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호

노무현 수사 미스터리 추적

MB,법무장관에게 노무현 수사 관련 모종의 지시했나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9-08-01 1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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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전 대통령은 4월30일 소환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피의사실 대부분을 확보했다. 소환 즉시 신병처리는 VIP수사의 관례이고 예우였다. 자꾸 미뤄졌다. 당사자의 초조함, 심적 고통은 컸을 것이다.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은 투신자살했다. 이명박 정권 내부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5월2일 토요일 김경한 법무부 장관의 행적이 미스터리로 떠올랐다.
    노무현 수사 미스터리 추적
    5월25일 월요일 아침 경인방송(OBS) TV ‘뉴스칵테일’ 프로그램. 앵커가 말한다. “사실,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 전해주시죠.”

    노 전 대통령의 자살 경위를 전한 기자의 리포트를 들은 뒤 앵커가 질문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유서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무래도 서거 직전까지 진행된 노 전 대통령과 그 주변을 둘러싼 검찰 수사에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지 않았나 싶은데요, 어떤 수사였죠?”

    기자는 2008년 12월12일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구속, 2009년 4월7일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체포, 4월11일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의 소환조사, 아들 건호씨의 여러 차례 소환조사, 4월30일 노 전 대통령의 대검 소환조사, 이후 딸 정연씨의 뉴욕 빌라 조사 등 ‘640만달러+알파’ 수사 과정을 정리한다.

    마지막 세 번째 논란



    앵커 : 일각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검찰 수사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는데요. 어떤가요?

    기자 : 전직 대통령도 법 앞에는 평등한 것이고 수사해야 할 만한 혐의가 있으면 본인 뿐 아니라 측근, 가족도 수사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논란이 되는 부분은 검찰의 수사 ‘방식’인 것 같습니다.

    앵커 : 검찰 수사 방식의 어떤 점들이 논란이 되고 있나요.

    기자 : 이번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구체적으로 세 가지 점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첫째, 수사 진행 내용에 대한 검찰의 공식 언론 브리핑 내용이 너무 많았고 상세했다는 논란입니다. 둘째, 공식 언론 브리핑 이외에 ‘검찰 관계자’라는 출처로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이 많았다는 것인데요. 이렇게 사법처리를 하기도 전에 검찰이 장외에서 언론을 통해 피의자 측과 공방을 벌이는 듯한 모습, 혐의 내용이 새어나와 압박하는 듯하는 모습이 나타난 점은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어서 기자가 말하는 마지막 세 번째 논란. 이점이 지금까지 풀리지 않은 의문으로 남아있다.

    기자 : 마지막으로 세 번째 논란은 검찰이 지난 4월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 조사해놓고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5월23일까지 24일이 지나도록 구속, 불구속 등 신병처리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데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 정도의 인물을 수사할 때는 마지막 단계에 불러 조사하고 신속하게 처리해온 게 관행이었는데요.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그 사이 “검찰총장은 불구속을 원하고 수사팀은 구속을 원한다”는 등 별의별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됐는데요. 그러던 중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는 참사가 발생하게 된 것이죠.

    노무현 수사에 외압 의혹

    피의사실이 어느 정도 확인된 이후 검찰의 가장 중요한 결정은 구속, 불구속의 결정이다. 대부분 신속하게 이뤄진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의 경우엔 특별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피의사실을 확신했다. 그런데도 신병처리 결정을 오랫동안 미뤘다. 딸에 대한 조사가 진행됐고 부인에 대한 재소환 결정이 났다. 신병처리의 지연과 가족을 향해 조여오는 추가조사는 노 전 대통령에게 극도의 초조함, 좌절감, 심적 고통을 주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노 전 대통령이 유서에서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고 한 대목은 이를 추정케 한다.

