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동북부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 이상이 발생하면서 방사능 피폭 공포가 한국에까지 퍼져 있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유언비어가 일반인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는 양상이다. 이에 한국원자력문화재단과 한국과학기자협회는 원전과 관련된 오해를 바로잡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대토론회 자리를 마련했다.
- ‘신동아’가 토론회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4월27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원자력 안전 대토론회 ‘후쿠시마 원전사고, 정확한 이해와 대응방안’이 열렸다.
이재환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원인과 현 상황, 전망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확산되면서 국민에게 막연한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지나치다고 할 수 있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국민적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고 이번 토론회의 취지를 밝혔다.
“사고 대응 절차서 준비해야”
‘일본 원전 사고의 정확한 이해와 우리나라의 대응방안’이라는 제목 아래, 토론회 기조 연설자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장순흥 교수가 나섰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서 운영 중인 원자력발전소는 총 54기이며, 이번 동북부 지진의 진앙지에 가까운 곳은 13기다. 후쿠시마 1발전소의 6기, 2발전소의 4기, 오나가와 발전소의 3기가 모두 지진으로 인해 가동 정지됐다. 원자로가 완전히 정지해도 원자로 안에 남아 있는 핵분열 생성물이 붕괴하는 현상은 계속된다. 이 붕괴열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지 후에도 지속적으로 전원이 공급돼야 한다.
이번 지진에서 문제는 해일이었다. 후쿠시마 원전은 대규모 쓰나미나 해일에 취약하게 설계돼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일로 인해 비상 발전기가 침수됐고, 결국 붕괴열 제거에 실패했다. 이것이 4개 원전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난 원인이다. 장 교수는 “도쿄전력이 발표한 사고 관리 로드맵에 따르면 원자로 용기 내외부 냉각 등을 통해 앞으로 6개월에서 9개월이면 원자로가 안정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번 사고에서 한국이 얻을 수 있는 기술적·제도적인 측면의 교훈을 각각 다섯 가지씩 지적했다. 우선 비상 시 전기 공급과 냉각 시스템, 사용 후 핵연료를 보관하는 수조의 안전성을 강화하는 일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수소제거 시스템을 점검하고 보완하는 한편 기존 원전의 안전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하고, 신규 원전은 전기나 펌프 없이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제도적 측면의 교훈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대 사고에 대응할 수 있는 절차서를 준비하고 컨트롤타워의 기능을 강화하며, 안전 연구를 매뉴얼에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협력과 안전 문화 확립도 함께 언급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서 기술적인 측면뿐 아니라, 제도적인 측면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사실상 국내 원전은 후쿠시마 원전과 기술적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원전은 몇 곳을 제외하고는 ‘가압형’, 후쿠시마 원전은 ‘비등형’ 경수로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터빈을 돌아가게 하는 증기를 어떻게 순환시키느냐의 차이다. 한때 가압형이 더 안전하다는 식으로 언론에 보도되는 바람에 ‘우리나라 원전은 일본보다 안전하다’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비등형 원전이 있으니 위험하다’는 주장이 부딪치기도 했다. 두 방식 모두 나름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으므로, 딱 잘라 어느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단 가압형은 방사능 물질 유출을 막는 벽이 하나 더 있어서, 이 부분에서만큼은 일정 정도의 우위를 보일 수 있다.
원전 사고에 대한 불안감 증폭은 잘못된 언론 보도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곽재원 중앙일보 과학기술 대기자는 ‘일본 원전 사고에 대한 정확한 보도와 소통의 중요성’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일본 동북부 대지진은 지진, 쓰나미, 원전이 합쳐진 거대 복합 재해”라면서 “네트워크를 통해 공포가 실시간으로 전세계에 전해졌다”고 정리했다.
