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호

미국 오스틴 시 학생들의 한국어 열풍

4개 학교 정규 과목 채택, 8개 학교 방과 후 과정 설치

  • 텍사스 오스틴=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2-04-20 1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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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오스틴 시 학생들의 한국어 열풍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 시 트래비스 하이츠(Travis Heights) 초등학교 학생들은 동양인을 보면 무조건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고개도 꾸벅 숙인다. 이 학교는 지난해 가을학기부터 한국어를 필수 과목으로 가르치는 곳. 만 4세에 입학하는 ‘프리케이(Pre-K)’부터 2학년까지 4개 학년 어린이 모두가 한국어를 배운다. 텍사스 주 사상 최초의 일이다. 3학년부터는 한국의 보충수업과 비슷한 ‘방과 후 학교(after school)’에서 한국어 과목을 선택해 들을 수 있다. 이 과정 역시 인기가 높아 올해 봄학기 수강생이 90명이 넘는다.

    교민 사회와 한국어

    이색적인 것은 트래비스 하이츠 초등학교 전교생 550명 가운데 한국인은 단 두 명뿐이라는 점. 그런데도 교내에서는 수시로 한국어 이야기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은 비빔밥과 젓가락, 종이접기 놀이 등 한국 문화를 친근하게 여긴다. 한국 사람을 보면 어떻게든 대화를 나눠보려 하는 모습은 영어를 갓 배운 우리나라 어린이들을 연상시킨다. 텍사스 주를 관할하는 휴스턴총영사관 한국교육원 박정수 원장은 “그동안 오스틴 학교들은 외국어 과목 시간에 스페인어나 중국어, 일본어 등을 주로 가르쳤다. 언어를 배우면 자연스레 그 나라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트래비스 하이츠 초등학교의 모든 학생이 한국어를 배우게 된 건 무척 의미 있는 일”이라고 했다.

    현재 오스틴 시에서는 이외에도 머치슨(Murchison) 중학교와 오헨리(O‘Henry) 중학교 등이 한국어를 정규 수업 시간에 가르치고 있다. ‘방과 후 학교’까지 포함하면 한국어 수업을 하는 곳이 12개교에 달한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2010년 8월 박 원장이 휴스턴한국교육원에 부임할 당시 관할 지역인 텍사스 주, 루이지애나 주, 오클라호마 주, 아칸소 주, 미시시피 주 등 미국 중남부 지역 5개 주에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정규 학교가 한 곳도 없었다. 박 원장은 “지금도 루이지애나 등 4개 주의 경우 전무하다. 이 때문에 여러 교민 사회가 오스틴의 변화 속도에 놀라워하며, 관심 있게 지켜보는 상황”이라고 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재외동포담당관실의 김종길 사무관도 “텍사스처럼 그동안 한국어 정규 과목 채택이 어려웠던 지역에서 실질적인 성과가 나타나는 건 고무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한국어진흥재단에 따르면 2011년 가을학기 현재 미국 전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초·중·고교는 75개교에 불과하다. 이 중 47개가 캘리포니아 주에 있고, 그중에서도 44개는 LA가 위치한 남캘리포니아 주(남가주)에 모여 있다. 뉴욕 주(11개), 애리조나 주(4개), 뉴저지 주(2개)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교는 한 주에 한 개쯤 있거나 아예 없는 셈이다. 교민 사회가 안정적으로 형성된 지역 밖에서 한국어가 정규 커리큘럼에 진입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자료다.



    이런 상황에서 교민 자녀들은 대부분 비정규 교육기관을 통해 우리말을 배운다. ‘재외국민에게 한국어·한국역사 및 한국문화 등을 교육하기 위하여 재외국민단체 등이 자체적으로 설립하여 당해 지역을 관할하는 재외공관장에게 등록한 비정규학교(재외국민의 교육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 제4호)’, 이른바 ‘한글학교’다. 재외동포재단이 발표한 ‘재외동포 교육기관 현황’에 따르면 2011년 현재 미국의 한글학교는 952개. 이곳에서 9062명의 교사가 5만2959명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한글학교가 그동안 미국 사회에 한국어를 보급하는 데 크게 기여 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규 학교에 한국어 과목이 채택될 경우 나타나는 효과는 이보다 훨씬 클 것이 분명하다.