    수사팀이 노 전 대통령을 일부러 괴롭히기로 작정하고 신병처리 결정을 미루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와 관련, 노 전 대통령 수사 진행의 속도나 구속 여부에 대해선 검찰 외부에서도 상당한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조선일보’는 5월7일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수사책임자인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에게 국정원 직원을 보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말고 불구속 기소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뜻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국정원 측은 보도 자료를 통해 “사실무근”이라면서 “검찰 측에서 관련 내용에 대해 해명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검찰을 압박했다. 그러나 이후 검찰은 적절한 해명을 하지 않았다.

    대통령 직속 국정원의 수사 개입 의혹은 청와대의 수사 개입 의혹으로 즉각적으로 이어졌다. “원세훈 국정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때 부시장이었다. 서울시 인맥의 대표 격이다. 그런 그가 검찰에 사람을 보내 의견을 전했다면 듣는 측은 그걸 정권 핵심의 뜻이라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국정원의 판단기준은 어떤 결정이 법률에 부합되느냐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현 정권에 이롭겠느냐는 것이다.”(조선일보 5월8일 사설)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 임채진 당시 검찰총장의 발언은 의혹을 더욱 부추겼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뒤인 6월5일 임 총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런데 그는 이날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박연차 게이트 수사와 관련해 청와대와 법무부의 압박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노코멘트(no comment)”라고 했다. “압박이 없었다”고 분명하게 답하지 않고 “노코멘트”라고 한 건 미묘한 대목이다. ‘네이버’ 백과사전은 노코멘트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거나 밝히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언급할 일이 없다(no comment)’고 얼버무리는 행위를 일컫는데, 주로 신문이나 방송 기자 등의 질문에 대해 논평이나 설명 따위를 회피할 때 쓰는 말이다.”

    노무현 수사 미스터리 추적

    5월25일 임채진 당시 검찰총장이 서울 역사박물관의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서 조문을 하고 떠나고 있다

    그러면서 임 총장은 “지난 1년6개월 동안 이쪽에서 흔들고, 저쪽에서 흔들고 참 많이도 흔들었다”고 했다. 임 총장은 2007년 11월 임명됐다. 노 전 대통령을 수사한 기간도 ‘이쪽, 저쪽에서 자신을 흔들었다’는 기간에 포함된다.

    법무부는 노 전 대통령 사건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검찰에 지휘권을 행사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사실 그런 법무부의 해명은 당연한 말이었다. ‘검찰청법 제8조’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 감독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국정원 의혹, 청와대와 법무부의 압력행사 여부에 대한 검찰총장의 노코멘트 발언 등은 이명박 정부를 수사 외압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단서가 되고 있다.

    “두 사건 순서 바뀌었다”

    박연차 게이트는 전·현직 정권의 최고위급 실세를 ‘함께’ 수사 대상에 올려놓았다. 이런 구조적 측면에서도 수사외압 의혹의 환경이 조성돼 있었다. 노무현 수사의 경우 외압이 들어올 만한 부분은 ‘노무현 수사는 언제 마무리할 것인가’‘노무현 구속을 단행할 것인가’ 등 두 가지다. 그런데 또 다른 거물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도 수사 대상이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였다. 노무현 수사와 천신일 수사는 별개인 것 같지만, 어느 것을 먼저 처리하느냐, 어떤 수위로 처리하느냐에 따라 사회적 이슈의 향배가 달라질 수 있었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외압이 들어올 만한 부분은 ‘노무현 수사와 천신일 수사 중 어느 것을 먼저 처리하고 어느 것을 나중에 처리할 것인가’‘노무현 구속을 단행할 것인가’‘천신일 구속을 단행할 것인가’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수사 결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법처리 결정 이전 서거했고, 천신일 회장에 대해서는 검찰의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그렇다면 노무현 수사와 천신일 수사의 진행 속도는 어떠했을까.

    노무현 수사는 4월30일 노 전 대통령 소환조사를 통해 사실상 최종 단계에 접어들었다. 검찰은 구속이냐 불구속이냐의 결정만 남겨두고 있었다.(5월2일 동아일보 보도) 그런데 노 전 대통령 신병처리라는 노무현 수사의 본류는 5월2일부터 사실상 정지됐다. 이와 동시에 노무현 수사에 비해 수사 진전단계가 현저히 뒤처져 있던 천신일 수사가 속도를 내어 노무현 수사를 앞질렀다.

