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호

천안함 끌어올린 대우조선해양 ‘37일의 手記’

우리의 군함과 장병들을 바닷속에 둘 수 없었다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0-06-03 15: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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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군 요청 받은 함영태 고문이 건의
    • 그리스 체류 남상태 사장 ‘즉시 투입’ 결정
    • “대한민국 방위산업업체의 임무였다”
    • 700억원 날릴 위험 감수…초대형 크레인 출항
    • 35명 직원의 28일간 고난의 선상 생활
    • “완벽한 인양…고인들에게 작은 위로 되기를”
    천안함 끌어올린 대우조선해양 ‘37일의 手記’

    4월24일 대우조선해양의 해상크레인 ‘대우3600호’가 백령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천안함의 함수를 인양해 바지선 위에 올려놓고 있다.

    천안함 함수 인양작업에 참여한 대우조선해양 임직원들의 생생한 육성 증언을 담은 이 회사 문건(A4 6장 분량)을 토대로 이들의 37일간 행적을 소개한다. 내용 전개상 추가적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기자가 당사자들과 관계기관을 상대로 취재, 인터뷰했다.

    지난 3월26일 늦은 밤 함영태 대우조선해양 상임고문은 경기 용인시 수지의 자택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다. KBS에서 긴급 뉴스가 흘러나왔다.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이 백령도 인근 서해상에서 침몰 중입니다.”

    함 고문은 ‘나라에 큰 재난이 닥쳤구나, 이 사건은 분명 조선회사인 우리 회사와도 연관이 될 것이다’라는 점을 직감했다고 한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는 고민하다 남상태 사장에게 전화로 보고했다. 조선업체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노련한 남 사장이 상황을 잘 파악할 것으로 봤다. 함 고문은 남 사장에게 ‘현장지원 검토’를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남 사장은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함 고문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직능담당특보를 역임했고 이 후보가 당선된 뒤로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외교안보국방 실무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러한 경력으로 민간회사의 임원임에도 그는 군사안보사건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향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준비태세를 경영진과 공유하게 됐다고 한다.



    예상대로 해군은 대우조선해양에 도움을 요청해왔다. 해군 준장인 군수참모부장이 함 고문에게 전화를 걸어와 침몰한 천안함을 인양해야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타진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자체 보유 중인 해상크레인을 사고해역에 투입해 두 동강 난 천안함의 함수 부분 인양작업을 주도적으로 맡아달라는 요청이었다. 두 사람은 예전부터 잘 알던 사이라고 한다.

    정부에 등록된 장비 중 최신식

    천안함 끌어올린 대우조선해양 ‘37일의 手記’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그러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군이 국내의 여러 조선회사 중 대우조선해양을 지목한 데에는 개인적 인연보다는 전략적 판단이 더 크게 작용했다. 천안함 함미 인양작업은 삼호IND가 맡았는데 함미의 선체 무게는 480t 정도였다. 그러나 함수는 선체 무게가 720t에 달하고 배 안에 물이 차 있었다. 더욱이 함수는 해저 25m에 넘어진 상태로 있었다. 보통의 크레인으로는 인양이 쉽지 않았다.

    대우조선해양이 자체개발한 3600t 해상크레인인 ‘대우3600호’는 이러한 작업이 가능한 국내 소수의 민간 장비 중에서도 최신식 장비로 지식경제부에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부처에 등록된 민간업체 인양장비들의 제원과 특성을 검토해본 결과 대우조선해양의 해상크레인이 성공확률이 가장 높아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우3600호를 빼내 군 작전에 투입하면 선박 납기지연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그 피해액은 7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700억원가량의 손해가 날 것으로 예상”(연합뉴스 4월30일자 보도)

    “약 700억원에 이르는 매출손실을 감수하고”(뉴시스 5월3일자 보도)

    “해상크레인이 생산 작업에서 빠질 경우 동급의 하루 임대료만 1억원이 넘고 한 달가량 빠질 경우 약 700억원에 달하는 생산차질이 예상됐다”(아시아경제 4월29일자 보도)

    대우조선해양으로선 수백억원의 손실 가능성을 감수해야 하는 경제적인 문제 이외 또 다른 고민도 있었다. 천안함 침몰 해역은 기상상태가 좋지 않고 파도가 거친 날이 잦은 곳. 해군을 도우러 갔던 민간선박인 금양호도 침몰해 선원 전원이 사망했다. 천안함 함수 인양에 수십 일이 걸리고 작업도 늘 해오던 선박 건조에 비하면 어렵고 위험한 편이다. 인명 사고 가능성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국민에게 최선 다하자”

    천안함 끌어올린 대우조선해양 ‘37일의 手記’

    함영태 대우조선해양 상임고문.

