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호

쇼핑과 인생의 상관관계

  • 유난희│ 쇼핑호스트, 공주영상대학 쇼핑호스트학과 교수

    입력2011-05-19 13: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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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핑과 인생의 상관관계

    국내 최초 쇼핑호스트인 유난희씨는 GS홈쇼핑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 ‘리얼스토리 with 유난희’를 진행하고 있다.

    “매진 임박이 사실이에요? 그리고 매진된 거 그거 진짜 매진 아니죠? 사람들 물건 사게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죠?”

    사람들이 쇼핑호스트인 내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다. 홈쇼핑 방송을 보면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문구가 ‘매진 임박’ ‘다시 오지 않는 기회’ ‘오늘 단 한 번’ ‘이 구성, 이 가격 마지막’이다. 홈쇼핑 방송을 보면서 물건을 사는 사람도, 그냥 구경만 하는 사람도 가장 궁금해한다. 진짜 매진 임박이냐고, 정말 매진되느냐고.

    답을 드리면 사실이다. 모두 다 사실이다. ‘매진 임박’도 사실이고 ‘매진’도 사실이며 ‘다시 오지 않는 기회’도 ‘이 구성, 이 가격 마지막’도 모두 사실이다. 모두 매진돼 30분에 1만개의 물건이 팔리기도 한다. 상상하지 못했던 판매가 이루어지고 매번 매출 신기록이 나온다. 지금 홈쇼핑 방송에서 쇼핑호스트들이 말하는 매진 임박이라는 멘트는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게 아니라 현재 상황을 알려주는 멘트다. 불과 16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희소성에 대한 소비자 욕구 자극

    1995년 8월1일 한국에서 처음 홈쇼핑 텔레비전(HSTV-현 CJ오쇼핑) 방송이 시작되던 날, 나는 그 첫날 방송을 진행했다. 그때 방송에서 소개한 상품은 목재로 조각해 만든 벽걸이 뻐꾸기 시계였다.



    “디자인이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한 마리의 새가 시간 맞춰 아름다운 소리로 시간을 알려줍니다. 집에 뻐꾸기 새 한 마리 들여놓으세요. 후회 안 하실 겁니다.”

    홈쇼핑 방송 초창기인 1995년에는 매진 임박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좋은 물건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가격을 저렴하게 판매해서 집 현관까지 가져다주니 사람들은 당연히 좋아하고 살 거라고 믿었다. 억지스럽고 과장된 멘트보다 상품의 좋은 점을 설명하고 지금 왜 구입해야 하는지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판매는 저조했다. 매진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지금은 1분에 3000만원의 매출도 나오지만 그때는 하루 종일 판매해도 500만원이 될까말까 했다. 홈쇼핑TV를 보는 사람이 없었으니 500만원의 매출도 신기할 뿐이었다.

    케이블TV가 낯설었던 그 시절 물건을 직접 만져보지 않고 TV를 통해 산다는 것 자체가 믿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지던 때였다. TV 화면만 보고 물건을 사라고 하니 제대로 된 바보상자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게다가 물건을 받지도 않았는데 돈부터 입금하란다. 물건을 먼저 받고 돈은 나중에 주는 외상이라는 건 봐왔어도 돈을 먼저 내는 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그러니 TV에 예쁘게 차려입고 나와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몇 개 없는 물건이니 사라고 재촉하는 쇼핑호스트들은 사기꾼처럼 보였을 것이다. 홈쇼핑TV는 돈만 받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거라고들 생각했다.

    홈쇼핑 초창기이던 어느 날 내가 방송에서 판매한 상품을 주문한 어느 시청자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 적이 있다. 나를 알아본 아주머니는 대뜸 어제 TV에서 주문하고 돈 입금했는데 얼굴 본 김에 지금 물건을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정말 배송해주는 거 맞느냐며 내가 어디에 사는 사람인지 인적사항도 적어갔다. 혹시 돈은 받아놓고 물건 안 보내줄까봐….

    지금은 하루 이틀 만에 배송이 이뤄지지만 택배 자체도 생소했던 그 시절엔 상품배송에 보통 1주일이 넘게 걸렸다. 그러니 돈 입금해놓고 얼마나 불안했겠는가. 물건이 집으로 배송되기 전까지 1주일 동안 시청자들은 혹시 돈 떼였을까봐 마음을 졸여야 했다. 소비자의 불안감과 의심 그리고 홈쇼핑에 대한 인식 부재로 점철된 홈쇼핑 방송은 아무리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판매해도 매출은 바닥을 맴돌 뿐이었다.