    천신일 수사는 천 회장에 대한 출국금지 단계에 있었다. 그런데 5월 초 계좌추적, 5월7일 천 회장의 자택 사무실 등 19곳 압수수색, 5월8일 국세청 전산실 압수수색, 5월18일 한상률 전 국세청장 서면조사, 5월19일 천 회장 소환조사로 가속도를 내더니 마침내 5월23일 천 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방침을 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날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바람에 영장 청구는 미뤄졌다.

    노무현 수사가 최종단계에서 정지되어 있는 동안 뒤처져 있던 천신일 수사가 노무현 수사보다 먼저 마무리되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누군가 급히 두 사건의 순서를 조정한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나왔다. ‘공교로운 결과’라는 의문도 있었다. “현 정권의 비리의혹인 천신일 사건을 먼저 처리한 뒤 박연차 게이트의 최종 단계로 전 정권의 비리의혹인 노무현 사건을 처리하는 것은, 그 반대의 순서보다는 현 정권에 더 유리해 보인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출장취소 지시”

    그러나 검찰 수사에 외압은 전혀 없었으며 수사팀 내부 사정이었다는 게 검찰 측 설명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일정이 지연되는 것은 박연차 전 회장이 2007년 6월 말 노 전 대통령 측에 건넨 100만달러가 어디에 쓰였는지를 놓고 검찰과 노 전 대통령 측이 기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 속도가 늦춰지고 있는 데에는 검찰 쪽의 사정도 작용하는 듯하다. 검찰은 천신일 회장 수사에 본격 나서면서 노 전 대통령 쪽 수사는 완만하게 진행하며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동아일보 5월11일 보도)

    이런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닷새 뒤인 5월28일 검찰 주변에서 민주당 정치보복진상특위 측에 제보를 했다. 특위 관계자는 ‘신동아’ 인터뷰에서 제보 내용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4월30일 대검찰청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고 5월1일 새벽 김해 봉하마을 자택으로 귀가했다. 다음날인 5월2일 토요일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비공개리에 청와대를 방문하여 노 전 대통령 소환조사 내용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 대통령은 김 장관에게 향후 검찰 수사와 관련 어떤 특별한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김 장관은 불과 이틀 뒤인 5월4일 월요일부터 일주일간 해외출장을 떠나게 되어 있었다. 한국-이란 범죄인인도조약 체결과 같은 국가 간 공식 조약 체결 일정이었다. 외교관례상 도저히 출국 이틀 전, 그것도 휴일에 취소하기 어려운 행사였다. 이 대통령은 ‘해외출장을 취소하고 국내에 있으라’고 지시했다. 김 장관 측은 부랴부랴 일정을 취소하기 위해 주한 이란대사관 측에 전화를 걸었으나 토요일 휴무여서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에 김 장관 측은 외교통상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외교통상부는 이란대사관 측과 연락이 닿아 일정 취소를 통보했다. 이런 내용은 법무부와 검찰 일각에 전달됐다.”

    노무현 수사 미스터리 추적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안장식이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리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제보 내용이 사실일 경우 중대한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우리는 김경한 장관이 해외출장 일정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당 차원에서 사실 확인에 총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진상규명 작업은 비공개로 진행하되, 송영길 최고위원이 총괄하여 맡고 각 의원이 역할을 분담했다고 한다. 송 최고위원 측 김우철 보좌관은 “1000개의 소문보다 단 하나의 사실이 중요했다. 사실을 알아내려는 쪽과 약간이라도 알려주지 않으려는 쪽 간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됐다”고 했다.

    “제보, 사실이면 중대 사안”

    민주당 소속인 국회 법사위 유선호 위원장이 직접 나섰다. 유 위원장은 6월4일 법무부에 “지난 5월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를 한 일시, 장소, 보고내용, 대통령의 말씀내용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또 유 위원장은 김 장관의 해외 방문에 대해서도 자료제출을 요구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의 자료제출요구에 행정부는 응하도록 되어있다.

