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호

전남 영암 F1 그랑프리, 알고 보면 FUN FUN!

  • 나성엽│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cpu@donga.com│

    입력2010-02-02 2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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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22~24일 ‘F1 그랑프리’가 한국에서 처음 열린다. 고막을 찢을 기세의 굉음,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무서운 속도, 이를 하나의 스포츠로 승화시키는 놀라운 기술이 벌써부터 F1 팬들을 설레게 한다. 더욱이 이번 대회는 슈퍼스타 미하엘 슈마허의 컴백 무대다.
    • F1을 전혀 모른다 해도 늦지 않았다. 천천히 읽고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전남 영암 F1 그랑프리, 알고 보면 FUN FUN!
    1985년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위성방송의 스포츠 채널을 틀었다가 재미있는 장면을 봤다. 바퀴가 툭 튀어나온 1인용 자동차가 트랙을 빙빙 돌고 있었다. 흥분한 아나운서는 기록이 나올 때마다 열정적으로 목소리를 높였고, 전광판에 숫자가 바뀔 때마다 관중석에 자리 잡은 수만 명의 인파는 열광했다. 모터스포츠를 전혀 몰랐던 어린 나에게 그것은 스포츠가 아니었다. 그냥 자동차들이 같은 길을 반복해서 달리는 지루한 일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눈길 끄는 장면 하나가 펼쳐졌다. 자동차 한 대가 중심을 잃고 뱅그르르 돌았고, 이 차를 피하려던 다른 차와 함께 트랙을 벗어나 잔디밭에 처박혔다. 그 뒤로 ‘또 언제 저런 멋진 장면이 펼쳐지나’, 사고가 나기를 바라며 경기를 집중해서 보게 됐다. 자동차를 전혀 몰랐던 필자에게 ‘포뮬러 원 그랑프리’(F1)는 그런 스포츠였다. 왜 수만 명이 운집했는지, 왜 경기장 아나운서가 흥분했는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뒤로 25년 가까이 지났다. 그 사이 F1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를 접했고, 경기장을 찾아 현장을 취재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 F1은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포츠는 아니었다. 문화적 차이로 인해 대다수의 한국인에게 F1은 프로야구나 WBC, 올림픽, 월드컵과 같이 ‘피부에 와 닿는’ 스포츠는 분명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유럽, 미국인들이 주로 열광하는 스포츠라고 해서 한국인도 따라서 열광해야 할 이유도 없다. 이는 마치 ‘유럽인들은 크리켓이나 럭비에 열광하는데 무식한 한국인들은 이 게임의 진면모를 모른다’고 비난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F1과 프로야구

    하지만 올해만큼은 다르다. 10월22~24일 사흘간 전남 영암에서는 ‘F1 코리아 그랑프리’가 열린다. F1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자국에서 펼쳐지는 특급 스포츠 이벤트를 강 건너 불구경한다면, 이는 개인적으로도 크나큰 손실일 수밖에 없다. 물론 경기 수개월 전부터 방송과 신문 잡지는 F1 관련 기사나 리포트로 할애된 시간과 지면을 ‘도배’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독자는 F1에 대해 본의 아니게 ‘주입식’으로 상당한 지식을 얻을 것이다. 축구 월드컵이 열리는 동안 이런저런 스타들의 이름과 인상이 익숙해지는 것과 같은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대회 기간에 임박해서야 스타플레이어의 진면모와 게임 보는 재미를 겨우 알게 된다면 대회 전부터 게임의 묘미를 알고 있던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손해 보는 ‘재미’의 양은 클 수밖에 없다. 더욱 절망적인 경우는 경기가 다 끝나고 나서야 뉴스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 맞다 저 사람이 있었지’ 뒷북치는 사람들. 개기일식,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한·일월드컵 못지않은 빅 이벤트. 고시공부 하듯 머리 싸매지 않고 F1을 즐기는 방법은 없을까?

