레오파트라

팜파탈과 카리스마, 그 영원한 매혹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입력2009-07-29 11: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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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다스리는 것이 소망이다, 비록 지옥에서나마, 천국에서 섬기는 것보다는 지옥에서 다스리는 것이 좋다.
    • - 밀턴, ‘실락원’ 중에서
    미실과 클레오파트라

    영화 ‘클레오파트라’(1961)에서 클레오파트라 역을 맡은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녀의 강렬한 눈빛과 마주치는 순간, 우리는 선과 악을 가르는 판단의 잣대를 잃어버린다. 그녀의 잔혹하지만 아름다운 독설, 타인의 안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소름끼치는 무심함 앞에서도, 사람들은 선뜻 반기를 들지 못한다.

    올여름 안방극장에서 가장 매혹적인 캐릭터 중의 하나는 단연 ‘선덕여왕’의 미실이다. 주인공 선덕여왕보다 오히려 강렬한 흡인력으로 시청자를 끌어당기는 미실의 매혹, 그 비밀은 무엇일까. 왜 시청자는 미실 앞에서 윤리적 잣대를 슬그머니 내려놓는 것일까. 그녀가 잔혹한 살인조차 서슴지 않는 줄 알면서도 왜 우리는 미실의 카리스마와 관능적 매혹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걸까. 왜 우리는 순수하고 지혜롭고 강인한 선덕여왕보다 ‘색공술(色供術)’로 권력을 얻은 악녀 미실에게 이끌리는 것일까. 아니, 미실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사악함’ 때문에 매력적인 것일까.

    ‘악녀’라는 단순성의 베일을 벗겨내고 보면 미실의 복잡다단한 매력이 드러나지 않을까. 요부이자 악녀로 유명하지만 천하를 호령한 정치가로도 악명 높은 한국의 클레오파트라, 미실. 우리는 미실의 매력과 클레오파트라의 매력을 비교하면서 강력한 카리스마와 팜파탈적 매력을 동시에 지닌 두 사람이 현대사회에서도 대중에게 갖는 짙은 호소력의 진원지를 밝혀보고자 한다.

    그녀들은 색공술로 권력을 얻었기 때문에 나쁜 것이 아니라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남성도 얻기 힘든 권력을 쟁취했기 때문에 남성들의 공포와 혐오감을 자극했던 것이 아닐까. 흥미롭게도 미실과 클레오파트라의 중요한 공통점 중의 하나는 두 사람 모두 살아서는 최고의 권력을 얻었지만 죽어서는 승리한 남성들의 역사에서 철저히 배제당한 역사의 타자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그녀들은 남자도 아닌 여자가, 정당한 방법이 아닌(?) 육체적 사랑으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더럽혔다는 역사적 혐의로 소환되곤 했다.

    팜파탈의 끝없는 귀환



    안토니우스와 이집트 여왕의 관계는 추문 성격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 기원전 37년,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처음으로 영토를 내준 일은 이집트 여왕을 유리하게 해준 것으로, 로마 영토를 탕진하기 시작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요컨대 안토니우스가 맹목적인 정열로 인해 나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악녀에게 영토를 탕진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들의 진짜 목표는 클레오파트라를 악녀로, 이집트를 로마를 위협하는 왕국이자 라틴 문명의 미덕을 타락시키는 나라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요소가 밀접하게 결합되었다. 동방에 대한 혐오감, 이방적인 것에 대한 공포감 그리고 여성 혐오증이 그것이다.(‘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마르탱 콜라 지음, 임헌 옮김, 시공사, 267쪽에서 인용)

    미실은 한국사에서 철저하게 은폐·말살되었다. 미실이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동방예의지국의 이름을 더럽힌다고 여겨졌기 때문일까. 현대 한국은 국가라는 이데올로기를 세우는 데 역사를 동원했다.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시대에도 엄연히 그 나름의 법률과 도덕이 존재했으나 민족사는 단군 이래 한국사의 무대에 등장한 모든 사람들에게 현대의 윤리, 도덕의 옷을 입혀버렸다. 따라서 현대 한국사학의 학문적 권력을 장악한 연구자 집단이 만든 역사체계로는 미실이란 존재를 도무지 설명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미실 이야기가 담긴 ‘화랑세기’를 한낱 소설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미실의 존재는 근원적으로 부정된다.(‘색공지신 미실’, 이종욱 지음, 푸른역사, 7쪽에서 인용)

