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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의 세상읽기

정운찬의 이름값

정운찬의 이름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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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본질은 정씨의 발언이 총리 내정의 조건이었느냐, 아니냐를 따지는 게 아니다. 총리 내정자의 발언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져보는 것이다. 나는 세종시 관련 발언은 옳고, 4대 강 관련 발언은 옳지 않다고 본다.

세종시의 경우 ‘서울 대통령, 충청 총리’의 현 방식은 수정되어야 한다. 현재의 원안대로 사실상 수도를 분할한다면 행정의 비효율과 낭비, 국민의 불편과 고통은 물론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점은 누구라도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의 가치를 외면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 적합하지 않은 가치는 이상일지언정 목표에 부합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현재의 안(案)대로 진행된다면 충청지역이 수도권에 편입돼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양극화가 한층 심화될 것이란 지적(‘1200인 선언’)은 균형발전의 목표마저 허구일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이는 결코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보수는 찬성, 진보는 반대’란 이분구도가 성립될 수 없는 생활의 문제다. 그렇다면 “원점으로 돌리기는 어렵지만 원안대로 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는 총리 내정자의 발언은 그동안 정치적 목적으로 왜곡된 세종시 문제를 바로잡는 가이드라인이 될 만하다.

하지만 이미 정치적인 문제가 된 세종시 문제를 총리의 힘만으로 바로잡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당장 전면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아무리 선거 때야 무슨 말인들 못하겠느냐고 하더라도 대통령 자신이 세종시를 명품도시로 만들겠다고 공약했으니 말이다.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여당 또한 우군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들에게는 눈앞의 충청표가 무엇보다 중요할 테니까 말이다. 결국 청와대와의 사전조율 여부를 떠나 ‘정운찬 총리’가 세종시 문제의 총대를 메는 일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일단 짐을 지기로 한 이상 쉽사리 내려놓아선 안 된다. “충청도 분들이 섭섭하지 않을 정도”의 구체적 계획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정운찬’의 이름값을 할 수 있다.

총리 내정자는 “4대 강 사업은 수질개선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쉽게 반대하기 어려운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 문제에 관해 충분히 검토할 기회가 없었으리란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는 납득하기 어려운 소리다. 4대 강 사업의 핵심적인 논란은 그것이 ‘4대 강 살리기’가 아닌 ‘4대 강 죽이기’가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강에 보(洑)를 쌓아 강물을 가두면 물이 썩어 오히려 수질이 악화되리라는 게 다수 전문가의 주장이다. 그러나 정부는 맑은 물이 넘실대는 홍보용 그림만 보여줄 뿐 수질이 어떻게 개선된다는 과학적 근거 및 구체적 수치를 국민이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을 만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도리어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는 생략하고, 환경영향평가는 약식으로 해치울 태세다. 국민 세금이 22조원 넘게 투입되는 초대형 국책사업을 초스피드로 밀어붙이는 양상이다. 감사원이 계획과 설계, 사업자 선정, 시공 등 사업 전 분야를 감사하기로 했다지만, 대통령 직속기관인 감사원이 대통령의 역점사업을 엄정하게 감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진우

1949년 서울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現 경원대·한성대 초빙교수

저서: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총리 내정자가 진정 국정의 밸런스를 잡을 생각이라면 ‘4대 강 올인’의 대통령에게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뜻대로 4대 강 살리기 사업을 추진하되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고언(苦言)해야 한다. 전문가들의 우려에 귀를 기울이라고 직언해야 한다. 수자원공사에 8조원의 사업비를 떠넘기면서까지 밀어붙일 필요가 있는 것인지 직접 검토해보아야 한다. 4대 강 사업 등 토목공사 위주의 경기부양책을 비판해왔던 학자적 소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면 사업 전반에 대한 솔직한 견해를 대통령에게 개진해야 한다. 과거의 이회창 총리처럼 요란할 필요는 없다. 조용하게 균형을 잡으면 된다. 사회통합을 이루고 경제를 살리는 일도 이런 노력의 진정성을 국민이 공감할 수 있을 때 가능하지 않겠는가.

김종인 전 의원은 “4대 강 사업과 세종시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하면 자기 명성을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총리 내정자는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인지도 모른다. 뛰어내려야 할 때 스스로 뛰어내리지 못한다면 호랑이와 운명을 함께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호랑이의 운명이란 대체로 비극으로 끝난다. ‘정운찬’이 이름값을 하기 바란다. 그의 성공적인 출사(出仕)를 위해서가 아니다. 나라를 위해 하는 말이다.

신동아 200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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