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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의 술 풍경(하)

“술과 문학은 한 몸이여”

한국 문단 5대 구라, 개 물어뜯은 천승세, 대선배 뺨 때린 최영미…

  • 이소리│시인·전 민족문학작가회의 총무 lsr21@naver.com

“술과 문학은 한 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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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이 있는 곳에 항상 술은 따라붙는다. 따라붙은 술은 문인들에게 해학과 익살을 건넨다. 새내기 최영미가 대선배 송기원의 뺨을 때리고, 천승세는 개의 목을 물어뜯는다. 심호택은 뺨 맞고 김준태와 말을 텄고, 만취한 고은은 강연 청중에게 술을 먹이는 ‘고주부 소주사건’을 만들어낸다.
  • 자, 이제 입 호미로 문인들과 술, 그 뒷얘기를 슬슬 긁어보자.
“술과 문학은 한 몸이여”

문인들과 술자리를 갖는 시인 고은 (오른쪽).

한국 문단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문인들이 벌이는 술판. 그 술판에서 있었던 배꼽을 잡는 이야기 가운데 천승세 소설가와 박몽구 시인 이야기를 빼놓으면 멀쩡한 이가 하나 빠진 것처럼 꽤 서운하다. 여기에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뽀뽀로 뽀뽀뽀~ 찌찌리 찌찌찌~’를 기막히게 잘 부르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강형철(숭의여대 교수), 500cc 호프 잔을 들고 길거리와 지하철 안에서 마시며 이야기하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전기철(숭의여대 교수)도 빼놓을 수 없다.

천승세 소설가와 박몽구 시인 이야기부터 입 호미로 슬슬 긁어보자. 그해가 몇 년도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5·18 행사를 마치고 광주에 있는 한 여관에서 문인들이 밤새 술을 나눠 마시며 남북 이야기, 꼴사나운 정치 이야기, 허리 휘게 하는 경제 이야기, 사회 돌아가는 이야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였을 것이다.

천승세 소설가, 김준태 시인, 곽재구 시인 등 10여 명이 맥주를 나눠 마시며 입에 거품을 물고 세상타령을 하고 있을 때. 저만치 떨어져 조용히 앉아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던 박몽구 시인이 소변이 마려운지 일어서서 화장실에 갔다. 그 사이 천 소설가가 밤새도록 이어지는 술에 은근하게 취하고, 몸이 약간 피곤했던지 여관 방 한 귀퉁이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은근슬쩍 드러누웠다. 잠시 후 화장실에서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박 시인이 천 소설가가 보이지 않자 한마디 툭 내뱉었다.

“승세 자나?” 했다가 무릎 꿇은 박몽구

“어이! 승세 자나?”



그때였다. 천 소설가가 즉각 박 시인 말에 안티를 걸었다.

“어이! 승세 안 자고 여기 누워 있네.”

“서…선생님! 죄송합니다.”

“뭐라? 승세 자냐구? 예끼 이 못된 놈 같으니라고. 당장 내 앞에 와서 무릎 꿇고 싹싹 빌지 못해.”

하동 천승세 소설가는 1939년 목포 출생이고, 박몽구 시인은 1956년 광주 송정리 출생으로 나이 차가 무려 17살이나 났다. 195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점례와 소’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온 천 소설가는 말 그대로 문단에서 어르신에 속했고, 1977년 ‘대화’지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온 박 시인은 등단에서도 무려 19년이나 차이가 났다.

박 시인은 그날 술도 마시지 못한 채 밤새도록 천 소설가 앞에 무릎 꿇고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웃지 못할 일을 겪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1987년 9월 ‘민족문학작가회의’로 거듭난 뒤 시인 김명수 초대 사무국장에 이어 사무국장을 맡았고,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다시 ‘한국작가회의’로 그 이름이 바뀐 뒤 부이사장을 맡았던 강형철 시인. 그가 술이 얼큰하게 오르면 부르는 ‘뽀뽀로 뽀뽀뽀~ 찌찌리 찌찌찌~’는 문단에서 ‘9도 뽀찌타령’으로 인기가 아주 높았다. 9도 뽀찌타령은 각 지역 특징을 살리면서도 풍자와 익살로 문인들 배꼽을 잡게 만드는, 시쳇말로 하면 ‘잡놈이 부르는 색타령’이라 할 수 있다.

‘뽀뽀로 뽀뽀뽀~ 찌찌리 찌찌찌~’로 강원도부터 시작되는 9도 뽀찌타령은 강원도 ‘비탈’, 함경도 ‘아바이 순대’, 평안도 ‘감자’, 서울 ‘깍쟁이’, 경기도 ‘갯벌’, 충청도 ‘멍청’ 혹은 ‘인삼’, 전라도 ‘굴비’ 혹은 ‘고매’(고구마), 경상도 ‘문디’로, 강형철 시인은 타령마다 적당히 추임새를 넣어가며 기가 막히게 불렀다.

제주 출신 현기영 소설가는 강형철 시인이 뽀찌타령을 부르면 은근히 즐기면서도 “그 타령에서 제주도만 빼면 안 되겠느냐?”며 꽤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곤 했다. 강원도, 함경도, 평안도, 서울,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뽀찌타령 가운데 제주도는 “뽀뽀로 뽀뽀뽀~ 찌찌리 찌찌찌~ 제주도라~ 말 뽀뽀뽀뽀로~ 말 찌찌찌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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