    버나드 쇼는 ‘시저와 클레오파트라’(1898)에서 시저의 남성적 카리스마를 강조하기 위해 클레오파트라를 강인한 팜파탈이 아닌 새끼고양이처럼 깜찍한 어린아이로 만들어 그녀의 성적 매력을 은근슬쩍 삭제해버리기도 했다.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1607)에서는 스물한 살의 요염하고 성숙한 여성으로 그려졌던 클레오파트라가, 쇼의 작품에서는 위급할 때마다 유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철부지 16세 소녀로 폄하되었다. 클레오파트라의 나이를 줄임으로써 천하의 시저와 안토니우스마저 무장해제시켜버린 팜파탈의 공포감을 지울 수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승리자의 역사 속에서 아무리 제2, 제3의 클레오파트라를 마녀로 몰아붙여도, 그녀들의 숨길 수 없는 매력에 중독된 수많은 예술가가 매번 그녀들을 다른 빛깔로, 각 시대의 가장 위력적인 담론과 예술사조로 다시 소환해냈다는 것이다. 낭만주의 시대에 가장 인기 있는 주제가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비극적인 사랑이었으며, 오랫동안 ‘화랑세기’의 위작 논쟁으로 역사의 테두리 바깥에 추방되어 있던 미실은 ‘알파걸의 시대’ 21세기 한국에서 다시금 화려하게 부활했다. 셰익스피어가 클레오파트라에게 바친 찬사는 아마도 미실에게 매혹된 수많은 신라남자에게도 해당되지 않았을까.

    “나이도 그녀를 시들게 하지 못하고, 아무리 자주 만나도 그녀의 무한한 변신은 지겹게 여겨지지 않아요. 다른 여자들은 그들이 채워주는 욕망에 싫증나게 하지만, 그녀는 가장 만족스럽게 채워주었을 때 오히려 더 큰 욕망을 느끼게 하지요. 가장 야비한 일도 그녀에게는 그럴듯하게 어울려서 거룩한 사제들도 그녀의 방종을 축복해줄 정도랍니다.”(셰익스피어,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중에서)

    미실과 클레오파트라

    이종욱 서강대 사학과 교수가 저서 ‘색공지신 미실’(푸른역사)에서 정리한 내용이다

    [보기] 1. ~ 는 미실이 색공한 순서(세종은 성골도 아니고 미실이 그의 정비였기에 색공관계는 아님)

    2. [ ]는 왕의 대수

    3. 점선은 동일인물

    내 앞을 가로막는 자들에겐 죽음뿐

    남성이 남몰래 품고 있는, 강한 여성에 대한 근원적 공포와 적대감이 투사된 캐릭터가 바로 미실과 클레오파트라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은 첫 회부터 왕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왕의 유서를 은닉한 후 다음 왕좌에 오를 사람까지 자신이 직접 결정하며, 그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화랑, 즉 군사력을 동원해 멀쩡한 국왕을 왕좌에서 끌어내리는 쿠데타를 감행한다. 천하를 호령하던 최고의 남자를 둘이나 제거해버린 미실의 강력한 힘 앞에서 대적할 사람은 없다.

