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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신종플루 음모론

제약사 자작극? 미군의 생물무기? ‘세계정부’의 인구 조절책?

  • 석유선│ 의학전문 프리랜서 sukiza@naver.com │

‘믿거나 말거나’ 신종플루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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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신종플루 음모론

신종플루 항바이러스제인 리렌자(오른쪽)와 타미플루. 리렌자 생산업체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신종플루 발생이 확인된 지난 4월 “향후 3개월 생산량을 500만개로 늘리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생물무기’의 원죄

신종플루가 생물학 무기 개발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음모론에도 앞서 등장했던 수파리 장관이 다시 나온다. 인도네시아가 미 국방부 연구실에 보낸 바이러스 샘플이 백신 개발 외에 생물학 무기 개발 등 다른 용도로도 사용되고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앞서의 책에서 그는 “미국과 WHO가 손을 잡고 생물학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바이러스 샘플을 백신 개발에 쓸 것인지, 생물학 무기 개발에 사용할 것인지는 순전히 미국 정부의 뜻에 달려 있다. 인류의 운명은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런 주장에 WHO 측은 황당할 뿐이라고 반박한다. WHO는 세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할 뿐 연구를 통해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 WHO 측은 수파리 장관의 주장에 대해 “WHO의 시스템은 지극히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전세계 연구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결코 특정 국가와만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대응한 바 있다.

WHO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인터넷을 달구는 음모론이 가시지 않는 것은 미군이 그동안 생물학전 대비와 관련해 바이러스를 활용했다는 의혹과 사례가 확인된 바 있기 때문이다. 1975년 민주당 상원의원 프랭크 처치가 주관했던 조사위원회가 입수한 중앙정보국(CIA) 비망록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 비망록에 따르면 미군 생물학 무기실험시설인 데트릭 기지에서는 치명적인 화학 병원균과 독소들이 비축돼 있었다는 것.

‘믿거나 말거나’ 신종플루 음모론

2001년 3월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는 도널드 럼스펠드 당시 국방장관.

이러한 의혹을 다루는 저술도 심심찮게 발간된다. 2003년 미국에서 출간된 ‘바이오테러: 전쟁을 조작하는 미국의 방법’이라는 책은, 이러한 병원균들을 이용해 1960년대 초 콩고의 초대 총리인 루뭄바와 쿠바의 혁명지도자였던 카스트로를 암살하려고 시도한 사실이 있었음을 앞서 설명한 처치 위원회가 확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종플루 바이러스와 유사한 병원균을 미국이 퍼뜨린 적이 있다는 주장도 음모론을 구성하는 한 축이다. 미국 서부지역의 유력신문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1977년 “반(反)카스트로 테러리스트들을 지지하는 CIA 요원들이 아프리카 돼지 인플루엔자를 쿠바에 퍼뜨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실제로 1970년대 초 쿠바에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인플루엔자가 유행했고, 50만마리의 돼지가 도살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웨인 맥슨은, 대략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신종플루는 생물학 무기’라는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는 당사자다. 그는 익명의 유엔 고위 과학자의 말을 인용해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에볼라 바이러스와 HIV/AIDS 희생자를 검사한 유엔의 고위 과학자가 신종플루(H1N1)는 생물학전에 이용할 목적으로 유전학적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만한 특정한 전염 벡터(vectors)를 갖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고 주장한다.

특히 맥슨은 “이 유엔 전문가는 에볼라와 HIV/AIDS, 지금 문제가 되는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모두 생물학 무기라고 생각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물론 모든 음모론이 그러하듯, 현재까지 이를 입증할 결정적인 근거는 공개된 바 없다. 다만 4월 미국의 ‘프레드릭뉴스포스트’지가 “미군 사법당국이 생물학무기 실험시설인 데트릭 기지에서 병원균 샘플이 사라졌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 중”이라고 보도한 사실이 그의 음모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을 뿐이다.

‘세계정부’의 무능함?

