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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조선왕실의궤 반환 주역 혜문 스님

“달라니 주더라 왜 이제껏 아무도 달라 하지 않았나”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조선왕실의궤 반환 주역 혜문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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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사람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없다. 혜문 스님이 그렇다.
  • 일본 최고 두뇌 집단과 최고 권력자, 도쿄대와 일왕궁을 상대로 그는 우리 문화재 반환을 요구했다. 그리고 정말 돌려받았다. 2006년 도쿄대가 조선왕조실록을 반환한 데 이어, 5월 말이면 일왕궁에 소장돼 있던 조선왕실의궤가 우리나라로 돌아온다. 그는 도대체 무슨 힘으로 정부도 가져오지 못한 국보급 문화재를 하나하나 환수하는 걸까.
조선왕실의궤 반환 주역 혜문 스님
경기도 남양주시 봉선사는 국립수목원에 이웃해 있다.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한 절 숲 속, 요사채에서 혜문 스님(38)을 만났다. ‘洗心(세심)’이라고 적힌 현판 아래로 발을 드리운 그의 방. 문지방을 넘어서려는데 흠칫, 숨이 멎는다. 시선이 닿은 곳에서 거대한 호랑이 한 마리가 형형한 눈빛을 내뿜고 있다.

“북한에서 선물받은 그림이에요. 그쪽 화풍이 워낙 사실적이죠.”

놀라는 품을 느꼈는지 방 주인이 ‘하하’ 웃는다. 그가 등지고 앉은 벽면 가득, 커다란 호랑이 그림이 기자를 내려다보고 있다.

“저기 걸어놓은 건 호랑이 이빨입니다. 그 옆은 발톱이고요. 지금까지 실물을 보신 적은 없을 거예요.”

엄지손가락보다 굵은 짐승 송곳니, 날카로운 발톱. 이건 진짜다. 그 옆으로 작은 호랑이 조각상 한 개와 다기 한 벌이 있다. 몇 안 되는 소지품에서 사는 이의 성정이 묻어난다. 이분, 만만치 않을 게 분명하다. 그동안 들어온 소문처럼.



혜문 스님은 5월 말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조선왕실의궤 반환 운동에 앞장선 인물이다.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 사무처장으로 4년간 일본과 줄다리기를 한 끝에 일왕궁 궁내청이 갖고 있던 조선 책 150종 1205책을 돌려받기로 한 게 4월 말의 일이다. 2006년에는 일본 도쿄대에 소장돼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서울대로 찾아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 일이다.

그러나 그를 문화재 환수 운동가라고만 부르기엔 좀 부족함이 있다. 산중 절집에 호랑이를 두고 사는 이 승려는 그동안 이외에도 꽤 많은 일을 해왔다. 지난해 초 그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보관 중인 조선 기생 생식기 표본 폐기 소송을 냈다. 망자에 대한 인권 침해라는 이유에서다. 몇 달 후에는 널리 알려진 슈베르트 가곡 ‘숭어’ 제목이 실은 ‘송어(Trout)’라며 교과서 정정 신청을 냈다. 또 몇 달 후부터는 명성황후가 생전에 사용하던 표범 양탄자가 6·25전쟁 이후 자취를 감췄다며 문화재청, 국가기록보존소 등에 행방을 수소문하고 다녔다. 결국 기생 생식기 표본은 폐기됐고, 교과서의 ‘숭어’는 올해부터 ‘송어’로 고쳐졌으며, 국립중앙박물관은 표범 48마리의 가죽을 이어붙인 조선시대 대형 양탄자를 소장하고 있음을 고백했다. 그러니 이 승려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하고 싶은 일은 꼭 하고, 잘못됐다 싶은 건 꼭 문제 삼고, 궁금한 건 꼭 물어보는 사람?

파사현정 환지본처

제법 많은 봄비가 쏟아진 이날도 그는 서울의 한 재판정에 서고 돌아온 참이었다. 이번엔 충남 아산시 현충사에 있는 나무가 문제다.

“현충사가 어딥니까. 이순신 장군 영정을 모신 곳이잖아요. 그런데 거기 일왕에 대한 충성을 상징하는 금송이 있는 겁니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문화재위원회에 뽑아달라고 진정을 냈더니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심은 나무라 못 옮긴다는 거예요. 문제 있는 건 아는데 대통령 나무라 안 된다니…. 하는 수 없이 행정소송을 냈지요.”

가방에서 ‘현충사 금송존치결정취소’를 구하는 소송 준비 서면을 꺼내 보인다. 스님에 따르면 금송은 현충사 본전 왼쪽 30m 지점에 있다. 왜색 짙은 나무라 식재 후 이미 여러 차례 논란이 됐고,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본청 밖으로 옮기라’는 지침이 내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이 심은 나무를 어떻게 감히…’하는 ‘관습법’ 탓에 번번이 그 자리에 살아남았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현충사 정원이 일본 교토 니노마루 정원과 판박이 아닙니까. 심지어 현충사 연못에는 일본 니가타 현에서 수입해온 비단잉어가 살고 있어요. 박정희 정부 시절 최고로 멋진 조경으로 꾸며놓는다고 한 게 그렇게 된 거죠. 문화재위원회에서도 거기 조경이 문제 많다는 걸 다 인정하는데 그나마 뽑기 쉬운 나무까지 그대로 두겠다니, 이거 코미디 아닙니까, 코미디.”

‘하하하’ 웃는 소리가 문지방을 넘는다. 목소리가 크다. 말하는 속도도 빠르다. ‘스님’ 하면 떠오르는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아무래도 딴판이다. 수시로 ‘하하’ 소리를 내어 웃는 것도 그렇다. “딴 건 몰라도 나무만큼은 본청 밖으로 옮겨야죠.” 힘주어 말하는데, 얼굴과 목소리엔 웃음기가 가득하다. 그가 ‘타고난 싸움꾼’으로 불리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뭐든 잘못을 발견하면 고치려고 나서는 것, 그리고 자신의 지적을 상대방이 정당한 이유 없이 받아들이지 않아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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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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