    그녀는 천하의 모든 것을 가졌지만 황후가 아닌 것이 싫다. 그녀의 유일한 결핍을 채워줄 사람을 찾기 전까지 그녀는 어떤 잔혹함도 불사할 것이다. 진흥대제의 유훈을 저버리고 금륜태자를 유혹해 동침한 그녀는 그를 ‘진지왕’으로 만들고 그의 아기까지 낳았지만 황후로 만들어주겠다던 애초의 약속을 들어주지 않자 자신의 아기까지 서슴없이 유기한다. “미안하구나. 아가야, 난……. 이제 더 이상 네가 필요 없다.” 자신의 아기까지 버린 마당에 남의 아기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미실을 대적할 자! 북두의 일곱 별이 여덟이 되는 날 오리라!”라는 신탁을 실현할지도 모르는 쌍둥이가 진평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나자 미실은 불안에 휩싸인다. 쌍둥이가 태어나면 성골 남자의 씨가 마른다는 끔찍한 금기 때문에 아이를 숨길 결심을 한 진평왕은 시녀 소화를 시켜 미래의 선덕여왕을 데리고 멀리 도망가달라고 부탁한다. 그 쌍둥이를 찾아 없애기 위해 혈안이 된 미실은 궁궐의 입구를 철저히 통제하여 쓰레기 한 조각도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지만, 풍월주 문노와 소화의 협동작전으로 아기는 무사히 궁을 빠져나가고 만다. 끝내 아기를 찾지 못한 미실은 궁궐의 출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병사들을 무참히 학살한다.

    “사람은, 능력이 모자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부주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병사의 목을 벤다. 그녀의 얼굴 또한 죽은 병사의 피로 얼룩져서 한층 그로테스크해진다. “사람은….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사람은! 그럴 수 없어! 칠숙! 지금 당장! 그 계집과 쌍둥이의 한쪽을 찾아와라! 얼마가 걸리든, 얼마가 죽든 상관없다! 반드시 찾아 내 앞에 데려와라! 알겠느냐?”

    흥미로운 점은 미실은 늘 수많은 사람 앞에서 대사를 읊지만, 단 한 사람도 미실에게 ‘예, 아니오’ 이외의 다양한 의견을 내놓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수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지만 사실 대화는 없고 오직 추상같은 명령과 독백에 가까운 선언만이 난무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모두를 지배할 수 있지만, 그래서 더더욱 철저히 외롭다. 궁궐 안의 모든 비밀, 왕실 사람들의 모든 치부와 아킬레스건을 샅샅이 알고 있는 미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운명의 덫에 걸려 신음하는 영혼들을 한껏 비웃는다. 비밀의 열쇠는, 오직 미실의 것이라고, 그녀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왕조차 숨죽여 지내게 만드는 미실의 권력, 그 배후에는 ‘사랑의 기술’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미실이 신라의 권력을 제패하게 만든 첫 번째 색공의 대상은 진흥왕이었다. 이미 세종의 아내이면서 게다가 금륜태자의 아이를 가진 상황에서도, 미실은 진흥왕의 몸과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는다.

    “진흥제가 한 번 사랑하고 두 번 사랑하고는 곁을 떠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미실에게 전주의 이름을 내렸는데(그 지위는 황후와 같았다). 미실을 총애함이 사해를 뒤집을 만하였다.”(‘화랑세기’, 김대문 지음, 이종욱 옮김, 소나무, 123쪽에서 인용)

    타인의 욕망을 읽는 기술

    신라의 권력자들이 하나같이 미실의 색공에 무장해제당했듯이, 로마 최고의 권력자 안토니우스 또한 이집트 여왕의 매력에 기쁘게 굴복한다. 로마의 영광을 부르짖던 남성들은 하나같이 안토니우스가 아닌 클레오파트라를 비난했다. 로마 역사가들은 클레오파트라의 침실에 들어간 것은 분명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였음에도 그들의 욕망이 아니라 ‘이집트 여자’의 유혹만을 단죄했다. 마치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비난이 로마의 역사를 구하기 위한 미션이라도 되는 듯이.

