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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의 세상읽기

中道의 길, MB의 길

中道의 길, MB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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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고승(高僧) 원효대사는 중도(中道)란 이변비중(離邊非中)이라 했다. 좌우의 극단을 떠나되 그렇다고 그저 가운데를 취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중도란 아무런 원칙도 없이 양쪽 주장을 들어보고, 거기 말도 옳고 저기 말도 옳으니 적당히 타협해서 중간이 좋겠다고 하는 게 아니다. 중도의 의미를 산술적 중심 으로 이해하는 데서 “무색투명한 중간지대”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 “죽도 밥도 아닌 떡밥”(한나라당 차명진 의원) 등의 소리들이 나오는 것이다.

중도의 중(中)은 단순히 가운데의 의미가 아니다. 과녁의 중심을 맞히는 백발백중(百發百中)의 ‘중’이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중용(中庸)의 ‘중’이다. 따라서 중도의 길을 걷는 것은 어렵다. 무엇이 문제의 핵심인지, 어떻게 그 과녁의 중심을 뚫을 것인지, 어느 정도가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중용인지를 헤아려야 하기 때문이다.

중도의 길을 걷는 것은 위험하다. 좌우 양 극단으로부터 동시에 비난을 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도강화론’을 내놓자 우파와 좌파, 양쪽에서 비난과 조롱을 쏟아낸 것은 중도가 얼마나 위험한 선택인지를 보여준다. 예컨대 강경우파 논객인 조갑제씨는 “대통령이 가겠다는 길이 좌도 우도 아닌 그 중간선이라면 이는 우파의 핵심가치인 대한민국 헌법질서 수호를 포기하는 행위로서 탄핵감”이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나는 이 또한 조씨가 중도의 의미를 잘못 해석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공화국으로서 대한민국의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것은 오히려 중도의 핵심가치다. 극우와 극좌의 선동으로부터 국가공동체의 최고가치인 헌법질서를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중심을 잡는 중도의 역할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 지켜내는 일은 우파의 독점적 가치가 아니다.

우리의 짧은 현대사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더 많이 훼손한 쪽은 이른바 우파보수정권이었다. 4·19혁명을 부른 이승만 독재에서 10·26 비극을 초래한 박정희 유신독재, 민주항쟁에 굴복한 전두환 독재에 이르기까지 우파보수정권은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적 가치를 훼손했다. 물론 분단과 전쟁, 산업화와 근대화의 역정(歷程)에 오늘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자칫 몰(沒)역사적일 수 있다. 남북분단의 현실에서 반공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우선적 가치일 수 있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산업화 근대화 과정에서 민주화의 물적 기반이 이루어졌음을 인정한다면 박정희 정권의 반(反)민주 독재는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고통스러운 이행과정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본다. 다만 명백한 것은 다시 그 시대로 퇴행(退行)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굴곡 없는 역사는 없다. 굴곡진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질서를 절차와 내용 측면에서 충실하게 채워나가는 것이 진정한 중도의 길이다.

문제는 중도가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지난(至難)하다는 데 있다. 더욱이 그것이 정치적 수사(修辭)나 국면전환용 이벤트에 그친다면 아예 꺼내지 않으니만 못하다. 그 점에서 ‘진정한 우파의 길’부터 제대로 걸으라는 이회창 총재의 비판에도 일리가 있다. 이 총재는 “그동안 인사나 정책에서 재벌과 부자, 성공한 사람, 강자의 편을 들어온 정권이 이제 서민정책을 펴겠다고 하고 중도의 길을 강화한다고 한다”며 “소외된 사회적 약자 등의 인간적 삶과 자유는 성공한 사람, 부자, 사회적 강자 못지않게 존중되고 보호돼야 한다. 이게 따뜻한 보수이고, 진정한 우파의 길”이라고 했다.

이 총재의 말대로라면 이명박 정권은 그동안 ‘부자 정부’이고 ‘따뜻하지 못한 보수’였다는 얘기다. 이른바 좌파가 하는 비판이다. 그렇다면 좌파와도 소통하는 중도를 해보겠다는 이 대통령에게 굳이 시비를 걸 일은 아니라고 본다. ‘따뜻한 보수원조’로서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 될 일이다.

이 대통령은 6월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좌우, 진보 보수라는 이념적 구분을 하는 게 아니냐. 사회적 통합이라는 것은 구호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 전체가 건강해지려면 중도가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지당한 말씀’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왜 집권 2년째 중반에 ‘중도강화론’을 다시 꺼내게 됐는지에 대한 자기성찰이 우선돼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당시 ‘중도실용’을 표방했다. 그것은 이 대통령을 지지한 유권자 다수의 기대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대는 일찍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원인은 중도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고민 없이 너무 쉽게 ‘구호’로 삼은 데 있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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