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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현장 취재

미국 오스틴 시 학생들의 한국어 열풍

4개 학교 정규 과목 채택, 8개 학교 방과 후 과정 설치

  • 텍사스 오스틴=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미국 오스틴 시 학생들의 한국어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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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국 학생 2명뿐인 학교에서 울려 퍼지는 “안녕하세요”
  • ● 교포 2세 교사와 한국 정부의 콤비 플레이
  • ● “열심히 공부해서 한국 여행 갈래요”
  • ● 한국어 ‘자격 교사’ 양성을 위한 도전
미국 오스틴 시 학생들의 한국어 열풍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 시 트래비스 하이츠(Travis Heights) 초등학교 학생들은 동양인을 보면 무조건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고개도 꾸벅 숙인다. 이 학교는 지난해 가을학기부터 한국어를 필수 과목으로 가르치는 곳. 만 4세에 입학하는 ‘프리케이(Pre-K)’부터 2학년까지 4개 학년 어린이 모두가 한국어를 배운다. 텍사스 주 사상 최초의 일이다. 3학년부터는 한국의 보충수업과 비슷한 ‘방과 후 학교(after school)’에서 한국어 과목을 선택해 들을 수 있다. 이 과정 역시 인기가 높아 올해 봄학기 수강생이 90명이 넘는다.

교민 사회와 한국어

이색적인 것은 트래비스 하이츠 초등학교 전교생 550명 가운데 한국인은 단 두 명뿐이라는 점. 그런데도 교내에서는 수시로 한국어 이야기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은 비빔밥과 젓가락, 종이접기 놀이 등 한국 문화를 친근하게 여긴다. 한국 사람을 보면 어떻게든 대화를 나눠보려 하는 모습은 영어를 갓 배운 우리나라 어린이들을 연상시킨다. 텍사스 주를 관할하는 휴스턴총영사관 한국교육원 박정수 원장은 “그동안 오스틴 학교들은 외국어 과목 시간에 스페인어나 중국어, 일본어 등을 주로 가르쳤다. 언어를 배우면 자연스레 그 나라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트래비스 하이츠 초등학교의 모든 학생이 한국어를 배우게 된 건 무척 의미 있는 일”이라고 했다.

현재 오스틴 시에서는 이외에도 머치슨(Murchison) 중학교와 오헨리(O‘Henry) 중학교 등이 한국어를 정규 수업 시간에 가르치고 있다. ‘방과 후 학교’까지 포함하면 한국어 수업을 하는 곳이 12개교에 달한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2010년 8월 박 원장이 휴스턴한국교육원에 부임할 당시 관할 지역인 텍사스 주, 루이지애나 주, 오클라호마 주, 아칸소 주, 미시시피 주 등 미국 중남부 지역 5개 주에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정규 학교가 한 곳도 없었다. 박 원장은 “지금도 루이지애나 등 4개 주의 경우 전무하다. 이 때문에 여러 교민 사회가 오스틴의 변화 속도에 놀라워하며, 관심 있게 지켜보는 상황”이라고 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재외동포담당관실의 김종길 사무관도 “텍사스처럼 그동안 한국어 정규 과목 채택이 어려웠던 지역에서 실질적인 성과가 나타나는 건 고무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한국어진흥재단에 따르면 2011년 가을학기 현재 미국 전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초·중·고교는 75개교에 불과하다. 이 중 47개가 캘리포니아 주에 있고, 그중에서도 44개는 LA가 위치한 남캘리포니아 주(남가주)에 모여 있다. 뉴욕 주(11개), 애리조나 주(4개), 뉴저지 주(2개)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교는 한 주에 한 개쯤 있거나 아예 없는 셈이다. 교민 사회가 안정적으로 형성된 지역 밖에서 한국어가 정규 커리큘럼에 진입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자료다.



