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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조선왕실의궤 반환 주역 혜문 스님

“달라니 주더라 왜 이제껏 아무도 달라 하지 않았나”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조선왕실의궤 반환 주역 혜문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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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의궤 반환 주역 혜문 스님
“지금은 그냥 두겠다는데, 옮기나 안 옮기나 끝까지 해보죠. 인생 길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러니 이 승려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냥 중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불교가 그런 겁니다. 파사현정(破邪顯正). 삿됨을 깨뜨리고 바른 길을 보여주는 거요. 금강경에 환지본처(還至本處)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인데, 파사현정을 해야만 환지본처가 가능합니다.”

‘하하하’ 다시 웃는다. 말하자면 그의 모든 행동은 이른바 ‘중노릇’이다. 1998년 출가한 그가 사회적으로 ‘파사현정’을 시작한 건 2005년부터다. 봉선사 총무과장으로 있던 시절, 말사인 내원암에 토지 반환 청구 소송이 들어왔다. 고소인은 친일파 이해창의 후손. 일제강점기에 암자 일대 땅을 소유했는데 6·25전쟁으로 등기부가 소실돼 국가가 소유권을 가져갔으니 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알아보니 그 땅은 일제 총독부가 친일의 대가로 무상 임대한 터였다. 규모가 15만8700m²(약 4만8000평)에 달했다. 순순히 돌려주기엔 마뜩지 않았다. 그때부터 ‘파사(破邪)’를 시작했다. 친일파의 재산권 행사가 타당한지 언론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냈다. ‘현정(顯正)’도 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특별법’ 제정 운동을 펼친 것. 세간의 관심이 뜨거워졌고, 그해 12월 관련법이 만들어졌다. 이듬해 법원도 판결을 통해 내원암의 손을 들어줬다.

우연, 인연, 운명



불시에 벌어진 소유권 분쟁을 친일 재산 환수 문제로 확대시켜 사회 변화까지 이끌어내다니, 애초부터 수행에 관심을 둔 승려는 아니었던 것 아니냐고 질문을 던졌다.

“산문(山門) 들어오면서 ‘나는 이런 일을 해야지’ 마음먹는 승려가 누가 있겠어요. 저도 출가하고 한동안은 공부만 했습니다. 그러다 2002년 부산 한 선방에서 갑자기 고막이 터져버렸지요. 절집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인데, 뇌 활동이 극도로 활발해지면 에너지가 폭발해 사고가 나는 겁니다. 일종의 종교 체험 같은 거예요. 그날 이후 한동안 광인처럼 살았어요.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죠.”

방 밖 출입조차 않고 책에만 매달리는 그를 보고 노승들은 ‘식광(識狂)났다’며 걱정했다. 실제로 그는 점점 광인이 됐다. 혜문 스님은 “봉선사가 내 출가본찰인데 다른 스님들이 함께 못 지내겠다고 해서 규모가 작은 양주 회암사로 쫓겨나다시피 옮겨갔을 정도”라고 털어놨다.

▼ 뭐가 어땠길래 ‘광인 같다’는 말씀을 들으신 거예요?

“광인 같은 정도가 아니라 진짜 광인이었어요. 절 안에서 이런저런 소동도 좀 벌이고….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뭣한데, 광인이 원래 세상하고 정상적인 소통을 못하지 않습니까. 제가 그렇게 완전히 제 세계에 빠져 사니까 다른 스님들이 좀 저를 겁낸 거죠. 곁에 두고 보기에 불안했나 봐요.”

▼ 회암사에서 수행하며 다시 본모습을 찾으신 거예요?

“아니요. 저 지금도 제정신 아니에요. 멀쩡한 사람이 어떻게 일왕 소유 문화재를 돌려달라고 하고, 도쿄대 가서 조선왕조실록 내놓으라고 그러겠어요? 저말고는 그런 사람 한 명도 없었잖아요. 지금도 가끔 노스님들이 저 보면 ‘저놈은 아직 제정신 안 났다’고 하십니다.”

그가 봉선사로 돌아온 건 2004년 은사인 철안 스님이 주지로 취임하면서다. 봉선사는 조계종의 교구 본사(本寺)로 경기 북부지역에 있는 조계종 사찰들을 관할한다. 80여 개 말사(末寺) 가운데 문화재를 보유한 전통 사찰이 27개. 철안 스님은 그에게 이 전통 사찰들의 토지와 문화재 현황을 조사하는 임무를 맡겼다. 그가 처음 일제강점기와 불교 문화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다.

“꽤 오랜만에 이뤄진 전수조사였는데 과거 기록과 실제 소장 상황이 많이 달랐어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면서 우리 문화재 가운데 상당수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숙종이 봉선사에 맡겨 관리하던 당대의 세계지도 곤여만국전도는 일본 쪽으로 반출된 흔적이 남아 있더군요. 문화재의 행방을 좇으려면 일본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어쩌면 우연이다. 그런데 이후 그에게 인연의 고리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해 봄 혜문 스님이 교토 어학연수 길에 오르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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