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호

군인은 군인, 간부는 간부 주민은 주민끼리 따로 삽네다

위성사진으로 본 평양공화국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입력2012-04-19 17: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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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인은 군인,  간부는 간부 주민은 주민끼리  따로  삽네다
    “통일전선부에서 일할 때 ‘신동아’를 교재 삼아 한국을 공부했어요. 공작부서 일꾼들이 하나같이 한국 월간지를 열심히 읽었습니다. 열두 권을 읽으면 한 해를 오롯이 이해할 수 있었거든요.”

    장진성 ‘뉴포커스(www.newfocus. co.kr)’ 대표는 2004년 탈북했다. 북한에선 공작부서에서 주로 일했다.

    “김일성, 김정일을 비판하는 대목은 공작부서 일꾼도 읽지 못하게 먹칠을 해놓습니다. 햇볕 드는 창가에서 신동아 해당 페이지를 햇볕에 비추면 먹칠로 가려놓은 부분을 읽을 수 있었어요. 호기심이 동해 먹칠한 부분을 더 꼼꼼히 읽었습니다.”

    그와 신동아의 인연은 깊다. ‘김일성 사망 직전 父子암투 120시간’(2005년 8월호), ‘親김일성 세력 제거작업 심화조 사건의 진상’(2005년 10월호), ‘프룬제 아카데미아 사건과 6군단 사건’(2006년 3월호) 기사의 익명 필자가 그다. 학술논문들도 지금껏 이들 기사를 인용하고 있다.

    그는 현재 당국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다. 북한이 최근 공개협박에 나선 탓이다. 대외 선전용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3월 19일 이렇게 논평했다.



    “쑥대 끝에 올라간 민충이처럼 놀아대는 장진성놈의 객기도 어이없지만 그런 민충이를 운명의 구세주마냥 신주 모시듯 하며 반통일과 동족대결의 돌격대, 반공화국심리모략전의 주역으로 내세워 요란스러운 광고를 아끼지 않는 훌륭한 연출가들의 처지가 너무나 가긍하다. 골라골라 하는 짓마다 어쩌면 이렇게 어리석고 구차한 것일까. 장진성놈이 앞으로 사람들의 조소와 비난 속에 천벌을 받고 황장엽과 같은 비명횡사의 운명에 처하게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하다.”

    “평양을 이 잡듯 들여다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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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당국이 격하게 반응한 까닭은 뭘까.

    그는 한국에 정착한 후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일했다. 2010년 12월 이 연구소에서 퇴직했다. 지난해 12월 인터넷 매체 ‘뉴포커스’를 창간했다. 북한 당국이 발끈한 것은 이 매체가 맛보기로 공개한 인공위성이 촬영한 평양사진 때문이다.

    “우리민족끼리가 하루에 세 차례나 저와 관련한 모략 기사와 논평, 단평을 게재하더군요. 몹시 불쾌했나 봅니다.”

    북한 매체가 관료나 정치인이 아닌 인사를 노골적으로 비난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것은 북한 지역의 주요 대상에 대한 자료를 공개해서다. 북한 당국은 “장진성놈 배후에 국가정보원이 있다”면서 국가정보원이 위성사진을 그에게 넘겼다고 공격했다.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개인 돈 5080만 원을 들여 만든 인터넷 매체의 배후에 국정원이 있다고 주장하다니 어이없는 일이죠. 상업위성이 제공한 사진으로도 광명성 발사기지, 고암포 공기부양정 기지 같은 곳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는 모양입니다.”

    그가 공개한 자료는 구글어스(earth.google.com)가 서비스하는 것으로 인터넷만 할 수 있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사진이다. 물론 그 건물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구글이 제공한 위성사진을 게재한 것을 두고 북한 당국이 국정원이 배후에 있다면서 촌극을 벌인 꼴이다.

    그는 북한이 쏟아낸 막말에 격분했다. 그래서 한걸음 더 나아가기로 했다. 그는 현재 ‘위성사진으로 본 평양공화국’이라고 명명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인공위성 사진으로 평양을 이 잡듯 들여다보겠다”는 게 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1차로 평양 전도를 만드는 작업을 끝냈다.

    “상공 150m, 200m에서 내려다본 위성사진(인공위성이 줌 기능을 이용해 150m 200m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찍은 사진)을 이용해 평양 전도를 만들었습니다. 보름 남짓 걸려 위성사진 600여 장을 수작업으로 붙인 거예요. 평양 전도에 권력 핵심부 저택을 비롯해 핵심·일상시설을 망라한 특정장소를 표시하고 그곳의 클로즈업 사진을 공개할 겁니다. 클로즈업 사진은 상공 50m 시점에서 내려다본 것으로 보여주려고 해요. 5월 혹은 6월에 전시회를 열고, 책으로도 출간할 겁니다. 상당히 흥미로울 거예요. 북한 당국이 또 한번 격분할 것 같습니다.”

