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호

고전 읽기, 가장 인간답고 나답게 사는 길

  • 고승철│저널리스트 koyou33@empas.com│

    입력2010-06-04 12: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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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읽기, 가장 인간답고 나답게 사는 길

    ‘인문 古典 강의’<br>강유원 지음/ 라티오/ 573쪽/ 2만7000원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낸 분이 교도소에 갇혔다. 그는 무료함을 달래려 지인에게 읽을거리를 넣어달라 부탁했다. 지인은 시오노 나나미 여사가 쓴 ‘로마인 이야기’ 여러 권을 보냈다.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를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다룬 이 책은 정통파 역사학자에게서는 외면당했지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베스트셀러였다. 군인 출신인 그 전임 대통령은 이 책을 퇴짜 놓았다고 한다. “골치 아픈 이런 역사책을 읽기 싫다”는 반응이었다는 것이다.

    사람 품격을 읽는 책으로 짐작할 수 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한국의 지도층이 애독서라고 밝히는 책들을 보면 ‘국격(國格)’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 품위 있는 고전을 보기 어렵다. 난마처럼 얽힌 현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고도의 통찰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 원천인 고전을 읽지 않는다니…. 이게 한국의 수준인가.

    한국의 정치, 경제 권력층은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지나치게 쓴다. 온갖 행사장이나 경조사에 얼굴을 내민다. 조찬, 오찬, 만찬 약속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조용한 공간에서는 사색보다는 골프 퍼팅 연습에 열을 올린다. 주말이면 골프장에 오가느라 한나절을 보낸다. 이런 곳에서 인맥을 넓히는 것이 유능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뇌 대신 더듬이가 발달한 이런 권력자에게 고전을 읽으라고 권유하면 “이 바쁜 세상에 케케묵은 그 따위 책이 무슨 소용인가”라며 시큰둥하리라. 이래서는 한국은 선진국이 되기 어렵고 한국기업은 진정한 글로벌 강자가 되지 못한다.

    2007년 여름, 어느 고전 읽기 강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매주 1회, 10주 동안 진행됐는데 교재는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였다. 20여 명의 수강자는 대학생, 대학원생, 직장인, 주부 등 다양했다. 상·하권으로 나뉜 두꺼운 책을 꼼꼼히 읽으며 내용을 분석하는 방식이었다. ‘재야 철학자’인 강사는 열강했고 인류가 쌓은 지혜에 목말라 하는 수강생들은 진지하게 경청했다. 학점 따기 위주의 여느 대학 강의 분위기와 달랐다. 과연 소문대로 명강의였다. 핵심을 요약하라는 숙제가 주어져 끙끙거리며 써냈더니 빨간 볼펜으로 성의 있게 첨삭한 종이가 돌아왔다. 그때 쓴 숙제의 일부를 보자.

    투키디데스는 진실된 사료를 모으기 위해 노력했다. 예를 들어 연설의 경우 가능한 한 실제로 발언한 연설대로 정리하려 애썼다. 직접 듣거나 목격한 사건이 아니면 객관적 정황을 추정하여 사실에 가깝게 기술했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차후에도 반복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겐 투키디데스의 전쟁사는 유익할 것이다. 투키디데스는 한때 갈채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멸의 재산으로 길이 남을 책을 저술했다.

    지혜의 빛을 뿜는 고전 12권

    그 후 그 강사의 다른 강좌를 들을 시간 여유가 없어 안타까워했다. 그러다 최근 서점 신간 코너에서 그의 새 저서를 발견했다. ‘인문 古典 강의’가 그것이다. 부제로 붙은 ‘오래된 지식, 새로운 지혜’도 눈길을 끈다. 저자 강유원 박사가 2009년 서울시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진행한 강의를 바탕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2월부터 11월까지 40주 동안 매주 2시간씩 강의가 열렸다고 한다. 강좌에서 다룬 고전은 12권. 한결같이 세계사에서 찬란한 빛을 낸 명저들이다.

    책 이름을 나열해보자. ①일리아스(호메로스) ②안티고네(소포클레스) ③니코마코스 윤리학(아리스토텔레스) ④신곡(단테) ⑤군주론(마키아벨리) ⑥방법서설(데카르트) ⑦통치론(로크) ⑧법의 정신(몽테스키외) ⑨직업으로서의 정치(베버) ⑩파놉티콘(벤담) ⑪거대한 전환(폴라니) ⑫논어(공자)

    교양인이라면 이들 고전에 대해 귀동냥으로 들었으리라. ‘필독 고전 100선’이니 ‘명사들이 추천하는 고전 100선’ 따위의 책이 난무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한두 권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읽어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읽었다 해도 요약본 정도가 아니겠는가. 한국의 교육 제도나 가정 분위기상 진득하게 앉아 고전을 읽는 환경이 아닌 탓이다. 저자는 강의 첫 시간에 고전을 읽는 방법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했다.