이런 상황에서 교민 자녀들은 대부분 비정규 교육기관을 통해 우리말을 배운다. ‘재외국민에게 한국어·한국역사 및 한국문화 등을 교육하기 위하여 재외국민단체 등이 자체적으로 설립하여 당해 지역을 관할하는 재외공관장에게 등록한 비정규학교(재외국민의 교육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 제4호)’, 이른바 ‘한글학교’다. 재외동포재단이 발표한 ‘재외동포 교육기관 현황’에 따르면 2011년 현재 미국의 한글학교는 952개. 이곳에서 9062명의 교사가 5만2959명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한글학교가 그동안 미국 사회에 한국어를 보급하는 데 크게 기여 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규 학교에 한국어 과목이 채택될 경우 나타나는 효과는 이보다 훨씬 클 것이 분명하다.

트래비스 하이츠 초등학교의 경우에서 보듯 일반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 한국에 대해 전혀 모르던 외국인이 자연스럽게 한국문화를 접하고,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친근감을 갖게 된다. 고등학교에 한국어 과목이 생기면 좀 더 즉각적인 이점도 생긴다. 교포 학생들이 외국어 공부에 대한 부담 없이 한국어 실력만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되는 것. 미국 대학에 지원하려면 고교 교육과정 동안 영어가 아닌 외국어를 2년 이상 배워야 한다. 한국어 과목이 없는 학교를 다니는 한국인 학생은 영어 외에 또 다른 외국어를 공부해야 하는 셈이다. 이것은 다른 언어권에서 온 이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므로 미국 내 여러 교민 사회는 어느 고등학교에 어떤 외국어 수업이 개설되는지에 큰 관심을 둔다.

우리나라도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 정규 학교가 한국어 수업을 채택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한국어진흥재단의 자료에서 알 수 있듯 LA 등 한국인 밀집 지역에서는 소기의 성과도 거뒀다. 최근에는 그 외 지역에서도 한국계 학부모와 한국어 교육 전문가, 현지 파견 정부관계자 등이 모여 활발히 활동하는 추세다. 2007년 10월 뉴욕과 뉴저지 등의 학교를 대상으로 삼은 ‘한국어 정규과목 채택 추진위원회’가 창립됐고, 2011년 2월에는 캘리포니아 주 북부에서 ‘북가주 한국어 정규과목 채택 추진위원회’가 출범했다. 이들은 지역 내 학교가 한국어를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도록 압력을 행사한다. 지난해 가을학기부터 한국어를 정규 과목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캘리포니아 주 동북부 지역의 도허티 밸리(Dougherty Valley) 고교에서도 재학생의 10% 정도인 한국계 학생들의 부모가 모여 ‘한인 학부모회’를 만들고 한국어 홍보 자료를 돌리며 서명을 받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포 교사의 열정

이런 사례와 비교할 때 오스틴 시에서 한국어가 뿌리내리는 과정은 다소 독특하다. 한국 학생이 두 명뿐인 트래비스 하이츠 초등학교가 가장 먼저 한국어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데서 알 수 있듯, 한국 학부모의 요구 없이도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가을학기부터 한국어를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기로 한 오스틴 시의 트래비스(Travis) 고등학교에도 한국 학생이 많지 않다. 이에 대해 박 원장은 “트래비스 하이츠 초등학교에 재직 중인 한국계 교사 랜디 황의 공이 크다”고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오스틴의 경우 한국어를 정규 학교 교과목으로 만들기 위한 학부모의 의지가 LA나 샌프란시스코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이 지역에 정착해 살기보다는 학위를 받은 뒤 떠날 계획인 유학생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학교에 한국어 수업을 개설하려면 학생 및 학부모의 요구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재미교포 2세인 황 교사는 2001년부터 텍사스 주에서 교사로 일하며 쌓은 경험과 인맥을 바탕으로 이 일을 해냈다. 자신이 일하는 학교의 교사와 학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여 텍사스 주 사상 최초로 한국어 정규 과목을 만들었고, 이후 다른 학교에도 이를 확대하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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