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언론을 통해 한미 양국의 공식논의가 시작됐음이 확인된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 그러나 “미국의 MD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한반도에 대해서만 미사일방어가 이뤄진다”는 당국의 설명과 달리, 그간 정부 내부에서 검토해온 방안은 다른 나라의 미군기지까지 방어범위에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 더욱이 이를 위해서는 미군 레이더나 정찰위성 등과의 연계가 불가피하므로 ‘MD 참여’에 대한 중국 측 반발도 피해가기 어렵다.
-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선택은 과연 동북아 국제정치에 어떤 후폭풍을 몰고올 것인가.
미국이 주도하는 전세계적인 미사일방어체계(MD)에 한국이 참여하느냐 여부는 김대중 정부 이래 한미관계는 물론 동북아 국제정치의 핫이슈로 자리매김한 극히 민감한 사안. 양국의 공동연구가 한국이 미국의 MD 구축에 본격 합류하는 신호탄은 아닌지 관심이 집중된 것은 이 때문이다. 쉽게 말해 북한이나 중국, 러시아 등 동북아에 자리한 미국의 잠재적 적국(敵國)이 미 본토를 향해 발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조기에 요격하는 시스템에 한국군이 그 하부구조로 참여하게 되느냐는 질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방부 등 관계당국은 재빠르게 선을 긋고 나섰다. 해당 공동연구는 북한이 남한을 향해 가하는 미사일 공격만을 상정하는 ‘한국형’일 뿐, 중국 등 다른 주변국에서 미 본토를 향해 날아가는 미사일과는 아무런 상관없다고 거듭 강조하고 나선 것. 더욱이 그나마도 이론적인 연구에 불과할 뿐 구체적인 사업진행과는 거리가 멀다는 해명이었다.
이와 관련해 한 안보당국 핵심관계자는 “일단은 립서비스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미국 측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MD 참여를 압박해왔음은 공공연한 비밀에 가깝다. 미국이 지난해 전시작전권 전환일정 연기나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 공동대응 과정에서 한국을 적극적으로 배려해준 것에 대해 어떤 형식으로든 보조를 맞춰줄 필요가 있었다는 것. MD 문제에 몸이 달아 있는 미국을 달래기 위해 적절히 선을 그어가며 취하는 제스처라는 의미다.
출범 이후 이명박 정부는 한미동맹의 주요 이슈와 관련해 주고받기식 전략을 주로 구사해왔다. 개별 주제의 적실성을 따지기보다는 양국 사이의 현안들을 테이블 위에 한꺼번에 올려놓고 균형을 맞추는 식의 협상이 골간을 이뤄온 것이다. 현재는 한국군 탄도미사일 사거리 연장을 허용하는 미사일협정 개정이나 원전 폐연료봉의 재활용을 위한 원자력협정 개정 등 굵직한 이슈를 놓고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이 한국이 미국에 요청해야 하는 사안인 반면, 내놓을 수 있는 ‘당근’은 MD 관련 논의가 유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이미 한참 진행됐다
이렇듯 당국자들의 설명을 듣고 나면 언뜻 공연한 호들갑이었나 싶지만, 그러나 수면 아래 드러나지 않은 사실들을 확인하고 나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우선 한미 간에 진행되는 MD 관련 논의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 이미 2009년 여름부터 KIDA는 미 국방분석연구소(IDA)와 이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 검토를 진행했다는 사실이 복수의 당국자를 통해 확인됐다. 여기서 설정된 이론적인틀을 바탕으로 최근 공개된 KIDA-MDA 공동연구가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양국 연구기관 간의 논의가 첫 단추이고 국방당국 간의 논의가 마지막 단추라면, 한국의 연구기관과 미국의 주무당국이 테이블에 앉는 이번 공동연구는 이미 논의가 2단계 수위로 발전됐음을 의미한다. 국방부 측이 해명한 ‘이론 수준의 검토’는 진작 넘어섰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은 지난해 연례안보협의회(SCM)를 통해 두 나라가 합의한 사항들이다. 당시 미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한국에 MD체계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확장억제정책위원회 가동에 합의했다. 3월 말 하와이에서 열린 이 위원회의 첫 공식회의에서는 오는 10월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위협을 시나리오별로 분석하고 이를 어떻게 막아낼 것인지 구체적인 수단을 함께 가동해보는 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TTX)을 처음 실시한다는 합의도 이뤄졌다.