    트래비스 하이츠 초등학교의 경우에서 보듯 일반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 한국에 대해 전혀 모르던 외국인이 자연스럽게 한국문화를 접하고,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친근감을 갖게 된다. 고등학교에 한국어 과목이 생기면 좀 더 즉각적인 이점도 생긴다. 교포 학생들이 외국어 공부에 대한 부담 없이 한국어 실력만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되는 것. 미국 대학에 지원하려면 고교 교육과정 동안 영어가 아닌 외국어를 2년 이상 배워야 한다. 한국어 과목이 없는 학교를 다니는 한국인 학생은 영어 외에 또 다른 외국어를 공부해야 하는 셈이다. 이것은 다른 언어권에서 온 이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므로 미국 내 여러 교민 사회는 어느 고등학교에 어떤 외국어 수업이 개설되는지에 큰 관심을 둔다.

    우리나라도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 정규 학교가 한국어 수업을 채택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한국어진흥재단의 자료에서 알 수 있듯 LA 등 한국인 밀집 지역에서는 소기의 성과도 거뒀다. 최근에는 그 외 지역에서도 한국계 학부모와 한국어 교육 전문가, 현지 파견 정부관계자 등이 모여 활발히 활동하는 추세다. 2007년 10월 뉴욕과 뉴저지 등의 학교를 대상으로 삼은 ‘한국어 정규과목 채택 추진위원회’가 창립됐고, 2011년 2월에는 캘리포니아 주 북부에서 ‘북가주 한국어 정규과목 채택 추진위원회’가 출범했다. 이들은 지역 내 학교가 한국어를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도록 압력을 행사한다. 지난해 가을학기부터 한국어를 정규 과목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캘리포니아 주 동북부 지역의 도허티 밸리(Dougherty Valley) 고교에서도 재학생의 10% 정도인 한국계 학생들의 부모가 모여 ‘한인 학부모회’를 만들고 한국어 홍보 자료를 돌리며 서명을 받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포 교사의 열정

    이런 사례와 비교할 때 오스틴 시에서 한국어가 뿌리내리는 과정은 다소 독특하다. 한국 학생이 두 명뿐인 트래비스 하이츠 초등학교가 가장 먼저 한국어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데서 알 수 있듯, 한국 학부모의 요구 없이도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가을학기부터 한국어를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기로 한 오스틴 시의 트래비스(Travis) 고등학교에도 한국 학생이 많지 않다. 이에 대해 박 원장은 “트래비스 하이츠 초등학교에 재직 중인 한국계 교사 랜디 황의 공이 크다”고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오스틴의 경우 한국어를 정규 학교 교과목으로 만들기 위한 학부모의 의지가 LA나 샌프란시스코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이 지역에 정착해 살기보다는 학위를 받은 뒤 떠날 계획인 유학생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학교에 한국어 수업을 개설하려면 학생 및 학부모의 요구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재미교포 2세인 황 교사는 2001년부터 텍사스 주에서 교사로 일하며 쌓은 경험과 인맥을 바탕으로 이 일을 해냈다. 자신이 일하는 학교의 교사와 학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여 텍사스 주 사상 최초로 한국어 정규 과목을 만들었고, 이후 다른 학교에도 이를 확대하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다.

    미국 오스틴 시 학생들의 한국어 열풍

    랜디 황 교사가 동료 교사와 함께 개발한 한국어 교육용 교재 ‘Introduction 2 Korea’.