    또한 배를 바로 세워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만에 하나 폭발이나 기름 등 유해물질이 바다로 유출되는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선의(善意)로 시작한 일로 인해 난처한 입장에 처할 수도 있다. 법적으로도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해군으로부터 요청을 받는 순간,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진은 이러한 여러 ‘경우의 수’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만약 이 회사가 이로 인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차일피일 결정을 못하는 모습이었다면 누구도 이를 비난하지는 않았겠지만 감동은 반감됐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회사는 사고 발생 직후 이미 자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예견하고 있었고 해군에게서 요청을 받자 즉시 대우3600호의 투입을 결정하여 침몰해역으로 출항시켰다.

    그 구체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살펴보면, 3월26일 사고 당일 남상태 사장은 정부로부터 지원 요청이 들어올 것임을 직감했다. 28일 일요일 남 사장은 초대형유조선 수주 계약을 위해 그리스로 출국했다. 사고당일 ‘현장지원’ 의사를 사장에게 피력한 함영태 고문은 29일 월요일 출근해 오전 9시30분 생산본부장인 조국희 전무에게 “세계적인 조선소인 우리 회사가 국내 최대 해상크레인을 투입하여 실종자 가족과 국민에게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건 어떠한가”라고 제안한다. 그러자 조 전무는 “막대한 생산차질이 발생하는 건 각오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후 거제 옥포조선소 현장의 실무자들 사이에선 지원가능 여부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대우3600호는 2조원에 달하는 ‘파즈플로(Pazflor)’를 비롯해 반(半)잠수식 시추선, 원유운반선 등 초대형 선박 건조에 이미 투입되어 3000t이 넘는 메가 블록의 운반에 이용되고 있었다. “한 달 생산차질이 1000억원에 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그렇다고 국가적 사안을 거절할 수도 없지 않느냐는”는 반론이 맞섰다.

    이 회사 경영진의 예상대로 29일 오후 6시41분 해군참모총장은 천안함 인양작업과 관련한 공문을 이 회사에 발송했다. 20분 뒤 해군 군수참모부장, 국방부 관계자, 지식경제부 조선과장이 차례로 이 회사에 크레인 투입을 요청했다. 그러나 3시간여 뒤인 오후 10시10분 크레인을 당장 투입하는 건 보류하자는 해군참모총장의 의견이 접수되었다. 사전 수중작업과 기술적 협의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해군 측은 크레인 투입에 대해 실비보상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 사장은 그리스에서 보고를 받았다. 그는 즉시 결단을 내리고 대우3600호의 투입 등 적극적인 지원을 지시했다. 상황의 긴급성을 감안, 계약 체결식에만 참석한 뒤 다른 일정은 단축하고 31일 오후 귀국했다. 이후 이 회사는 모든 논란을 접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천안함 구난 작업 지원 계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해양장비 운용을 맡은 선거그룹은 음식, 식수, 작업복 등 필요한 보급물자를 점검하고 출항 태세를 점검했다. 동시에 선박 생산을 맡은 생산그룹은 타사로부터 크레인을 임차하여 생산차질을 최소화하는 데에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천안함 기름 유출을 막아라”

    남 사장은 ‘즉시 투입’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임직원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당장 눈앞의 어려움보다 엄연한 대한민국 기업으로서, 천안함 같은 군함을 제작하는 방위산업체로서 그 책임과 의무가 먼저였다.” 함영태 고문은 “대통령이 헬기로 침몰현장에 가서 구조작업을 독려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우리의 군함과 해군 장병들을 깊고 어두운 바닷속에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우리 회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므로 주저 없이 그 일을 맡은 것”이라고 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이 회사 선거그룹 서용완 부장을 포함한 35명의 직원은 대우3600호, 터그보트(Tug boat·크레인 이동에 사용) 3척, 작업지원선 1척으로 구성된 선단을 이끌고 4월4일 오후 6시 옥포조선소에서 백령도를 향해 출발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므로 대우3600호 선단은 옥포만을 뒤로하고 평소 운항 속도의 두 배인 6노트(시속 11km)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항진해 만 3일 만인 4월7일 백령도 침몰해역에 도착했다. 이날 이들을 맞이한 것은 악천후와 거친 파도였다.

    직원들은 앵커(Anchor)를 점검하는 등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심야에도 근무는 이어졌다. 직원들은 2~3개조를 편성, 체인 연결 상태를 살피고 각종 기계장치와 발전기 등이 정상가동할 수 있도록 점검했다. 그러나 평소와 다른 작업환경이 역시 문제였다. 원래 대우3600호는 파도가 거의 일지 않는 만(灣)에서 작업하도록 설계된 크레인. 높은 파도에 그대로 노출되는 외해(外海)에서의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특히 백령도 인근 해역은 조류가 빠르기로 유명한 곳이다.

