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것은 그뿐이 아니다. 황우여 새 원내대표는 법인세 소득세 등의 추가 감세(減稅) 정책을 철회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내년부터 법인세와 소득세의 최고세율을 2%포인트씩 내리기로 했는데, 그걸 못하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황 원내대표는 “감세 철회로 생긴 예산과 작년에 쓰고 남은 세계잉여금 등으로 10조원의 재원을 마련해 학생 등록금과 육아비, 소시민 주택문제 지원 등에 쓰겠다”고 말했다. 감세를 통한 성장은 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이다. 이 대통령은 줄곧 ‘복지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비난해왔다. 그 점에 비추어본다면 황 원내대표의 발언은 노골적인 ‘반(反)MB정책 선언’인 셈이다. 선거의 힘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있는 일이겠는가.
감세론은 세금을 깎아주면 그만큼 소비가 늘어나 경기부양에 도움이 되고,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경기를 부양하는 데 있어 감세의 효과가 크지 않은데다 여유 있는 사람들의 세금을 감면해주는 것으로 분배에도 도움이 안 돼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신동아’ 2010년 12월호 인터뷰). 부자들은 감세로 소득이 늘어난다고 해도 그에 비례해 소비하지는 않는다. 급히 더 소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은 소득이 증가하는 만큼 소비한다. 소득이 적어 하고 싶은 소비를 억제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득세 감면 이하의 저소득층에는 감세 혜택이 돌아갈 리 없고, 중산층 이하 서민의 경우는 감세로 늘어나는 소득이 적어 소비 증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감세의 경기부양 및 분배효과가 높지 않은 이유다. 기업들의 법인세를 인하하면 국제경쟁력이 높아지고, 이익을 많이 내는 만큼 일자리도 늘어난다고 하지만 이 또한 구체적으로 실증(實證)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지금은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가 아니던가.
이와 달리 빈부의 양극화 현상은 뚜렷하다. 최근 국세청이 발표한 소득통계에 따르면 종합소득세 신고자 중 상위 20% 소득자의 1인당 소득금액은 1999년 5800만원에서 2009년 9000만원으로 10년 새 55%나 늘었다. 반면 하위 20% 소득자의 1인당 소득금액은 같은 기간 306만원에서 199만원으로 54%나 줄었다. 10년간 경제성장의 과실을 누리기는커녕 소득만 크게 줄어든 것이다. 전체 소득금액 중 계층별로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소득의 양극화는 극명하다. 2009년 종합소득세 신고자의 총 소득금액은 90조2000여억원. 이 중 상위 20%가 가져간 소득금액이 64조4000여억원으로 71.4%에 달한다. ‘20대80의 사회’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 새 원내대표의 추가 감세 철회 요구는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정당은 선거를 통해 민심(民心)을 읽고 반응하기 마련이다. 정당정치는 계파 간 힘겨루기나 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 눈치나 보고 충직한 하인노릇이나 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그 동기가 비록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으려는 의원들의 발버둥이라고 할지라도 청와대와 정부는 당의 요구를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한나라당은 내년 선거에서 참패를 면치 못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선거에서 이기든 지든, 그것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다만 그 피해가 중산층 이하 서민에게 직결된다는 점에서 집권여당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분당의 유권자들은 바로 그 점을 경고한 것이다. ‘분당 우파’의 반란이니, 배반이니 하는 것은 우스운 소리다. 오히려 집권 측이 그들의 기대를 배반했고 ‘분당 우파’가 응징한 것이다. 그런 민심에 대고 ‘좌파로부터 나라를 지키자’는 식상한 레코드나 틀어댔는데도 49%의 득표율을 올린 것을 보면 한나라당에는 정말 ‘천당 아래 분당’이었던 듯싶다. 분명한 사실은 이제 천당 아래 분당은 없다는 것이다.
선거는 절묘하다. 낮은 투표율로 인해 대표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하지만 선거를 통한 민심의 집약은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어지러운 판을 정리해낸다. 손학규는 승리하고 유시민은 패했다. 엄기영이 지고 최문순이 이긴 것도 그렇긴 하지만, 이번 재·보선의 절묘함은 손학규와 유시민의 승패를 민심이 정리해준 데 있다. 김해을 선거는 처음부터 승자와 패자가 정해진 선거였다. 이겨도 유시민, 져도 유시민이었다. 김해을 유권자의 총합된 민심은 그 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간발의 차이로 유시민에게 패배를 안겼다. 왜 그랬을까? 영남지역의 뿌리 깊은 친한나라당 정서와 국민참여당 후보의 낮은 경쟁력도 패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결정적인 요인은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내세운다고 해도 유시민은 결코 ‘바보 노무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김해을의 총합된 민심이 간파한 때문이 아니겠는가. 자기희생 없이 자기이익만 고집하는 ‘유시민 정치’에서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한 때문이 아니겠는가.