한국 언론들은 현장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발표가 뒤늦은 가운데 속보 경쟁을 해왔다. 기자 대부분이 어려운 과학용어를 일상 언어로 전달해내지 못했다. 선정적이고 표면적인 보도를 넘어서는 심층적인 보도 태도가 아쉬웠다. 곽 대기자는 “전문적인 지식과 시민을 어떻게 연결해주느냐가 원전 보도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마이클 샌델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거대 복합 재해를 통해 세계 공동 사회의 계기를 만들고 진지한 토론 민주주의를 만들어내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대기, 빗물 관측 결과 한반도는 안전
대응체계를 세우고, 신속한 초기대응을 하며, 차분한 소통이 이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최우선일 것이다. 다음 주제 발표에서는 ‘한반도 지진 가능성과 우리 원전의 안전성’을 탐색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백원필 원자력안전연구본부장은 “국내 원전은 지진과 쓰나미에 관한 역사적 문헌과 관측 기록에 따라 설계기준을 정해 그보다 안전하게 건설한다”고 소개했다. 지진 강도, 진동수 등의 특성을 살피며 주요 원전 설비에 대한 내진 검증 시험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하고, 위험 평가를 시행한다. 백 본부장은 “이번 사고 경험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국내 원전의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노병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방사선안전본부장은 ‘일본 원전 사고 관련 환경방사능 감시 결과’ 발표를 통해 대기, 빗물, 해양 등 방사성 물질을 관측한 결과 한반도는 안전한 상태라고 밝혔다. 방사능은 원전 사고 이전부터 국가 환경방사선 자동감시망에 의해 관측되고 있었으며, 인터넷(iernet.kins.re.kr)에 접속하면 볼 수 있다. 노 본부장은 “10년 동안의 접속자 수와 방사성 물질이 섞인 비가 내린다는 보도가 나온 뒤 접속자 수가 같을 정도로 국민의 관심이 뜨겁다”고 말했다. 그는 “빗물에 방사성 물질인 요오드가 극미량이다. 예를 들어 백두산 천지의 수량에 해당하는 20억t의 물에 1.2mg 섞여 있는 정도의 비율이 이제까지 최고치로 나타났는데, 여기에 ‘방사능 비’라는 표현이 사용되면서 큰 혼란을 빚었다”고 설명했다.
김승배 기상청 대변인은 ‘일본 원전 사고 이후 한반도 주변 기류 변화’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일본에서 방사성 물질이 한반도로 직접 날아올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강조했다. 지구는 자전을 하기 때문에 한반도 주변 상층에는 늘 편서풍이 불고 있다. 때에 따라 지표면에서 동풍이 분다 해도 기류의 흐름은 편서풍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원전 사고 이후에는 독일, 노르웨이 등에서 예측한 내용이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왜곡된 상태에서 알려지면서 우리나라 기상청이 비난을 받기도 했다. 기상청 대변인은 “잘못된 소통이 고통을 낳는다”고 그동안의 고충을 드러냈다.
일본 출하 제한 품목은 수입 중단
원전 사고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한 가지에 쏠려 있다. 방사성 물질에 접촉하면 몸에 해로운지 여부다. 실제로 사고 이후, 미리 먹어도 아무 예방효과가 없는 의약품이나 엄청난 양을 먹어야 효과를 보는 식료품을 사재기하는 현상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승숙 한국원자력의학원 방사선비상진료센터장은 ‘일본 원전 방사선, 우리 인체 및 식품에 미칠 영향’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방사선에 대해 잘못 알려진 상식과 지식이 공포를 유발해 정신적 피해를 주고 있다. 우리나라 공기 중 방사성 물질 측정치나 빗물에서 검출된 양 정도는 암 발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센터장은 “방사선이 안전하다는 것이 아니라, 일본 원전과 관련해서는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라고 강조하며, “위험성을 아는 것만큼이나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패널로 참석한 이광호 식품의약품안전청 식품위해평가부장은 일본 원전 사고가 우리 식품에 미칠 영향에 대해 짚었다. 한국은 일본에서 섭취나 출하가 제한된 품목을 수입 중단한 상태고, 일본에서 생산되거나 일본을 경유하는 농산물과 가공식품, 식품첨가물 등에 대해서도 수입 건마다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대한주부클럽연합회 김천주 회장은 “식품을 믿고 먹을 수 있도록 검사를 더욱 강화하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쉬운 홍보 방법들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전석천 전국 과학교사협회장은 “교과 과정 중 원자력에 관해 다루는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면서 “이번 사고를 계기로 원자력의 부정적인 측면을 해결해나가는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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