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홍원 변호사 | 1944년 경남 하동 출생/ 진주사범학교·성균관대 법대/ 사시 14회/ 마산지검 거창지청장/ 서울지검 남부지청장/ 대검 감찰부장/ 부산지검 검사장/ 법무연수원장/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법무법인 로고스 상임고문/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국민의 심판 잣대는 바로 교만입니다.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동’에 대해 민주통합당이 제대로 대처했다면 표심이 그렇게 돌아서지는 않았을 겁니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제1당을 넘보고, 과반의석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큰소리치던 당이 제2당으로 내려앉은 것은 바로 국민 정서를 읽지 못한 탓이라고 봅니다. 새누리당도 152석으로 과반의석을 거머쥐었지만 160, 170석을 차지했으면 또 자만에 빠져들 수 있어요. 152라는 숫자에는 새누리당이 더욱 경계하고 국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거일을 며칠 앞두고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나라가 무너지는 느낌이 나서 일조해보려고 나갔던 것뿐, 다른 할 말이 없다”며 극구 사양하던 그는 총선 결과를 확인한 뒤 인터뷰를 수락했다. 그만큼 그도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게 돼 흡족한 듯했다. 그는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잡음이나 불공정성 등에 대한 지적은 적절히 피해가면서도 공천과정에서 받은 협박, 공천 개선점, 새누리당에 대한 고언 등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은 살짝 풀어놓았다.
그는 총선 날 저녁 자택에서 TV로 선거 결과를 지켜보면서 여러 감회에 젖어들었다고 했다.
“공천위원장으로서 공천을 한 뒤 선거전을 보니 험난한 세파에 자식을 내보낸 부모의 심정, 제자들을 가르쳐 사회에 내보낸 스승의 심정이 되더군요. 공천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투표 집계상황을 지켜봤습니다. 처음 공천 작업할 때는 100석도 건지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그러다 새누리당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변화를 약속하면서 여론이 좋아졌고 공천을 마무리할 때는 그래도 140석만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지요. 그러나 과반의석은 정말 예기치 못한 결과였어요.”
▼ 이번 공천 기준 가운데 특히 도덕성에 방점을 찍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 점이 성공 요인인가요?
“여러 가지 성공요인이 있지요. 무엇보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투혼이 빛났습니다.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선거유세를 위해 수천km를 누빈 그의 자세에 국민이 감동받은 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공천과 관련해서는 공천위의 진정성이 어느 정도 국민에게 전해졌다고 봅니다. 저는 국민 눈높이에 맞춘 공천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당에 의해 정해진 사람들만 갖고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적당한 사람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공천위 진정성 알아줬다’
▼ 손수조 후보를 ‘감동후보’라고 했는데, 비록 선전했지만 결과는 패배입니다. 어떤 감회를 갖는지요?
“공천 심사 면접 때 손수조 후보를 처음 만났는데 인상이 아주 강렬했습니다. 왜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느냐고 묻자 ‘국회의원이 되면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 국회를 개혁하겠다’고 하더군요.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의원이 되기 위해 안달하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사실 국가를 위해 고민하고 애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러니 제대로 된 경우라면 서로 자기가 하지 않겠다고 해야겠지요. 결국 국민보다는 특권 등 꿀을 더 생각하기에 서로 하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국회의원의 특권을 과감하게 내려놓는 게 정치개혁이라고 평소 생각하고 있었는데 손 후보가 그 얘기를 하는 겁니다.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앞으로 큰 인물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 종로에서의 패배가 공천 잘못으로 인한 것은 아닌지요?
“어쨌든 졌으니 공천을 잘못한 책임이 있다고 봐야지요. 종로라는 곳이 우리나라 정치 1번지이자 서울의 중심이기 때문에 중량감 있는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야권에서도 워낙 중량감 있는 이가 나왔으니 쉽지 않은 게임이었고요. 그러나 다시 공천한다 해도 홍사덕 이상의 후보를 내기가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 공천 과정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이었습니까?
“일반적으로 국민은 도덕적이고, 참신하며, 나라를 위해 일할 사람을 찾습니다. 그런데 실제 그런 사람을 찾아서 내놓으면, 그 못지않게 지명도를 따집니다.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고요. 그러니 신인의 진입장벽이 너무 높습니다. 참신성과 지명도의 조화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점이 가장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당선 가능성만 따졌다면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 당선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해달라는 당내에서의 주문이 있었나요? 아니면 박근혜 위원장으로부터 다른 주문이 있었나요?
“박근혜 위원장과 도덕성이나 정파 타파 등 몇 가지 원론적 얘기를 나누긴 했어요. 그러나 그 외엔 별다른 주문이 없었어요. 그게 박 위원장의 특장이더군요. 공천위를 굉장히 신뢰하고 존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