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호

5대 복싱기구 챔피언 오른 첫 여성복서 김주희

  • 글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사진 / 김형우 기자

    입력2009-10-01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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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대 복싱기구 챔피언 오른 첫 여성복서 김주희
    그가 물었다.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챔피언의 주먹을 보면서 답했다.

    “178cm, 70kg요.”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사이즈가 딱 맞네요.”

    여자선수들은 그와 연습하기를 피한다. 대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들과 스파링한다기에 “플라이급 남자선수와 연습하느냐”고 물었더니 대뜸 체격을 묻는다.

    키 160㎝, 몸무게 50㎏. 두건을 쓰고, 청바지를 입었는데 ‘숙녀’라기보다는 ‘소녀’다. 주먹을 주먹에 대보았다. 체격만큼이나 주먹도 작다.

    “주먹이 작죠?” 그가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속으로 말했다. ‘작은데다 여자인데…. 스파링하면 지지는 않겠다!’

    프로복서 김주희(23·거인체육관)는 예뻤다. 말은 또박또박 했고, 몸짓은 단정했다. “왜 두건을 썼느냐”고 물었다. “1시간 전에 헤어스타일을 다듬었거든요.”

    레게 스타일은 프로복서 김주희의 상징이다. “꼭 스포츠형으로 머리칼을 깎아야 이기는 게 아니잖아요. 경기할 때는 예쁘게 보이고 싶어요.”

    여자국제복싱협회(WIBA), 여자국제복싱연맹(WIBF), 세계복싱연합(GBU) 라이트플라이급 통합 타이틀전을 하루 앞둔 9월4일. 그는 타이틀전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긴장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거친 운동하는 사람 같지 않아요. 예쁘게 생긴 거 알죠?”라고 묻자 그가 수줍게 웃는다.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경기할 때는 예쁘다고 생각해요. 운동선수는 운동할 때가 가장 아름답거든요.”

    5대 복싱기구 챔피언 오른 첫 여성복서 김주희
    그는 배우 하지원이 여성복서로 분한 영화 ‘1번가의 기적’의 모델이다. 사업 실패 후 충격으로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수발하며 샌드백을 두드렸다. 타이틀 매치를 앞두고는 하루 7시간씩 땀을 흘렸다.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했거든요. 육상선수였어요. 트레이닝복 입고 운동할 때가 제일로 행복해요.”

    그는 2004년 국제여자복싱협회(IFBA) 챔피언에 등극했다. 2006년 11월 IFBA 타이틀 4차 방어전을 앞두고 맹훈련을 거듭하다 골수염으로 발가락뼈 1㎝를 잘라내는 아픔을 겪으면서 타이틀을 반납했다. 2007년 8월 세계복싱협회(WBA)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결정전에서 사쿠라다 유키(일본)를 7회 TKO로 누르고 건재를 과시했으나 방어전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올 6월 이 타이틀도 반납했다.

    “내일 경기에서 꼭 그랜드슬램을 이룰 거예요. 더 큰 목표가 없다면 멈춰 섰을지도 몰라요. 목표를 하나씩 이뤄가는 게 삶 아닌가요.”

    아직 소녀티가 가시지 않은 1986년생 복서는 그의 말마따나 운동할 때가 가장 예뻤다. WIBA, WIBF, GBU 통합 타이틀전이 열린 9월5일 경기 안양체육관. 그는 빠른 발과 정확한 안면 공격으로 TKO승을 낚았다. 그랜드슬램, 즉 5개 복싱기구 챔피언에 오른 최초의 여성복서가 된 것이다.

    그는 강했다. 2라운드에서 파프라탄 룩사이콩(태국)의 얼굴을 강타한 뒤 3라운드에서 연타 공격으로 상대를 코너에 몰아넣었다. 4라운드에서도 파상공세가 계속됐다. 주먹을 피해 뒷걸음치던 파프라탄이 휘청거리자 주심은 4라운드 종료 1분여를 남기고 경기를 중단시켰다. 소나기 펀치를 맞고 일그러진 파프라탄의 얼굴을 보면서 속으로 말했다. ‘스파링하면 다치거나 죽겠다. 정말로 많이 아프겠다….’

    그는 경기가 끝난 뒤 상기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복싱은 삶의 전부예요. 나이는 어리지만 10년간 복싱을 하면서 슬픈 일, 힘든 일도 많았습니다. 열정이 없었다면 벌써 그만뒀겠죠.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나도 모르는 힘으로 힘겨운 시기를 이겨낸 것 같아요.”

    그는 아버지 병구완을 하면서도 많지 않은 대전료를 쪼개 어려운 이웃을 도와왔다. 이번 타이틀전에도 강원 홍천군 삼덕원의 장애우 30명을 초대했다. KO승을 거둘 때마다 100만원씩 기부해 한국대학생 문화감시단이 주는 ‘촛불상’도 받았다.

    중부대 엔터테인먼트학과에 재학 중인 그는 스포츠지도자로서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복싱경기지도자 2급 자격증에 필요한 구술면접과 실기, 연수를 마쳤고 마지막 관문인 필기시험만 남겨뒀다.

    “요가강사 자격증 시험도 준비하고 있어요. 복싱과 요가는 정반대예요. 요가는 가장 정적인 운동이고, 복싱은 가장 동적인 스포츠죠. 그래서 궁합이 딱 맞습니다. 둘을 접목해 운동하면 건강관리에 큰 보탬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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