    F1을 즐기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프로야구 보듯 F1을 감상하는 것이다. 한국의 프로야구, 미국의 메이저리그처럼 F1에는 선수가 있고 코칭스태프가 있고,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가 있다. F1드라이버 중에는 야구의 추신수·이승엽·박찬호 같은 스타플레이어들이 있으며, 레이스 도중 차량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정비하는 스태프들이 조범현·김인식 감독, 이만수 코치 같은 역할을 한다.

    전남 영암 F1 그랑프리, 알고 보면 FUN FUN!

    F1 슈퍼스타 미하엘 슈마허.

    프로야구가 1년간 경기를 치른 뒤 승패와 승점을 따져 종합 순위를 정하듯 F1 역시 나라와 도시를 옮겨 다니며 18차례 경기를 치른 뒤 성적을 집계해 순위를 가린다. F1의 경우 레이스별로 등수별로 점수가 다르게 매겨진다. 한 해 대회를 모두 치른 뒤 매 대회에서 얻은 점수를 합산해 연말에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서울, 인천, 대구 등을 오가며 프로야구 페넌트 레이스가 열리듯, 올해 열리는 전남 영암 대회 역시 F1 ‘페넌트 레이스’의 한 경기로 보면 된다. 프로야구에 우승팀이 있고 홈런왕, 도루왕이 있듯이 F1에서는 우승 차종과 운전자를 따로 시상한다.

    프로야구에는 나이키, 미즈노 등 운동용품 제작사가 경기에 필요한 용품을 제공하듯이 F1에는 페라리, 메르세데스 벤츠, 도요타, 브리지스톤과 같은 자동차 엔진과 차체, 타이어 제작회사가 뒤에 있다. 프로야구의 경우 어느 팀 소속의 어느 감독 밑에서 어느 선수가 어떤 기량을 발휘하며 리그에서 △전체 팀 순위 △홈런, 타율, 도루 등 선수 개인 성적 순위가 관심을 모으고, 부수적으로 이 선수가 착용하는 신발과 사용하는 글러브, 배트의 브랜드가 화제가 되기도 한다. F1도 똑같다. 어느 팀 소속의 어느 스태프와 함께하는 어떤 선수(드라이버)가 어느 정도의 기량을 발휘하는지, 이 드라이버가 운전하는 차량은 어느 회사 차량인지가 관전 포인트다.

    프로야구에는 TV로 생중계되는 1군 경기가 있고, 1군에 미치지 못하는 실력을 가진 2군이 있듯이, 자동차 경주에도 1군 격인 F1 아래로 차량의 종류와 배기량을 달리하는 포뮬러2(F2), 포뮬러3(F3) 등의 하위급 경기가 있다. 프로야구와의 차이점을 들자면, 프로야구 팬들은 각 팀의 순위와 선수 개인의 성적을 위주로 관전하며 선수가 사용하는 신발이나 장비는 부수적인 내용인 반면, F1의 경우 △개인의 성적 △자동차(머신)의 성적 위주로 관전하는 게 일반적이다.

    스포츠 신문이나 가십성 인터넷 뉴스를 보면 프로야구에도 온갖 뒷얘기가 있다. 어느 선수가 바람을 피웠다는 둥, 어떤 경기에서 승부조작이 있었다는 둥, 어느 경기에서 선수들이 집단으로 그라운드로 뛰쳐나오는 ‘벤치 클리어링’이 있었다는 둥. F1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겉보기에는 ‘자동차들’이 서로 먼저 가기 위해 경쟁하는 것 같지만 자동차는 어디까지나 신발, 배트, 글러브 같은 도구일 뿐. 결국 F1 역시 사람들 간의 경쟁이고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최대 관전 포인트

    전남 영암 F1 그랑프리, 알고 보면 FUN FUN!

    싱가포르 그랑프리 코스.