    총명하고 용감했던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의 마력에 홀려 로마를 도매금에 팔아넘겼다는 식의 묘사가 로마 측 기록에 난무하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한 이집트 여자가 만취한 로마 장군에게 로마 제국을 통째로 요구하게 되었다. 그녀의 애정을 받는 대가로 그는 그 괴물에게 자신을 완전히 내주고 말았다.”(플로루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의 매력을 묘사하는 문헌들에서 그녀는 단지 색공의 화신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클레오파트라의 가장 큰 매력은 그녀의 화술에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매력은 미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플루타르크에 따르면 “모두들 이야기하는 그녀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이 뛰어난 것도, 보는 순간 사로잡힐 만한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녀는 “미모로도, 기품으로도 옥타비아(안토니우스의 아내)를 능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플루타르크는 클레오파트라가 상대를 놀라게 하고 ‘넋을 빼앗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의 화술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지적이고 생동감 있는 그녀의 이야기는 ‘그녀의 말하는 모든 것의 묘미를 돋우는’ 달콤한 목소리를 타고 듣는 이를 사로잡아서 ‘그녀에게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 에디트 플라마리옹 지음, 지현 옮김, 시공사, 117쪽 인용)

    마찬가지로 미실이 사람들을 사로잡은 또 하나의 무기는 바로 뛰어난 독심술과 현란한 화술이다. 수많은 은유와 상징을 품어 안은 말들을 단 한순간 짧은 문장으로 툭 내던지는 미실의 화술은 클레오파트라가 남성들을 매혹시킨 화려한 화술과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미실 또한 자신을 위협하는 천명공주의 성장 앞에서 매혹적인 화술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거의 독백과 다름없이 진행되는 그녀의 연설 앞에서 미실파 남자들은 그저 머리를 조아리고 그녀의 전광석화 같은 두뇌회전에 감탄할 뿐이다.

    미실과 클레오파트라

    클레오파트라는 ‘사랑의 달인’이기도 하지만 ‘지식의 달인’이기도 하다.

    “천명이 꼭 어린 날의 저 같지 않습니까? 어린 시절 지소태후께서 날 궁에서 쫓아낸 적이 있었습니다. 난 궁을 쫓겨나면서 만약 다시 돌아온다면 그때의 나는 예전의 미실은 아닐 거라, 다짐했지요. 그리고 그리했습니다. 헌데 보니, 천명공주가 그랬습니다. 용수공을 잃고 아기를 가진 채 궁을 나가면서, 다시 돌아올 땐 예전의 천명이 아닐 거라 다짐한 겁니다. 천명은 지난 1년 동안 온몸의 피를 돌리고, 뼈를 깎고, 살을 태우며, 큰 그림을 그렸을 겁니다. 그런 자의 도전이라. 그런 공주의 도전….”

    모두들 미실의 미소 뒤에 감춰진 진의를 몰라 전전긍긍하며 공포에 사로잡힌다. 미실은 적의 능력이 뛰어날수록 흥분하는 승부사의 기질을 감추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의 권력을 탐내는 모든 남자, 그중에서 자신이 쓸만하다고 믿는 유능한 인재들을 자신의 색공으로 사로잡는다. 그녀는 남편이 있지만 남편에게도 다른 남자와의 관계를 암묵적으로 공인(?)받을 정도로 거침없는 캐릭터다.

    “이제 저는 백정왕자의 황후가 될 것입니다. 제가 또, 다른 사내의 부인이 되는 것이 마음 쓰이십니까?” 세종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진흥대제께오서 말씀하셨습니다. 미실 공주는 어느 사내든 혼자는 차지할 수 없는 여인이라고요. 다만 내가 왕도 성골도 아닌 것이 한스러울 뿐이오.”

    시간을 지배하는 기술

    ‘화랑세기’에는 미실의 현란한 미색과 남다른 문장실력이 그녀를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고 나와 있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매력을 좀 더 합리적인 근거에서 찾아낸다. 미실의 용병술과 독심술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미실에게 ‘시간을 관리하는 기술’이 없었다면 미실은 왕을 위협하는 권력까지 갖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관점, 그것이 드라마 ‘선덕여왕’이 보여주는 현대적 역사의식이다.

