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정선거 논란으로 궁지에 몰린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무사비 지지 세력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20일에도 시위를 계속했다. 정부는 최루탄, 물대포, 공포탄 등을 쏘며 초강경 진압으로 맞섰고 이 과정에서 10여 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빚어졌다. 정부의 입장이 강경해지고 혁명수비대까지 무력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면서 21일 이후 시위가 잦아들었다. (※주 : 한동안 잠잠하던 시위는 7월9일 수천 명이 거리로 나오면서 재개됐다.) 이제 정권이 대중의 불만을 어떻게 잠재울 것인지, 개혁파 세력은 그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얼마나 탄압을 견뎌낼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제사회도 이란 사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서유럽 등 여러 곳에서 선거 결과에 항의하고 시위대에 대한 무력 사용을 비난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해외에 거주하는 이란인들도 시위에 동참했다. 이라크 하마스 터키 인도네시아 등의 일부 지도자와 친이란 분파는 아마디네자드 후보의 당선을 축하했지만 유럽 지도자들은 선거 결과, 특히 시위대에 대한 폭력 사용에 비판적이었다. 19일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연설에서 선거개입의 배후로 지목받은 영국은 특히 불쾌함을 표시했다.
오바마의 딜레마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반응은 조심스러웠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 사태와 선거부정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또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핵문제 해결을 위해 이란과 접촉하겠다고 밝혔다. 이란 상황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딜레마를 안겨준 것 같다. 그는 이란에 대한 내정 불간섭과 인권 및 자유라는 미국적 가치를 강조할 필요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싶은 듯하다.
미국 정부의 대응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찬성하는 측에서는 미국이 이란 문제에 간섭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란 정부의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켜 시위대의 생명을 더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인들의 민족주의적 성향, 미국과 열강의 내정간섭을 받아온 역사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의 대응이 너무 유화적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특히 시위대에 대한 무력 사용을 비난하지 않았다는 점이 도마에 올랐다. 6월16일 오바마 대통령은 CNBC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국가안보 관점에서 누가 당선되든 역사적으로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과 상대해야 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 상황을 핵 문제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6월19일 미 하원은 이란 시민들을 지지하고 “이란 정부와 친정부 민병대의 시위대 강경 진압 및 인터넷 등 통신수단 폐쇄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같은 날 상원도 결의안을 통해 이란의 언론 및 표현의 자유를 강조했다. 의회의 강경한 태도와 안팎의 비판에 따라 미국 행정부의 대응도 이후 다소 날카로워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20일 “이란은 자국민에 대한 폭력과 불공정한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슬람공화국의 종언?
이란의 현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이란 정치사회 구조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반면 정치체제의 근본 속성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녹색혁명’이 임박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계속되는 시위 상황을 보면서 정권의 정통성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고 분석한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군부 내 동조자들에 의한 친위 쿠데타가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들은 현재의 상황이 ‘이슬람공화국’의 종언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 한편 대중시위가 이슬람공화국 자체에 대한 거부라기보다는 이란 선거체계의 적법성이 훼손됐다는 불만일 뿐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들은 협상을 통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결국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행동과 성명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상황에서 최고지도자 지위를 떠받치는 이슬람법학자통치론(Velayet e faqih·정부가 제대로 운영되도록 이슬람 율법학자들이 후견하는 체제)이 이란인들 사이에서 얼마나 지지를 유지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의 핵무기 프로그램, 테러 지원, 그리고 다른 국가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란과 계속 접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의 교착상태가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따라 미국의 대(對)이란 정책의 방향이 복잡해질 수 있다. 민주화의 관점에서 현 상황을 낙관하는 사람들은 시위 물결을 지켜보면서 이란 국민이 더 이상 현존 사회협약에 만족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핵개발과 테러 지원, 이스라엘에 대한 강경한 자세 등으로 자초한 국제적 고립을 이란 국민이 더 이상 지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정부가 이 여론을 단기적으로는 억압할 수 있을지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대중 불만과 정통성 상실로 현 정치체제가 유지될 수 없을 것으로 인식한다.
반면 회의주의자들의 인식은 다르다. 이번 선거 결과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이란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을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보지 않는 신호라는 것이다. 미국이 아무리 유화적 제스처를 취해봐야 ‘미국이 이란의 현 정치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진짜 속셈을 감추고 있다’는 이란 정권 핵심층의 의심은 해소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다. 6월19일 연설에서 하메네이가 시위 중단을 요청하고 강경 진압을 경고한 것은 이란 정부가 현 체제의 붕괴를 막기 위해 모종의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민주화의 분출이든 강경 진압의 파국이든 이란과 협상하려는 미국의 접근 방향은 근본적인 전환을 피할 수 없다.
한편 이란 정부가 협상이라는 해결책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만약 시위의 불길이 계속 타오른다면 하메네이와 그의 정부 내 추종자들이 현 정치체제를 보호하기 위해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을 희생양으로 삼아 파벌을 재편성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신권정치체제는 유지되고 정치와 시민 사이의 균형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다면 미국의 대이란 정책 방향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