    서울에 사는 프로야구 팬이 대구 경기를 현장에서 보기 위해서는 그리 비싸지 않은 교통비만 치르면 되지만, F1은 대륙을 옮겨가면서 경기가 열리기 때문에 큰마음 먹지 않고서는 현장에서 경기를 보기 어렵다. 한국에서 열리는 F1을 놓치면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도 ‘저렴한 비용’에 현장에서 귀마개를 하지 않으면 고막이 손상될 정도인 F1의 굉음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영암 ‘F1 코리아 그랑프리’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역시나 미하엘 슈마허다. 미하엘 슈마허는 2000년대 F1을 혼자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F1에 대해 별로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조차 슈마허는 귀에 익은 이름이다. 슈마허는 1994년과 1995년, 2000~2004년 모두 7차례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슈마허가 소속된 페라리 팀은 2002년 F1 전체 17개 대회 중 15개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우승했다. 슈마허가 획득한 승점은 2등과 3등을 합친 점수보다 높았다. 2003년에도 슈마허가 근소한 점수차로 종합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4년에도 슈마허의 페라리 팀이 18개 대회 중 15개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F1 최다승인 통산 91승을 기록했으며 한 해 수입이 8000만달러(약 1000억원)를 넘기도 했다. 요즘 마음고생이 심한 골프의 타이거 우즈가 등장하기 전까지 전 종목을 통틀어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스포츠스타였다. 승승장구하던 슈마허는 2006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으며 슈마허가 은퇴하자 F1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F1 ‘광팬’들의 열광은 여전했지만, ‘슈마허=F1’인 지역에서 F1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슈마허는 2009년 7월에 복귀를 시도했으나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그런 슈마허가 메르세데스와 1년간 1000만달러(약 118억원)를 받는 조건으로 올해 정식 컴백하며 전남 영암에도 당당히 선수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F1 대회에는 최대 24대의 F1머신이 출전할 수 있다. 각 팀은 2대의 자동차를 출전시킬 수 있으므로 총 12개 팀이 출전할 수 있다. 지난해 대회의 경우 10개 팀이 참가했다. 각 팀은 4명의 드라이버를 둘 수 있으며 한 경기에는 각 팀에서 2명의 드라이버만 출전시킬 수 있다.

    최대 13개 팀 26명의 드라이버가 시속 300㎞가 넘는 속도로 순위 싸움을 하는, 불세출의 스타 미하엘 슈마허를 탄생시킨 오늘날 F1이 있기까지 F1 대회에는 갖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F1에서 우여곡절이 있었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고성능 승용차를 타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F1의 뿌리는 1920~30년대 ‘유럽 그랑프리 모터 레이싱’(European Grand Prix motor racing)이다. 현재 F1 운영 주체인 국제자동차연맹(FIA)이 1946년 경기 규칙을 통일하고 1950년 첫 F1 대회 격인 ‘세계 드라이버 챔피언십’(World‘s Drivers‘ Championship)을 열면서 F1의 역사가 시작됐다. 원래 ‘포뮬러 원’(Formula One·F1)은 경기 규정(Formula)에 부합하는 1인용 자동차라는 뜻이었다. ‘포뮬러 원’이라는 명칭이 대중에 알려지면서 1950년 대회부터 ‘포뮬러 원’을 공식 경기 이름으로 사용했다.

    1950년 첫 대회는 유럽의 6개 그랑프리대회와 미국의 ‘인디애나폴리스 500’ 경기를 합산해 우승자를 가렸다. 당시에는 알파 로메오, 페라리, 마세라티 등 명차 강국이던 이탈리아팀이 경기를 주도했고 프랑스의 ‘탈보’(Talbot), 영국의 ‘BRM’ 등이 함께 경쟁했다. 1950년과 1951년 대회에서 우승한 알파로메오 158, 159 엔진은 최고출력 420마력을 냈다. 지금 기준으로 해도 웬만한 양산 차는 따라잡기 힘든 출력이었다.

    목숨을 위협하는 속도전

    주로 유럽에서 대회를 진행해온 F1은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전체 대회의 3분의 1가량을 유럽 외 지역에서 개최했다. 유럽은 겨울에 낮이 너무 짧아 레이싱에 적합하지 않은 기후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유럽에서는 주로 여름에 경기가 열리고 유럽 외 지역에서는 시즌 초나 막바지에 레이싱이 열린다. 전남 영암에서 열리는 F1 경기가 10월에 잡힌 이유 중 하나다.

