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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크로스(CROSS) 인문학 ⑥

행복을 행복해 하라 그래야 행복해진다

행복을 행복해 하라 그래야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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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의 나라

한국은 ‘전사의 나라’다. 앞만 보고 달려가게 한 이 전사 기질이 양적인 삶을 키우고 규모의 삶을 이루는 데 기여한 바가 있지만 이제는 그 폐해에도 눈길을 돌려야 한다. 우리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불거지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모럴해저드가 그 폐해의 한 조각이다. 사회악이 창궐하는 세계에서 개별자의 행복이란 볼품이 없는 거품에 지나지 않는다. 바다 전체가 오염되었다면 파도 한 조각의 미적 현존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국인의 내면에 있는 ‘전사 기질’은 그 뿌리가 있다. 근대 이후 우리가 불가피하게 감당해야만 했던 사회적 불행과 개별자로서 겪은 삶의 시련들이 우리 안에 거침과 난폭함을 심어준 것이다. 진중권은 그 뿌리가 “동양식 문명화 과정이 식민주의에 의해 단절된 결과이고, 더 결정적으로는 한국전쟁의 참혹한 경험, 그리고 산업화 시대 군사주의 문화의 잔재”(진중권, 앞의 책)라고 말한다. 살아온 세월이 참혹하고 힘들어서 우리는 가난이나 불행이라면 진절머리를 친다. 바로 그것과 싸우기 위해서 우리 마음은 거칠어지고 독해졌다. 그러나 시련과 불행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시련은 우리를 단련시키고 불행은 우리 마음에 그것에 대한 항체를 만든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꼭 불행했던 것만은 아니다.

“유대인은 다양한 시기에 세계 이곳저곳에서 풍요를 누렸다. 특히 반복되는 유배 때문에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디아스포라의 역동적인 경험을 통해 지적·문화적으로 독창적인 결과물을 생산했고 ‘창조적인 회의주의’의 태도로 유대인의 고유문화와 그들이 정착한 나라의 문화를 풍요롭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니콜 라피에르, ‘다른 곳을 사유하자’)

따져보면 전사 기질의 상당 부분은 이성과 합리주의의 부재에서 만들어진 기질들이다. 문제는 압축적인 근대화 과정 속에서 이런 ‘선동’들이 끊임없이 있어왔고, 한국인은 개발 독재의 시대에 제 의지와 상관없이 이런 기질들을 강요당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절대 가난의 족쇄에서 벗어나는 동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기질들이 경쟁에서 이기는 자질인지는 모르나 행복을 위한 미덕은 아닌 게 틀림없다. 나룻배는 강을 건너는 데 필요하다. 강을 건넌 뒤에도 이 나룻배를 등에 지고 간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제 우리 마음이 지고 있는 나룻배를 내려놓아야 한다. 조급증, 실적주의, 투쟁심, 상대적 박탈감, 빨리빨리 문화, 하면 된다는 정신에 밴 비이성적 성취의식, 떼거리 근성 따위가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나룻배다. 우리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지혜와 자아 탐구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다. 지혜의 바탕은 너 죽고 나 살기 식의 극단적인 경쟁이 아니라 너 살고 나 살자 식의 상생 정신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앞만 보고 달리느라 자아에 대한 성찰과 탐구에 게을렀다. 이제 내가 누구인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 아울러 타자에 대한 배려, 이타주의 정신, 느림, 그리고 마음의 고요와 평화를 기르고 키워야 한다.

가진 것에 만족하라



행복을 행복해 하라 그래야 행복해진다

영화 ‘행복’의 한 장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가난은 결핍인데, 왜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마음이 가난한 것은 참된 가난, 물질에 대한 초월적 상태에 있음을 뜻한다. 내가 서른 해가 넘는 서울 살림을 정리해서 아무 연고도 없는 안성으로 그 많은 책을 싸들고 내려왔을 때 나는 패배자이고, 경쟁사회에서 이탈한 낙오자의 느낌이었다. 나는 그대로 빈털터리였다. 하릴없이 집 아래에 넓게 펼쳐진 호수의 반짝이는 물결이나 바라보며 소일했다. 내 안에 있는 어떤 분노, 슬픔, 억울함 따위가 느닷없이 솟구쳐 올라 나를 쓰러뜨리곤 했다. 물론 나는 파산한 것도 아니요 쫓겨서 내려온 것도 아니다. 시골에서 조촐한 삶을 꾸리려고 자발적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지독히 불행했다. 불행하다는 느낌이 마음에 사무칠 때 나는 미친 듯 산길을 헤매고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날에 갑자기 마음이 고요해져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났다. 가끔 안성의 젊은 벗들이 시장통에 있는 소줏집에 모여 있다고 불러내곤 했다. 그들과 함께 ‘양성집’에서 어울려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 벌건 두부찌개를 앞에 놓고 소주 두어 병을 간단히 비우고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잠들곤 했다. 이튿날에는 혼자 콩나물국을 끓여 빈속을 달래곤 했다. 젊은 벗들이 부르는 날보다는 혼자 있는 날이 훨씬 많았다. 혼자 있는 날에는 호젓하게 도연명의 시를 읽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매미소리를 들으며 ‘장자’를 읽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바람이 부는 날에는 바람소리를 들었다. 확실히 그전보다 욕심이 없어졌다. 이는 내 마음이 비움을 품고 느림을 사모한 결과다. 이게 정말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의 태도가 아닐까?

천지는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쥐어주는 법이 없다.

“천지는 만물이 다 좋게만 하는 법이 없다. 뿔 있는 놈은 이빨이 없고, 날개가 있으면 다리가 두 개뿐이다. 이름난 꽃은 열매가 없고, 채색 구름은 쉬 흩어진다. 사람에 이르러서도 그러하다. 기특한 재주와 화려한 기예가 뛰어나면 공명이 떠나가서 함께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치가 그러하다.”(이인로, 여기서는 정민, ‘한시미학산책’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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