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호

명예훼손에 대한 오해와 진실

  • 입력2011-01-21 1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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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운천 전 농림수산부 장관의 MBC ‘PD수첩’제작진에 대한 고소, KBS의 방송인 김미화씨에 대한 고소, 국가정보원의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고소, 가수 타블로의 타진요 운영진에 대한 고소, 고 노무현 대통령 유족과 노무현재단의 조현오 경찰청장에 대한 고소.

    지난해 언론에서 주요 뉴스로 다루었던 명예훼손과 관련된 사건들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대형 명예훼손 사건은 전체 명예훼손 사건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대법원에 따르면 일반 명예훼손 사건의 경우 2007년 1853건, 2008년 2265건, 2009년 2710건 등 3년 동안 46.2%나 늘었다. 인터넷을 통한 명예훼손도 2007년 380건, 2008년 422건, 지난해 467건으로 3년간 22.8% 증가했다. 이처럼 명예훼손 사건은 온라인,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명예훼손 사건이 급증한 이유로 국민의 높아진 명예감과 사생활에 대한 보호의식,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언론매체들의 과열된 보도경쟁을 들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각종 인터넷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과도한 댓글 열풍도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겠다.

    명예훼손 사건은 널리 알려진 유명인이나 유명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 국민, 특히 아직 어린 10대 청소년도 언제든지 휘말려들어 형사사건화할 수 있는 상황이다. 반면 대다수 국민은 명예훼손죄가 얼마나 무겁게 처벌되는 무서운 범죄인지에 대해 너무 모르는 듯하다.



    1.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이 된다?

    명예훼손죄가 되기 위해서는 “사실을 말하거나 허위의 사실을 공연히 말하여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해야 한다.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형법 제307조).

    그렇다면 명예란 무엇일까. 사회적으로 이름이 있는 사람만 명예를 가지는 것일까. 명예훼손죄에서 명예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존엄과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게 모든 사람에게 인정되는 가치라고 하겠다. 유명한 사람의 경우에는 ‘공인(公人)이론’이 적용되어 오히려 명예훼손에 의해 보호되는 범위가 줄어들 수 있다.

    보통 허위의 사실을 말하는 경우에만 명예훼손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정확한 사실, 즉 진실을 말하더라도 당사자가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 내용이라면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 이 점은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갑순이가 회사 동료인 병돌이의 간통으로 처벌받은 전력을 알게 되어 회사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고 다닌 경우, 병돌이의 간통처벌 전과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병돌이 입장에서는 그러한 사실이 알려지기 원치 않았을 것이므로 갑순이는 병돌이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처벌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병돌이가 간통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면 갑순이는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되어 더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에선 다른 사람의 사생활이나 전력에 대해 ‘뒷담화’ 하는 것을 관용하는 분위기가 있다. 자신도 모르는 새 형사처벌 위험이 닥쳐올 수 있음을 주의해야겠다.

    2.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한 말도 명예훼손이 된다?

    불특정한 사람들이나 다수의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서 명예훼손행위를 했을 때에만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 이것을 공연성 요건이라고 한다. 따라서 사실이든 허위이든 그 말을 어떤 사람이 혼잣말로 중얼거려서는 백번을 하더라도 명예훼손이 될 수 없다. 또 상대방과 나, 둘만 있는 상태에서 상대방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몇 마디했다고 해도 그것은 명예훼손이 아니다(심한 욕을 했다면 폭행죄가 될 수는 있다). 그 상대방의 감정이 상했겠지만 제3자가 없었으므로 그 상대방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달라질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3. 명예훼손에도 등급이 있다?

    말로만 명예훼손한 경우보다 책이나 신문과 같은 출판물로 명예를 훼손했다면 그 피해는 말로 한 경우보다 훨씬 오래가고 더 심각할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을 한 경우에는 50%가량 가중처벌하고 있다(형법 제309조).

    또한 우리나라는 인터넷 강국답게 인터넷을 이용해 명예를 훼손한 경우 역시 일반적인 명예훼손보다 가중처벌하고 있다. 인터넷의 강한 전파력과 파급력을 고려한 것이다(정보통신망법 제70조).

    4. 입을 다물라는 말인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후진사회에서는 명예훼손이 문제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서기 전인 1995년 이전에는 사회적으로 명예훼손이 별로 문제되지 않았다.

