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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현장 취재

미국 오스틴 시 학생들의 한국어 열풍

4개 학교 정규 과목 채택, 8개 학교 방과 후 과정 설치

  • 텍사스 오스틴=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미국 오스틴 시 학생들의 한국어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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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스틴 시 학생들의 한국어 열풍

랜디 황 교사가 동료 교사와 함께 개발한 한국어 교육용 교재 ‘Introduction 2 Korea’.

황 교사는 “2010년 여름, 우리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우러 다니는 ‘오스틴한글학교’에서 휴스턴 한국교육원 박 원장님을 처음 만났다. 그분이 막 부임한 직후였는데 내게 ‘이 지역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현직 교사이시니 방법을 좀 알려달라’고 하더라. 그렇지 않아도 교사 생활 내내 우리 반 학생들에게만큼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조금씩 가르치고 있던 터였다. ‘정부가 지원만 해준다면 내가 일하는 학교에서부터 한국어 과목을 만들어보겠다’고 했고, 그게 시작이 됐다”고 했다.

“미국 학교는 교장의 권한이 굉장히 큽니다. 마침 우리 교장선생님이 외국어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문제는 요즘 미국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는 점이었죠.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을 부담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한국 정부에서 지원해주겠다고 하니 망설일 게 없었습니다.”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교장은 한국 정부의 지원을 통한 한국어 교육 제안을 환영했다. 학부모들도 추가 부담 없이 자녀에게 외국어를 가르칠 수 있게 된 것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미국 중남부 지역 정규학교에 사상 최초로 한국어 과정이 생길 수 있다는 보고를 받고 교육부도 빠르게 움직였다. 즉각 예산을 집행해 교사 채용 및 수업 진행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한 것. 그렇게, 황 교사가 ‘과목 개설’을 추진하기 시작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트래비스 하이츠 ‘방과 후 학교’에 한국어 수업이 만들어졌다.

“처음 시작하는 것인 만큼 방과 후 과정을 통해 먼저 한국어를 알리고 수요층을 넓혀 장기적으로는 정규 과목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교민 사회의 노력



제도적인 장애도 있었다. 텍사스 주가 한국어를 정규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외국어(LOTE·Language Other Than English)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 7개 언어만 LOTE로 정해져 있어, 학교가 한국어를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 문제를 푸는 데는 교민 사회가 나섰다. 휴스턴 한국교육원에 따르면 이미 2010년부터 한국계 교육 전문가들은 텍사스교육청에 한국어를 정규 학교에서 가르치는 외국어에 포함시키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 방법으로 추진한 것이 ‘한국어 학점인정시험(Korean CBE·Credit By Exam)’ 개발이다.

“CBE는 텍사스교육청이 운영하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일정 수준의 교과 지식을 가진 학생은 학교에서 수업을 듣지 않아도 해당 과목의 학점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제도입니다. ‘만약 아버지가 물리 교사라면 집에서 물리를 배워도 된다, 시험만 통과하면 학교에서 수업을 들은 것과 똑같이 인정해주겠다’는 취지지요. 텍사스 주에 ‘Korean CBE’가 만들어지는 건, 곧 한국어가 ‘LOTE’가 되는 것을 의미했어요.”

박 교육원장의 설명이다. 텍사스 주 댈라스 시의 ‘달라스한국학교’ 홍선희 이사장을 비롯한 한국어 교육자와 현직 텍사스 주 ESL 교사인 방화자·이미애·조용옥 씨, 텍사스주립대 오스틴캠퍼스(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박경 교수 등 많은 이가 이 일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2월 텍사스교육청이 ‘Korean CBE’를 승인했다. 자동적으로 일선 학교가 한국어를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한국어 수업을 원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모아 정규 과목 설치를 요구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쉽지는 않았다. 황 교사는 “‘방과 후 학교’에 한국어 수업을 만들기는 했지만 처음 신청자는 다섯 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다 우리 반 애들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한국어가 뭔지 몰랐고, 배우려는 뜻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다른 주에서도 교민 사회의 노력으로 어렵게 만들어진 한국어 과목이 수강생 미달 등의 이유로 학교에서 흐지부지 사라진 경우가 있다. 황 교사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만나는 애들한테마다 한국 과자를 쥐여줬다”고 했다. 아이들 이름을 한글로 써서 선물하고, 비빔밥 만들기 같은 문화 체험도 해보게 했다. 호기심으로 수업에 들어왔던 애들이 ‘재밌다’는 입소문을 내면서 수강생은 차츰 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 교사는 트래비스 하이츠 초등학교의 전체 교사와 학부모로부터 ‘한국어 정규 과목 개설을 원한다’는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이 근거가 돼 이듬해 ‘한국어’는 이 학교의 필수 과목이 됐다.

“텍사스 주에 ‘한국어 학점인정시험’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휴스턴 한국교육원 등 정부 기관이 교민 사회를 알게 모르게 많이 지원했어요. 그것이 한국어 과목 채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한국 정부가 미국 내 한국어 교육 확대에 큰 관심을 갖고 있구나’ 하는 인상을 받은 사람들이 ‘우리 학교에 한국어 정규 과정을 만들면 여러 지원을 받을 수 있겠다’는 실리적인 판단을 한 거죠.”

황 교사의 말이다. 실제로 미국 내 초·중·고교에 한국어를 보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국어진흥재단은 리사 로버트슨 ‘트래비스 하이츠’ 초등학교 교장을 한국으로 초청해 9일간 연수를 시켜주며 ‘한국어 과목 채택에 대한 한국 사회의 깊은 관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 재단은 2000년부터 매년 한국어반 신설 가능성이 있는 미국 학교의 교장 등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 교육제도 등을 소개하고 서울·경주 등의 문화 유적도 보여준다.

한국을 배우는 아이들

황 교사는 미국 학교에 한국어를 보급하기 위해 한국이 기울이는 이런 노력을 ‘매우 의미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어 수업은 외국인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한국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최근 한 학부모에게 받은 편지를 보여줬다. “선생님, 우리 딸 진저는 요새 한국어 공부에 푹 빠져 있습니다. 12월에 있을 한국어 시험을 아주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고 합니다. 우리도 진저가 완전히 다르면서 아름다운 문화를 접하게 될 이 기회를 잡기를 바라요. … 우리는 진저가 다른 문화를 접하고, 그것에 공감하는 것이 평화롭고 발전된 세계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진저는 지난해 황 교사가 가르친 백인 소녀로 지금은 트래비스 하이츠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오스틴 시의 풀모어(Fulmore)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방과 후 학교’에 한국어 과목이 있는 곳이라, 초등학교에 이어 2년째 한국어를 배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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