이러한 논의가 ‘공격을 당한 뒤의 보복’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징후를 감지해 방지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대북(對北) 안보전략이 기본적으로 방어능력 확보보다는 보복능력 과시를 통한 억제에 가깝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사뭇 그림이 맞지 않기 때문. 오히려 날아오는 미사일을 탐지해 쏘아 맞히는 미사일방어체계의 기본 얼개와 훨씬 잘 맞아떨어진다. 국방부 관계자들은 손사래를 치지만, MD 논의가 올해 하반기부터는 군사당국 차원으로 진화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전혀 다른 게임
최근의 논의가 한국 영토에 대한 공격에만 국한된 것이라는 공식설명도 그간 정부 안팎에서 검토됐던 내용에 비추어보면 사실과 다르다. ‘신동아’가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확인한 바에 따르면 KIDA-MDA 공동연구가 진행되기 이전부터 관계기관에서는 한반도 범위를 넘어서는 MD체계에 관한 개념구상이 논의되는 상태였다. 괌이나 오키나와의 미군기지에 미사일이 발사되는 경우에도 한국군이 이를 대신 요격해주는 콘셉트가 여러 차례 도출됐다는 것.
정부가 설명해온 KAMD의 구성과는 전혀 다른 이러한 구상은, 이미 지난해 여름 KIDA 내부에서 공식 제기돼 공동연구를 담당하는 내부 TF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와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 등 청와대가 운영해온 안보전략 회의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뤄졌다고 참석자들은 전한다.
물론 이러한 방식의 미사일방어체계는 미 본토를 향해 날아가는 북한 혹은 중국의 ICBM을 요격하는 미국의 탄도미사일방어체계(BMD)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수백 ㎞ 범위를 넘지 않는 한반도 내의 미사일방어와는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북한의 주요 미사일 발사기지로부터 오키나와까지의 거리는 1500㎞ 이상이고 괌까지는 3100㎞를 훌쩍 넘는다. 이를테면 미국 주도 MD와 그간 국방부가 말해온 KAMD 개념의 중간형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러한 거리 차이가 의미심장한 이유는 미사일을 요격하는 단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반도만을 염두에 두는 경우 미사일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다 지상으로 떨어지는 하층 단계에서 쏘아 맞히는 개념이지만, 괌이나 오키나와로 가는 미사일을 한반도나 인근 해상에서 요격하려면 날아가는 도중에 상층 단계에서 맞혀야 한다. 요격 시점이 달라지면 필요한 레이더의 해상도나 요격미사일의 성능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실상 전혀 다른 방어체계가 되는 것이다.
맞혀야 하는 미사일의 종류도 달라진다. 남한만을 염두에 둘 경우에는 KN-02나 스커드B, C, 노동1호 등 단거리나 준중거리미사일이 주종을 이루지만, 오키나와나 괌이 포함되는 경우에는 대포동1호나 신형 IRBM(중거리탄도미사일) 등 사거리가 훨씬 긴 다른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준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그에 따라 필요한 방어체계의 구성이나 숙련도 역시 비약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훨씬 더 비싸고 복잡한 체계를 구축해야 하므로 투입되는 예산도 큰 폭으로 증가하게 된다.
MB 임기 내에 끝내자는 미국
괌과 오키나와는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 초기에 투입되는 미군의 전진기지 역할을 수행하고, 전쟁 기간에는 후방기지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따라서 이들 기지에 대한 북한의 미사일 공격을 한국군이 나서서 방어해야 할 군사전략적 이유는 충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이 정도는 돼야 미국의 ‘무임승차’ 비판을 피할 수 있다는 것. 한 정부 핵심관계자는 “KAMD를 한다면서 사실상 단일 전장에 해당하는 괌이나 오키나와는 안 된다고 주장할 명분이 약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두 나라 사이 MD 관련 논의의 최종결론은 결국 ‘중간형 MD’로 귀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이유다.