    황 교사는 “2010년 여름, 우리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우러 다니는 ‘오스틴한글학교’에서 휴스턴 한국교육원 박 원장님을 처음 만났다. 그분이 막 부임한 직후였는데 내게 ‘이 지역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현직 교사이시니 방법을 좀 알려달라’고 하더라. 그렇지 않아도 교사 생활 내내 우리 반 학생들에게만큼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조금씩 가르치고 있던 터였다. ‘정부가 지원만 해준다면 내가 일하는 학교에서부터 한국어 과목을 만들어보겠다’고 했고, 그게 시작이 됐다”고 했다.

    “미국 학교는 교장의 권한이 굉장히 큽니다. 마침 우리 교장선생님이 외국어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문제는 요즘 미국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는 점이었죠.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을 부담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한국 정부에서 지원해주겠다고 하니 망설일 게 없었습니다.”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교장은 한국 정부의 지원을 통한 한국어 교육 제안을 환영했다. 학부모들도 추가 부담 없이 자녀에게 외국어를 가르칠 수 있게 된 것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미국 중남부 지역 정규학교에 사상 최초로 한국어 과정이 생길 수 있다는 보고를 받고 교육부도 빠르게 움직였다. 즉각 예산을 집행해 교사 채용 및 수업 진행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한 것. 그렇게, 황 교사가 ‘과목 개설’을 추진하기 시작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트래비스 하이츠 ‘방과 후 학교’에 한국어 수업이 만들어졌다.

    “처음 시작하는 것인 만큼 방과 후 과정을 통해 먼저 한국어를 알리고 수요층을 넓혀 장기적으로는 정규 과목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교민 사회의 노력

    제도적인 장애도 있었다. 텍사스 주가 한국어를 정규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외국어(LOTE·Language Other Than English)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 7개 언어만 LOTE로 정해져 있어, 학교가 한국어를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 문제를 푸는 데는 교민 사회가 나섰다. 휴스턴 한국교육원에 따르면 이미 2010년부터 한국계 교육 전문가들은 텍사스교육청에 한국어를 정규 학교에서 가르치는 외국어에 포함시키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 방법으로 추진한 것이 ‘한국어 학점인정시험(Korean CBE·Credit By Exam)’ 개발이다.

    “CBE는 텍사스교육청이 운영하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일정 수준의 교과 지식을 가진 학생은 학교에서 수업을 듣지 않아도 해당 과목의 학점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제도입니다. ‘만약 아버지가 물리 교사라면 집에서 물리를 배워도 된다, 시험만 통과하면 학교에서 수업을 들은 것과 똑같이 인정해주겠다’는 취지지요. 텍사스 주에 ‘Korean CBE’가 만들어지는 건, 곧 한국어가 ‘LOTE’가 되는 것을 의미했어요.”

    박 교육원장의 설명이다. 텍사스 주 댈라스 시의 ‘달라스한국학교’ 홍선희 이사장을 비롯한 한국어 교육자와 현직 텍사스 주 ESL 교사인 방화자·이미애·조용옥 씨, 텍사스주립대 오스틴캠퍼스(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박경 교수 등 많은 이가 이 일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2월 텍사스교육청이 ‘Korean CBE’를 승인했다. 자동적으로 일선 학교가 한국어를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한국어 수업을 원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모아 정규 과목 설치를 요구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쉽지는 않았다. 황 교사는 “‘방과 후 학교’에 한국어 수업을 만들기는 했지만 처음 신청자는 다섯 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다 우리 반 애들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한국어가 뭔지 몰랐고, 배우려는 뜻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다른 주에서도 교민 사회의 노력으로 어렵게 만들어진 한국어 과목이 수강생 미달 등의 이유로 학교에서 흐지부지 사라진 경우가 있다. 황 교사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만나는 애들한테마다 한국 과자를 쥐여줬다”고 했다. 아이들 이름을 한글로 써서 선물하고, 비빔밥 만들기 같은 문화 체험도 해보게 했다. 호기심으로 수업에 들어왔던 애들이 ‘재밌다’는 입소문을 내면서 수강생은 차츰 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 교사는 트래비스 하이츠 초등학교의 전체 교사와 학부모로부터 ‘한국어 정규 과목 개설을 원한다’는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이 근거가 돼 이듬해 ‘한국어’는 이 학교의 필수 과목이 됐다.

