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양대에서 열린 채용 박람회에서 구직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각 기업이 마련한 부스에서 상담을 하고 있다
언 발에 오줌 누기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인턴 채용을 통해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려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추진 중인 인턴 교사 채용 정책도 그중 하나다. 7월 중순 발표된 채용 공고에 따르면 인턴 교사의 신분은 ‘공무원이 아닌 근로자’로 급여는 한 달에 120만원, 계약기간은 4개월이다. 담당 업무는 정규직 교사의 수업 준비 지원, 학생들의 보충수업 및 생활지도 등으로 정해져 있다. 교과부는 당초 교사자격증 소지자 가운데 이 같은 인턴 교사 1만6250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지원자가 턱없이 부족하자 ‘4년제 대졸자’ 등으로 자격 요건을 낮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시도 교육청이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자격증을 가진 예비교사 대부분이 하반기에 치러지는 교원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는데다, 일반 대졸자도 ‘고용 보장 없는 4개월짜리 아르바이트’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시 교과부가 추진 중인 대졸 미취업자 지원사업도 난항을 겪고 있다. 정부는 올 하반기부터 대학 졸업생 중 미취업자를 출신 대학에서 채용하거나 교육하는 ‘미취업 대졸생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들을 6개월간 학내 인턴직원으로 채용하거나, 취업훈련 프로그램을 개설해 참여하도록 하면 필요비용의 50∼70%는 국가가 지원하겠다는 정책이다. 그러나 7월 말 각 대학을 통해 참가신청을 마감한 결과 신청자는 예상 인원의 7.6%인 6260명에 불과했다. 신청 대학도 4년제, 전문대 통틀어 71곳에 그쳤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정부는 젊은이들에게 다양한 형태의 인턴 자리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실업 문제를 풀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인턴을 몇 번 돌다보면 결국 계약직 같은 비정규직을 전전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학생들은 이를 꺼린다”고 설명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율은 대략 10명 중 1명 꼴. 일단 비정규직의 길에 들어서면 벗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셈이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단기적인 일자리 제공은 취업자 수의 탄력적 조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취업과 연계되지 않은 채 반복되면 실직과 빈곤의 구조화 추세를 막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려면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벨기에에서 시행 중인 ‘로제타 플랜’은 한 가지 대안으로 거론된다. ‘로제타 플랜’은 50명 이상을 고용하는 민간기업에 고용 인원의 3%에 해당하는 청년실업자를 의무 채용하도록 하는 제도. 이를 어긴 기업에 대해서는 채용 인원 1명당 매일 74유로의 벌금을 부과한다. 의무를 이행한 기업에는 고용인원에 대한 첫해 사회보장 부담금 면제라는 혜택도 준다.
로제타 플랜
강력한 청년 의무고용 제도인 ‘로제타 플랜’의 이름은 1999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로제타’에서 나왔다. 이 영화의 주인공 로제타는 좁다란 트레일러 집에서 사는 17세 소녀. 공장에서 해고된 뒤 온종일 일거리를 찾아 거리를 헤맨다. 끼니는 근처 호수에 유리병을 던져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으로 해결한다. 그를 좋아하는 와플가게 종업원 리케는 어느 날 로제타가 저녁거리로 물고기 잡는 걸 돕다가 저수지에 빠지지만, 그 모습을 본 로제타는 리케를 놔둔 채 숲으로 도망친다. 그가 죽으면 일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망설임 끝에 되돌아가 리케를 살려낸 뒤에도, 그가 와플을 몰래 빼돌려 판다는 사실을 와플 가게 사장에게 일러 결국 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가 한 청년실업자의 삶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은 이 영화는 개봉 이후 큰 반향을 일으켰고 로제타 플랜을 이끄는 견인차가 됐다.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벨기에는 로제타 플랜을 통해 청년실업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제도를 다소 변형해 100인 이상 기업에 5% 의무고용제만 도입해도 14만1533명의 청년실업자를 고용할 수 있다(2007년 기준)”고 설명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공사회서비스 부문 확대를 제안한다. 그는 “공공부문 일자리와 사회적 서비스 확대를 통해 실업을 해소하고 대졸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어떤 방식으로든 정부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안정적으로 설계하고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당장 실업자 수를 줄이기 위해 인턴 정책만 추진한다면 청년들을 좌절하게 만들어 장기적으로 사회적 갈등 요인이 될 것이다.”
이 교수의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