    법무부는 “5월19일 국무회의에서 (법무부 장관은) 축사의 부동산등기에 관한 특례법안에 대해 제안 설명을 했다”고만 답변했다. 김 장관의 해외 방문에 대해선 전혀 답변하지 않았다.

    민주당 측은 발끈했다. 김 장관의 대통령 보고에 대해 질문했는데 취지에 맞지 않은 답변을 해왔다고 봤다. 김 장관의 해외 방문에 대해서도 법무부 측이 ‘방문계획이 있다, 없다’조차 밝히지 않고 아예 묵살한 것은 상당히 의심스러운 일이라고 봤다. 좀 더 구체적으로 요구해보기로 했다. 유 위원장은 6월10일 “법무부 장관의 출국계획과 관련해 출국 예정일시, 당초 출국목적, 출국 취소사유 및 추후일정”을 요구했다.

    그러자 법무부는 “2009년 5월4일 월요일부터 약 1주일간 이란, 아제르바이잔, 러시아의 법무장관 회담을 위한 출장을 추진했고 이란과는 2009년 3월9일 가서명된 한-이란 범죄인인도 및 형사사법공조조약을 체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국외 일정상의 차질, 국내 시위 상황 등의 사정으로 법무장관의 해외출장 계획이 취소된 바 있다”고 답했다.

    진실 못 밝혀 둘러댔다?

    제보 내용의 기초적 사실관계인, “김 장관은 5월4일 월요일부터 1주일간 해외출장을 떠나기로 되어있었으나 취소했다”는 점이 사실로 판명된 것이다. 민주당 측은 “그런데 법무부가 답변한 출장 취소 사유는 사리에 맞지 않다”고 봤다. 김우철 보좌관의 설명이다.

    “이란 측이 먼저 약속 취소를 요청해와 출장을 가지 않았다고 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이 아니었다. 김 장관이 먼저 약속을 취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 간의 조약체결은 중대한 사정이 없는 한 계획대로 진행되어야 하는 외교행위다. 그런데 ‘국내 시위 상황’을 취소의 이유로 댔다. 확인해보니 당시 국내에 촛불시위도 없었고 별다른 시위 움직임이 없었다. 납득할 수 없는 답변이다. ‘국외 일정상의 차질’이라는 취소사유도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민주당 관계자는 “진짜 출장 취소 사유가 있는데 이를 도저히 밝히지 못하는 상황이므로 둘러댄 것으로 의심할 수 있다”고 했다.

    제보내용의 진위와 관련, 김 장관이 ‘언제’ 해외출장을 취소했느냐는 중요한 대목이었다. 제보는 ‘5월2일’이라고 적시하고 있었다. 민주당 측은 취소시점을 알아내기 위해 정부 측을 맹렬히 압박했다. 그런데 정부 측은 “얘기해줄 수 없다”면서 결사적으로 저항(?)했다고 한다. 벽에 막힌 민주당 측은 우회 전략을 폈다. 주한 이란대사관에 직접 확인해보기로 한 것이다. 다음은 김 보좌관의 진술을 토대로 구성한 이란대사관 관계자와 김 보좌관의 대화 내용이다.

    김 보좌관 : 한국 법무부 장관이 귀국 정부와의 조약체결을 취소한 사실을 기억하십니까?

    이란대사관 관계자 : 네. 너무 뜻밖의, 갑작스러운 취소여서 기억이 납니다.

    김 보좌관 : 언제 취소 연락이 왔나요?

    이란대사관 관계자 : 정확한 날짜는….

    김 보좌관 : 4월인가요, 5월인가요?

    이란대사관 관계자 : 분명히 5월입니다.

    김 보좌관 : 취소 통보는 법무부에서 온 게 맞죠?