    아직 농경사회였던 신라사회에서 백성들의 생사고락을 틀어쥐고 있는 가장 커다란 권력은 왕권도 부권도 아니었다. 바로 ‘날씨’야말로 농경사회의 숨은 신이었던 것이다. 농경만이 유일한 경제적 원천이었던 사회에서 국왕이 아무리 몸 바쳐 기우제를 지내도 비가 오지 않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누가 그 왕을 믿고 따르겠는가.

    미실의 비밀병기, 그것은 바로 언제 비가 내리고, 언제 비가 그칠지를 비롯하여 시간에 따른 기후의 변화가 촘촘히 기록되어 있는 명나라의 비밀문서 책력(대명력)이었다. 명나라의 책력만으로는 신라의 상황에 맞는 기후 대응전략을 짤 수 없기에 드라마 ‘선덕여왕’은 또 하나의 서사적 포석을 깔아놓는다. 사다함, 바로 미실의 첫사랑이다. 그녀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첫사랑의 마지막 선물 사다함의 매화, 그것이야말로 미실의 마르지 않는 권력의 원천이다. 천하에 현존하던 모든 책력 중 가장 정확하다는 대명력을 손에 넣음으로써, 미실은 신라를 지배할 수 있는 강력한 지식을 독점하게 된 것이다. ‘앎의 권력’을 십분 활용했던 미실의 지혜를 완성한 것은 바로 그녀의 첫사랑이었다. 미실의 첫사랑이 그녀에게 몰래 남긴 가야의 책력이 없었다면 대명력은 신라에 직접 적용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다함 그 충성스러운 분이 가야를 정벌한 후 진흥대제를 속이면서까지 저에게 빼돌린 마지막 선물. 전쟁에 나간 정인(情人)을 배신하고 다른 사내의 부인이 된 저에게 가야의 책력을 남겨주었지요. 우리에게 그 가야의 책력이 있기에 대명력을 삼한 땅에 맞게 수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을 지배하게 된 미실 또한 또 다른 시간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녀의 비밀병기이자 유일한 아킬레스건이다. 지금은 미실에 비해 한없이 연약한 천명공주이지만, 그녀는 미실의 아킬레스건을 알고 있다. 용수공의 유복자를 낳은 후 천명은 자신의 아들에게 이름을 지어준다. “미실 공주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요. 가장 강한 것은 세월이다. 미실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하여 세월을 뜻하는 이름을 지었지요. 이름을 ‘춘추’라 지었습니다.” 천명(하늘의 운수)과 춘추(자연의 시간)를 당하지 못하는 것이 미실의 유일한 아킬레스건이었던 것이다.

    미실과 클레오파트라는 ‘사랑의 달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식의 달인’이었다. 언어와 예술, 과학과 철학을 비롯한 거의 모든 학문에 통달해 있었던 미실과 클레오파트라의 ‘지식권력’이야말로 그녀들의 진정한 무기였다. 말하자면 ‘색공’은 그녀들의 방대한 지식권력의 아주 작은 ‘일부’였을 뿐이다. 색공술에 가려 그들의 르네상스적 지식의 힘은 은폐되었던 것이 아닐까. 미실은 문장과 언변이 유창해 700권이 넘는 문서 기록을 남겼으며 그녀의 아들 보종이 한때 그녀의 기록을 필사하여 보관했을 정도라고 한다.

    클레오파트라와 미실의 힘은 예술과 학문에 대한 감식안에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지덕체의 완벽한 일치를 위해 프로그래밍된 백과전서식 교육을 받았을 뿐 아니라 전무후무한 외국어의 달인이었다고 한다.

    만인의 사랑, 만인의 두려움

    “그녀의 혀는 마치 각기 다른 음을 내는 여러 개의 악기와도 같다. 그녀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여러 나라 말을 구사했다.” “클레오파트라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비롯하여 헤시오도스와 핀다로스의 작품, 당시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보다 더 사랑을 받았던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메난드로스의 희극, 헤로도투스와 투키디데스의 역사서를 읽고 공부했다. 그리고 데모스테네스의 대화집으로 수사학을 배웠다. 과학 교육 역시 중시되어 대수와 기하, 천문학과 의학 수업을 받았다. 예술 분야에도 특별한 소질이 있던 그녀는 그림 그리는 법, 7현 리라 연주법, 노래하는 법 등을 배웠으며…, 특히 말타기를 아주 잘했다.”(‘클레오파트라’, 에디트 플라마리옹 지음, 33쪽 인용)

