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지휘자다. 50여 명의 지휘자가 등록되어 있는 (사)한국지휘자협회의 유일한 여성 회원이기도 하다. 그가 동양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독일 베를린국립음대 지휘과를 졸업하고 1989년 대전시향 객원 지휘자로 무대에 선 순간,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이 어떻게 지휘를 해”라는 오랜 편견이 무너져 내렸다.
그로부터 20년 후, 김 교수는 다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상임지휘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서울시향, 부산시향,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등 국내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수차례씩 지휘하고 소피아 내셔널 오케스트라, 러시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등 외국 교향악단도 지휘했지만 좀처럼 오지 않던 자리다. 2008년 9월 과천시립아카데미오케스트라가 창단하면서 그를 상임지휘자로 선택했을 때, 김 교수는 마침내 우리 사회에 남아 있던 또 하나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이날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창단 1주년 연주회는 여성 상임지휘자도 오케스트라를 멋지게 이끌 수 있음을 입증한 자리다.

“폰 카라얀의 격정적인 지휘를 보는 순간 ‘나도 저 자리에 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크면 꼭 베를린에 가서 공부해야겠다, 그래서 꼭 지휘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지요. 처음엔 그저 철없는 동경 같은 것이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열망이 더 강해졌어요. 그 뒤로 단 한 번도 그 꿈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중학생 시절 품은 지휘자의 꿈
혼자 독일어를 공부하며, 지휘자가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여자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웠을 때다.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등을 배웠지만 대학에 진학할 때는 작곡과를 선택했다. 지휘를 하는 데 가장 적합한 전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회 합창단 등에서 지휘자로 활동하며 계속 지휘를 익혔다. 하지만 그가 꿈꾸는 오케스트라 지휘를 배울 기회는 찾을 수 없었다.
“대학 졸업 후 MBC 어린이합창단의 지휘자 겸 반주자로 들어갔어요. 돈을 모아 독일 베를린으로 유학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음악평론가 한상우씨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김 교수를 보며 “지휘자가 될 자질이 있다. 꿈을 잃지 말라”며 격려해줬다. 독일 현지에서 공부 중인 유학생을 소개하기도 했다. 한씨 도움 덕분에 그는 1982년, 그동안 모은 돈을 들고 홀로 베를린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