    이란 대사관 관계자 : 아뇨. 외교통상부 조약과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조약체결 취소 통보는 5월에 있었고 출국예정일이 5월4일이었으므로, 결론적으로 취소 통보 날짜는 5월 1, 2, 3, 4일 중 어느 하루다. 제보내용의 ‘5월2일’에 수렴해가고 있었다. 또한 ‘외교통상부 조약과’가 취소 통보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송영길 의원은 6월25일 외교통상부 조약과에 “한-이란 범죄인인도조약 및 형사사법공조조약과 관련해 법무부 장관의 이란 방문이 취소된 사유, 외교통상부 조약과가 이란방문 취소를 법무부로부터 통보받은 날짜, 조약과가 이란 방문 취소를 이란대사관에 통보한 날짜, 취소사유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조약과는 “법무부에 물어보라”며 버텼다.

    “법무부 장관의 관련국 방문계기에 조약에 서명하는 방안을 추진한 바 있으며 출장관련 세부사항은 법무부가 답변할 사안으로 보임. 참고로 일정과 관련된 구체적 사항은 법무부 측 사정과 판단하에서 추진해온 것임. 끝.”(외교통상부 조약과 답변자료)

    정부 상층부의 은폐의혹

    민주당과 외교통상부 조약과의 줄다리기는 한동안 계속됐다. 그런 가운데 김 보좌관은 조약과 관계자에게 “아니, 날짜 하나를 가지고 왜 이렇게 답변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조약과 관계자의 답변은 뜻밖이었다. “조약국장이 답변을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정부 상층부에서 김경한 장관의 행적이 드러나는 것을 적극적으로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었다. 상황이 점점 심각해져가고 있었다.

    김 보좌관은 조약국장에게 즉시 전화를 걸었다. 두 사람은 크게 설전을 벌였다. 김 보좌관은 “법에 따라 국회에서 요구하는 자료를 왜 제출하지 않느냐. 그쪽에서 법무부 대신 취소통보를 대행해준 걸 이미 알고 묻고 있는데 그런 것마저 감추면 어떻게 하느냐”고 따졌다. 조약국장은 야당 측에 의해 자신이 은폐의 배후로 지목되자 당황하는 듯했다고 한다. 외교통상부는 손을 들었다. 조약과는 6월30일 송 의원에게 다음과 같은 서면답변을 보냈다.

    “이란 방문 취소를 법무부로부터 통보받은 날짜 : 법무부로부터 2009. 5. 2. (토) 구두 통보. 5. 4. (월) 확인 통보를 받았음. 이란 방문 취소를 이란대사관에 통보한 날짜 : 상기 통보를 받은 날(5. 2. 및 5. 4.) 주 이란대사관에 통보하였음. 참고로 현재 추후 방문계획은 없습니다.”

    제보의 ‘5월2일’은 사실로 드러났다. 제보는 “김 법무장관이 이날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수사 내용을 보고하고 말씀을 들었다”고 했다. 박영선 의원은 김 장관의 청와대 출입 일시, 사유, 상대방을 밝히라고 법무부에 요구했다. 법무부는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다음은 법무부의 답변내용이다.

    “법무부 장관의 청와대 출입현황과 관련해, 법무부 장관은 장관 및 국무위원으로서 국무회의, 각종 위원회 참석 등을 위해 수시로 청와대에 출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무부는 장관의 청와대 출입 내역 및 사유 등에 관한 자료를 별도 존안·관리하고 있지 않으므로, 요구하신 자료를 제출하기 어려움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민주당 측이 확인한 내용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함의가 도출될 수 있다. 김 법무장관은 5월4일 월요일 국가 간 조약체결이라는 중요한 해외출장을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5월2일 토요일 이를 전격 취소했다. 공휴일이어서 상대국과 연락이 되지 않자 외교통상부까지 동원하여 급박하게 처리했다. 조약 체결이라는 출장 업무의 중요성, 출국을 불과 이틀 앞둔 휴일인 토요일에 취소한 점을 고려하면 법무부 측이 내놓은 취소사유(국외 일정상의 차질, 국내 시위 상황)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런 정도의 사유였다면 5월2일 이전 평일 근무시간에 충분히 처리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란대사관도 “너무 뜻밖”이라고 했듯이 이런 갑작스러운 일정 취소는 상대국에 대한 외교적 결례에 해당하는 것으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정부 고위층에서 김 장관의 5월2일 행적을 끝까지 숨기려 했다는 점도 의혹을 가중시킨다.