    그런 홈쇼핑 매출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쇼핑호스트에게 주어졌다. 쇼핑호스트는 어떻게 해서든 판매액을 올려야 했다. 판매액이 저조한 쇼핑호스트는 퇴출되기 때문이다. 퇴출당하지 않으려면 매출을 올릴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당시 공중파 방송국에서 일하던 어느 선배는 TV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나를 보고 참으로 특이한 방송을 한다며 방송계의 외인구단이라고 불렀다. 외인구단 단원으로서 나는 A급 타자가 되기 위해 머리를 써야 했다. 어떻게 해야 상품이 팔릴까? 좋은 상품을 있는 그대로만 보여주고 판매를 독촉하는 것으로는 의심 많은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역부족이었다.

    쇼핑과 인생의 상관관계

    홈쇼핑 채널에서 수입자동차를 판매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홈쇼핑 방송국에 쇼호스트로 뽑힌 우리 1기 쇼호스트들은 홈쇼핑 판매 기술을 미국 QVC 홈쇼핑 쇼호스트에게서 전수받았다. 하지만 국민의 생활패턴과 소비자 행동 양식이 전혀 다른 미국식 홈쇼핑 판매 시스템은 한국 실정에 맞지 않았다. 상품을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보여주고 설명해야 하는지 배우는 데 충분히 효과가 있는 교육이었지만, 매출을 올리기 위한 그들의 판매 방식은 재고의 여지가 있었다. 굳이 비교해서 따지자면 미국인은 이성적으로 쇼핑하는 반면, 정에 약한 한국 사람들은 감성적인 쇼핑을 더 많이 했다. 물론 상품군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홈쇼핑의 주 소비자층인 한국 주부들은 감성적인 소구에 더 마음이 움직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나라 소비자 행동 정서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스태프들과 함께 머리를 쥐어짜며 여러 날 밤새 고민해서 찾아낸 방법은 충동구매를 일으킬 멘트, 일명 전통 판매 기법 중 하나인 ‘시골 장터 약장사 판매 방식’을 응용하는 것이었다. 전지전능한 상품처럼 느껴지게 좋은 점을 강조하고 한번 놓치면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고 살짝 협박(?)했고 가방에 약통이 수두룩하지만 한 개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하는 약장수처럼 몇 개 남지 않았다고 했다. 매진 임박이라고 했다. 목소리 톤도 많이 높였다. 쇼핑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화면에 준비한 상품 개수 숫자를 떨어뜨리면서 보여줬다. 화면에 비친 준비수량 1000이라는 숫자는 빠른 속도로 999, 998, 997…872, 871…530으로 떨어졌다. 롤러코스터보다 더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주문가능수량은 시청자의 심장이 멎을 듯 가슴 졸이게 했다. 사람들은 소량 생산되며 나만 가질 수 있는 희소성이 강한 좋은 상품을 가장 저렴하게 구입하기 위해 손을 떨며 전화기를 들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희소성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와 남은 다 갖는데 나만 갖지 못한다는 심리를 자극한 상품 판매 기법이 적중한 것이다. 매진 임박이라는 멘트를 하면 정말 매진 임박이 됐고 매진이 됐다.

    판매 기류를 탄 홈쇼핑은 1998년 외환위기와 함께 부도난 회사의 한정된 상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면서 급물살을 타고 매출 호조를 보였다. 1995년부터 시작한 홈쇼핑은 3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고공 행진했다. 이후부터 참 다양한 판매 방식이 쏟아져 나왔다. ‘매진 임박’뿐만이 아니라 ‘이 구성, 이 가격 마지막’ ‘3종 세트 구성’ ‘오늘만 이 조건’ ‘추가구성 하나 더’ 등의 문구도 모두 이때 탄생했다. 쇼핑호스트가 혼자 데스크에 앉아 상품을 놓고 뉴스 형식으로 진행하던 화면 구성도 시연 모델과 패션모델이 등장하면서 더 다양해졌다. 지루하게 상품만 쇼핑하는 방송이 아니라, 연예인도 나오고 아름다운 모델이 나와 멋진 몸매를 보여주며 최신 트렌드도 알려주는 생활 정보 및 엔터테인먼트 방송으로 발전해갔다. 백화점보다 저렴한 가격의 상품부터 품질 좋은 중소기업 상품까지 풍성하고 다양하게 구성된 상품과 화려하고 재밌는 볼거리는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홈쇼핑TV는 놀라운 매출 신장을 보이면서 급성장했다.

