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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엽 기자의 재미있는 자동차 ③

사생아 될 뻔한 SM5, 중산층 가장의 상징으로

  • 나성엽│동아일보 인터넷뉴스팀 기자 cpu@donga.com│

사생아 될 뻔한 SM5, 중산층 가장의 상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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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의 자동차 진출과 관련해서는 말이 많았다. 자동차광(狂)인 이건희 회장의 의지에 의한 무리한 사업 확장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 “삼성이 만들면 자동차도 초일류 제품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소비자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당시 김영삼 정부는 삼성의 자동차 사업 진출을 허가했다.
  • 공장 기공식 이후 3년 만인 1998년 3월 삼성이 만든 첫 자동차가 나왔다. SM5였다.
사생아 될 뻔한 SM5, 중산층 가장의 상징으로

2010년 1월 나오는 3세대 SM5 뒷면.

삼성이 자동차공장을 지은 부산 신호공단은 갯벌을 메워 만든 공장부지로 자동차 공장 부지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무거운 기계 설비를 들여놓을 경우 지반이 내려앉을 우려가 있어 보강 공사로 공장 건설 비용이 커졌다.

지금도 부산 르노삼성 공장에 가면 건물과 땅이 닿는 부분에 크고 작은 균열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균열 때문에 공장이 내려앉거나 무너지지는 않는다. 공장을 지탱하는 것은 땅이 아니라 1만7000여 개의 쇠기둥이기 때문.

지금도 그렇지만 삼성은 당시에도 초일류를 지향했다. 삼성자동차 공장은 자동차 공장이라기보다는 고급 레스토랑 주방이나 무균실, 또는 미세한 먼지 하나라도 발견할 수 없는 반도체 공장에 가깝다.

‘초일류가 되는 데 필요한 돈은 아끼지 않는다’는 기업문화에 따라 거액을 들여 닛산의 조언을 들어가며 엄청난 양의 제조 설비를 사들였다. 다른 자동차 공장에서 사람이 하는 일도 삼성자동차 공장에서는 로봇이 하도록 했다.

실내 공기 정화시설도 최고급으로 갖췄으며 직원들이 잠시라도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작업위치에서 몇 걸음만 떼면 되는 거리에 휴게시설을 뒀다. 자동차 공장이기 때문에 바닥에 기름때가 묻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삼성자동차 공장 바닥은 그대로 누웠다 일어나도 옷에 먼지가 거의 달라붙지 않을 정도다.



‘초일류 삼성’이 돈 아끼지 않고 지어놓은 공장은 지금도 다른 어느 자동차 회사와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최첨단과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최첨단 공장 설비는 초기에는 SM5의 발목을 잡았다. 과도한 시설투자로 인해 차를 팔아서는 돈이 남지 않는 구조가 된 것이었다. 실제로 당시 자동차 업계에서는 “삼성자동차는 SM5를 한 대 팔 때마다 100만원 이상씩 손해를 본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왔고 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삼성전자 등 막대한 이익을 내는 계열사를 둔 삼성은 자동차에서 손해 나는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다.

사생아 될 뻔한 SM5, 중산층 가장의 상징으로

3세대 SM5 내부(위)와 헤드램프.

‘삼성 직원만 타는 차’

‘초일류 자동차’를 기대하던 소비자에게 삼성의 첫 차 ‘SM5’는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당시 SM5의 경쟁모델이던 현대자동차의 EF쏘나타는 지금 팔리고 있는 YF쏘나타와 견주어도 크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곡선 속에 ‘에지’가 살아 있는, 당시 세계 자동차 디자인 트렌드를 따르고 있었다.

이에 반해 닛산과 기술제휴를 맺고 개발한 SM5는 1990년대 중반 모델인 닛산의 ‘세피로’를 기본 모델로 만들었기 때문에 외관상 EF쏘나타보다 ‘시대적으로 뒤처지는’ 모습이었다.

시판 초기 “SM5를 타는 사람은 삼성 직원밖에 없다”는 비아냥거림 속에서 실제로 삼성 직원들은 직급에 따라 SM5 520, 525 등을 구입했다. 당시 전체 판매량의 40% 가량이 삼성 임직원 판매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겉모양은 ‘구형’이었지만 이른바 ‘내장’인 기계 계통과 주행 성능은 EF쏘나타를 압도했다. ‘수입차’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안정적인 승차감과 주행성능으로 전문가들 사이에서 ‘잘 만든 차’라는 평가가 잇따랐다.

또 ‘국산화율이 높아지기 전에 구입해야 닛산 부품 비율이 높은 일제 차를 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SM5 판매는 탄력을 받는 듯했다. 지금도 일부 중고차 시장에서는 1998년형 SM5가 2000년 이후 같은 모델보다 값이 비싸게 형성돼 있다. 외환위기를 맞아 과시형 소비가 고개를 숙이는 분위기 속에서 튀지 않고 평범, 무난하고 실속 있는 차를 선호하는 소비자도 SM5를 선택했다.

그러나 1999년 기업 간 대규모 사업부문 교환인 ‘빅딜’ 계획이 발표되면서 막 살아나려던 ‘삼성차’에 대한 수요는 자취를 감췄다.

“국내 기업의 90%가 쓰러진다”는 흉흉한 소문 속에서 삼성자동차의 취약한 재무구조는 소비자를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삼성차 샀다가 회사 망하면 애물단지 되는 것 아니냐”“AS도 제대로 못 받고 고장 나도 부품이 없어 고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소비자의 생각이었다.

대우자동차와 합병 등 다양한 빅딜 구상이 나왔지만 삼성그룹은 결국 자동차사업을 접기로 결정하고 1999년 6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삼성모터스’의 줄임말인 SM은 그렇게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사라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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