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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종횡무진 공간 읽기 ②

서울월드컵경기장

꿈과 열정이 타오르는 거대한 용광로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서울월드컵경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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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월드컵경기장

그라운드는 거대한 용광로다. 대동마당이다.

세계 10대 아름다운 경기장

우리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 좀 더 강력한 것, 좀 더 드넓게 펼쳐진 것, 좀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울고 웃는 것, 좀 더 스케일이 장쾌한 것! 그것을 향해 현대의 개인은 얼마든지 시간과 비용을 지출할 용의가 있다.

다만 대전제가 있다. 그 강력하고 장쾌한 것이 결코 개인을 억압하거나 또 하나의 충용(忠勇)한 신민(臣民)으로 추락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개인적 열정으로 그것을 지향했으되 그 거대함 속에 수많은 개인이 모여 있고, 그래서 저마다의 사연으로 모였으되 결코 집단의 과잉된 열병으로 추락하지 않는 곳을 열렬히 희망한다. 과연 그곳이 어디겠는가? 6만6806명이 강요된 명령이 아니라 자발의 문화적 제의로 운집할 수 있는 곳, 바로 서울월드컵경기장이다.

하늘공원에 올라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내려다본다. 한때 이 일대가 쓰레기 산이었고 그 쓰레기더미를 뒤지며 살아가던 상암동의 낡은 거리와 판잣집들, 그리고 더 이상 갈 곳 없는 사람들을 위해 들어오던 5번 시내버스 종점을 이제 더는 상상조차 할 수 없어졌다는 사실, 곧 상전벽해의 엄연한 증좌 위에서 경기장을 내려다본다.

거대한 스케일의 경기장이다. 현대 도시에서 이만한 스케일의 공간을 구축한다는 것은 그 사회의 내면적 합의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지어진 이 경기장 역시 1997년의 IMF 구제금융 사태로 인해 폐기될 운명이었으나 대한축구협회의 실행력과 당시 정부의 결단으로 ‘상전벽해’를 이뤘다.



이 경기장을 설계한 건축가 류춘수는 방패연과 전통 소반 그리고 황포돛대 이미지를 설계의 기본 개념으로 활용했다. 물론 이 셋은 그 자체로는 상호 연관성이 희박하다. ‘한국의 전통 문화’라는 큰 범주에 묶이기는 하나 과거의 전통적인 일상에서 연과 소반과 돛대가 한자리에 겹쳐질 이유는 딱히 없다. 그러나 하나의 건축물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이 세 가지는 적절한 공간감을 형성한다.

하늘공원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우선 장려한 것은 경기장의 지붕, 그러니까 방패연과 황포 돛대가 어울리는 광경이다. 6만여 명이 운집했다가 빠져나가는 매머드 건축물임에도 연과 돛배의 형상은 금방이라도 떠오를 듯한 운동감을 드러낸다. 아틀라스 같은 거인이 있어 슬며시 밀어내면 한강으로 미끄러져 내려갈 듯한 경이로운 가벼움이 느껴진다. 거대하지만 압도적이지 않은, 공기의 울림을 살며시 안고 있는 볼륨감은 경기장 안팎을 둔중한 산업화의 물질적 압력이 아니라 21세기의 창의와 열정을 언제든지 담아낼 수 있을 듯 유연하다. 2003년 세계 최고 권위의 축구 전문지 ‘월드사커’가 이 경기장을 ‘세계 10대 가장 아름다운 경기장’의 하나로 선정한 까닭 역시 보는 이를 질색하게 하는 무시무시한 힘의 과시가 아니라 대단히 유연하고 상쾌한 기운을 너그러이 품고 있는 경이로운 여유 때문이다.

전통적이며 경제적인 방식

류춘수는 처음에 경기장을 상상할 때 원형 관람석을 몇 번이고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파리행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방패연 사진을 보았다. 그야말로 등줄기에 전율이 흐르는 착상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 가운데가 여유 있게 뚫린 방패연의 공간화를 추진하게 되었다. 기존의 설계안은 모조리 휴지통으로 던져졌다.

전통의 소반은 경기장 안팎의 콘크리트 구조와 주요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들 그리고 6만여 명을 수용하는 관중석의 밑그림이다. 전통의 소반은 그것이 일상적으로 쓰이던 때, 제철 과일이나 약식, 조촐한 술대접 용도였으나 이제 그 기능은 사라졌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내면에 뿌리내린 그 이미지만큼은 경기장 안팎을 두루 감싸는 형상으로 6만여 명의 열정을 담아내는 상징이 되었다.

그리하여 이 경기장은 외딴 곳에 정박한 둔중한 배가 아니라 서울 서북부의 랜드마크가 되었으며 비단 상징적인 랜드마크가 아니라 상암 지역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그 자체로 복합 문화공간 기능까지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는 이 경기장은 인근의 상암DMC를 쌍두마차로 하여 서울 서북부 부도심의 중핵이 되었다.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자유로, 북부간선도로, 지하철 6호선, 경의선, 신공항철도, 성산대교 등이 모두 월드컵경기장을 지향한다.

물론 그 공사 과정은 지극히 ‘한국적’이었다. ‘신동아’는 한일월드컵 개막 3년을 앞둔 시점에 서울을 비롯한 전국 10개 도시 10개 신축 경기장의 공사 현황을 보도한 바 있다. 당시 기사의 핵심 키워드는 ‘패스트 트랙’이었다. 서울시를 포함해 대부분의 도시에서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패스트 트랙(fast track·설계와 시공 병행) 방식을 채택했던 것이다. 토목공사 설계도가 나오면 곧바로 시공에 들어가는 것이다. 대규모 공사의 경우 더러 설계 오류나 시행착오 혹은 특별한 사유에 의해 설계 및 시공 과정이 변경될 수도 있는데, 서울을 비롯한 대부분의 신축 경기장은 그러한 여유 자체가 허락되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에서 대규모 건축물의 ‘패스트 트랙’ 시행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결국 일은 ‘패스트’하게 완료됐다.

비평적 관점에서 월드컵경기장의 시공 과정을 검토했던 건축가 함인선은 경기장 완공 이후 ‘문화일보’ 2002년 3월5일자 기고문에서 ‘경기장의 지붕은 건축가의 창의력, 시공자의 기술력, 그 나라의 부품산업 능력 등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전제하면서 ‘관중석을 담는 기단은 소반처럼 팔각형으로 되어 있는데 통상 타원형인 여타 축구장과 형태적인 차별성을 가질뿐더러 직선화된 부품화가 훨씬 용이하여 공기와 비용을 상당히 절약시켰다’고 평가했다. ‘지붕 역시 직사각형인 방패연의 모서리를 따서 팔각형으로 만들어 기단과 형태적 일치를 이룬다. 더욱이 위로 도톰한 팔각형이기에 밑에서 보면, 기와 무게로 자연스레 처진 한옥의 추녀 선을 연상시킨다.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공법이지만 배의 돛대가 그렇듯이 훨씬 경쾌하며 경제적인 방식’이라는 게 함인선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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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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