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 장자연에게 수표 건넨 기업인 등 20여 명 조사
- “골프장에서 우연히 만났다. 불쌍해서 돈 줬다”고 해명한 사람도
- 대부분은 기업 대표와 임원…“알 만한 사람도 3~4명 있다”
- 수표 너무 많이 나와 100만원권 이상만 수사
- “수사한 것은 사실, 수사기록에 다 들어 있다”(수사팀 관계자)
故 장자연씨의 생전 모습.
장씨가 자살(2009년 3월7일)한 지 넉 달 만인 2009년 7월10일, 사건을 수사한 경기 분당경찰서는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수사대상자 20명 중 장씨 소속사 대표였던 김종승씨와 전 매니저 유장호씨 등 7명을 사법처리하고 13명을 불기소 또는 내사종결한다고 밝혔다.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고, 김종승(폭행)씨와 유장호(명예훼손)씨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무혐의 처분됐다.
그러나 경찰은 이 사건의 핵심인 성접대 의혹은 끝내 확인하지 못했다. 경찰은 “(장씨는) 갑작스러운 경제적 어려움, 우울증 등 복합적 이유로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장씨가 작성한) 문건에 잠자리 강요라고 표현이 됐으나, 목격자도 없고 고인이 살아서 입증하기 전에는 수사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고 밝혔다.
‘신동아’는 오보로 밝혀진 SBS의 보도 직후, 장자연 사건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다시 추적하기 시작했다. 2년 전 이뤄진 경찰조사 내용도 다시 살폈다. 이미 공적인 영역이 돼버린 이 사건과 관련해 새로운 진실이 확인된다면 공익차원에서 충분히 보도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수사를 책임졌던 경찰의 수사과정을 다시금 되짚어보는 것은 여전히 남아 있는 국민적 의혹을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꼭 필요했다. ‘신동아’는 이번 취재과정에서 2009년 당시 경찰조사를 받았던 피의자, 참고인, 당시 경찰 수사팀 관계자들을 접촉하며 당시 수사과정에 접근해갔다. 그리고 약 두 달에 걸친 취재과정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3월 중순, 2009년 경찰 수사 당시 수사대상에 올랐던 몇몇 기업인을 접촉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단서가 확인됐다. 단서를 제공한 사람은 술자리 강요 의혹을 받고 여러 차례 경찰조사를 받았던 기업인 A씨였다. 그는 장씨의 소속사 대표이던 김종승씨와 오랜 친분이 있는 인물로, 고인과 여러 차례 술자리에 동석한 사실이 있어 경찰의 수사대상에 올랐으나 조사결과 특별한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A씨는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자연씨가 자살하기 전까지 누군가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을 받고 있었다는 얘기를 경찰 조사과정에서 알게 됐습니다. 돈을 왜 줬는지 이유는 듣지를 못했고요. 경찰이 장씨와 장씨의 주변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들었습니다. 장씨에게 돈을 준 사람이 누군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방송국 쪽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당시 경찰이 정말 집요하게 수사했기 때문에 아마 이와 관련된 내용을 다 확인했을 겁니다. 경찰 관계자가 내게 ‘고인의 명예를 생각해서 (경찰이)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한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그는 대화 과정에서 장자연씨가 받았다는 돈을 ‘생활비’라고 표현했다.
경찰조사를 받았던 또 다른 기업인 B씨의 증언은 좀 더 구체적이다. 최근 그는 “나도 그런 얘기를 들었다. 장씨와 장씨의 주변 계좌에서 많은 양의 수표가 나와서 경찰이 수표 추적을 했고 수표를 발행하고 장씨에게 줬던 사람을 조사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신동아’는 이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먼저 시계를 2009년으로 돌려보자. 2009년 3월13일, 장씨 자살 6일 만에 장씨가 작성했다는 문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경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의 핵심은 성접대, 술접대 의혹. 당시 경찰은 40여 명의 전담 수사팀을 구성해 국민적 의혹이 일고 있던 이 사건 수사에 총력을 기울였다. 수사본부가 차려진 분당경찰서 소속 수사관 외에도 경기지방경찰청 소속 수사요원들이 대거 파견됐다.
왜 수표를 줬을까
당시 경찰의 수사 대상자는 20명 정도였다. 2009년 4월24일 수사팀은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통화내역 14만여 건, 계좌카드 사용내역 955건, 10개소의 CCTV 등 다양한 자료를 확보하여 수사대상자 20명을 선별하게 되었으며 수사대상자 이외에 총 118명의 참고인 조사를 통해 각종 의혹을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수사대상자 20명에는 장씨의 소속사 대표였던 김종승, 전 매니저 유장호, 소위 ‘장자연 문건’을 보도한 기자 등 장씨 유가족이 고소한 7명과 장씨가 작성한 문건에 실명과 직책이 등장하는 인물 5명, 김종승씨의 다이어리 등을 분석해 장씨와 술자리 등을 한 것으로 특정된 인물 8명이 포함됐다.
수사팀은 수사 초기 장씨와 가족 등 주변인들의 계좌에 대한 추적에 나섰다. 성접대, 술접대, 골프접대 등 기왕에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라면 관련자들 사이에 돈거래가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는 판단에서였다. 수사팀은 장씨가 연예계에 데뷔한 2006년경부터 사망 직전까지 약 3년간의 금융거래 내역을 샅샅이 훑었다. 그러나 경찰이 수사대상에 올려놓은 인물들과 장자연씨 간의 금전거래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중간수사 결과 발표 때 이명균 당시 경기지방경찰청 강력계장(현 삼척경찰서장·총경)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문건에 잠자리 강요라는 표현이 딱 한 번 나온다. 성매매에 관해 확인하지 않을 수 없어 수사대상자와 돈거래가 있었는지 고인의 계좌를 확인했는데 없었다.”