    “텍사스 주에 ‘한국어 학점인정시험’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휴스턴 한국교육원 등 정부 기관이 교민 사회를 알게 모르게 많이 지원했어요. 그것이 한국어 과목 채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한국 정부가 미국 내 한국어 교육 확대에 큰 관심을 갖고 있구나’ 하는 인상을 받은 사람들이 ‘우리 학교에 한국어 정규 과정을 만들면 여러 지원을 받을 수 있겠다’는 실리적인 판단을 한 거죠.”

    황 교사의 말이다. 실제로 미국 내 초·중·고교에 한국어를 보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국어진흥재단은 리사 로버트슨 ‘트래비스 하이츠’ 초등학교 교장을 한국으로 초청해 9일간 연수를 시켜주며 ‘한국어 과목 채택에 대한 한국 사회의 깊은 관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 재단은 2000년부터 매년 한국어반 신설 가능성이 있는 미국 학교의 교장 등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 교육제도 등을 소개하고 서울·경주 등의 문화 유적도 보여준다.

    한국을 배우는 아이들

    황 교사는 미국 학교에 한국어를 보급하기 위해 한국이 기울이는 이런 노력을 ‘매우 의미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어 수업은 외국인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한국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최근 한 학부모에게 받은 편지를 보여줬다. “선생님, 우리 딸 진저는 요새 한국어 공부에 푹 빠져 있습니다. 12월에 있을 한국어 시험을 아주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고 합니다. 우리도 진저가 완전히 다르면서 아름다운 문화를 접하게 될 이 기회를 잡기를 바라요. … 우리는 진저가 다른 문화를 접하고, 그것에 공감하는 것이 평화롭고 발전된 세계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진저는 지난해 황 교사가 가르친 백인 소녀로 지금은 트래비스 하이츠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오스틴 시의 풀모어(Fulmore)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방과 후 학교’에 한국어 과목이 있는 곳이라, 초등학교에 이어 2년째 한국어를 배운다고 한다.

    “올해 12월 오스틴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말하기 대회’가 열리거든요. 가장 잘하는 2명을 뽑아 한국 여행을 보내줘요. 진저가 그 대회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는 걸 제게 알리려고 부모님이 편지를 쓰신 겁니다.”

    황 교사에 따르면 한국어를 배우는 미국 아이 중 상당수가 진저와 같은 꿈을 품는다. 한국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고, 한국에 가보고 싶어하며, 나아가 한국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고 싶어한다. 황 교사의 말이다.

    “우리 학교가 한국어를 정규 과목으로 채택한 뒤 휴스턴 한국교육원에서 한국 어린이 도서를 영역한 책 2000권을 기증했습니다. 아이들은 그걸 읽으며 자기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 다양한 상상을 해요. 지난해 여름 우리 학교와 경기도 광명의 초등학교가 자매결연을 했을 때는 아이들이 다 들떠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상호 홈스테이, 자매학교 체험학습 같은 내용을 보고 ‘이제 한국 친구를 사귀어서 그 집에 가볼 수 있게 됐다’고 좋아한 거지요.”

    학교 내 한국어 교육의 힘을 확인한 황 교사의 목표는 더 많은 미국 학교가 한국어를 가르치도록 하는 것이다. 휴스턴 한국교육원 등과 함께 “‘방과 후 학교’를 통해 일단 학교에 한국어 붐을 조성한 뒤 차근차근 정규과목으로 바꿔나가자”는 전략을 세웠다. 이를 위해 틈날 때마다 오스틴 시내 학교 관계자와 교육계 인사들을 만나며 힘을 쏟고 있다. 동료 교사들과 함께 미국 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한국어 교재를 개발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황 교사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우리나라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명의의 ‘감사장’을 받았다. 그는 “교사 생활을 10년쯤 하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데 나는 그때 마침 ‘한국어’라는 새로운 주제를 만났다. 그 덕에 힘든 줄 모르고 신나게 일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학교들의 반응이 워낙 좋아서, 요새는 누구를 만나든 자신 있게 한국어 과목 채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고도 했다. 황 교사에 따르면 현재는 ‘방과 후 학교’에서만 한국어반을 운영하는 풀모어 중학교도 내년 봄학기부터 한국어를 정규 과목으로 채택한다.

