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기술장비업체인 주성엔지니어링 황철주 사장은 직원들을 ‘선수’라고 부른다.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보기술장비 업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선수’라는 뜻으로 이렇게 부른다.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있는 주성엔지니어링 본사 건물 벽면에는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다. “처음엔 1등 기술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그보다 1등 인재가 중요하고 인재의 마음을 얻는 건 더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회사는 IMF금융위기 당시 혹독한 위기를 겪었지만 지금은 세계적 일류기업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호칭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쇠다. 서양 사람들은 연설을 ‘Ladies and Gentlemen!’ 으로 시작하는데, 일단 이렇게 불러놓으면 청중이 신사숙녀처럼 행동하고 처신한다. 청소년기에 있는 아이들은 별명 부르기를 좋아한다. 이를 통해 자기들만의 친밀성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연예인들은 호감을 주는 ‘예명’으로 활동한다. 본명과 예명을 비교해 보면 예명의 위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다.
나는 3번 아이언 대신 엘로드 유틸리티 4번을 쓰고 있다. 디자인도 야무지고 사용하기에 편하다. 180야드 정도 거리는 주로 이 채를 쓴다. 이 채의 이름이 ‘똘똘이’다. 라운드 전에 캐디에게 이 채의 이름을 먼저 알려준다. “이 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채인데, 이름은 똘똘이입니다. 절대 고구마라고 부르면 안 돼요. 이 채가 말을 알아듣는다니까요.” 이렇게 얘기하면 캐디도 재미있다고 웃는다. ‘똘똘이는 내가 사랑하는 채다.’ ‘똘똘이도 나를 사랑한다.’ ‘똘똘이는 절대 배신 때리지 않는다.’ ‘똘똘이는 결정적인 순간에 더욱 똘똘해진다.’ 나는 똘똘이를 사용할 때마다 이렇게 염력을 불어넣는다.
‘아자’ ‘아싸’ ‘나이스’
지난 주말 레이크사이드CC에서 운동을 하면서 이 똘똘이 덕을 톡톡히 봤다. 아직 잔디가 가라앉아 있는 상태인데, 우드 3번 대신 이 똘똘이를 가지고 부드럽게 스윙했더니 거리와 방향이 모두 만족스러웠다. 180야드 파3홀에서는 똘똘이로 공을 깃대에 붙여 버디를 잡았다. 모두 어떤 채냐면서 똘똘이를 만져본다. 이때 C변호사가 엄청난 소리를 하고 말았다.
“야, 내 고구마는 잘 안 맞는데 어째서 당신 고구마는 이렇게 잘 맞는 거야?”
“고구마라고 부르지 마. 얘가 알아듣는다고.”
“고구마를 고구마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불러?”
“얘 이름이 똘똘이라니까.”
“똘똘이 좋아하네.”
이날 스코어가 좋지 않았던 C변호사가 이처럼 심통을 부리고 나니 다음 홀부터 똘똘이가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훅이 걸리더니 공이 연못으로 빠지고 말았다. 게다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뒤땅(클럽 헤드가 공보다 지면을 먼저 가격하는 현상)까지 나왔다.
“야, 똘똘아 정신 차려. 이거 왜 이러는 거야?”
내가 이렇게 애를 태우고 있는데 C변호사가 한 마디 더 보탠다.
“그놈 이름 고구마 맞구먼, 내가 법원에 가서 확실히 개명해줄게.”
결국 이날 내 스코어는 후반에 무너지고 말았다. 똘똘이가 진짜 우리의 대화를 알아들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