    신동아는 150m 상공에서 평양을 내려다본 평양 전도를 넘겨받았다. 2GB 용량의 파일로 지도는 4m×4m 크기다. 400여 개 특정지역이 표시돼 있다. 포토샵으로 해당 지역을 확대해 들여다보면 150m 높이의 산에서 아래쪽 마을을 내려다보듯 특정지역을 클로즈업해 들여다볼 수 있다. 지도에는 400개 넘는 곳의 명칭이 적혀 있다. 600곳까지 늘릴 것이라고 한다. 신동아는 앞으로 북한 관련 기사를 보도할 때 보도내용과 관련한 지역사진을 이 평양 전도에서 클로즈업해 사용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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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은 해상도가 아주 높은 사진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평양 주요 시설은 좌표까지 다 파악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디테일에선 우리가 국정원보다 더 우수할 거예요. 평양에서 온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서울은 자고 나면 지도가 바뀌잖아요. 북한은 변화가 별로 없습니다. 건물을 용도에 따라 배치한 게 아니라 신격화 순위에 따라 배열해서 도시구조를 바꾸기도 어렵습니다. 우리가 탈북할 때와 비교해 바뀐 게 별로 없어요.”

    2만3000명이 넘는 전체 탈북자 중 평양 출신은 100명 안팎으로 알려졌다. 평양 거주자는 혜택받은 계층이다. 아무래도 탈북을 결심하는 이가 적을 수밖에 없다. ‘위성사진으로 본 평양공화국’ 프로젝트에는 그를 포함해 평양 출신 탈북자 30여 명이 참여했다.

    평양공화국의 속살

    그가 인쇄해 바닥에 붙여놓은 4m×4m 크기의 평양 전도를 가리키면서 설명했다.

    “서울은 강남이 부유하잖아요. 평양은 반대예요. 대동강 이남에 일반 주민이 다닥다닥 살고, 이북에 권력집단이 넉넉하게 삽니다. 이쪽을 한번 보세요. 창광지역의 한 저택인데, 김정은 고모 김경희가 사는 집입니다. 집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구역이죠. 평양은 권력집단별로 따로따로 모여 살아요. 여기가 중앙당촌이에요. 당 간부들은 노동당사 근처의 기관아파트에서 살죠. 이곳이 인민무력부촌입니다. 제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이 인민무력부 고위군관 아파트고요. 북동쪽에 금수산태양궁전 보이죠? 주석궁 주변 일대가 호위사령부촌입니다.”

    은 평양 전도에서 중앙당촌, 호위사령부촌, 인민무력부촌을 표시한 것이다. ①이 호위사령부촌 ②가 중앙당촌 ③이 인민무력부촌이다. 는 인민무력부촌을 확대한 것이다. 은 서민 거주 지역을 클로즈업했다.

    중앙당촌의 일부인 의 ①은 김경희, 장성택 집. ②는 창광특각(김정일 장남 김정남이 자란 곳), 그 왼쪽은 중앙당 간부 아파트다. ③은 김경희, 장성택 경호부대의 지휘부. ④는 창광촌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권력 실세 거주지. ⑤는 한국에서 북송한 비전향 장기수가 모여 사는 고급 아파트다. 이인모 노인을 포함해 한국이 북송한 64명 중 생존자 수는 알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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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중앙당 청사와 간부 아파트가 밀집한 곳으로 북한의 지도층 거주지다. 은 서재골 지역 일대를 클로즈업한 것이다.

    “서재골에는 김영남(최고인민위원회상임위원장) 집이 있습니다. 내각총리와 권력기관 장의 초대소도 있고요.”

    에 김영남 집을 비롯한 저택들이 보인다.

    “김정일은 땅 위로 다니지 않았습니다. 전용지하도로로 이동합니다. 이쪽을 한번 보세요. 이곳이 김정일이 인민문화궁전에 행사가 있을 때 지하에서 나온 ‘구멍’입니다. 김정은도 지하도로로 이동할 겁니다.”

    의 ②가 인민문화궁전 앞 김정일 전용 지하도로 출입구다. ①은 노동당 1호청사로서 당 총비서 집무실이 있다. ③은 중앙당 2호청사.

    그가 침을 꼴깍 삼켜가면서 설명을 잇는다.

    “북한은 지방이 평양을 부양하는 구조예요. 그런 평양조차 위성사진에서 드러나듯 권력 있는 놈은 권력 있는 놈끼리, 총 든 놈은 총 든 놈끼리, 당 간부는 당 간부끼리, 보통 사람은 보통 사람끼리 격리해 생활하는 곳입니다. 철저한 계급사회인 거죠. 에서 북동쪽의 금수산태양궁전 주변의 김일성 집안이 사용하는 땅을 좀 보세요. 여의도 열 배쯤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전시회와 책을 통해 이 사진을 공개하면 북한 당국이 또 한번 막말을 늘어놓을 겁니다. 그 사람들 처지에선 평양공화국의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일이니 황당하겠죠.”