    악천후가 거듭되자 사고해역의 소형 크레인과 바지선은 인근 대청도로 자주 대피했다. 그러나 대우3600호는 바다 밑의 천안함 함수와 이미 체인으로 연결된 상태였으므로 그 위치를 유지해야 했다. 35명의 직원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이 거대한 크레인 안에서 작업이 끝나는 수십일 동안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작업의 강도와 선상 생활이 힘들었음은 물론이다. 미리 준비해온 돼지고기를 가끔 구워 먹는 정도가 위안거리였다.

    천안함 끌어올린 대우조선해양 ‘37일의 手記’

    (왼쪽) 해상크레인 ‘대우3600호’. 길이 110m, 폭 46m, 무게 1만2500t으로, 최대 3600t까지 들 수 있다.(오른쪽) 하늘에서 내려다본 경남 거제도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해군은 선체에 쇠사슬을 연결하는 등 사전 준비작업을 꾸준히 진행했다. 함미 부분에 비해 함수 부분은 상황이 더 나빴는데 그 이유는 함수가 오른쪽으로 90。기울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또한 함수는 배 안에 가득 찬 해수로 인해 그 무게가 2000t 정도로 불어나 있었다. 이 같은 육중한 무게에다 서해 특유의 거센 조류로 인해 함수에 연결됐던 쇠사슬이 끊어지기도 했다. 결국 옥포를 나선 지 18일 만인 4월22일 간신히 4개의 체인을 모두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그 다음의 난관은 기울어진 선체를 바로잡는 일이었다. 엄청난 무게의 함수를 안정적으로 회전시키는 건 상당한 고난도의 작업. 특히 크레인이 육상의 고정된 상태가 아닌, 파도에 의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상태이므로 자칫 크레인이 전복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이 대목에서 인양기술력이 발휘되었다고 한다. 직원들은 턴 오버(Turn-Over)라는 기술을 이용했는데 이는 조선소에서 블록을 위아래로 180。 회전시킬 때 사용된다. 천안함 함수 인양에 적용된 원리는 선체에 연결된 4개의 체인을 한쪽은 당겨주는 동시에 다른 한쪽은 풀어주면서 선체를 서서히 회전시키는 것이다.

    단순한 원리지만 조선소에서 하던 작업과는 환경 자체가 달랐다. 먼저 블록과는 달리 함수에는 체인을 연결할 고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무리하게 작업할 경우 함수에 들어 있을 수십t의 연료와 탄약이 바다로 누출되거나 선체가 찢어지는 2차 사고가 우려됐다. 이에 직원들은 바지선 아래에 부착된 18개의 밸러스트 물탱크의 물(1만5000t)을 조정해 균형을 잡아나갔다. 23일 함수는 해저에서 바로 섰고 이어 무사히 위치고정을 마쳤다. 24일 오전 대우3600호는 본격적으로 인양을 시작해 마침내 천안함 함수는 그 통한의 기억을 바다 속에 둔 채 수많은 언론의 카메라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함수 인양은 작업시작 4시간20분 만인 낮 12시20분쯤 완료됐다.

    이후 대우3600호는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로 이동해 함수의 육상 거치작업을 지원했다. 28일 이 작업을 최종 마무리하고 직원들은 5월2일 옥포로 복귀했다. 직원들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바다 위의 어렵고 위험스러운 작업환경 속에서도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이 임무를 완수하고 28일 만에 돌아온 것이다.

    네티즌들의 쏟아지는 격려

    함영태 고문은 “어떠한 위험도 나라를 위한 우리의 노력을 꺾지 못했다”고 했다. 조국희 전무는 “악조건을 이겨낸 완벽한 인양으로 최정예 기술력을 입증했다”고 평가하면서 “기회가 된다면 우리가 천안함을 재건해 보이고 싶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재향군인회 등 거제지역 보훈단체들은 다음날 크레인 위에서 밤잠을 설친 직원들을 위한 환영회를 열어주었다. 보훈단체 대표단 강현명 대표는 “여러분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이에 인양작업을 지휘한 선거그룹 서용완 부장은 “고인(故人)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대우3600호가 바다에서 천안함을 번쩍 들어올리는 장면은 국민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여기에 대우조선해양의 자기희생이 있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이 회사의 홈페이지에는 격려의 글이 쇄도했다.(연합뉴스 4월30일 보도)

    “손실을 감수하고 구조에 참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단한 결정을 했다”(작성자 ‘진발’)

    “기업은 이윤을 위한 집단이지만 국민을 위해 협조한 모습에 고개 숙인다”(작성자 ‘감동받은 시민’)

    “대우조선이 끌어올린 게 천안함뿐이겠는가. 돈보다 더 큰 가치를 끌어올렸다”(작성자 ‘아~바다’)

    네티즌들이 앞 다퉈 대기업을 칭찬하는 건 모처럼 만의 일이다. 대우조선해양의 거대한 크레인은 국난(國難)의 한가운데에서 우리 사회가 이를 능히 극복해낼 만한 강인함과 윤리정신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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