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

박지성/ 대한민국<br>1981년 2월25일생<br>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br> A매치 85경기 11골
최고를 꿈꿨지만 세상은 녹록하지 않았다. 모두에게 외면받던 그저 그런 선수이던 박지성은 어떻게 대한민국 축구의 아이콘이 됐을까. 재능으로 똘똘 뭉친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 사이에서 인정받은 이유는 뭘까.
그는 최근 출간한 자전적 에세이 ‘더 큰 나를 위해 나를 버리다’에서 “천재라 불리는 프로 선수들 사이에서 전혀 다른 방법으로 나만의 돌파구를 찾았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따라 하기보다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유일함’에서 해답을 얻었다. 남보다 한 발 더 뛰며, 동료를 위해 빈 공간을 찾아내고, 동료를 위해 헌신적인 플레이를 펼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시련은 장마처럼 주기적으로 그를 괴롭혔다. 네덜란드에서는 홈팬들이 야유를 쏟아냈고, 잉글랜드 땅을 밟았을 때는 티셔츠를 팔러왔다고 수군거렸다. 오른쪽 무릎 인대를 다쳐 수술을 받고 270일간 재활치료를 받기도 했다.
부상을 딛고 다시 올라섰지만 2008년 5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엔트리에서 빠졌다.박지성은 그날 결심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할 때까지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달려왔다면 이제부터는 살아남기 위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겠다”고. 그는 저서에서 “나는 축구인생 후반 20분을 뛰고 있다”며 “남은 25분에 승부수를 던지겠다”고 밝혔다.
주장으로 나서는 남아공월드컵에서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하는 것이 첫 승부수다. 그는 ‘균열 없는 하나의 팀 정신’을 강조하며 “우리 스스로 100%가 된다면 메시도, 브라질도 두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4 미로슬라프 클로제
- 독일 -

미로슬라프 클로제 / 독일<br> 1978년 6월9일생<br>바이에른 뮌헨 소속<br>A매치 94경기 48골
그는 폴란드 오펠른 출신이다. 독일 혈통의 아버지는 옥세르(프랑스)에서 축구선수를 했고, 어머니는 폴란드 핸드볼 국가대표로 82회 A매치에 출전한 엘리트 선수였다. 부모의 타고난 운동 신경을 물려받았지만 이주민 신분인 그가 독일 축구의 중심에 자리 잡기까지는 역경의 연속이었다.
그는 프랑스에서 살다가 1987년 독일의 쿠젤로 이주한 후 축구를 시작했다. SG블라우바흐·디델코프·FC 08 홈부르크 등 7부리그팀을 전전해야 했다. 한국으로 따지면 나름대로 실력을 갖춘 조기축구회 수준의 팀들이었다.
스무 살이 넘어서도 변변치 않았던 그에게 구세주가 나타난다.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카이저슬라우테른 2군 코치였다. 그는 이 코치의 도움으로 1999년 카이저슬라우테른 아마추어팀에 몸을 맡긴다. 그리고 1군 주전 공격수들의 부상을 틈타 2000-01시즌과 2001-02시즌 62경기에 출전해 25골을 뽑아내며 2002년 한일월드컵 독일대표로 깜짝 발탁된다. 그는 이 대회에서 5골을 뽑으며 득점 2위를 차지했고, 2004년 베르더 브레멘으로 이적한 후 첫 시즌에서 15골을 뽑으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리고 자국에서 열린 2006년 월드컵에서 또다시 5골을 뽑아냈고, 이번에는 득점 1위에 오른다. 그리고 독일 최고의 팀인 바이에른 뮌헨에 둥지를 튼다.
세 번째 맞이한 월드컵에서도 5골을 더 뽑는다면 역대 월드컵 최다골을 기록 중인 호나우두(브라질)와 동률을 이루게 된다. 지역 7부리그를 전전하던 미운 오리가 남아공에서 또다시 백조가 되어 날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