    5월2일 이후의 정황들

    이런 정황상 김 장관은 5월2일까지는 예정대로 해외출장을 떠나려고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법무부가 내놓은 사유가 아닌 다른 사유로, 그는 해외출장을 전격 취소한 것이다. 누군가 국가 간 외교관례도 뒤로하고 법무장관의 해외출장 의지를 바꾼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이 진짜 사유일 수 있다고 의심할 수 있다.

    4월30일부터 5월1일 오전까지의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 소환조사, 다음날인 5월2일 토요일 김경한 법무장관의 노무현수사 대통령 보고, 이어진 대통령의 법무장관 해외출장 취소 및 검찰수사 관련 모종의 지시…. 제보의 이러한 주장은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들이나 정황과 모순되는 점이 없다. 그렇다고 제보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5월2일 이후 노 전 대통령 신병처리 결정 등 노무현 수사의 본류는 수사관례상 이례적으로 오랫동안 중단되었고 현 정권 실세 천신일 수사와 처리순서가 바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심적 불안 등 압박을 느낀 노 전 대통령이 자살을 선택했다. 국정원의 수사압력 의혹, 청와대와 법무부의 압박 여부에 대한 검찰총장의 노코멘트 발언이 나왔다. 이런 이후의 정황을 고려했을 때 김 법무장관의 5월2일 행적에 대한 제보는 진상규명을 해보아야 할 공(公)적인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답변에 시간 걸린다”

    ‘신동아’는 최근 법무부에 “장관이 5월2일 토요일 청와대를 방문해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실이 있는지를 답변해 달라”고 질의했다. 법무부 측은 “어떤 보고였는지 알아야 답변할 수 있다”고 했다. ‘신동아’는 “4월30일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 소환조사 보고”라고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질의내용을 관련 부서에 전달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신동아’는 “질의에 대한 답변이 왔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법무부 관계자는 “질의를 관련 부서에 전달했다. 답변에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신동아’는 “보고를 안 했으면 ‘안 했다’고 한 마디만 답변하면 되는 간단한 사안인데 왜 시간이 걸리는가”라고 했다.

    3일 뒤 ‘신동아’는 다시 답변을 요청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시간이 걸린다. 관련 부서에서 답변을, 그걸 다시 정리를 좀 해야한다고 한다”고 했다. 다음날 ‘신동아’는 다시 요청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같은 대답을 했다. 이날 ‘신동아’는 법무부 측에 새로운 내용을 질의했다. “장관이 5월2일 토요일 대통령으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 천신일 회장 등 박연차 게이트 검찰 수사의 진행과 관련해 ‘5월4일로 예정된 이란 출장을 취소하고 국내에 머물러 계시라’는 지시를 받은 사실이 있는지를 답변해달라”고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관련 부서에 전달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신동아’는 두 질의에 대해 답변해달라고 요청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관련 부서에서 답변이 오지 않았다. 쉽게 올 것 같지 않다”고 했다.

    법무부는 임채진 전 검찰총장의 ‘노코멘트 발언’ 직후 노무현 수사 등 개별사건에 대해 지휘하지 않았음을 밝힌 바 있다. 김 법무장관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인 5월23일 낮 12시 반쯤 “노 전 대통령께서 갑작스레 서거하시게 된 점에 대해 충격과 비탄을 금할 수 없다. 현재 진행 중인 노 전 대통령 수사는 종료될 것으로 안다. 삼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김 장관은 서거 직후 대통령에게 사의(辭意)를 표명했으나 반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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