    남은 장애물

    교육계 관계자들의 열정과 한국 정부의 지원 외에, 오스틴 시에서 정규 학교 한국어 수업이 확대되는 이유는 또 있다. 박 교육원장은 “오스틴에는 텍사스주립대 오스틴캠퍼스에서 공부하는 젊고 열정적인 한국인이 많은데다,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도 있어 주류 사회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좋은 편”이라고 했다. “그런 분위기가 한국어를 빨리 학교에 뿌리내리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는 설명이다.

    텍사스주립대 오스틴캠퍼스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명문대. 특히 대학원이 유명해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가 발표한 2013학년 랭킹에서 교육학 분야 3위, 토목공학 분야 5위 등을 기록했다. 오스틴 시민들은 이 대학을 자랑스러워하고, 재학생도 존중한다. 한국인 유학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텍사스주립대의 자체 통계에 따르면 2011년 가을학기 현재 이 학교에 다니는 한국인 학생은 877명. 중국인(878명)에 이어 외국 학생 중 두 번째로 많다. 한국인 유학생 수는 2007년 902명, 2008년 933명, 2009년 942명, 2010년 908명으로 줄곧 외국인 중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존재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평가된다. 황 교사는 “트래비스 고등학교 관계자와 한국어 정규 과목 채택에 대해 얘기하는데, 그분이 ‘한국어를 배운 학생에게 한국 기업 인턴 채용 때 우선권 같은 걸 줄 수 있느냐’고 묻더라”며 “지금은 정해진 게 없지만 향후 정부와 기업, 지역사회가 뜻을 모아 좋은 방법을 찾는다면 미국 학생들이 한국어 수업 확대를 앞장서 요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오스틴에서 더 많은 학교가 한국어를 정규 과목에 포함시키도록 하려면 넘어야 할 산도 있다. 현재 눈앞에 닥친 것은 한국어 교사자격증 문제다. 미국 교육법상 고교생이 학점을 인정받으려면 정규 학교에서 해당과목 교사자격증이 있는 교사의 수업을 듣거나, CBE에 합격해야 한다. 문제는 현재 텍사스 주에 ‘한국어 교사자격증’이 없다는 점. 이 때문에 전자의 방식은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 박 원장은 “그동안 교민 사회가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요구할 때마다 교육청은 ‘주 내에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도, 가르치려는 곳도 없는데 그게 왜 필요하냐. 한국어 과목을 만들겠다는 학교가 있을 때 다시 오라’고 했다. 최근 오스틴의 트래비스 고교가 올 가을학기부터 한국어를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기로 하면서 이 문제가 현안이 된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교민사회와 텍사스교육청은 ‘한국어 교사 양성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 정규 과목이 개설될 경우 어떤 조건의 사람을 ‘자격 교사’로 볼 것인지를 놓고 대립하는 상태다. 타협이 이뤄지지 않으면 트래비스 고교의 한국어 정규 과목 채택은 무산될 수도 있다. 황 교사는 “생각해보면 그동안 큰 어려움 없이 달려왔다. 요즘 새삼 ‘한국어를 미국 학교 정규 과목으로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라는 걸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낙담은 안 한다. 나는 언제든 싸울 준비가 돼 있고, 머지않아 오스틴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오스틴뿐 아니라 미국 곳곳에서 오늘도 많은 한국인 교사, 학부모,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어 정규 과목 채택을 위해 뛰고 있다. 최근 한류 열풍을 타고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한국어 바람’이 미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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