    미실은 앞서 살펴봤듯이 제왕이 되기 위한 모든 요건을 갖추었다. 모든 면에서 웬만한 남자보다 나으므로 그녀가 여자라는 치명적 약점은 그녀에겐 핸디캡 축에도 들지 못한다. 그러면 미실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일까. 진정하게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 권력을 얻었으나 백성의 마음까지는 얻지 못했다는 것이 그녀의 약점이었다. 권력으로 사로잡은 마음이기에 아무도 그녀를 진심으로 위해주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덕만처럼 “사막에선 눈물을 아껴야 해”라고 말해주는 엄마도 없고 “내가 그 모든 사람들을 미실에게 잃고 오직 하나 지킨 것은 천명 너뿐이다”라고 말해주는 아버지도 없다. 미실은 색공으로 정치적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만인의 ‘사랑’이 아닌 만인의 ‘두려움’으로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그토록 외로웠던 것이 아닐까.

    분명한 것은 그녀들의 수많은 능력 중 ‘색공’ 즉 사랑의 기술은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녀들은 ‘고작’ 색공술로 세상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능력 중 유독 ‘사랑의 기술’이 세상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좋았던 것뿐이 아닐까. 그녀들은 색공의 화신이기 이전에 화술의 달인이었고 문장의 달인이었으며 외교술과 용병술뿐 아니라 예술과 지식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르네상스적 지식인이었다.

    전혜린은 말했다. “성이란 화폐처럼 중성적일지 모른다. 거기에 색채를 부여하는 것은 인습 같다”고. 이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알지만 모른 척하는 ‘섹스의 상대성’이다. 절대로 일부일처제가 아니었던 신라사회에서 미실의 색공은 다소 무분별하긴 했으나 치명적인 허물은 아니었다. 문제는 미실의 권력을 탐하는 남성들의 욕망이었고, 이집트 여자에게 로마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의 정치적 박탈감이었던 것이다.

    미실과 클레오파트라, 이 세기의 팜파탈들이 끊임없이 예술의 소재가 되는 것은 그들이 오직 밀실의 감정으로 제한된 개인의 육체적 사랑을 공동체의 구경거리로, 희대의 스캔들로 비약시켰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예술의 영원한 주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섹스야말로 인간이 모든 지성과 감성을 총동원해도 그 실마리를 풀어낼 수 없는 영원한 신비이기 때문이 아닐까. 섹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찬사와 가장 혹독한 비난을 동시에 받은 테마였으며 바로 이 섹스를 정치의 중심으로, 세계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희대의 팜파탈들은 예술의 영원한 테마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학자들은 입 모아 말해왔다. 섹스는 인류의 옆구리에 입을 벌리고 있는 신비한 상처라고. 섹스는 우리 인류의 모든 결함의 근원이요 원리라고. 인류 역사상 남성에게 여성의 육체만큼 ‘찬양의 대상’이자 ‘저주의 대상’이 된 지속적인 예술의 테마는 없었다. 그러나 톨스토이 같은 멋진 사람들은 솔직하게 인정했다. “성욕과의 싸움이 가장 어려운 투쟁”이라고.

    인류에게 섹스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한, 섹스에 대한 모든 비밀이 밝혀져도 여전히 섹스가 인류 공통의 화두인 한, 미실과 클레오파트라는 영원한 만인의 연인으로, 팜파탈의 화신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녀들에게 사랑과 정치는 분리된 기술이 아니었다. 그녀들의 관능이 곧 그녀들의 지식이었으며 그녀들의 사랑이 곧 그녀들의 정치였다. 결국 그녀들이 이긴 것이다. 세상을 뒤흔든 그녀들의 사랑도, 도무지 남성들은 따라갈 수 없었던 그녀들의 정치술도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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