    쇼핑과 인생의 상관관계

    올해 초 CJ오쇼핑을 통해 아파트 전세 판매가 이뤄졌다. 홈쇼핑에서 파는 상품은 날로 진화하고 있다.

    쇼핑은 젊고 싱싱한 것

    하지만 무엇이든 앞서가고 잘나가면 제재를 받게 마련이다. 매출이 높아진 만큼 소비자의 불만 건수와 시빗거리도 많아졌다. 급기야 모 홈쇼핑의 가짜 보석 판매라는 불미스러운 사건과 과장 멘트 남용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속출하면서 홈쇼핑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송심의위)의 감시와 제재를 받게 됐다. 진짜 ‘매진 임박’이 아니면 매진 임박 멘트를 할 수 없고, ‘이 구성, 이 가격 마지막’이었으면 다시는 그 구성과 그 가격을 방송에서 소개할 수 없게 됐다. 예전에는 분위기 연출을 위해 가상 매진도 시켰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만약 이를 어겨 적발되면 사과방송을 해야 하는 건 물론 방송 자체를 제재당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래야 할 일들이 시행된 것이다.

    하지만 방송심의위의 감시와 제재가 심해져서 정말 효과가 좋은데도 과장, 허위 광고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효과가 좋다는 멘트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래서 쇼핑호스트는 또 다른 차원의 판매 스킬과 판매 전략을 연구하고, 멘트 개발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다.

    하드세일(홈쇼핑 방송에서 구매 촉진을 위해 프로모션과 강한 어법을 이용해 판매하는 방식) 방식이 방송심의위의 심의와 제재를 받기 시작하면서 홈쇼핑 매출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미 홈쇼핑의 편리함과 가격 혜택 그리고 쇼핑의 즐거움을 만끽한 소비자는 쇼핑호스트가 매진 임박이라는 말과 과장된 멘트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현명하게 판단하며, 홈쇼핑 방송과 쇼핑호스트를 믿고 구매를 선택했다.

    쇼핑과 인생의 상관관계
    劉蘭姬

    1965년 강원도 화천 출생

    숙명여대 가정관리학과,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석사

    現 공주영상대학 쇼핑호스트학과 교수

    現 쇼핑호스트, 방송인 前 HSTV(현 CJ오쇼핑), LG홈쇼핑, 우리홈쇼핑, 현대홈쇼핑 쇼호스트

    저서 : ‘명품 골라주는 여자’ ‘아름다운 독종이 프로로 성공한다’ 등

    국내 최초 쇼핑호스트, 국내 최초 억대연봉 쇼핑호스트, 명품 전문 쇼핑호스트


    16년 전 “어떻게 만져보지도 않고 TV에서 물건을 살 수 있느냐”고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홈쇼핑 마니아가 돼 홈쇼핑 방송을 보고 쇼핑하고 정보를 얻으며 홈쇼핑 방송에서 그들의 사는 이야기도 풀어놓는다. 가끔 나는 ‘이 구성, 이 가격 마지막’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이 순간이 남은 생애 중 가장 젊은 마지막 순간임을 강조하며 사람들에게 쇼핑을 통해 현재의 나를 찾고 나를 가꾸며 미래의 나를 준비하도록 권한다. 16년 동안 나의 팬으로서 홈쇼핑TV를 시청해왔다는 어느 주부는 쇼핑호스트인 나와 함께 쇼핑하면서 몸과 마음이 젊어지고 유식해지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쇼핑은 그렇게 젊고 싱싱한 것이다. 홈쇼핑에서 사용하는 쇼핑문구인 ‘이 구성 이 가격 마지막’‘다시 오지 않는 기회’ 그리고 ‘오늘 단 한 번’은 곧 우리의 인생과도 같다.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고, 오늘 단 한 번뿐이기 때문이다.

    쇼핑은 인생이고 인생은 곧 즐거운 쇼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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