앞서의 두 음모론이 다국적기업의 제약 특허권 독점과 미국 군산복합체라는 사회적 맥락을 깔고 있다면, 마지막으로 소개할 음모론은 황당함 그 자체다. 4월말 미국의 인터넷매체 ‘프리즌플래닛’이 소개한 이른바 ‘인구조절론’이 그것이다. 역시 신종플루는 연구실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 기사는 미세생물학과 유전학을 전공한 마이크 애덤스라는 인물이 작성했다. 그는 기고를 통해 “인구 증가로 이상기후 현상이 발생하면서 ‘세계정부’가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 인플루엔자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신종플루가 연구소에서 만들어졌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 없지만 개연성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SF영화 소재로 어울릴 법한 그의 주장을 조금 더 들어보자. 그는 폭발적인 인구증가로 심각한 기후변화에 봉착하자 각국 정부가 모여 싱크탱크를 조직했고, 여기서 가장 은밀하고 손쉽게 인구를 조절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바이러스 유포를 택했다고 주장한다. 서두에 등장한 미국의 제약회사 박스터는 이들 세계정부의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것. 박스터는 이들을 위해 실험실에서 바이러스를 만들어 검역체계가 허술한 멕시코에 퍼뜨렸는데, 이는 이 인플루엔자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얼마나 빨리, 얼마나 멀리 퍼지는지를 확인하는 일종의 ‘베타테스트’였다는 게 음모론의 요지다. 물론 그 최종목표는 세계의 인구를 줄이는 것이다.

만약 세계정부가 있다면, 그래서 세계 인구를 줄이기 위해 신종플루를 만들었다면, 이 세계정부의 능력은 한심스럽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신종플루는 현재 전염속도는 빠르지만 생각보다 치사율은 낮으며, 위험도도 일반 인플루엔자와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판명되고 있기 때문. 7월9일 기준으로 WHO와 보건당국이 집계한 국내 신종플루 감염자는 341명이며, 전세계적으로는 9만4512명이 감염됐다. 국내에서는 아직 사망자가 없지만 해외에서는 19개국에서 429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정도로는 ‘인구조절’이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음모론의 숨은 의미

물론 아직 불안감이 완전히 사그라진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최근 지구 남반구에서 기승을 부리는 신종플루가 다시 기온이 내려가는 10월 이후 북반구에 재유행하면 변종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고 있다. 더구나 덴마크, 일본, 브라질 등지에서는 유일한 치료제인 타미플루에 내성을 가진 신종 바이러스가 산발적으로나마 발견된 바 있다. 내성 바이러스가 확산될 경우 1918년 5000만명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과 비슷한 양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바로 이 불안감이 신종플루를 둘러싸고 곳곳에서 난무하는 음모론의 ‘진짜 원인’임은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선사시대로부터 인류는 생존을 위협받는 순간에는 그 위협의 정체에 대해 어떻게든 나름의 설명을 붙이고 이를 신봉하는 대응패턴을 보여왔다. 그 가운데 한 가지는 과학으로 발전했고, 다른 한 가지는 종교로 발전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신종플루에 대한 음모론은 이 새로운 위협에 대한 나름의 대응패턴이다. 여기에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미국이나 국제기구, 다국적 거대기업에 대한 불신이 결합하면 그럴싸한 그림이 완성된다. 그 가운데 십중팔구는 주류 질서에서 배제된 이들의 소외감과 분노가 녹아 있다.

럼스펠드 전 장관이 길리드사이언시스의 대주주가 아니었다면,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창궐하는 전염병 앞에서 특허권의 일부를 공탁하는 적극적인 대응책에 동참했다면, 그래서 세계가 맞닥뜨린 위협을 조기에 제압할 수 있다는 확신을 인류 전체가 공유할 수 있었다면, 과연 이러한 음모론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음모론을 그냥 웃어넘길 헛소리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신동아 2009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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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선│ 의학전문 프리랜서 sukiza@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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