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자 한 명과 보통 사람 24명이 이 기원을 찾아 지난해 여름 홀연히 서호주로 탐사를 떠났다. 평범한 사람들이 이렇게 무거운 주제를 탐구하는 일도 예사롭지 않은데, 왜 하필 서호주일까.
호주의 6개 주(州) 가운데 가장 넓은 서호주는 면적이 남한 땅의 약 33배이며, 호주 대륙의 3분 1을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구는 230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주도(州都) 퍼스에 180만 명이 살고 있고 그 외의 지역은 인구밀도가 극히 낮다. 서호주는 철광석, 석유, 금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며, 초기 지구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과학자 한 명은 바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인 박문호 박사이며, 보통 사람들은 박 박사가 이끄는 학습 모임 ‘박자세(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mhpark.co.kr)’ 회원들이다. 2011년 3월부터 7월까지 14주 동안 매주 일요일 4시간씩 자연과학 강의를 들은 사람들이 책 속에서 추상으로 이해한 자연을 현실로 느껴보기 위해 해외 탐사를 떠났다.
11박12일 동안 탐사대원들은 다섯 대의 승합차에 나눠 타고 남쪽 퍼스에서 북쪽 벙글벙글 레인지(Bungle Bungle Range)까지 7000㎞를 이동했다. 이번 탐사의 일지를 기록한 이는 탐사대원 가운데 가장 어린 대학생 이모 양(ID 아샤)이다. 머리 희끗한 중년이 대부분인 탐사대원 가운데 유일한 젊은 학생이었다. 대학 졸업반 학생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수재이지만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해 회의하던 중 박 박사의 강의를 듣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가 탐사 기록서인 ‘서호주’(도서출판 엑셈)에 이렇게 적었다.
‘빅뱅이 만든 우주의 지문이 찍힌 위성사진을 보고, 아샤는 놀라 눈물을 흘렸다. 시간과 공간과 물질이 서로를 결정하는 상대성이론과 무기물이 모여 유기물이 되는 생명의 레시피 실험, 요동치는 양자의 세계와 내 안에 꿈틀대는 미토콘드리아를 만났다. 현미경 속 자그마한 것들부터 천체망원경 밖 우주 저 끝까지, 알고 보니 세상에는 소중한 것들이 넘쳐났다.’
탐사대원들은 호주에서 천막 야영을 하며, 곳곳에 숨은 지구 과학적 원리를 찾아나섰다. 20억 년 전 철광층과 최근 화산 지층이 한데 공존하는 카리지니 국립공원의 데일스 협곡,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진의 마을, 지구상에 처음 산소를 만들어낸 원시원핵 생물인 시아노박테리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샤크베이 해변 등에서 지구와 생명의 기원을 떠올렸다. 평원에 밤이 찾아오면 하늘을 우러러 마젤란 성운과 남십자성을 보며 우주와 자신이 하나 되는 경험을 했다.
박문호 박사는 지난해 서호주 탐사에 이어 올해 3월 22명을 데리고 미국 남서부를 탐방하고 돌아왔다. 콜로라도, 뉴멕시코, 유타, 애리조나 주가 만나는 지점인 포 코너스(four corners)의 인디언 유적지, 그랜드캐니언, 데스밸리 등을 탐사했다. 지질학 천문학 유전학 고생물학 등의 현장학습시간이었다. 미국에서 갓 돌아온 박 박사와 마주 앉았다.
자연과학 공부에 미친 사람들
▼ 탐사대의 성격이 궁금합니다. 학문적 성취를 위한 탐사인가요, 회원 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것인가요?
“국내에도 정수일 문명교류연구소장이 이끄는 실크로드 답사나 바이칼포럼 등 여러 탐사모임이 있습니다. 이런 모임은 대부분 전문가가 인솔하고 현지에서 비전문가들이 전문가의 설명을 듣는 형태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임은 탐사 전에 참가자들이 분야를 나눠서 3, 4개월 동안 공부를 하고 각자가 전문가가 됩니다. 제가 총괄하고, 외부 전문가는 초청하지 않습니다. 이번 미국 탐사에서는 특히 인디언 유적지를 여러 곳 방문했는데 10여 명이 사전에 지질학 천문학 등 전문 분야를 공부했습니다. 우리는 탐사 전후에 각각 발표회를 갖습니다. 그 뒤에 ‘서호주’의 경우처럼 책으로 엮습니다. 두 번째 책은 미국 남서부 지역 탐사를 다룰 예정입니다.”
▼ 탐사대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다양한 계층, 직업의 사람이 섞여 있어요.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자연과학 공부에 미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교재로 삼은 책은 모두 대학의 자연과학 교과서다. 그보다는 오히려 출발 전에 한 회원들의 선행학습이 탐사에 큰 도움이 된다.
“막상 탐사를 가려고 할 때 참조할 만한 자연과학 책이 별로 없어요. 관광지를 소개하는 책자는 탐사 지역을 주마간산으로 보고, 서정을 얘기하는 데 그칩니다. 그 지역의 지질이나 생태 등 깊은 이야기를 알 수 없어요. 서호주 탐사에 앞서서도 참조할 만한 지질학 책이 별로 없어서 고민했습니다. 선행학습과 탐사의 결과물인 책 ‘서호주’는 탐사대가 만든 지질학 교과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호주 샤크베이의 시아노박테리아에 대한 내용은 이 책의 압권이지요.”
박 박사 일행은 ‘서호주’에서 시아노박테리아 관련 부분에 100쪽이나 할애했다. 시아노박테리아가 도대체 뭔가.
“광합성을 하는 남조류인 시아노박테리아는 지금도 각 가정의 목욕탕에서, 혹은 대청호에서 수질오염을 일으키고 있어요. 그런데 이 박테리아가 광합성을 해서 포도당을 만들어내고, 그 포도당의 끈적이는 점액질에 모래알이 붙고 그것이 수천 년 동안 쌓여서 바위가 됩니다. 그런 바위를 스트로마톨라이트라고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지질구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이미 암석으로 형성돼 있어요. 호주 서부 샤크베이에선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아직도 시아노박테리아가 살아서 산소를 내뿜으며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만들고 있는 현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