    녹지의 도시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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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 설계는 국가의 정치·경제 체제와 분리할 수 없다. 6·25전쟁 때 폭격으로 초토화한 평양은 재건 사업을 거치면서 ‘이상적인 사회주의 도시 모델’로 사회주의 국가 사이에서 각광받았다. 위성사진으로 내려다본 평양은 정갈하다. 공공영역, 녹지공간을 넉넉하게 배치했다.

    “도시 설계는 서울보다 평양이 앞서 있어요. 주도면밀한 계획에 의해 도시를 건설하다보니 깔끔하기는 하죠.”

    평양의 공업용지 비율은 19%에 달하는 반면 서울의 공업용지는 3%에 못 미친다. 사회주의 도시는 생산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도시 설계자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 작업장 혹은 경공업 시설이 주거지와 일체화해 있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공장 앞에서 살고, 당에서 일하는 사람은 당 앞에서 사는 식이다.

    평양은 또한 녹지의 도시다. 인공위성에서 내려다본 평양은 녹색이 방사형으로 구축돼 있다. 서울의 그린벨트가 지방과 서울을 분리하는 환형의 띠라면 평양의 녹지는 밖에서 도심 쪽으로 침투해 들어와 있다. 녹지가 도시와 농촌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둘을 연결한다. 평양의 시민 1인당 녹지공간(40㎡)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0㎡)의 두 배가량이다. 1980년대 북한은 “도시 속의 공원이 아닌 공원 속의 도시를 만들자”는 구호를 내걸고 녹지 확충 사업을 벌였다. 외국인도 만족하는 국제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대동강 양안과 주요 거리에서 녹지화, 공원화 사업이 추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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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이 무성한 곳에는 권력 집단의 거주지가 서 있다. 은덕촌이 대표적이다 를 클로즈업 한 의 ①로 표시한 지역에 여섯 동의 건물이 서 있다. 그중 한 동은 은덕촌만을 위한 발전소다. 한 층에 한 가구만 살도록 설계했다. 제2동엔 당 고위간부가, 제4동엔 군 고위간부가 산다. 오극렬(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최용해(노동당 비서) 집이 이곳에 있다.

    “은덕촌의 건물은 이태리산 붉은 대리석으로 계단과 복도를 치장했습니다. 오극렬, 최용해 집 오른쪽이 대남공작부서 수장들이 사용하는 초대소예요.”

    ②로 표시한 곳은 김양건(통일전선부장), 강관주(대외연락부장)가 사용하는 초대소다. 숲 한가운데 아늑하게 들어서 있다.

    인민무력부촌도 녹지에 자리 잡고 있다. 숲 가운데 건물이 총정치국, 총참모부, 정찰총국 청사다. 청사 아래쪽 주거지에서 인민무력부 소속 인사들이 거주한다.

    금수산태양궁전 뒤편의 녹지도 고즈넉하기 그지없다. 에서 ①은 호위사령부, ②는호위사령부 소속 군인가족이 사는 아파트다. 김정일이 사용하던 미림특각, 옥류특각 ①도 운치가 가득하다. 의 ②는 요트 선착장. 특각 주변에 도로가 없다는 게 특이하다. 지하도로가 연결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남공작부서가 밀집한 에는 장 대표가 근무하던 통일전선부와 대외연락부 등이 보인다(①, ③). ②는 공작부서 간부들이 사는 아파트다. 과장부터 부부장까지가 이곳에서 함께 산다. 이 아파트처럼 평양에는 초고층형 주거지가 많다. 30~40층 높이의 초고층 아파트는 1980년대부터 지어졌다. 초고층아파트는 현재 평양 주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는 초고층 아파트가 밀집한 통일거리다. 대로변에 초고층 건물을 짓고 안쪽에 생산시설, 생활구역을 저층으로 집어넣은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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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락한 도시의 대명사

    김정희(1921~1975)는 평양 건설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가 만들어낸 ‘1953년 평양 마스터플랜’은 지금도 평양에서 살아 숨 쉰다. 폭격으로 초토화된 평양은 이 천재에게 마음껏 뜻을 펼칠 캔버스와 같았다. 이상적 사회주의 도시로 불리던 평양은 1990년대 경제난을 거치면서 몰락한 도시의 대명사가 됐다. 그러나 김정희가 만들어놓은 뼈대는 탄탄하다. 건축가들은 평양은 아름다운 도시로 발전할 가능성이 큰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도시는 시대변화를 받아들여 진화하는 살아 있는 존재다. 평양이 자본주의의 숨결을 받아들이면 도시는 어떻게 변화할까? 북한이 민주화하면 권력자의 저택은 어떤 용도로 사용될까? 금수산태양궁전 주변은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도심의 공장터엔 너른 주차장이 딸린 이마트 같은 상업시설이 들어서지 않을까?

    장진성 대표가 4m×4m 크기의 평양 전도에서 자신이 살던 집을 가리킨다. 독재가 무너질 날을 기다린다.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꿈꾼다. 목이 빠진다. 조바심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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