    고전은 통합적 사유를 요구하는 텍스트입니다. 우리가 고전을 읽을 때에는 우선 말의 뜻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독서가 완결될 수 없습니다. 텍스트가 만들어진 시대의 맥락도 함께 살펴보아야 하고 더 나아가 그 텍스트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도 궁리해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텍스트 자체, 텍스트의 맥락 즉 콘텍스트, 그리고 그것들을 읽고 있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시대, 이렇게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일리아스’는 서양 문학의 출발점인 작품이다. 내용은 2800여 년 전의 지중해 부근에서 벌어진 트로이아 전쟁. 그러니 당시 상황과 매우 다른 시대에 살아가는 오늘날 한국인은 텍스트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산문이 아니고 서사시 형식이어서 이런 글 읽기가 익숙하지도 않다. 그리스어 원전을 한글로 옮긴 천병희 교수의 번역본은 우리말 운율을 살린 점이 돋보인다. 저자 강유원 박사는 “서사시는 본래 사람들 앞에서 읊조리던 것”이라며 “우리도 소리를 내서 읽어보면 그 흥취를 좀 더 느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일리아스’의 주인공 아킬레우스는 다양한 변화를 겪은 후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법칙 아래 겸허해진다. 진정한 영웅만이 이렇게 할 수 있다. 저자의 명쾌한 해설을 읽으면 ‘일리아스’뿐만 아니라 호메로스의 또 다른 대표작인 ‘오뒷세이아’도 읽고 싶어지리라. 프랑스의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는 “모든 서양문학은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의 재구성에 불과하다”고 갈파한 바 있다.

    ‘신곡’을 큰 소리로 읊어보라

    단테의 ‘신곡’이 불후의 명작이라는 사실은 잘 안다. 하지만 원전 또는 완역본을 읽은 이는 흔치 않다. 완독하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고전 읽기에 맛을 들인 독자라면 ‘신곡’ 완독에 도전할 것을 저자는 강력히 권유한다. 문학 역사상 최고봉에 오른 몇 작품 가운데 하나란다. ‘신곡’이 서사시인 만큼 이왕 읽는다면 낭송하는 게 좋다고 한다.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도 “훌륭한 시는 작은 소리나 속으로 읽으면 곤란한데 단테의 신곡은 그래서 큰 소리로 낭송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탈리아어 원문으로 읽으려면 주세페 반델리가 주석을 단 표준판본이 좋다고 한다. 한국인 가운데 이탈리아어 ‘신곡’까지 찾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의문스럽지만…. 롱펠로 시인이 정리한 영역본을 읊는 재미도 대단하단다. ‘신곡’은 지옥편·연옥편·천국편으로 구성돼 서양문화의 뿌리인 기독교 세계를 설명한다. 성경을 옆에 두고 함께 읽으면 더욱 좋겠다. 일본에서는 50년 이상 ‘신곡’을 연구한 이마미치 도모노부 전 도쿄대 교수가 있고 1000쪽이 넘는 ‘단테 백과사전’이 출판됐다. 서양 고전을 수용하는 차원이 한국보다 높음을 알 수 있다.

    정치학의 고전인 ‘군주론’은 군주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무력과 설득력을 꼽았다. 무력과 설득력을 합치면 헤게모니가 된다. 흔히 무력은 사자로, 설득력은 여우로 비유한다. 따라서 군주는 사자처럼 용맹스러우면서도 여우처럼 영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저자 마키아벨리(1469~1527)가 살았던 시대는 중세 말기~근대 초기였다. 피렌체에서 태어난 그는 동향(同鄕) 선배 단테(1265~1321)와는 크게 달라진 환경에 놓였다. 자유도시국가 피렌체보다는 ‘통일국가 이탈리아’를 갈망했다. 통일을 이루려면 추진력과 지혜를 겸비한 군주가 필요했다. 그 이상적 인물을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제시한 것이다.

    논어, “예(禮)로 돌아가라”

    마키아벨리 사후 60년쯤 지나 프랑스에서 태어난 데카르트(1596~1650)는 ‘30년 전쟁’(1618~1648)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했다. 이 전쟁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종교 다툼으로 시작했으나 차츰 싸움을 위한 싸움으로 변질됐다. 유럽대륙에는 살육의 광풍이 불었다. 데카르트는 불안과 불확실성이 만연한 전쟁 시기에 가치 있는 삶을 찾으려 사색에 빠졌다. 전통 규범과 질서가 무너졌으니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종교보다는 인간 이성(理性)을 중시해야 했다. ‘방법서설’이라는 명저를 내놓은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 외쳤고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개인이 가족, 국가, 공동체와의 연결고리를 끊고 ‘홀로 서기’하는 개인중심주의는 데카르트에게서 비롯됐다. 데카르트는 철저하게 개인의 주체성을 내세웠다.

    폴라니(1886~1964)는 명저 ‘거대한 전환’에서 자기조정 시장이 붕괴하면서 문제가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근대 세계는 ‘데카르트적 자아’라는 형이상학적인 토대부터 잘못되는 바람에 뒤틀렸다. 독자적 개인을 강조했는데 그렇게 하다가는 체제가 무너질 듯하니 개인을 집단 속에 무자비하게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개인을 맷돌로 갈아버리는 파시스트 체제로 귀결됐다고 폴라니는 개탄했다.

    동양 고전의 대표 선수 격인 ‘논어’에서 공자는 인(仁), 의(義), 예(禮)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은 ‘의’를 기준으로 삼아 자기를 끊임없이 이겨내고 ‘예’로 돌아가는 활동이다. ‘예’로 나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학(學)과 습(習)이다. 공부가 필수 요소라는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 강의에서 “삶이 지탱되는 한 우리는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 되고 무엇보다 고전 읽기에 열중해야 한다”면서 “그것이 가장 인간답고, 나답게 공들여 사는 길”이라 역설했다.

    이 책에서 다룬 고전 가운데 아직 읽지 않은 것들을 일단 갖고 싶어졌다. 여러 번역본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좋을지 살피려 서점에 들러 주말 한나절을 꼬박 보낼 작정이다. 이 책에서 언급한 숱한 참고 서적도 돈을 아끼지 않고 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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