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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대 출신 주성하 기자의 북한 잠망경 ⑪

평양공화국의 이중생활

전기·수도 끊긴 고층아파트 생활 고역,외제화장품에 몸매바지 즐기며 연인에게 꽃 선사하기도

  •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평양공화국의 이중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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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겨울부터 난방 끊겨

그러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된 이후 본격화돼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경제난은 평양 사람들의 만족스러웠던 생활을 송두리째 흔들기 시작했다.

지방에서는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배급을 줬다 말았다 하는 일이 자주 반복됐다. 그런 까닭에 지방 사람들은 배급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어느 정도 단련이 됐다. 하지만 평양에 찾아온 고난의 행군은 너무나도 급작스러웠다.

나는 1990년대에 평양에 있으면서 그 현장을 두 눈으로 보고 온몸으로 체험했다. 고난의 행군이라면 대개 식량난을 떠올리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난방이 멈춰선 것이 가장 먼저 피부에 와 닿았다. 평양의 아파트들은 평양화력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한 뒤 나오는 온수에 의존해 겨울 난방을 해결한다.

1993년까지만 해도 집 안에서 속옷만 입고도 뜨뜻하게 지냈지만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그해 겨울부터 난방공급이 끊어지는 곳이 갑자기 늘어났다. 평양의 중심부인 중구역이나 보통강구역, 모란봉구역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난방이 끊겼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방 안에 이불을 깔아놓았다. 입김이 나오는 방 안에서 밤에는 양말에 버선을 겹쳐 신고 솜옷에 모자까지 쓰고 잤다. 이런 난방 문제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평양 사람들은 요즘도 겨울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한다. 비닐통에 더운물을 채운 뒤 이불 안에 넣고 자는 집이 많다고 들었다.

다음으로 정전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버스가 달리다 멈추고, 아파트에선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짐을 들고 고층 아파트를 계단으로 오르내렸다. 전기가 돌지 않으니 수돗물 공급이 중단되는 곳도 늘었다. 물이 나오질 않으니 양동이를 들고 내려와 공동수도에서 물을 길어 갔다. 만경대구역 광복거리나 낙랑구역 통일거리 같은 곳에는 겉보기에 멋있는 고층아파트가 많다. 그러나 전기와 물이 공급되지 않으니 이런 아파트 생활은 그야말로 고문이다.

고난의 행군 당시 우리 담임교수도 광복거리의 한 아파트 15층에 살았는데, 그 생활은 형용하기 힘든 것이었다. 담임교수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양동이를 들고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공동수도에서도 물이 항상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루 몇 차례 정해진 시간에 나오기 때문이다. 출근시간 전인 새벽에는 공동수도 앞에 긴 줄이 서 있게 마련이었다. 겨울엔 추위에 떨면서 30~40분 기다렸다 물을 받아 조심스럽게 계단을 오른다. 앞서 올라간 사람들이 흘린 물로 계단은 얼음판이 되기 십상이다. 또 공동수도에서조차 물이 나오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큰 용기에 물을 저장해놓는다. 급하면 옆집에서 물을 꾸어다가 다음에 갚기도 한다.

이렇게 힘들게 올려온 물은 절약, 또 절약해 써야 한다. 밥하고 마시는 데는 어쩔 수 없이 쓰지만, 세수할 양은 못 된다. 담임교수도 한 컵 분량의 물로 세수했다. 양치하고 남은 물로 수건을 살짝 적신 뒤 그것으로 얼굴을 닦는 ‘고양이 세수’를 한다고 했다. 목욕 한 번 하려면 큰맘을 먹어야 한다.

가장 곤란한 점은 화장실 문제였다. 광복거리 화장실은 동양식 수세식 변기를 사용하는데, 큰일을 보고 나면 그걸 처리할 물이 부족하다. 물론 아주 부지런하다거나 젊은 사람이라면 화장실용 물까지 아침에 길어갈 수 있지만, 병약자는 그러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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