‘손학규는 날개를 달고 유시민은 추락한 것’이 표면적 현상이라면 그 이면에는 야권 통합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내재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 일반 국민은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따로따로인 필요를 잘 알지 못한다.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정신을 승계한다는 두 당이 합치지 못할 대단한 차이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 김해을의 민주당 지지자들이 국민참여당 후보가 승리할 경우(이는 곧 유시민 대표의 승리다) 야권 통합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생각해 적극적인 지지를 하지 않았을 거라는 정치권 일각의 분석이 틀리지 않다면, 국민참여당은 이미 존재 의미를 찾기 어렵다. 따라서 국민참여당은 조건 없이 민주당과 통합해야 한다. 그럴 경우 유시민 대표는 백의종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가 묵묵히 통합의 대의를 따른다면 언젠가 다시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성찰하고 인내해야 한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또한 시대착오적인 종북론(從北論) 갈등을 털어내고 합당하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른바 ‘빅 텐트론’의 명분하에 민노당과 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합치되 각 당의 지분과 역할을 별도로 인정하면 된다는 통합우선론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통합론자들은 모든 야당이 합쳐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막는 것이 우선적 과제라고 주장한다지만 그것은 대단히 일방적인 요구일 수 있다. 줄잡아 세상의 반은 생각이 다른 법이다.
민주당은 최근 진보성을 강화했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중도 개혁의 성격이 강한 정당이다. 소속의원들의 이념적 스펙트럼도 보수우파에서 진보좌파까지 그 폭이 넓다. 이념정당이라기보다는 대중(국민)정당에 가깝다. 그에 비한다면 민노당은 진보 좌파의 색채가 짙다. 따라서 두 정당의 결합은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내기보다는 그 반대일 위험성이 크다.
이번 재·보선에서 의원배지를 달아 명실상부한 야권의 1인자가 된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그 어떤 가치와 이념이라도 우리가 함께 행복하지 않다면 올바른 선택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치가 우리가 가야 할 길이며 국민이 기준이 되는 정치가 진보의 길이다”라는 말도 했다. 그의 중도적 성향을 보여주는 말이다. 분당의 유권자들이 그의 중도 이미지에 표를 주었다는 분석은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도는 매우 어려운 길이다. 양다리 걸치기도 아니고 적당히 타협하는 것도 아니다.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는 것은 양극단의 주장을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손 대표가 5월 초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과정에서 보인 태도는 어정쩡했다. 그는 선거 전 ‘전면적 검증 없는 한-EU FTA 비준 저지’라는 야권연대 정책합의에 동의했다. 그러나 선거 직후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여·야·정 합의 협상을 일임했다. 그런데 박 원내대표가 정부 여당과 비준안 처리에 합의하면서 일이 꼬였다. 손 대표는 당내 최고위원들의 반대와 야권연대 정책합의 파기라는 비난에 직면하자 비준안 합의처리 불가(不可)로 돌아섰다. 하지만 국회 표결에서 퇴장하는 형식으로 사실상 한나라당의 일방 통과처리를 방관했다. 비준안 처리에 찬성하자니 야권연대 정책합의에 어긋나고, 강력하게 반대하자니 분당에서 그를 지지한 중도 지지층이 등을 돌릴까 우려한 임시방편이라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민주노동당 등과의 선거연대를 고려해야 하지만 중산층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만큼 처리는 한다”는 손 대표의 발언은 정치권의 해석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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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단일정당을 위한 통합우선론이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은 바로 이런 경우 때문이다. 소수정당과의 정책연대도 이처럼 간단치 않은데 집권을 위해 무조건 통합부터 한다면 내부 갈등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당은 집권을 제1의 목표로 삼는다. 그러자면 무엇을 위한 집권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무턱대고 여야 1대1 구도로 가면 승리한다는 셈법으로는 다수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한나라당은 이번 재·보선에서 ‘민심의 쓰나미’에 직면했다. 민주당은 승리했지만 그들이 잘 해서 얻은 결과는 아니다.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선거는 변덕스럽다.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를 쉽사리 허용하지 않는다. 여론조사 따위는 이제 효력을 상실했다. 높은 투표율을 두려워하는 정당은 살아남기 어렵다. 하지만 이겼다고 오만하고 민심 읽기를 소홀히 한다면 오늘의 승자는 곧 내일의 패자가 될 수 있다. 2012년 레이스는 이미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