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김일성대 출신 주성하 기자의 북한 잠망경 ③

북한 집단체조

1분40초 열병식 위해 1년간 지옥훈련

  •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북한 집단체조

3/6
6·25전쟁 참전자들이나 국가 공로자들은 또 수군거렸다. ‘누구는 피를 흘려도 보상이 없는데 누구는 체조 몇 달 했다고 TV를 받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고.

2000년 집단체조가 끝난 뒤 한 가정에서 학생 2명 이상이 참가한 경우 매 학생에게 선물을 다 줘야 하는지가 논란이 됐다. 결국 갑론을박하다가 “장군님의 방침을 받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재판관으로 등장한 김 위원장은 “모두에게 다 줘라”고 지시했다.

이때는 선물 품목이 식료품이나 담요여서 개개인에게 지급되는 것이 가능했지만 2002년에는 선물이 TV였는데 한 집에서 몇 명이 참가했던 간에 무조건 가구당 TV 1대씩 주었다.

2005년에는 TV보다 훨씬 싼 재봉틀을 주었고 2007년엔 TV를 주었다. 지난해엔 TV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 평양에선 “올해는 TV를 주는 해”라는 소문이 돌아 집단체조 참여경쟁이 더욱 치열했다고 한다.

현재 북한에선 재봉틀은 북한돈 3만~5만원(약 10~16달러)이고 아리랑 컬러TV는 30만원(약 80달러) 정도 한다. 그럼에도 아리랑 TV는 북한에서 거래되는 컬러TV 중에서 가장 싼 축에 든다. 그 이유는 고장이 잦고 부속품이 나가도 A/S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 아리랑 TV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고장은 저절로 볼륨이 올라가거나 채널이 바뀌고 색이 오락가락하는 현상이다.



21인치짜리 아리랑 TV는 중국의 대표적 TV 메이커인 창훙(長虹)그룹이 생산한 TV 수상기에 브랜드만 ‘아리랑’이라고 붙여 수입한 것이다.

집단체조에 참가하는 어른들 역시 TV가 탐나는 것은 마찬가지. 하지만 어른들이 노리는 것은 또 있다. 젊은 사람들은 공장 기업소에서 일하면 노동당에 입당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런데 집단체조에 참가해 충성심을 입증하면 노동당에 입당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집단체조 참가를 자원한다.

평양시민 세뇌효과

집단체조에 학생을 주로 동원하는 것은 그들이 말을 잘 듣기 때문에 혹독한 훈련을 잘 견디는데다가 정치화된 작품에 성인들이 참가하면 폼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반 년 넘게 스파르타식 훈련을 마치게 되면 학생들은 가슴이 벌어지고 근육이 단련되는 등 부수적인 이득도 얻는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얻는 이득은 더욱 크다. 대내외적 선전 목적 외에도 언론에 서 간과하기 쉬운 무형의 이득이 또 있다. 바로 수도 평양의 주민과 학생들을 어릴 때부터 김 위원장의 충복으로 세뇌시키고 단련시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김 위원장의 요구와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고 일사불란하게 집행하는 기계적 인간으로 만드는 훈련이 바로 집단체조다. 체제 유지의 핵심적 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평양 민심은 이렇게 대중 행사를 통해 정교하게 조종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규모 군중 동원이 북한에 긍정적 효과만을 안겨주지는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많은 사람이 생산현장에서 떨어져 나와 행사에 동원되니 그만큼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참가자뿐 아니라 두 달의 공연 기간에는 각종 공장, 기업소에서 사람들이 무조건 동원돼 15만석의 5·1경기장을 모두 메워야 한다. 집단체조를 구경하려면 최소한 한나절은 직장에서 일할 수 없다. 공연을 하는 날이면 경기장에 참가자 10만명과 관람자 15만명을 합해 25만명이 모인다. 평양시내 인구가 약 250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평양시민의 10분의 1이 몇 달 동안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매달려 있는 셈이다.

대학생과 학생은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해 공부에 지장을 받는다. 이는 장기적으로 북한의 국가경쟁력에 손실을 가져올 것이 명백하다.

순전히 주민의 사상적 일체감을 확인하기 위한 도구, 대내외 과시의 수단이 되는 다른 집단체조와는 달리 아리랑은 ‘수익’까지 기대한 공연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아리랑 관람료는 특등석이 300달러, 3등석이 50달러였는데 올해부터 이 가격이 각각 400달러와 100달러로 올랐다. 아리랑을 ‘관광 상품’으로 만든 북한은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해외 홍보 사이트까지 만들었다.

한국 정부 당국은 2002~2008년 아리랑 공연을 관람한 해외관광객을 모두 6만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로부터 북한이 벌어들인 소득은 1000만달러로 추정된다. 2005년에만 남한에서 모두 7730명이 아리랑 공연을 관람했다. 하지만 최근 핵 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제재로 관광객 유치는 시원치 않다. 특히 크게 기대했던 남측 관광객의 유입은 남북관계 경색으로 전면 중단됐다.

지금은 아리랑 공연이 하도 세계적인 논란이 되다보니 그 공연을 관람하는 해외관광객들도 덮어놓고 박수만 치지는 않을 것이다. 화려한 공연 뒤에 묻혀있는 어린 학생들의 고통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리라 믿는다.

아리랑 공연보다 힘든 열병식

하지만 북한의 대중 동원 행사 중에는 아리랑보다 훨씬 혹독한 훈련을 해야 하는 행사도 있음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종종 TV를 통해 보게 되는 북한의 열병식이다. 군사 퍼레이드에는 육해공군 남녀군인은 물론 한국의 예비군과 민방위대 격인 북한 교도대와 노동적위대도 참가한다.

연습 기간도 아리랑이 6개월인 데 비해 열병식은 10개월~1년에 걸쳐 준비한다. 열병식은 거의 매년 진행되다시피 하는, 북한에선 흔한 행사다. 지난해에는 북한 정권 수립 60주년 행사를 맞아 노동적위대 열병식이 열렸으며 2007년 4월에는 북한군 창군 75주년 열병식이 있었다.

지난해 열병식도 사실 노동적위대뿐 아니라 북한군 현역 군인들까지 참가해 10개월 가까이 훈련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행사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군인들은 어이없게도 10개월 동안 훈련한 모습을 보여줄 기회도 갖지 못하고 모두 부대로 철수했다. 대신 적위대원들만 열병식에 나왔다.

참가자를 선발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키다. 부대별로 인원수가 할당되면 부대에서는 군인들을 집합시켜 키부터 잰다. 동일한 키에서는 신체조건을 고려하며 이밖에 군 경력이 고려된다. 고참의 의사결정권이 좀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3/6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연재

김일성대 출신 주성하 기자의 북한잠맘경

더보기
목록 닫기

북한 집단체조

댓글 창 닫기

2020/04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