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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빈 라덴 20년 추적기

아프간 용병과 순항미사일, 회유와 협박 총동원된 희대의 ‘인간 사냥’

  • 홍순명│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전문위원 sergeyevich@gmail.com

미국의 빈 라덴 20년 추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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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빈 라덴 20년 추적기
교과서적으로 말하자면 해외에 숨어 있는 테러범을 체포하기 위해 미국이 제일 먼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해당 국가의 사법기관에 협조를 요청해 체포하고 신병을 인도받아 재판에 회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두에서 본 사례들은 왜 미국이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없었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중동국가 대부분은 미국의 대테러 작전에 협조하지 않았고, 어떻게든 곤란한 부탁에서 빠져나갈 궁리에 골몰했다. 심지어 해당 국가 정부기관들은 테러조직에 대해 온정적이거나 협조관계를 맺고 있었다.

‘워싱턴포스트’ 편집장을 지낸 스티브 콜의 퓰리처상 수상작 ‘유령 전쟁(Ghost Wars)’에 따르면 여기에는 국내법적인 한계도 작용했다. 앞서 살펴본 1996년 수단 사건에서, 당초 미국은 수단으로부터 빈 라덴의 신병을 직접 인수해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다. 백악관이 법무부에 투옥을 위한 법적 근거를 문의했지만,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현재 확보된 증거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당시 연방검사들은 비밀리에 빈 라덴의 테러리즘 후원 혐의에 대한 대배심 조사를 고려하고 있었으나 미국 국내법은 검사가 조사 중인 내용을 다른 정부기관에 알리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백악관은 관련 내용에 접근할 수 없었고, 미국 관료들은 ‘법률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의 통상적인 노력’으로는 빈 라덴 투옥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른다. 따라서 이를 다른 중동 국가가 대신해주기를 기대하고 사우디와 접촉했던 것. 이 시기 빈 라덴은 사우디에서의 반정부 선동으로 추방당한 신세였으므로 사우디야말로 그를 투옥할 명분이 가장 높은 나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우디조차 몸을 사렸다.

이후 미국은 비밀리에 이집트와 요르단에도 빈 라덴을 체포해 구금해달라고 요청하지만 이들 역시 거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수단이 빈 라덴의 신병을 인도하겠다고 나선 저의조차 의심스러웠다. 다른 중동 국가들이 그를 구금할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수단 정부가 미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안전한 도박’을 벌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었다.

결국 빈 라덴은 수단 정부가 내준 전세기를 타고 세 명의 부인을 포함한 일가족, 가재도구, 재산, 추종자들을 태워 아프가니스탄으로 안전하게 이주하는 데 성공한다. 짐이 많았던 나머지 전세기는 두 차례나 왕복해야 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998년, 빈 라덴은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와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에 위치한 미국대사관을 동시 폭파해 ‘대미(對美) 성전’의 포문을 열었고, 2000년에는 예멘에서 미 해군 구축함 콜 호에 자살폭탄보트 공격을, 2001년에는 9·11테러를 감행하기에 이른다.



1996년에 미국이 협조를 요청했던 중동 국가 가운데 한 나라라도 그를 투옥하고 관련자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다면 오늘날의 알카에다는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빈 라덴을 직접 사살한 미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공개비판을 받고 있지만, 1996년의 미국은 사법질서를 준수하려다가 빈 라덴을 놓친 셈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가혹했다.

“당신을 죽이러 오고 있다”

1998년 대사관 동시폭파 사건 이후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 정부의 주요 표적으로 떠올랐다. 이때의 워싱턴은 더 이상 다른 중동국가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없었으므로, 그를 추적하기 위해 상상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워싱턴포스트’의 탐사보도기자 밥 우드워드는 저서 ‘부시는 전쟁 중(Bush at War)’을 통해 당시의 주요 시도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40명 정도의 미군 특수부대를 헬리콥터에 실어 1500㎞를 날아간 뒤 야간기습을 감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민주당 행정부는 1980년 카터 대통령 시절 처참한 실패로 끝났던 주 이란 미국대사관 인질 구출작전이나 1993년 소말리아에서의 블랙호크 헬기 격추 사건에 대한 악몽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합동참모본부 역시 이렇듯 까다로운 작전에 난색을 표하기는 마찬가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백악관은 특수부대 1개 소대와 순항미사일을 갖춘 해군 함정을 상시 대기시켜놓고 있었지만, 이들을 활용하려면 최소한 6~10시간 전에는 빈 라덴의 다음 소재지를 파악해야만 했다.

이를 위해 당시 CIA가 기대를 걸고 있던 카드는 ‘GE/SENIORS’라는 암호명을 가진 아프간 용병 30여 명이었다. 1인당 월 1만달러의 엄청난 보수를 받고 빈 라덴 추적 작업에 임했던 이들은 상당한 능력을 발휘했지만 ‘작전 가능한 정보’, 다시 말해 특수부대가 표적을 향해 날아가는 시간 동안 그가 한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확실한 정보를 제공하지는 못했다. SENIORS 팀의 리더는 CIA 측에 빈 라덴 일행을 사살하고 바로 현장에서 이탈하는 매복작전을 제안하기도 했으나 CIA는 이를 승인할 수 없었다. 1970년대 백악관과 법무부가 CIA에 내린 암살금지령 때문이었다. 허락된 것은 그를 생포해 사법당국에 넘기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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