    자동차 회사와 드라이버들의 ‘속도전’ 도구였던 F1 머신이 지금과 같이 현란한 광고판으로 바뀐 것은 1968년 스폰서십이 도입되면서부터다. 자동차 관련 업체들의 지원이 줄어들자 F1 대회를 주관하는 FIA는 스폰서십을 허가했다. 당시 로터스 F1 팀은 F1 머신 최초로 담배 회사 ‘임페리얼 토바코’(Imperial Tobacco)사의 회사 로고를 차에 붙이고 경주에 참가했다.

    1970년에는 F1 대회에 ‘슬릭 타이어’(slick tyre)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슬릭 타이어란 바퀴가 땅에 닿는 부분에 아무런 무늬가 없어 접지력을 20%가량 향상시킨 제품이다. 1977년 프랑스 르노가 F1에 입성할 때 미셰린의 레디얼 타이어도 F1 대회에 데뷔했다.

    1979년, 르노는 터보차저가 달린 엔진을 장착한 RS10 F1 머신으로 디종(Dijon) 그랑프리에서 1위를 차지했다. F1에서 처음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터보 엔진 머신이었다. 터보차저를 장착한 1500cc 엔진은 무게가 가벼우면서도 터보차저가 달려 있지 않은 3000cc 엔진보다 뛰어난 성능을 냈다. 1983년에는 터보차저 엔진을 장착한 머신이 첫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우승은 기업이 아닌 개인팀인 에클레스톤의 브라함팀 소속의 피켓(Piquet)이었다.

    터보차저 엔진의 보편화로 F1 머신의 성능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울 경지에 이르렀다. 1986년에는 모든 출전 머신이 엔진에 터보차저를 달았고 일부 머신은 예선전에서 최고출력 1000마력을 냈다. 제원표상 최고 출력이 1300마력에 이르는 머신도 있었다. 조직위원회인 FIA는 안전상의 이유로 1987년과 1988년 터보차저의 성능을 일정 수준 이하로 세팅하도록 규제했다. 그래도 차량의 속도가 드라이버의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오르자 FIA는 1989년 터보엔진을 금지하고 대신 배기량 허용기준을 3000cc에서 3500cc로 높였다.

    1990년대 초반 각 팀은 전자 운전장비(electronic driver aids)를 경쟁적으로 도입했다. 차체의 진동과 자세를 제어하는 ‘액티브 서스펜션’(active suspension), ‘반자동 기어박스’(semi-automatic gearboxes), ‘트랙션 컨트롤’(TCS) 같은 첨단 장비도 봇물을 이뤘다. 1990년대에 F1 머신에는 소형경량 TV카메라가 부착돼 경기 상황을 실시간으로 박진감 있게 TV로 중계할 수 있게 됐다. F1 경기에 쏟는 광고주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빗길에서 차체의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TCS 등의 첨단 장비는 요즘 고급 승용차에 안전 사양이나 옵션으로 나오고 있지만 당시에는 ‘운전자의 실력이 아닌 전자 장치에 의존해 운전한다’는 비난 여론이 있어 사용이 금지되기도 했다.

    터보차저 엔진 금지, 전자장비 장착 제한 등의 조치가 있었지만 F1의 평균 시속은 계속 빨라졌다. 그러자 1994년에는 연료에도 규제를 두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사용되던 벤젠(benzenes)과 톨루엔(toluenes) 합성연료를 금지하고, 일반 자동차가 사용하는 무연휘발유만을 허용했다. 또 엔진 배기량도 3500cc에서 3000cc로 다시 낮췄으며 유사시 쉽게 탈출할 수 있도록 운전석 입구를 넓히도록 했다. 슬릭타이어 대신 바닥에 무늬가 있어 접지력이 감소하는 그루브 타이어를 도입하고 날개 크기도 축소해 공기의 역학적 도움을 덜 받아 속도를 줄이게 했다.

    만약 FIA가 속도를 줄이기 위한 제한 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면 지금 평균시속 200㎞대, 최고시속 300㎞대로 서킷을 도는 F1 머신들은 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며 수많은 사상자를 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F1 백미, ‘피트스톱’

    전남 영암 F1 그랑프리, 알고 보면 FUN FUN!

