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호

지방선거 보도 실종! 민주주의 위기 부른다

  • 김정기│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jkkim@hanyang.ac.kr│

    입력2010-06-03 11:5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지방선거 보도 실종! 민주주의 위기 부른다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5월2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도로에 6·2 동시 지방선거 안내문을 부착하고 있다.

    다시 선거철이다. 선거는 한국사회를 이끌어가는 최고의 정치리더십을 결정하는 과정으로 승패의 불확실성이 가득 찬 긴박한 드라마다. 합종과 연횡, 이합과 집산, 당선과 낙선의 극적인 요소들을 동반함으로써 사람을 흥분시키는 파노라마이기도 하다. 당연히 뜨거운 관심과 치열한 논쟁이 있어야 한다. 언론도 당락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정치를 식민지화한다는 비판이 있을 정도로 커다란 역할을 맡아왔다.

    그러나 이번 6·2 전국동시 지방선거는 판이 제대로 벌어지지 않고 있다. 5일장 분위기만큼도 출렁이지 않는 듯하다. 시골에서 장을 앞두면 팔고 살 것을 작정하고 만날 사람들을 기대하며 장날을 기다린다. 이번 선거는 덤덤하다. 일부 광역단체장 후보를 제외하고는 어떤 후보자들이 출마하는지, 무엇을 하려고 출마하는지 잘 모를 지경이다. 이러다간 선출된 뒤에 범죄자로 전락하는 민선단체장들을 보며 다시 또 절망감과 지방자치 무용론에 시달리기 십상일 것 같다. 현 4기 기초지자체장(시장, 군수, 구청장) 230명 중 48%가 비리나 위법으로 기소되었다는 통계는 지방자치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최악(最惡)을 피하여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것이 선거’라는 냉소처럼 최근 수년간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50% 안팎에서 정체되어 있다(2002년 48.8%, 2006년 51.6%). 풀뿌리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대의정치 제도로 기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게 한다. 교육감만 뽑은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15~20%에 그쳤다. 대선과 함께 실시되었을 땐 정당공천이 아닌데도 특정 정당을 연상시키는 기호의 교육감 후보자가 모두 선출되는 기이한 경험도 있었다.

    천안함 사건으로 국민 관심 멀어졌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덟 번 기표를 해야 한다는 점을 아는 유권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당선자들은 국가예산의 40%가 넘는 막대한 돈의 집행권, 인허가권, 인사권을 행사한다. 누가 되느냐에 따라 지방의 운영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사실 교육감의 권한도 어마어마하다. 교육정책, 교원 인사권, 교육예산 편성과 집행, 특수 목적고 설립과 폐지, 학원의 심야학습권 제한과 감독권 등 학생, 학부모, 가정의 일상적 삶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주는 사안들을 관장한다.



    미증유의 천안함 침몰 사건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신문과 방송은 시민 없는 선거가 되지 않도록 선거 보도의 양과 질을 강화해야 한다. 정치권이 당리당략으로 공천한 후보자에게 한 표 던지는 것이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정당이 정책에 기반을 두는 합리적인 정치집단이 아니기에 더욱 그러하다. 민의를 대변하기 어려운 정당의 구조적 취약성으로 인해 정당공천을 통해선 후보자에 대해 충분한 평가가 내려지기 어렵다. 정치 분야는 지속적으로 신뢰도가 가장 낮은 부문이다. 역대 선거 판에서 지키지도 못할 사기 공약이 흘러넘쳤다.

    언론은 후보자들의 공약을 꼼꼼히 검증해보는 취재보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1997년 영국 총선에서 블레어 후보가, 2003년 일본 지방선거에서 마쓰자와 후보가 시도했던 매니페스토 운동은 되새겨볼 만하다. 언론은 전문가들과 공동으로 주요 입후보자의 선거 공약에 대해 목표, 우선순위, 추진일정, 자원조달 방법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선거 전은 물론 선거 후에도 평가를 받도록 함으로써 책임 정치가 구현되는 풍토를 만들어가야 한다.

    필자는 언론에 대해 지지율과 당선 예측에 집중함으로써 점쟁이 수준에 머무르는 관행에서 탈피할 것을 요청한다. 또한 선거판의 사건이나 행사를 단순히 전달해주는 기능에 머무는 하나마나한 보도에서 탈피할 것을 요청한다. 또한 언론은 후보자 진영을 대신해 후보자의 입장과 전략을 알려주는 발표저널리즘의 관행도 바꾸어야 한다.

    점쟁이 보도, 발표 보도, 후보자 마크 보도

    뉴스의 취재원인 후보자의 관점이 아니라 뉴스의 소비자인 유권자의 관점에서 선거뉴스를 제작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유권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조사하여 보도에 반영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하의상달 보도는 출입처 중심, 또는 유력 후보자 마크 중심의 전통적인 취재보도 시스템(institution-bases coverage)에 변화를 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미국에서도 1988년 대통령선거 투표율이 50%를 맴돌자 민주주의에 대해 우려가 팽배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언론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캔자스주 위치토시에서 발간되는 ‘위치토 이글(The Wichita Eagle)’의 편집국장 메리트(Merritt)는 1990년 주지사선거 당시 선거보도기획(Your Vote Count)을 통해 유권자들로 하여금 12개 이슈를 선택하게 한 후 이 이슈에 대한 후보자들의 토론과 논의를 보도했다. 선거의 의제가 정당이나 후보자에 의해 선정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에 의해 선정되도록 한 것이다. 언론은 유권자들이 원하는 이슈를 집중보도함으로써 후보자의 역량 검증과 유권자들의 선거 참여를 높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문과 방송 등 이종매체 간 협력보도도 필요하다. 각각의 강점을 살려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후보자의 TV토론에선 생생한 정보가 전달될 수 있고, 이 TV토론의 패널로 참여하는 신문기자의 심층 해설과 분석 기사에선 이중적 검증작업이 이뤄질 수 있다. 유권자는 이를 통해 입체적으로 후보자 관련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선거공약의 다툼과 시민의 참여를 통해 민주주의는 반성하고 발전한다. 지방선거는 지역의 경제, 교육, 문화, 복지, 공동체적 통합과 같은 지역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중요한 의사결정행위다. 중앙집권적 행정체제에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특유의 역사성, 다양성, 특수성을 배려하고 정체감, 친밀감, 연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언론은 자유롭고 과학적인 선거보도로 공론장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민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지방자치 리더십을 창출할 수 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