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7일 오전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안보관계장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에 나가 있는 중계차 연결합니다. 안보관계장관회의가 열렸습니까?” “잠시 전인 오전 11시쯤부터 청와대에서 네 번째 안보관계장관회의가 속개됐습니다.”(YTN 3월28일 오전 11시23분 보도)
3월26일 저녁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한 뒤 이명박 대통령이 소집한 ‘안보관계장관회의’는 국가의 최고의사결정기구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 김태영 국방부 장관, 현인택 통일부 장관,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정정길 대통령실장, 김성환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 이동관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권태신 국무총리실장 등이 회의가 열린 청와대 지하벙커로 왔다.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안보관계장관회의는 3월28일까지 네 차례 열렸다.
루디게 프랑크 빈대 교수는 5월9일 “초계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면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과도 전혀 다른 문제다. 남측 전함을 침몰시키고 46명의 군인을 사망케 한 것은 전쟁행위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러한 미증유의 국가위기상태에 ‘안보관계장관회의’가 과연 적합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고 있다.
명칭도 제각각
외견상 ‘안보관계’라는 용어가 있으므로 초계함 침몰과 회의의 명칭이 조응하는 것으로 비치기는 한다. 그러나 사실은 명칭에서부터 이상한 데가 있다. 일부 언론은 ‘긴급 안보관계 장관회의’ ‘안보장관회의’ 등 유사명칭을 사용하는데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정작 이 회의를 담당하는 청와대 관계자는 ‘안보관계장관회의’가 아닌 ‘외교안보장관회의’로 부르고 있다. 같은 회의를 두고 언론은 A라고 명명하고 주최 측은 B라고 명명하는 건 일반 사회에서도 보기 힘든 일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이 회의 명칭 등에 대한 성문(成文)적 근거가 정부 내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제처의 정부 훈령, 예규, 고시, 규정 등을 살펴봤지만 ‘안보관계장관회의’나 ‘외교안보장관회의’는 찾을 수 없었다. 적(籍)도 없고 언론과 정부가 명시적으로 약속한 바도 없으니 각자의 관습대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안보관계장관회의를 담당하는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이 회의는 정부 규정에도 없는 임시회의체임이 틀림없었다. 따라서 명칭도, 참석대상도, 기능도 정해진 게 없다.
▼ 안보관계장관회의라고 있잖아요.
“외교안보장관회의요?”
▼ 천안함 사건 발생 때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를 청와대에서는 외교안보장관회의라고 합니까?
“네.”
▼ 그런데 왜 언론은 안보관계장관회의라고 쓰는 거죠?
“과거 참여정부 때 비슷한 회의가 있었는데 그때 안보관계장관회의라고 불렀던 것 같아요. 언론이 그때의 용어를 계속 쓰는 게 아닌가 생각돼요.” 청와대 다른 관계자는 언론보도와 마찬가지로 ‘안보관계장관회의’라고 하기도 한다.
▼ 참석 대상에 총리가 포함이 됩니까?
“아 그거는요. 이 회의체는 대통령께서 소집하실 때 특정한 규정으로 해서 누가 픽스되어 있다기보다는 그때그때 필요하신 분들을 소집하시거든요. 총리께서 추가가 되실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 그러면 이 회의와 관련된 규정은 있습니까?
“아니요. 이건 규정으로 하는 건 아니고요. 유연하게 운영하게 되어 있다고요.”
▼ 대통령 훈령이나….
“그건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요.”
▼ 안보관계장관회의는 규정이 없다는 거죠?
“그렇죠.”
▼ 그러나 회의를 하려면 무슨 근거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
“대통령께서 지시하시는 게 근거죠.”
정운찬 총리의 회의 불참
그런데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는 2009년 ‘바람직한 국가위기 관리체계’ 문건에서 “한국의 위기관리체계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NSC는 ‘국가안전보장회의법’이라는 법적 근거를 가지며 전체회의에 대통령, 국무총리, 통일부 장관, 외교통상부 장관, 국방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등이 참석한다.
노무현 정권은 NSC를 중시했고 관계기관장관회의도 좀 더 제도화하려고 노력했다. 미국 대통령도 부통령, 국무장관, 국방장관, CIA 국장, 합참의장이 참석하는 NSC에 자문해 외교군사안보 중요 현안을 처리하도록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다. NSC가 만사형통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적어도 대통령이 예측가능하고, 일관적이고, 체계적이고, 효율적이고, 국가의 격에 맞는 제도에 의해 국가방위에 나서야 국민이 덜 불안해 한다는 의미다.
