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편집이다. 자신이 객관적 사실이라고 믿는 주관적 선택의 결과물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시절의 사건 혹은 자신이 직접 겪은 일에 대해 섬세하게 반응한다. 축구팬들도 마찬가지다. 각자 자신이 젊은 시절 보고 듣고 응원했던 선수들에게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눈앞에서 보고 있는 당대의 선수가 늘 가산점을 받는다. 평가의 왜곡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다. 메시와 호날두가 위대한 선수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역대 최고라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다.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를 선정하는 종합적 역사적 판단이 어려운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1960년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영상자료를 구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제약이 사람들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옛 선수들의 플레이는 사실의 영역에서 신화와 전설의 영역으로 진화한다. 심지어는 카메라에 잡히지 않은 특별한 무언가를 자기 눈으로 직접 보았다며 회고담을 펼쳐놓는 팬들도 있다. 하기야 나폴리 시절의 마라도나에게 바치는 응원가 제목이 오 비스토 마라도나(나는 마라도나 봤다)가 아니었던가. 가사 내용도 ‘나는 봤다, 나는 봤다, 마라도나 봤다, 내 눈으로 봤다, 내 두 눈으로 봤다’ 였다.
공 움직임 예측 불가능한 메시

메시의 드리블은 특별하다. 황선홍 포항 감독은 “메시는 달려가면서 스피드를 줄이지 않고 발목을 이용해 공의 방향을 바꾼다. 그래서 수시로 예측이 불가능한 움직임이 나온다. 막으려야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라고 평했다. 뛰어가는 방향과 상관없이 공중에서 발목을 비틀어 공을 제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동작인지는 독자 여러분께서 직접 실험해보시기를. 그건 마치 한 손으로는 탁구를 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배드민턴 셔틀콕을 날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비수들이 잔뜩 모여 있는 우거진 밀림, 슛은 고사하고 패스하기도 여의치 않은 지점에서 메시가 빠른 슛을 날리고 득점에 성공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발목과 부드러운 허벅지 근육. 아주 미세한 틈만 보이면 메시는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공간을 창조한다. 백스윙 없이도 공에 엄청난 힘을 실어 보내는 건 아무나 구사할 수 있는 테크닉이 아니다.
그리고 칩 슛. 골키퍼의 머리 위를 넘겨 부드럽게 날아가는 칩 슛은 축구의 역설이다. ‘빠르고 강한 것이 우월한 것이다’라는 일반론을 넘어 ‘느리게 그러나 정확하게’ 들이대는 우아한 비수. 그래서 팬들은 칩 슛이 포물선을 그리며 둥실 떠오를 때마다 숨이 멎는다. 메시가 날리는 칩 슛은 그가 쏘아대는 전체 슛 가운데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메시는 축구 역사상 칩 슛의 구사빈도가 가장 높은 선수일는지 모른다. 그래서 골키퍼가 괴로운 것이다. 좌우뿐 아니라 머리 위도 방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의력은 분산되고 빈틈은 더 커진다.
하나가 더 있다. 메시의 칩 슛은 품질이 다르다. 일반적인 경우 다른 선수들의 칩 슛 포물선이 그리는 정점은 골키퍼의 뒤쪽 상공이다. 골키퍼의 키를 넘은 뒤 낙하 각도를 그다지 꺾지 않고 골로 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메시의 칩 슛은 정점을 골키퍼의 머리 위 90도 지점에 둔다. 그래서 메시의 칩 슛은 골대 앞에서 급격하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폭포수처럼 직각에 가깝게 낙하하던 전성기 시절 최동원의 드롭커브! 그것은 정말로 독특한 재능이다. 그래서 말한다. 극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발목을 이용해 공을 감아올려 손으로 던져 넣는 듯한 구질의 칩 슛을 구사한 사람은 지구상에서 단둘, 메시와 마라도나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