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봄 시즌에 선보인 ‘Sonia Rykiel pour H&M’ 콜렉션의 스트라이프 니트. 국내 판매가격은 5만9000원이었다.
‘패션과 품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한다.’ 이 거대한 패션브랜드는 이처럼 단순하고 명확한 경영이념에 따라 철저하게 움직인다. 최신의 트렌드에 부합하는 아이템을 선보이기 위해 스웨덴 본사에서 근무하는 120명의 디자이너가 재단사, 바이어, 회계 담당자 등과 팀을 이뤄 새로운 컬렉션을 제작하며, 전세계 매장에는 날마다 신상품이 입고된다. 그리고 그 가격은 많은 사람이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수준이다.
유통을 전적으로 자사가 전담하는 SPA 브랜드들은 매장을 가장 중요한 ‘대고객 채널’로 여긴다. H·M도 매장에 발을 처음 들여놓는 순간부터 H·M 브랜드에 대한 느낌을 받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총 4층, 2600㎡(786평) 규모의 H·M 명동매장에 근무하는 직원은 150명으로 여타 브랜드보다 많은 편이다. 이 중 매장의 시각적 요소를 전담하는 비주얼 머천다이저가 15명. 이들은 매장에 상주하면서 윈도 디스플레이를 전담하고 상품 구성을 수시로 바꾸며, 옷걸이가 빌 때마다 새 상품으로 채워 넣는다. H·M 한국지사 정해진 마케팅실장은 “그래서 고객들은 매번 올 때마다 신선감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H·M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세계적인 디자이너와의 콜래보레이션(협업)이다. 의류뿐만 아니라 전자제품에 이르기까지 디자이너나 아티스트와의 콜래보레이션은 이제 전 산업군에 퍼진 일반적인 마케팅 도구다. 그러나 이정민 PFIN 대표는 “H·M은 사람들이 그 순간에 가장 열망하는 화제의 디자이너와의 콜래보레이션을 지속적으로 선보인다는 점에서 가장 선두적”이라고 평가했다.
H·M은 2004년 칼 라거펠트와의 콜래보레이션을 시작으로 콤 데 가르송, 지미 추, 매튜 윌리엄슨, 소니아 리키엘 등과의 콜래보레이션 컬렉션을 출시해왔다. 칼 라거펠트의 재킷을, 지미 추의 구두를, 소니아 리키엘의 니트를 명품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살 수 있으니 소비자가 환호하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실제로 H·M 역사상 가장 큰 성공으로 꼽히는 도쿄 긴자점이 오픈할 당시 대규모 고객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때 콤 데 가르송과의 콜래보레이션 상품을 출시한 덕분이 크다(이 브랜드를 창시한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는 일본 출신이다). H·M 명동점 역시 오픈 때 ‘니트의 여왕’으로 칭송받는 파리 출신 디자이너 소니아 리키엘과 협업한 니트 컬렉션을 1만9000원에서 11만9000원의 가격에 선보였고, 오픈 당일 거의 모든 제품을 팔아치웠다고 한다.
마이클 잭슨 사망 5주 만에 자라에 걸린 ‘빅토리 재킷’

2008년 4월 오픈한 자라의 코엑스 매장 전경. 자라는 국내 진출 2년이 채 안 돼 총 17개의 매장을 열었다.
자라는 스페인 인디텍스(INDITEX)사가 보유한 8개 패션브랜드 중 하나로, 이 회사는 전세계 74개 국가에 4607개의 매장을 보유(2010년 1월31일 기준)한 세계 굴지의 패션기업이다. 인디텍스의 2009년 매출액은 110억8400만유로(약 16조원)로 규모나 매출 면에서 H·M과 어깨를 겨눈다.
자라는 인디텍스와 롯데쇼핑의 합작 형태로 2008년 4월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법인명 자라리테일코리아). 롯데 영플라자와 코엑스 매장을 필두로 지난해 서울, 인천, 분당, 대구, 광주, 울산 등에 총 17개 매장을 열었다. 지난해 매출은 850억원. 올해는 10개 매장을 추가로 개장해 18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1975년 스페인에서 첫 매장을 연 자라는 널리 알려졌다시피 ‘패스트 패션’의 효시다. 보통 패션업체들은 1년에서 1년6개월 앞서 다음 시즌에 팔 제품의 디자인과 수량 등을 결정, 생산 주문을 낸다. 하지만 자라는 ‘지금 팔리는 옷을 지금 기획, 생산한다’는 경영 전략을 구사한다. 다른 SPA 브랜드들이 60~70%를 사전에 기획생산하고, 30~40%를 소비자 반응을 봐가며 생산하는 것과 반대로 자라는 베이식한 아이템을 중심으로 30~40%만 기획생산하며, 나머지 60~70%는 반응생산한다. 업계 관계자는 “고객에게 자라가 만든 것을 사가라고 푸시(Push)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풀(Pull)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6월 마이클 잭슨이 급작스레 사망, 전세계적으로 잭슨 붐이 일자 자라는 ‘빅토리 재킷’을 출시했다. 그런데 이 재킷이 국내 매장에 들어오기까지 5주도 채 소요되지 않았다고 한다.
자라가 이처럼 신속하게 ‘지금 고객들이 원하는 패션’을 선보일 수 있는 것은 매장 부문에 색다른 직능을 갖춘 전문가들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커머셜 디렉터, 스토어 매니저, 에어리얼 코디네이터, 스토어 코디네이터 등이 바로 그들로, 이들은 DT(Direccion de Tienda)의 진두지휘하에 매장과 길거리 등 각종 ‘현장’에서 얻은 소비자 정보를 취합, 스페인 본사에 알린다. 보통 7~8개 매장을 동시에 관리하는 DT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소비자 니즈를 분석하는 것. 국내에서도 여성복, 남성복, 아동복 등을 각각 담당하는 4명의 DT가 활동 중이다.
이런 현장 정보가 스페인 본사로 건너가 상품으로 개발돼 다시 현장(매장)으로 돌아오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빠르면 3주다. 인디텍스는 포르투갈, 모로코, 중국 등에 1189개의 자사 공장을 두고 있어 신속한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이렇게 생산된 제품들은 비행기를 타고 전세계 매장으로 재빠르게 배달된다. 자라리테일코리아 관계자는 “자라에는 생산비용보다 시간이 우선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