2년 전 수사 당시 장씨와 관련된 돈 문제가 거론된 것은 위의 문답이 유일했다. 경찰이 장씨와 장씨의 가족 등 주변인 계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어떤 것들을 확인했으며, 또 어떤 수사를 진행했는지는 지금까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신동아’가 확인한 결과 당시 경찰은 장씨와 장씨의 가족 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정체불명의 고액권 수표 여러 장을 확인하고 수사를 벌였다. 특히 계좌에서 확인된 수표 중 100만원 이상의 고액권에 대해 집중적인 수사를 전개했다. 발행한 사람과 유통한 사람을 일일이 찾아 유통경위를 확인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한 경찰 관계자는 “10만원권 수표는 너무 많아 수표 발행인과 장씨에게 수표를 준 사람을 일일이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비교적 추적이 쉬운 100만원권 이상의 고액권 수표에 대해서만 수사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10만원권 수표도 여러 장이 한꺼번에 입금된 경우에는 하나로 보고 출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계좌에서 계좌로 직접 송금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수표 형태로 입금돼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불쌍해서 줬다?
당시 경찰이 수표와 관련 조사를 진행한 사람은 20~30명에 달한다. 이들은 경찰이 중간수사 결과 발표에서 밝힌 참고인 118명 중 일부인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관들이 각각 몇 명씩 맡아서 수사를 진행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전체 숫자가 몇 명인지를 정확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수십 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들 대부분은 경찰서가 아닌 자신들이 원하는 장소에서 조사를 받았다. 수사팀은 이 정체불명의 수표들이 장씨가 사망하기 4~5개월 전인 2008년 10~11월까지 장씨와 주변인들의 계좌에 들어오고 나갔음을 확인했다. 당시 이 수표 추적에는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수사관들이 대거 투입됐다.
당시 조사를 받은 사람들 중 상당수는 처음에는 장자연씨에게 수표를 준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고 전해진다. 통화내역 등의 추가 자료가 확인되면 그제야 수표를 건넨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장씨에게 거액의 수표를 줬던 것일까. 혹시 단순한 채무채권 관계는 아니었을까. 당시 참고인 조사를 받은 이들이 내놓은 ‘장씨에게 돈을 준 이유’는 다양했다. “우연히 알게 됐는데 불쌍해서 돈을 줬다”고 진술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마워서 차비 등의 명목으로 돈을 줬다”고 진술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돈을 빌려줬다고 진술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우연히 지인들과 만난 식사자리에서 알게 됐는데, 식사자리를 즐겁게 해준 것에 대해 사례를 한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고 진술한 사람도 있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골프장에서 운동을 하다가 우연히 장씨를 알게 됐고, 생활이 어려워 보여서 그냥 돈을 줬다고 진술한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명단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 참고인 20~30명은 대부분 기업체 대표거나 기업의 임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말해 유명인은 거의 없다. 한 3~4명 정도가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사람이다. 하지만 수표거래 과정에서 범죄혐의가 있다고 볼 수 있는 증거가 전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을 법적인 처벌 대상에 올릴 수가 없었다. 범죄행위가 확인된 경우가 아니고, 사생활에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에 이들의 신원은 알려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들 중 몇몇 사람은 장씨의 소속사 대표였던 김종승씨의 소개로 장씨를 알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장씨의 매니저 소개로 장씨를 만났다고 진술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씨는 당시 경찰 수사과정에서 “내가 장씨에게 소개해준 사람은 여럿 있지만 그들과 장씨 사이에 어떤 돈거래가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경찰 관계자는 “우리도 장씨가 이들로부터 돈을 받은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여러 가능성을 두고 수사를 전개했다. 그러나 당사자가 이미 사망한 상태고, 돈을 준 사람들이 ‘불쌍해서 돈을 줬다’고 진술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수사를 진행시킬 방법이 없었다. 김종승 대표와 수표 주인들 간의 연관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했지만 나온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장씨와 장씨의 주변 계좌에서 나온 수표와 관련된 ‘신동아’의 취재 내용에 대해 당시 수사팀의 핵심관계자는 공식적인 답변과정을 통해 “계좌에서 수표가 나온 것은 사실이다. 수사도 진행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실은 확인해줄 수가 없다. 장씨와 유가족 등 관련자들의 사생활과 관련된 부분이어서 말하기 곤란하다. 수사한 내용은 수사기록에 모두 포함시켰다. 범죄 관련성이 확인된 것이 없기 때문에 수사결과 발표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진실은 하늘만이 알 것이다”라고 말했다.
‘신동아’는 이 문제에 대한 장씨 가족의 입장을 듣기 위해 유가족 측과 연락을 시도했지만 유가족은 “전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신동아’는 유가족에게 취재 내용을 문자메시지로 남겼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장씨의 소속사 대표였던 김종승씨가 수표 관련자들 중 일부를 장씨에게 소개해 줬다는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김씨 측에도 연락을 시도했지만, 김씨의 변호인은 “김씨와 상의 후 연락을 주겠다”고 한 뒤 아무런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