앞서도 말했지만 현재의 논의수준은 실무적인 체계구축방안보다는 개념설정이나 구상검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국방부는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개념설정이 진척될수록 미국 측이 중간형 MD를 위해 필요한 무기체계나 감시·정찰자산의 배치 같은 구체적인 주제로 논의를 이끌어가려 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오키나와나 괌으로 날아가는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필수적인 고해상도 X밴드 레이더의 한국 내 배치문제 같은 경우다. 미국 MD체계의 핵심 구성요소이기도 한 X밴드 레이더는 탐지범위가 충분히 넓어 남한 어느 지역에 있든 북한 전역의 미사일 발사 추적이 가능하다.
한국이 이를 자체적으로 구매해 배치하기 위해서는 수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해야 하고, 미군의 X밴드 레이더를 한반도에 배치해 활용하려면 해당 레이더 관할 미군부대와 한국군 미사일 작전통제소와의 데이터링크가 불가피하다. 또한 한국군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조기에 파악하기 위해서는 DSP 조기경보위성 등 미국 측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받아야 한다. 이들 미국 측 감시·정찰자산이 MD체계의 주요 구성요소임을 감안하면, 중국 등 주변국으로서는 한국이 MD에 참여하는 것으로 인식할 공산이 매우 커지는 것이다.
미사일 요격을 위해 양국 군사자산의 실시간 연동이 가능해지려면 먼저 한국군과 미군의 지휘통제통신(C4I)체계 연동이 필수적이이다. 따라서 기술적으로 볼 때 이러한 데이터링크 시스템의 마련도 전작권 전환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연합 C4I체계 구축이 마무리돼야만 가능해진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중간형 MD로 논의의 가닥이 잡힐 경우 그 목표시점은 전작권 전환이 완료되는 2015년 말로 설정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그러나 MD 논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 보자면 그때까지 남은 4년6개월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현재 진행되는 KIDA-MDA 논의에서 기본얼개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고, 이를 바탕으로 최소한 2012년 말까지는 확장억제정책위원회 등을 통해 구체적인 틀과 개념이 완성돼야만 체계구축과 합동훈련 등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워싱턴으로서는 어떻게든 이명박 정부 임기 내에 주요 골자에 대해 결론을 내야 하는 것이다.
앞서 본 것처럼 MD 문제에 관한 청와대 핵심의 의중은 일단 논의 자체만으로 미국을 달래자는 것에 가깝다. 구체적인 시한이나 역할분담 방안을 정하는 것은 가급적 피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미국 측의 적극적인 자세를 감안할 때 과연 그게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관측도 만만치 않다. 현 정부 임기 동안 중간형 MD에 대한 개념설정이 마무리될 경우, 정권이 바뀐 후에 이를 뒤집으려면 엄청난 외교적 마찰과 갈등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중요한 문제일수록
그간 한국 정부의 설명과는 사뭇 다른 이러한 그림이 공동훈련 등의 형태로 가시화하는 시점이 오면 중국이나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 일각에는 미 본토가 아닌 괌이나 오키나와, 그것도 북한이 발사하는 미사일에 국한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면 중국도 문제 삼을 명분이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지만, 이러한 연동체계가 간단한 작업을 거쳐 중국에 대한 미국의 MD에도 활용될 수 있음을 감안하면 단순한 희망사항에 가까워 보인다.
이명박 정부 들어 대미(對美)외교가 강화되고 천안함·연평도 사건 대응에 대해 이견이 불거지면서 한중 관계가 껄끄러워졌음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한미 양국의 MD 논의가 불러올 후폭풍을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연구기관 차원의 논의가 시작된 지는 2년 가까이, KIDA와 MDA 사이의 논의가 시작된 지도 8개월이 넘은 현재까지 해당 테이블에서 논의되는 내용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따라서 중국의 반발 등 예상되는 부작용도 거의 공론화되지 못했다. 국민들로서는 중국의 반발을 무릅쓰고서라도 이를 받아들일지 아니면 후폭풍을 의식해 다른 길을 찾는 게 옳을지 고민할 기회조차 없었던 셈이다.
심지어 정부는 그러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비공개를 유지하다가 언론 보도 이후에야 서둘러 해명에 나섰다. 이 문제가 향후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한국의 입지를 근본적으로 제약할 수 있는 잠재적 폭발력을 가진 사안이고 보면, 정부의 이러한 비밀주의는 정직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중요한 문제일수록 투명하게 논의해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민주정치의 기본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