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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천안함, 그후 ②

천안함 끌어올린 대우조선해양 ‘37일의 手記’

우리의 군함과 장병들을 바닷속에 둘 수 없었다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천안함 끌어올린 대우조선해양 ‘37일의 手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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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게 최선 다하자”

천안함 끌어올린 대우조선해양 ‘37일의 手記’

함영태 대우조선해양 상임고문.

또한 배를 바로 세워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만에 하나 폭발이나 기름 등 유해물질이 바다로 유출되는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선의(善意)로 시작한 일로 인해 난처한 입장에 처할 수도 있다. 법적으로도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해군으로부터 요청을 받는 순간,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진은 이러한 여러 ‘경우의 수’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만약 이 회사가 이로 인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차일피일 결정을 못하는 모습이었다면 누구도 이를 비난하지는 않았겠지만 감동은 반감됐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회사는 사고 발생 직후 이미 자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예견하고 있었고 해군에게서 요청을 받자 즉시 대우3600호의 투입을 결정하여 침몰해역으로 출항시켰다.

그 구체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살펴보면, 3월26일 사고 당일 남상태 사장은 정부로부터 지원 요청이 들어올 것임을 직감했다. 28일 일요일 남 사장은 초대형유조선 수주 계약을 위해 그리스로 출국했다. 사고당일 ‘현장지원’ 의사를 사장에게 피력한 함영태 고문은 29일 월요일 출근해 오전 9시30분 생산본부장인 조국희 전무에게 “세계적인 조선소인 우리 회사가 국내 최대 해상크레인을 투입하여 실종자 가족과 국민에게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건 어떠한가”라고 제안한다. 그러자 조 전무는 “막대한 생산차질이 발생하는 건 각오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후 거제 옥포조선소 현장의 실무자들 사이에선 지원가능 여부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대우3600호는 2조원에 달하는 ‘파즈플로(Pazflor)’를 비롯해 반(半)잠수식 시추선, 원유운반선 등 초대형 선박 건조에 이미 투입되어 3000t이 넘는 메가 블록의 운반에 이용되고 있었다. “한 달 생산차질이 1000억원에 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그렇다고 국가적 사안을 거절할 수도 없지 않느냐는”는 반론이 맞섰다.



이 회사 경영진의 예상대로 29일 오후 6시41분 해군참모총장은 천안함 인양작업과 관련한 공문을 이 회사에 발송했다. 20분 뒤 해군 군수참모부장, 국방부 관계자, 지식경제부 조선과장이 차례로 이 회사에 크레인 투입을 요청했다. 그러나 3시간여 뒤인 오후 10시10분 크레인을 당장 투입하는 건 보류하자는 해군참모총장의 의견이 접수되었다. 사전 수중작업과 기술적 협의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해군 측은 크레인 투입에 대해 실비보상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 사장은 그리스에서 보고를 받았다. 그는 즉시 결단을 내리고 대우3600호의 투입 등 적극적인 지원을 지시했다. 상황의 긴급성을 감안, 계약 체결식에만 참석한 뒤 다른 일정은 단축하고 31일 오후 귀국했다. 이후 이 회사는 모든 논란을 접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천안함 구난 작업 지원 계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해양장비 운용을 맡은 선거그룹은 음식, 식수, 작업복 등 필요한 보급물자를 점검하고 출항 태세를 점검했다. 동시에 선박 생산을 맡은 생산그룹은 타사로부터 크레인을 임차하여 생산차질을 최소화하는 데에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천안함 기름 유출을 막아라”

남 사장은 ‘즉시 투입’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임직원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당장 눈앞의 어려움보다 엄연한 대한민국 기업으로서, 천안함 같은 군함을 제작하는 방위산업체로서 그 책임과 의무가 먼저였다.” 함영태 고문은 “대통령이 헬기로 침몰현장에 가서 구조작업을 독려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우리의 군함과 해군 장병들을 깊고 어두운 바닷속에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우리 회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므로 주저 없이 그 일을 맡은 것”이라고 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이 회사 선거그룹 서용완 부장을 포함한 35명의 직원은 대우3600호, 터그보트(Tug boat·크레인 이동에 사용) 3척, 작업지원선 1척으로 구성된 선단을 이끌고 4월4일 오후 6시 옥포조선소에서 백령도를 향해 출발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므로 대우3600호 선단은 옥포만을 뒤로하고 평소 운항 속도의 두 배인 6노트(시속 11km)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항진해 만 3일 만인 4월7일 백령도 침몰해역에 도착했다. 이날 이들을 맞이한 것은 악천후와 거친 파도였다.

직원들은 앵커(Anchor)를 점검하는 등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심야에도 근무는 이어졌다. 직원들은 2~3개조를 편성, 체인 연결 상태를 살피고 각종 기계장치와 발전기 등이 정상가동할 수 있도록 점검했다. 그러나 평소와 다른 작업환경이 역시 문제였다. 원래 대우3600호는 파도가 거의 일지 않는 만(灣)에서 작업하도록 설계된 크레인. 높은 파도에 그대로 노출되는 외해(外海)에서의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특히 백령도 인근 해역은 조류가 빠르기로 유명한 곳이다.

악천후가 거듭되자 사고해역의 소형 크레인과 바지선은 인근 대청도로 자주 대피했다. 그러나 대우3600호는 바다 밑의 천안함 함수와 이미 체인으로 연결된 상태였으므로 그 위치를 유지해야 했다. 35명의 직원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이 거대한 크레인 안에서 작업이 끝나는 수십일 동안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작업의 강도와 선상 생활이 힘들었음은 물론이다. 미리 준비해온 돼지고기를 가끔 구워 먹는 정도가 위안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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