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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정두언 권력투쟁 막전막후

“우리는 SD 쪽 시간차 공격 세 방에 나가떨어졌다”

‘SD 일선후퇴’ 기획한 소장파의 핵, 박재성 전 특보 최초 인터뷰

  • 배수강│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sk@donga.com

“우리는 SD 쪽 시간차 공격 세 방에 나가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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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SD 쪽 시간차 공격 세 방에 나가떨어졌다”

2008년 6월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홍준표 원내대표(왼쪽에서 네 번째)가 “권력사유화 논쟁으로 불거진 당내 분란을 좌시하지 않겠다”며 “이상득, 정두언 의원은 자중하라”고 말했다.

동시에 이상득 의원의 총선 불출마도 요구했다. 이명박 정부 1기 내각이 이른바 ‘강부자 내각’으로 비판받고, 당내 공천 잡음이 커지자 소장파들이 ‘형님 저격’을 통해 반전을 도모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남경필·정두언·정태근 의원은 ‘반(反)SD 라인’ 상징으로 떠올랐고, 정 의원은 SD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현 지식경제부 차관)을 향해 ‘권력을 사유화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후 이들 의원과 가족 등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측 대립은 최고조에 달했다.

기자는 당시 SD계와 소장파 간 공방을 취재하면서 SD계와 반SD계의 잠재된 갈등은 ‘이상득 저격’으로 수면으로 떠올랐고, SD 공격의 최초 진원지는 박 전 특보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대답 대신 오른쪽 엄지손가락으로 아래턱을 몇 차례 위로 밀어 올리더니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경험칙상 이런 경우는 ‘나는 대답할지를 갈등하고 있다’는 신호다.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고 초기 조각(組閣)으로 민심이 흉흉했어요. 여기에 박희태 선대위원장 등 원로 정치 선배들은 공천을 못 받는데 SD는 살아남았죠. 일관성도 공정성도 없고, 도의적으로도, 그리고 한국적 정치 풍토를 감안해도 이해할 수 있는 ‘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당시 MBC 여론조사에서도 ‘SD는 공천을 반납해야 한다’는 의견이 76.6%였어요. ‘이래 가지고 나라가 되겠느냐’는 고심이 깊어졌죠. 남(경필) 의원과 얘기하고, 지역 순방 중인 정 의원을 찾아갔어요. 남 의원은 ‘나가떨어지더라도 옳은 말을 해야겠다’고 하더군요. 정 의원도 흔쾌히 동의하면서 ‘나 혼자 해서 힘이 되겠느냐? 개혁적 이미지(남경필, 원희룡을 지칭)를 주든지(함께하든지)’하더라고요. 그래서 나섰습니다. 소장파 의원들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저는 촉매 역할을 한 겁니다.”

SD 총선 불출마 기획

▼ 동참한 출마자도 19명에서 55명으로 급격히 늘었는데요.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겠어요?”

▼ 원희룡 의원은 다른 길을 걸었는데요.

“희룡(그는 원 의원과 같은 82학번 친구다)이와 호프집에서 만났어요. 한 시간 반 얘기했는데 ‘뉘앙스’가 안 맞더라고요. ‘친구로서 부탁인데, 동참하지 않아도 중립은 지켜달라’고 했어요.”

▼ 뭐라던가요?

“‘알겠다’고 했죠.”

▼ 이후 원 의원은 당 사무총장에 임명되는 등 SD 측과의 관계가 좋아졌는데요.

“원 의원도 소장파 비주류로 크는 것보다 주류 안에서 활동해보고 싶었겠죠. 그 친구는 그 친구 스타일이 있으니까….”

▼ ‘거사’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2008년 3월 중순에 남 의원이 SD 지역구(경북 포항 남·울릉군)로 찾아갔어요. 포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남 의원이 전화했기에 ‘진정성을 잘 말씀드리고, 후배들이 원로 선배를 잘 모시겠다’는 뜻을 전달해달라고 부탁했죠. 예상은 했지만 안 받아들이시더라고요.”

▼ ‘형님’과의 일전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네요.

“아니요. 오히려 쉬웠습니다. 누가 봐도 아닌 길로 가는데, 정권을 만드는 데 일조했던 사람이 ‘아니다’고 해야죠.”

같은 친이계로 대선 승리를 일궈냈지만 서로 간 깊은 불신 속에 일전을 벌였던 SD계와 소장파. 그 이유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었지만 기자는 화제를 돌렸다. 속 깊은 얘기를 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듯, 그의 답변은 자주 끊겼다.

▼ 캠프 시절 조직과 정무팀을 두루 오간 걸로 압니다만.

“처음엔 정무팀이 없었어요. 조직팀에서 일하다가 정 의원을 알게 됐고 함께 손발을 맞췄습니다. 조직팀 손놓고 정무 쪽 일을 했어요. 그땐 자다가 일어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죠.”

▼ 자다가 일어난 일이라면….

“친인척 문제부터 BBK 방어까지 안 한 게 없었죠. 처음에는 캠프가 꾸려진 (서울 여의도동) 용산빌딩에서 함께 일하다가 나중에는 인근 오피스텔을 구해 일했습니다. 상대방의 ‘네거티브 전략’을 분석하거나 MB 친인척 문제를 다루는 일은 보안 유지가 필수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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