    그런데 선진 민주사회일수록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두텁게 보호된다. 이러한 가치와 명예훼손죄는 서로 대립하는 면이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명예훼손행위가 있었더라도 그것이 사실이고 공익을 위해 한 것이라면 위법성이 없다고 보아 처벌을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형법 제310조).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절충이라고 볼 수 있다.

    간혹 언론의 보도내용이 허위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위에서 말한 형법 제310조에 의해 처벌을 면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지만, 우리나라 법원은 기자가 허위사실을 사실로 믿을 만한 정당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제310조를 적용하고 있다. MBC‘PD수첩’제작진의 명예훼손 사건에 법원이 제작진의 무죄를 선고한 것도 이러한 법리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 원칙은 기자뿐 아니라 일반인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재건축, 재개발 조합장이나 회사 사장의 비리를 폭로하는 것은 공익을 위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 다만 정당한 사정에 대한 입증책임은 폭로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5. 단체에도 명예가 있다?

    명예는 비단 개인에게만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도 국가정보원, KBS, 노무현재단, 현대그룹이 자신들의 명예가 훼손되었다며 고소했는데 이때 국가정보원장, KBS 사장 등 그 단체의 대표자의 명예가 아니라 그 단체 자체의 명예가 훼손되었음을 주장했다. 이것은 법이 ‘단체의 명예’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때 법인은 물론 법적으로 법인이 아니더라도 종친회, 교회, 학회, 친목회와 같이 일정한 규칙이 있고 대표자가 있는 다수의 모임이면 명예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A가 “서울 놈들은 다 사기꾼이다”라고 말한 경우와 “전교조 교사들은 다 공산당이다”라고 말한 경우를 생각해보자. ‘서울 놈들’이 서울에 사는 사람인지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인지 불분명한데 어떤 의미이더라도 서울사람의 조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조직원을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명예훼손죄가 될 수 없다. 반면 전교조는 그 조직이 존재하고 그 구성원도 특정할 수 있기 때문에 전교조의 명예와 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 된다.

    최근 국가정보원의 고소사건에서 법원은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광범위한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명예훼손 피해자의 지위를 쉽게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6. 모욕죄와 다른가?

    명예훼손죄와 유사한 죄로 모욕죄라는 것이 있다. 모욕죄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하면 성립하는 죄다. 모욕죄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므로 명예훼손보다는 가벼운 죄지만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엄연한 범죄다.

    명예훼손은 사실이든 허위사실이든 사실을 적시해야 하지만 모욕은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주면 된다. 사실을 말하지 않고 ‘나쁜 놈’‘배신자’라고만 말하면 명예훼손이 될 수 없고 모욕죄만 가능하다.

    모욕죄도 공연성을 요건으로 하므로 단둘만 있는 상태에서 욕하는 것은 모욕죄가 될 수 없고 제3자가 들을 수 있는 상태에서 모욕한 경우만 해당된다. 다만 외국의 원수나 외교사절을 모욕한 경우에는 공연성이 없어도 처벌된다. 흔히 우리나라의 국가원수를 모욕하면 국가원수 모독죄(모욕죄)로 처벌되는 줄 아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런 처벌규정이 없다.

    7. 위자료는 얼마나 되나?

    명예훼손 관련 판결에서 법원이 인정한 위자료 액수는 1990년대 초반까지는 1000만원 이하였다. 1996년 이후로는 1억원 이상을 물어주도록 한 판결도 나오기 시작했다. 회사의 명예를 훼손한 사건의 경우 보통 명예훼손으로 인한 위자료와 함께 그로 인한 매출손실에 따른 손해배상도 함께 청구하기 때문에 순수한 위자료보다 훨씬 높은 배상판결이 나올 수 있다.

    명예훼손에 대한 오해와 진실
    2007년 9월 문화일보가 신정아씨의 누드사진을 게재한 데 대해 신정아씨가 문화일보를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1심 법원은 문화일보가 위자료로 1억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이 판결이 확정된다면 순수한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금인 위자료로서 사상 최고의 액수로 기록될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인이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받는다면 얼마나 받을지 궁금하실 것이다. 명예훼손으로 인한 위자료 액수는 명확한 산정기준이 없기 때문에 명예훼손의 방법, 정도, 가해자의 재력, 파급효과 등을 고려해 산정되는데, 수백만 원에서 1000만~2000만원 사이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충분한 금액이 아닐 것인데 점차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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