    타이어 워머. 타이어를 데워 출발과 동시에 최고의 성능을 발휘하게 하는 장치.

    슈마허와 TCS, 터보차저 등 고급차 엔진과 옵션을 탄생시킨 F1. 선수와 각종 기계장치는 F1을 재미있게 관람하기 위한 조건이기는 하지만 ‘도무지 관심이 가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F1에 관한 아무런 지식이 없어도 F1 경기 자체는 보고 듣는 묘미가 있다. 우선 경기장 소음이다. TV가 아닌 현장에서 F1 경기를 볼 때는 귀마개를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관중석 앞쪽이냐, 뒤쪽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장소이건 머신들이 눈앞을 지나칠 때 그 소리를 생으로 들으면 고막에서 고통이 느껴진다. 귀를 파면서 실수로 푹 찔렀을 때의 고통과 비교할 만하다. 귀마개를 해도 머신의 소음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저 ‘귀가 좀 덜 아프다’ 싶을 정도의 효과다.

    또 하나의 재미는 ‘피트스톱’. 평균 5.215㎞의 서킷을 2시간여에 걸쳐 59회 도는 F1 머신들의 총 주행거리는 최대 310㎞. 이 거리를 직진 경로에서는 시속 300㎞ 이상, 코너에서도 200㎞가량으로 주행하려면 머신에는 여기저기 큰 무리가 간다. 타이어도 3차례가량 교환해야 하고 연료도 새로 주입해야 하며, 간단한 고장은 즉석에서 수리해야 한다. 타이어 교체 등을 하기 위해서는 레이스 도중 한두 차례 지정된 정비 구역에 정차해야 하는데 이를 ‘피트스톱’(Pit Stop)이라고 한다.

    피트스톱을 하더라도 경기장의 초시계는 계속 간다. 이 때문에 피트에서 머무는 횟수와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면 해당 경주에서 우승할 확률이 높아진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피트스톱을 단 한 차례도 안 하는 것이나, 현재 개발된 타이어의 성능으로는 불가능한 얘기다. 피트에 서는 횟수를 줄이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F1팀이 선택한 방법은 가장 짧은 시간 내에 타이어 교체와 급유를 마치는 것. 보통 F1 머신이 정비 등을 위해 피트에 들어서면 약 9초 만에 타이어 4개 교환과 급유를 마친다. 이 시간이 단 1, 2초라도 늘어나면 해당 팀은 경기 우승권에서 거리가 멀어진다.

    전남 영암 F1 그랑프리, 알고 보면 FUN FUN!

    레이싱 중간에 타이어를 교체하는 장면.

    지난해 싱가포르 그랑프리에서는 ‘레드 불’ 팀의 마크 베버가 운전하던 머신이 피트스톱에서 부품 하나를 제대로 조립하지 않는 바람에 중간에 레이스를 포기한 사례가 있다. ‘피트스톱’을 9초 이내에 끝내기 위해서는 메캐닉들의 환상적인 호흡이 필요하다. 20여 명의 메캐닉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철저한 분업으로 9초 만에 차를 최적의 컨디션으로 바꿔놓는 모습은 아무리 F1을 자주 본 관람객이라도 입이 벌어지는 장면이다. 이 때문에 F1 관람권은 관중석이 피트스톱 지역에 가까울수록 비싸다.

    비뚤어진 욕망 ‘크러시게이트’

    세상 어느 조직 어느 사회에나 있는 사람들 사이의 암투가 F1에도 존재한다. 미하엘 슈마허가 F1을 사실상 ‘지배하던’ 2002년. 이해 호주 그랑프리에서는 1위를 달리던 루벤스 바리첼로(Rubens Barrichello)가 마지막 몇 바퀴를 남기고 같은 팀 소속이던 미하엘 슈마허에게 1위를 양보했다. 이와 유사한 행위는 같은 해 US그랑프리에서도 일어났다. F1에서 사상 최악의 비신사적인 행위로 꼽히는 이른바 ‘크러시게이트’는 2008년 11월 싱가포르 그랑프리에서 일어났다.

