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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두 거목 황영기 강정원

공격적 영업 주도한 승부사 VS 리스크 관리 중시한 정통 뱅커

  • 류정일│헤럴드경제 시장경제부 기자 ryus@heraldm.com│

금융권 두 거목 황영기 강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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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라는 친정을 뒀다는 점 때문에 황 회장은 징계를 받기도 했다. 삼성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김용철 전 삼성 법무팀장에게 차명계좌를 개설해줬다는 혐의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주의적 경고를 받았고, 삼성생명 전무 시절에는 삼성자동차 등 계열사를 부당 지원한 혐의로 1999년 말 문책경고도 받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초대 금융위원장과 산업은행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끝내 낙점을 받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자로 잰 듯한 정교한 경영 스타일로 한때 ‘시어머니’란 별명을 얻었던 강 행장은 스스로 즐겨 쓰는 사자성어 ‘호시우보(虎視牛步·호랑이처럼 예리한 관찰력과 소처럼 신중한 행보)’를 실천하듯 집무실에 부서별 업무보고서를 정리해두고 사안에 따라 단기, 중기, 장기로 나눠 진행상황을 치밀하게 점검하면서 성장해나갔다. 일례로 강 행장은 취임 직후 자존심이 몹시 상하는 지적을 받았지만 치밀한 전략을 세워 실천한 끝에 자존심을 회복했다. 이는 다름 아닌, 국민은행이 가장 큰 은행이지만 가장 불친절한 은행이라는 지적이었다. 10여 년 전 국내 금융계 대표적인 엘리트 집단이던 한국장기신용은행을 인수한 뒤 고품질화를 추구했지만 강 행장 취임 전 대표적인 서민은행인 주택은행이 새로운 식구로 편입되면서 급격하게 커진 몸집의 국민은행은 창구를 찾은 고객에게 “줄 잘 서라”고 거만하게 소리치기 일쑤였다.

강 행장은 곧장 고객만족도를 최상의 가치로 부여하고 내부 신상필벌에 이를 적극 반영했다. 과거 고객만족부의 부장이 맡았던 ‘민원조정협의회’ 의장직을 본인이 직접 맡으며 행장 직속으로 수직 격상시켰다. 그리고 2006년 12월 강 행장은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특별 방송을 진행하면서 한국생산성본부가 선정해 발표하는 소비자 만족지수인 국가고객만족도(NCSI) 조사에서 은행부문 1위에 올랐다는 내용을 알렸다. 평소 무미건조한 말투의 강 행장이었지만 이날 그는 ‘가슴이 벅찬’ ‘국민은행 역사에 길이 남을’ ‘그 어떤 성과와도 바꿀 수 없이 대단히 소중한’ ‘한편의 서사시와 같은 감동’ ‘신기원을 이뤄낸’ 등 화려한 수사를 거침없이 사용했다.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보호신청을 하기 10여 일 전인 지난해 9월초 황 회장은 당시 산업은행이 인수를 추진 중이던 리먼에 대해 투자 차원의 접근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그는 “산은으로부터 직접 요청을 받지는 않았다”며 “아마 강 행장에게 연락이 갔을 텐데 잘 안 돼서 나한테는 따로 연락이 오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인 9월말 국민은행 사외이사인 조담 전남대 경영학과 교수는 “강 행장이 부채담보부증권(CDO) 투자를 요청받았지만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다”며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CDO는 수익률이 높긴 하지만 위험 역시 높다는 것은 상식이란 점에 강 행장은 주목했다”고 말했다.

실제 강 행장은 원칙주의자이고 머니게임에 강한 냉정한 기질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단적인 예로 불경기 중소기업 금융과 관련해 은행이 우산을 뺏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강 행장은 서슴없이 “그것이 은행의 속성이고 금융의 현실이다. 우산을 빼앗지 않으면 결국 은행에 국민 혈세인 공적자금이 들어가는 것 아니냐”고 잘라 말했다. 또 국민은행이 해외진출의 회심작으로 투자한 인도네시아 BII 은행의 보유지분 매각을 통한 특별이익 발생과 관련해서도 그는 “800여만달러를 투자해 연평균 41%의 수익을 올린 셈이고 우리가 욕하는 론스타처럼 해외에서 멋지게 ‘먹튀’를 한 셈인데 금융은 이런 걸 잘해야 한다”고 자평했다.



오월동주(吳越同舟)! 백아절현(伯牙絶絃)?

지난해 국민은행이 지주회사로 전환을 선언하고 새로운 회장을 물색하면서 시장의 관심은 강 행장의 겸임 여부에 모아졌다. 강 행장도 내심 바랐다. 그러나 연초 금융위원장과 산업은행장 선발 과정에서 고배를 마셨던 황 회장이 막판 뒤집기에 성공하며 제1대 KB금융지주 회장에 낙점됐다. 검투사와 황소의 동거를 두고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평가와 한바탕 잡음이 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물론 작은 충돌은 있었다. 올 초 임기가 만료되는 일부 사외이사 연임 문제를 두고 두 사람은 의견이 갈렸지만 적정선에서 합의했다. 그리고 KB지주가 증자를 하면서 황 회장은 2조원 이상을 생각했지만 강 행장의 반대로 1조원 증자에 그쳤다. 이를 두고 호사가들은 강 행장의 1승1무로 결론짓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사실 두 사람은 물론 KB지주와 국민은행에 별다른 사건이 생길 틈이 없었다. 새로운 공격경영의 일환으로 취임과 함께 황 회장은 ‘대등합병론’을 내세웠지만 곧바로 터진 리먼 사태로 M&A 시장이 급랭하면서 사실상 지난 1년간 황 회장은 잠행을 거듭해야 했고 강 행장은 묵묵히 행장직을 수행했다.

그리고 황 회장의 일신상 이상 기류가 감지된 것은 올봄. 친정이던 우리금융이 잇따라 실적을 발표하면서 대규모 파생상품 투자 손실의 규모가 드러났고 황 회장에 대한 성층권의 내사설이 나돌았다. 강 행장에 비해 비교적 정치적인 줄타기를 잘했다는 황 회장이었지만 이번만은 녹록지 않았다. 실제 그는 연임을 염두에 두고 2006년말 우리은행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전격 선언했고 연임의 고배를 마신 뒤 마주한 지난 대선에서는 이명박 캠프에 몸을 담은 뒤 예상을 깨고 KB지주 회장으로 부활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한 금융권 고위인사는 “5월께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 때 수행단 명단에서 황 회장이 제외되면서 일각에서는 ‘정권 내부의 파워게임에서 힘을 잃은 것 아니냐’는 추측이 급속도로 퍼졌다”며 “현 정권 실세 친인척의 도전으로 황 회장이 좌초했다는 말도 있지만 공격적인 스타일에 지나치게 스마트한 황 회장에 대한 견제와 도전도 많았다”고 말했다.

백아절현(伯牙絶絃).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사람으로 진나라에서 고관을 지낸 거문고의 달인 백아에게는 자신의 음악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절친한 친구 종자기가 있어 우정을 나눴다. 그러나 갑작스레 종자기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백아는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없다며 애지중지하던 거문고 줄을 스스로 끊고 다시는 거문고를 뜯지 않았다.

30대 젊은 시절을 한 회사에서 보냈고 국내 1,2위 은행의 수장으로 경쟁했으며 결국 KB에서 회장과 행장으로 만나 동고동락해온 황 회장과 강 행장. 백아절현까지는 못되더라도 애증이 뒤섞이며 4반세기를 이어온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전개 또는 마무리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신동아 200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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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일│헤럴드경제 시장경제부 기자 ryus@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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