이런 정황에 비쳐봤을 때 이 대통령이 참석자, 운영방식, 기능, 관계부처와의 연계성이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는 비제도권 임시회의체인 안보관계장관회의로 초계함 침몰에 대응해왔다는 점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미증유의 국가위기상태에 안보관계장관회의가 과연 적합했던 것일까’라는 의문은 ‘적합하지 않았다’는 답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안보관계장관회의라는 임의기구는 대통령 측근들의 참여와 대통령의 판단의 폭은 넓혀주었을지 몰라도 국방, 통일, 외교, 국정원, 기무사 같은 부처들과 체계적으로 연결되지 못해 천안함 사태 초기대응의 실패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현 정부는 NSC 사무처를 폐지한 후 이를 대체할 만한 위기관리정보의 실시간 보고체계를 충분히 구축해두지 않은 상태였다.
천안함 침몰 하루 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번 사고가 북한에 의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연합뉴스 3월27일자 보도)는 성급한 판단을 흘려 혼란을 가중시켰다. 정부 고위층이 발생 초기 이 사태를 ‘정치적’으로 접근하려 했다는 의심이 나온다. 4월2일엔 김태영 국방장관이 북한 어뢰 공격설에 무게를 두는 국회답변을 하자 청와대 측이 메모를 전달해 급제동을 거는 등 지속적으로 삐걱대는 모습을 연출했다.
“천안함 사태 초기대응에서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컨트롤타워가 없는 듯이 보인 결과 정부 스스로 신뢰를 상실했다. 상황발생 시간부터 혼선을 보이더니 국방부와 청와대의 설명이 약간씩 다르고 국방부의 사태설명에서도 계속 혼선이 이어져 신뢰상실의 큰 원인을 제공했다. 국가안보와 관련된 정보공개 수준을 확정하지 못한 채 정부가 진상을 감추고 있다는 인상을 줬다.”(이상현 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 2010년 4월26일 발표 논문)
또한 내각을 통할하는 정운찬 국무총리가 전쟁이 날지도 모르는 사태발발 초기에 중요회의에 빠진 것은, “총리는 원래 안보관계장관회의 참석대상이 아니다”(총리실 관계자)라는 설명으로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시스템적 결함으로 보인다. NSC 시스템이었다면 국무총리는 무조건 회의에 참석한다.
총리실 설명과는 달리 “총리께서 추가가 되실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라는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총리는 원래부터 참석대상이 아닌 건 아니다. 정 총리는 천안함 침몰 당일인 3월26일 오후 6시30분부터 7시30분까지 기자단 회식에 참석해 약간의 음주를 했고 이후 개인적인 모임을 가진 뒤 9시쯤 공관으로 귀가해 10시쯤 천안함 사고를 보고받았으며 안보관계장관회의가 진행되는 동안엔 총리공관에 머물러 있었다고 한다.(총리실 관계자 설명) 총리실은 정 총리의 오후 7시30분~9시 사이 개인적인 모임의 참석자, 장소에 대한 정보공개는 거부했고 총리의 공관출입시간 기록은 원래 없다고 했다. 하루 뒤 총리실은 먼저 전화를 걸어와 “장소는 광화문 인근”이라고 했다.
반면 북한의 장거리 로켓발사가 임박했던 2009년 4월4일엔 대통령주재 안보관계장관회의에 한승수 당시 총리가 참석한 것으로, ‘연합뉴스’는 회의사진과 함께 보도하고 있다. 총리실의 설명과 연합뉴스의 보도가 맞다면, 초계함 사태는 로켓발사 징후보다 훨씬 더 위중한 상황임에도 오히려 총리가 회의에 초대받지 못한 것이 되며 안보관계장관회의가 자의성, 오류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다시 입증된다.
국가제도의 사밀화(私密化) 경향?
현 정부 들어 임시회의체를 통한 국가위기 대응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대통령은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살 때도 긴급관계장관회의로 대응한 바 있다. 이러한 관계장관회의에 대한 선호가 ‘외교안보태세의 이완’이나 ‘국가제도의 사밀화(私密化)’ 경향에서 나온 것이라면 국민으로서는 이 이상 더 불안한 일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