    당시 싱가포르는 현재 한국과 같은 상황이었다. 그해 싱가포르는 사상 처음으로 F1 그랑프리를 개최하면서 관광상품화하기 위해 서킷을 도심에 설치했다. 또 F1 대회로서는 유일하게 조명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히고 야간에 경기를 진행했다. 하지만 야간, 도심 경기라는 특색은 이 대회에서 벌어진 승부조작으로 빛이 바랬다. 대회에 참가한 프랑스 르노팀의 드라이버가 같은 팀의 유력한 종합 우승 후보자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양보’ 수준이 아닌 고의로 사고를 낸 것. 르노팀의 드라이버 넬슨 피케는 “우승이 유력했던 같은 팀 동료 알론소에게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일부러 사고를 내라는 지시를 감독에게서 받고 그대로 시행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르노팀은 수년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으며 긴축경영을 강조하는 카를로스 곤 회장이 팀의 예산을 줄일까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승이 유력시 되는 알론소가 예선에서 좋지 못한 기록을 내 결선에서 뒤처진 자리에서 출발하게 되자, 같은 팀의 다른 드라이버가 사고 수습인력이나 구급차가 즉시 오지 못하는 후미진 코스에서 일부러 사고를 낸 것이었다.

    F1에서는 사고가 나면 경기를 중단시키고 사고 순간의 순위를 유지하게 한 뒤 사고 수습이 끝날 때까지 경기장을 빙빙 돌게 한다. 이렇게 되면 경기 전 예상했던 연료 소모량에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피트스톱을 하게 되고, 피트에 들어가고 나오는 과정에서 규정을 지키지 못할 경우 벌점을 받는 등 돌발 변수가 많이 생긴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알론소가 1위에 올라설 수는 있었으나 르노팀은 FIA로부터 자격 정지 유예 처분을 받았다.

    ‘크러시게이트’로 인해 싱가포르 그랑프리의 격은 크게 떨어졌다. 이듬해인 지난해 두 번째 싱가포르 그랑프리가 열렸지만 관중석 곳곳에 빈자리가 보였다. 영암 대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회 운영 못지않게 참가자들의 페어플레이도 중요한 이유다.

    F1에도 ‘그린’ 바람

    최근 자동차 업체들이 속속 하이브리드 차량과 전기차를 내놓으면서 대량의 연료를 소모하는 F1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F1이 1년간 18, 19개 대회를 치르면서 머신들이 소모하는 연료는 점보기 한 대가 서울에서 영국까지 가는 데 필요한 연료량과 비슷하다.

    이에 대해 F1 관련업체들은 “F1 대회가 오히려 지구 온난화를 막는 데 도움을 준다”고 반박한다. F1에 타이어를 독점 공급하고 있는 브리지스톤의 우메모토 구니히코(梅本邦彦·56) 아시아·태평양 지역 대표는 “F1 대회를 통해 개발되는 고연비, 친환경 관련 신기술이 결과적으로 연료소모를 줄이고 지구 온난화를 늦추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브리지스톤은 F1대회 타이어 제작을 통해 얻은 노하우로 최근 연료 소모량을 줄여주는 친환경 타이어를 개발해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다. 같은 양의 연료로 보다 먼 거리를 주행해야 유리한 F1 경기의 특성상, 엔진 메이커들은 극한의 상황에서 연료 소모량을 줄이기 위해 차량 디자인과 엔진의 기능을 개선하고 있으며 경기가 끝나면 이러한 신기술은 고스란히 소비자가 구입하는 차량에 적용된다.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F1 그랑프리. 영암 대회에서 슈마허의 건재함을 확인할 수 있을지, 아니면 슈마허를 대신할 또 다른 스타가 뜰지, 또 어떤 새로운 신기술이 선을 보여 수년 후 내가 구입하는 차량에 옵션으로 장착될지, 혹은 스캔들이 벌어질지…. 이 모든 것이 고막을 찢는 굉음과 비호처럼 움직이는 메캐닉에 더해 경기의 즐거움을 주는 ‘펀’(fun)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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